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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알고 있다

 

군 안에서는 이미 초급 간부들이 앓고 있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분명히 알고 있다.

 

2014년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이 있은 후로 초급 간부 처우에 대한 논문이나 보고서는 계속해서 나온다. 그 논문이나 보고서에는 명확히 ‘해답’이 제시돼 있다.

 

한국 국방연구원(KIDA)에서 발행하는 ‘국방논단’ 제1908호를 보면 『MZ세대 간부의 군 복무 여건 진단과 개선』이라는 발제를 보자.

 

“우선 군 업무 특성, 각자 신분과 지위에서의 역할 등 군 조직 본연의 임무 완결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군의 업무 환경과 절차, 조직문화에서의 비합리적, 비효율적 부분을 식별하고 도려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20대 초중반 초급 간부의 업무 부담 경감과 조직 적응 및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 계발, 교육 기회와 여건을 적극적으로 부여하고, 군 간부 중 하급자이자 병사의 상급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나갈 수 있도록 조직적 차원의 신뢰와 조력이 매우 중요하다.”

 

“향후 군의 인력 획득 여건은 급속도로 악화될 전망인바, 직업군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간부 생활 여건과 복지 수준 향상에 관심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 보태고 말고 할 게 있을까? 보고를 위한 보고를 없애고,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정 업무를 도려내고, 조직 차원에서 초급 간부들에 대해 조력을 다 하고, 자기 계발과 교육 여건을 제공하고, 결정적으로 복지 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 문제다. 군 내부에서도 이미, 직업군인의 직업적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 앞으로 인력 획득이 더 어려워질 거란 걸 예측하고 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대책이다. 그 나머지 대책? 그건 ‘개소리’다.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내게 돌아올 인센티브가 없다면 그 직업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진다. 국방연구원에서 내놓은 제언처럼 하면 된다. 초급 간부들을 위해서 돈을 쓰면 된다. 

 

국방부는 이미 문제점을 알고 있고, 그 해결책도 다 알고 있다. 또한, 앞으로 초급 간부들 모집하는 게 더 어려워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간단하다. 국방부는 해결할 의지가 없다.

 

푼돈으로 굴리는 간부

 

군 간부들이 훈련 중 먹은 전투식량 비용을 훈련 끝나고 다 토해냈다는 게 뉴스로 나와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이게 작년 일이다. 20일간 훈련 나갔다 오니 밥값만 수십만 원을 내라고 하니, 간부들이 어처구니가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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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사링크

 

당직비도 문제다. 간부들은 돌아가면서 당직을 선다. 당직을 서면 당연히 당직비가 나와야 한다. 일반 공무원들은 3만 원 받는다. 그러나 군 간부들은 지금까지 1만 원을 받았다. 이걸 2023년에는 현실화하려 했는데, 기재부가 반대하는 바람에 물 건너가게 됐다(소령 정년 연한 50세 확대도 반대한 게 기재부인데... 이렇게 보니 최근 군과 기재부가 부딪히는 게 많다).

 

국방부는,

 

“2027년까지 당직비를 현실화하겠다.”

 

라고 말했지만, 원래 계획이 2023년도 당직비 현실화였던 걸 생각하면... 음...

 

이러다 보니 군 초급 간부 충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장교도 문제지만, 부사관의 경우는 더 충격적이다.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군대는 일찌감치,

 

“부사관 비중을 늘려 줄어드는 병 인력을 대체한다.”

 

는 계획을 가지고 꾸준히 부사관 인력을 늘리고 있었다(장교가 7만 명 수준인데, 부사관은 그 2배 가까이 되는 13만 명 수준이다). 국방부는 2026년까지 우리 군에서 간부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40.6%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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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 학과의 인기도 그리 신통치 않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부사관 충원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미 정원의 20%가 비어있는 상황이다. 이건 비단 부사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급 간부들은 지금 사람이 부족해서 겸직 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인력은 부족한데, 업무는 가중되고 있고, 군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나 할 거 없이 군을 나오려 눈치를 보고 있다.

 

문제유발자

 

저출산 문제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조직이 바로 ‘군대’다. 이미 군은 21세기 들어설 때부터 앞으로의 군을 예측하고, 군대 조직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꾸준히 증가하는 간부 비율이 바로 그 증거이다.

 

“병사가 줄어드는 만큼, 간부들을 늘려서 전투력을 유지하자!”

 

라는 게 국방부의 생각이었다. 학령인구도 줄고, 징병 자원도 줄고 있다. 세상은 나날이 변화하고, 평균 생활 수준은 예전보다 더 윤택해졌다. 결론은 군대에 대한 메리트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거다. 원래부터 군대는 ‘가기 싫은 곳’이다. 만약 징병제가 아니라면, 지금 간부 숫자만큼도 채우기 힘들 수 있다.

 

군대의 힘듦은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정신적인 거다. 가기 싫은 곳에서 보기 싫은 사람과, 원하지 않는 시간 동안 있어야 하는 게 군대다. 거기서 배우는 건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 죽이는 일”

 

이다. 일반 사회에서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일이다. 위험할 수밖에, 낯설 수밖에, 힘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힘든 일을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다는 거다. 군대는 곧 한 나라의 주권을 의미한다. 군대를 포기한다는 건 주권을 내려놓는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이 경술국치 이전에 했던 일이 뭔가? 1907년 대한제국군을 해산하지 않았던가? 군대를 해체하는 건 국권을 넘기는 거다.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징병제 상황에서 간부로 복무하는 메리트 보다 병사로 복무하는 게 훨씬 더 좋게 설계(?!)된 기형적인 복무 형태, 우수인력들이 군 간부보다는 ‘의무’로서의 군 복무를 짧게 해치우고 돌아가는 걸 선호하게 됐다는 것부터 정책적 판단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사실 정책적 판단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지르고 본 결과겠지만).

 

정책이란 건 ‘역진’하기 어렵다. 한 번 줄인 군 복무 기한과 병 봉급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간부 비율을 늘려가기 위해선 그에 상응할 만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도대체 얼마를 줘야 할까? 이렇게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상황은 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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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군대가 무너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병사들의 자살에 관한 소식이 뉴스에서 사라졌다. 2014년 윤 일병, 임 병장 사건 이후 국방부는 군내의 구타 가혹행위에 엄단을 말했고,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이걸 해내기 위해 초급 간부들은 죽어 나가야 했다. 거기다 핸드폰을 비롯해 각종 군 인권 향상을 위한 조치들이 이어지면서 병사들의 자살률은 극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특히나 핸드폰이 큰 역할을 했다. 핸드폰이 병사들 손에 들어가기 전인 2019년에는 병사들 자살 건수가 27건이었는데, 핸드폰이 병사들 손에 들어간 2020년에는 17건으로 크게 줄었다.

 

이렇게 병사들의 자살률이 줄어드는 동안 간부들의 자살률은 수직 상승했다. 군대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 중 60% 이상이 간부들이다. 2018년 기준으로 65%가 간부였다. 2021년엔 이미 간부들의 자살 건수는 병사들을 추월했다. 2019년 병사들이 27명 자살하는 동안 간부들은 32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 심각한 건 간부 자살 사건의 60%가 초급 간부라는 거다. 같은 나이 또래에 입대해 월급 조금 더 받는 대신 더 많은 책임과 업무를 떠안아야 했던 초급 간부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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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저출산 문제로 징병 자원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전력 유지를 위해 초급 간부를 확충해야 하는 게 군대의 현실인데, 그 초급 간부들이 군을 버리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간부들의 비중을 더 늘릴 수 있을까? 아마 현상 유지도 어려울 거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는 심각하다.

 

대한민국 군대의 붕괴. 

 

근간이 죄다 흔들리는 지금, 기재부도 짜잘한 당직비 같은 건 이제 파토 놓지 말고, 정권은 공(空)약으로 수직낙하시킨 군의 사기를 본인들이 챙기는 수밖에 없겠다. '안보는 보수'라고 본인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다음편을 마지막으로 소박한 결론을 내볼까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