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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왼쪽부터 <돼지의 왕>, <더 글로리>

 

학교폭력이 사회 이슈로 대두되면서, 드라마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웹툰 '돼지의 왕'이 높은 시청률을 얻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바로 김은숙 작가,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입니다. 

 

'돼지의 왕'이 남학생들 간의 이야기라면, '더 글로리'는 여학생을 중심으로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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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일부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폭행 장면이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실제로 수년 전, 어느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재연한 것이지요. 현실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의 학교 폭력입니다.

 

복수 과정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부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은(송혜교)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직업인 저에게, 그녀의 행동은 그다지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또 한 명의 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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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작년 겨울, 25세 여성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제가 하는 일을 우연히 알게 되어,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옛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도, 가해 학생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했습니다. 개명하면서 과거를 잊고 싶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매일 밤 삶과 죽음을 오갑니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시도 쉴 수 없습니다. 

 

그녀가 흐느끼며 한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선생님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가해 학생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도저히… 저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울다가 잠이 들어요.”

 

그들이 사는 세상이 낯설지 않은 이유  

 

'더 글로리' 속 인물들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군상을 대표하는지, 그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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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연진이 엄마의 남자친구는 경찰 경무관입니다. 공적 지위를 이용해, 연진의 학교폭력 사태를 무마하고, 성인이 된 동은을 사찰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연진과 공유합니다. 연진을 둘러싼 권력의 힘은, 저에겐 타락한 국가 공권력을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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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재준은 재벌 집 아들입니다. 부모의 재력으로 사태를 무마하고, 타인에게 갑질을 일삼으며 성장했습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재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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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사라는 대형 교회 목사의 딸이자 유명한 화가입니다. 마약 중독자로서 자신의 죄를 알지만, 매주 교회에서 구원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타락한 종교인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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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혜정은 평범한 세탁소 가게 딸입니다. 자라온 환경을 감안하면, 동은과의 정서적 유대 관계가 형성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강력한 신분 상승 욕구가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채, 가해 학생들과의 연대가 자신의 신분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은을 괴롭히는 데 동참합니다. 혜정의 행태는 마치, 권력에 편승해 잘못된 방법으로 신분 상승을 노리는 언론과 흡사합니다. 

 

현실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연진, 재준, 사라는 혜정과 친하게 지내지만, 사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혜정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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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명오는 전형적인 양아치입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 빌붙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입니다. 돈이라면 온갖 불법적 요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네 사람은 명오를 무시하고 하대합니다. 권력의 입맛에 따라 행동하고 대가를 지급받는 명오의 모습은, 과격하고 선동적인 표현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 유튜버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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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동은의 담임 교사는 오랜 시간 교편을 잡고 훈장을 받은, 모범 교사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출세를 위해 학교폭력 사건을 방관했고, 그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는 관료의 모습입니다.

 

제 해석이 과할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를 보는데 이런 기시감이 느껴진 건 사실입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악랄한가 싶다가도, 뉴스를 보면 현실에서 그와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학교 폭력 피해자의 아버지이니, 더 감정이입이 되고 남일 같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더 하면 더 했지, 사실 덜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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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최근 시즌 2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가해자들의 몰락과 동은 엄마의 재등장이 눈에 띕니다. 표면적으로 동은이의 학교폭력은 연진(임지연), 재준(박성훈), 혜정(차주영), 명오(김건우)에 의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 가장 큰 가해자는 동은의 엄마였습니다. 그녀는 딸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방관해 아이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계모가 아니고서야 저럴 수가 있나?” 혹은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인데?” 

 

몇몇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드라마 속 동은의 엄마는 현실에 존재합니다.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이런 부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 자신의 평판을 걱정해 초등학생 딸아이의 성추행 사건을 덮는 부모

 

- 강력 범죄에 준하는 학교폭력을 당한 자녀에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새출발하자' 설득하는 부모

 

- 자녀와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합의하고, 자녀의 평소 행실을 지적하는 부모

 

- 학교폭력 피해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해 이혼하는 부모. 결국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는 대화를 거부하고 몇 달간 식음을 전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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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관련 직업에 종사하다보면 상식 밖의 일들을 시도때도 없이 마주하는 법이지요. 저라고 괜찮을까요? 학폭 피해자의 부모이니 더 잘 알까요? 아닙니다. 현타가 옵니다. 학교폭력 사건은 물론,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피해 학생 부모와 가해 학생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뭐 대단한 의견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일단 자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누가 나에게 이런 일을 했으니, 가해 학생을 어떻게 처벌해달라 와 같은 내용은 피해 학생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처의 깊이가 어느 정도 얕아지면, 그때 이야기 나눠도 충분한 거리입니다.

 

그러니 자녀에게,

 

"넌 그때 뭐하다가 이제 말하니!, 처신을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도..."

 

... 란 무자비한 발언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본인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설마 그런 부모가 있겠나 싶지만, 많은 부모들이 분한 마음에 정도는 달라도 저렇게 표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사정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그들의 죄책감이, 자녀를 향한 원망으로 표현되어 아이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고 가족 사이가 멀어지는 건, 안타깝지만 흔한 일입니다. 

 

원망의 굴레

 

더 글로리 _ 공식 예고편 _ 넷플릭스 1-29 screenshot.png

출처 - <더 글로리>

 

부모의 자체 판단으로 자녀의 상처가 극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부모가 일방적인 의사 결정을 진행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의 분노 대상이 가해자에서 부모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32세 남성과 상담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중고등학생 시절 6년 동안 학교 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졸업 이후에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술에 의존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던 부모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1시간 상담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상담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그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상처를 알고 있었습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불편한 몸으로 건물 청소 일을 하며 번 150만 원의 월급은, 아들의 카드 값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들의 원망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어머니를 향했습니다. 그 누가 더 잘못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여전히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아들과 그 죄책감으로 몸을 혹사하며 뒤틀린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문을 나서며 말했습니다.

 

“아들한테 미안한 건 맞지만, 이제는 나도 너무 힘듭니다.”

 

그저 먼저, 안아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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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글로리>

 

저는 학교폭력 피해 부모와 상담할 때, 항상 부모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부모는 처리 과정에서 당신의 자녀에게 오히려 모진 말을 뱉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건이 진행되다가 본인이 답답하고 분해서 모진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 많은 어른의 선택이 무조건 맞다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녀의 상처는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결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다행히 합당한 처벌을 받더라도 피해자의 아픔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 피해자인 자녀는 무엇에 치유받을까요? 그 일을 처리하는 부모의 태도와 모습을 보면서 치유 받습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책하지 말고, 자책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시고, 오로지 아이의 상처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힘든 시간을 보냈을 자녀를 그냥, 꼭 안아주시길 바랍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침묵이 아닌, 체온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학교 폭력 피해자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제는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제가 느낀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이었습니다. 

(1) 후불제장례전문회사 주식회사 직장(www.ziczang.com, 24시간긴급장례의전센터1599-9093) 대표
(2) [학교폭력 부모바이블 1] & [아빠가 되어줄게] 저자
(3)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소장 https://blog.naver.com/leehaejune_lab)
(4) 유튜브 [이해준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