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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행 독과점 체제의 기점

 

현 정부의 금융권 때리기가 심해지는 듯합니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성과급,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언론들도 자극적인 기사들을 잇달아 냅니다.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권 보수체계까지 점검하겠다고 하는 등 그 수위가 점점 강력해집니다. 

 

급기야 현재 금융업의 과점적 형태를 제한하기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도 합니다. 기사만 봐서는 은행들이 독과점형태로 밀약하여 영업하고 있다는 인상도 줍니다. 물론 국내 금융산업은 과점의 형태가 맞습니다. 상품이나 서비스도 크게 차별화되지 않고 비교할만한 건 금리 차이 정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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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시 검사와 같은 팀에서 일한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아시다시피 1997년 IMF외환위기 때 수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그 기업들에 대출을 해주었던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떠앉게 되면서 국내 경제는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은행들이 발생했습니다. 저랑 비슷한 연배의 분들은 기억할 겁니다. 한일은행·주택은행·조흥은행 등등 많은 수의 은행이 있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언급한 시중은행들을 비롯하여 상당수가 퇴출당하거나 합병되었습니다. 이후 금융지주 설립 등으로 현재 주요 시중은행으로 분류되는 은행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정도입니다.

 

이제 위의 은행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시면 공통점이 하나 있을 겁니다. 상업은행은 한일은행과 합병했고(이후 우리은행으로 상호 변경),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했고,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 합병했고, 외환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했습니다.

 

네, 은행의 인수합병은 은행끼리만 진행되었습니다. 정부가 은행 사이 인수합병을 주도적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정부가 아예 모 은행과 모 은행이 P&A(Purchase & Assumption, 자산부채이전; 부실금융기관의 자산과 부채를 우량 금융기관에 인수시키는 것)방식으로 합병을 하라고 짝을 지어주었지요. 물론 그 이전에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나 외국자본의 인수 등 여러 경우가 있었지만 결국 은행의 인수합병에는 정부 개입이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자본은 참여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금융산업 구조가 대형은행들로만 이루어진 현 금융산업의 과점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타파하고자 인터넷 전문은행 등이 새로 시장에 진입하게 되었지요.

 

2. 핵심은 많은 은행이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

 

간혹 기사 댓글을 보다보면  "은행은 아무나 돈 있는 사람이 하면 그만 아니냐?"와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은행업을 하려면 상당한 규제들을 돌파해야 합니다. 세세한 설립법규야 복잡하니 대표적인 것만 말씀드리자면 우선 자본금이 1천억 원 이상이 있어야 하고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주식 소유 제한이 있겠습니다. 즉, 1천억 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다 하더라도 삼성·현대 같은 기업은 은행업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금산분리 원칙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금융업의 과점형태가 더욱 공고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이러한 금산분리 원칙 속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케이뱅크 등)설립에 대해서는 특별법제정 등으로 예외를 두고 있긴 합니다. 현재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도 기본적으로 은행의 전통적인 업무인 예대 업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예금금리와 빠른 대출실행으로 대출고객도 끌어왔지만 그외에 기존 은행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라고 할 만한 건 딱히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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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

 

해외의 사례를 보면 일본의 세븐뱅크(세븐일레븐)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의 유통망과 편의점에 설치된 ATM을 활용한 서비스가 주력사업입니다. 미국의 Ally Bank(GM)는 자동차 관련 금융서비스로 차별화를 두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미국 유럽 등에는 다양하고 많은 수의 은행이 있습니다. 협동조합 형태의 은행이나 점포가 1개의 소규모 은행부터 JP Morgan 같은 글로벌 은행까지 존재합니다. 외국의 소규모 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글로벌 은행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틈새시장 공략, 소규모여서 가능한 더 지역이나 계층에 맞춤화된 개인화 서비스 등 때문일 터입니다.

 

이런 차별화된 서비스를 갖지 못하고 단순히 진입장벽을 낮춰서 다수의 은행이 생긴다고 했을 때, 그 은행들 모두가 경쟁력을 갖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은행의 숫자만 늘어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일까요?

 

핵심은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 혹은 개정일 겁니다. 물론 금산분리 자체는 득과 실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더 옳다고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감독 당국이 말하는 은행권의 경쟁 촉진에 조금이라도 효과를 보기 위해선 단순히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으론 부족할 것입니다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에 진출하여 예상치 못한, 기존의 은행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나 해당 산업이 갖는 전문성을 무기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현재 존재하는 시중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을 겁니다.

 

3. 은행의 사회적 책임

 

또 자주 보이는 이야기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언론과 여론에서의 은행에 대한 인식은 은행이 중소기업,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융지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하고 수익 확대에만 몰두하여 높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인데... 은행이 많은 이익을 얻은 것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비판한다면 반대로 이익을 적게 보면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성과급으로 '돈 잔치'를 한다고 원색적인 표현을 쓰고 있지만 재밌는 건 2015년도 저금리 상황에서는 은행의 이익률이 낮다며 오히려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를 걱정했었습니다. 수익성이 낮아진 은행들은 부실 위험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건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령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은행이 대출 심사요건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무분별한 대출을 통해 은행의 자본을 많이 소진케 하고, 이후에 대출 회수를 할 수 없어서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단순히 은행이라는 산업 자체의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은행에 연계된 많은 기업과 개인들이 모두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은행이 도산하지 않더라도 이를 막고자 막대한 양의 공적자금 즉, 세금이 투입되면 이는 전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셈입니다.

 

즉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중소기업이나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 금융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건전성을 지켜서 사회적 비용을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은행의 기본은 예대차익이고,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COFIX(Cost of Funds Index, 자금조달비용지수;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을 반영한 새로운 대출 기준금)의 영향을 받습니다. '고금리 이자 장사'라고 하지만 금리는 은행의 건전성을 위해 고객별로, 대출의 종류별로 차별화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저축은행은 예금금리가 1금융권에 비해 높기에 과거 저축은행에 예·적금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받으려고 저축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들 상당수가 피해를 보았습니다. 중소기업이나 서민 등에 대한 대출은 상대적으로 대기업 등 우량기업에 비해서 리스크가 큽니다. 리스크가 큰 대출에는 높은 금리로 리스크를 햇지(위험 회피 또는 위험 분산)하는 것은 어쩌면 기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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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추적60분>

 

4. 정부 정책이 은행의 건전성을 도모할까

 

제조업 등에서 이익이 많이 났을 경우 각종 비용과 더불어 연구·개발에도 투자합니다. 새로운 제품과 시장의 니즈를 충족할 기능을 연구해야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겠지요. 은행이 이익을 냈을 경우 이익금은 어디에 사용될까요? 언론에서 매일 비판하는 성과급이나 주주 배당에도 사용이 되지만 가장 중요한 대손충당금에도 사용합니다.

 

대손손충담금은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이 가계나 기업에 대출을 해줬을 때 입을 수 있는 손실을 평가한 금액입니다.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금액이지요. 대손충당금은 말 그대로 피해에 대한 은행의 체력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각종 서민지원금융과 대출금리 인하 등을 발표하며 오히려 은행의 체력을 닳게 하는, 사회적 책임을 약화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복지와 금융 뒤섞어_출처 경향신문.png

출처-<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단순히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중소기업과 서민 등 금융 취약 계층에게 더 많은 자금을 대출해주고 심지어 대출 일부를 탕감해주는 정책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말일까요? 그저 현재의 불편한 여론을 잠재우고자 '타깃'을 하나 잡은 것이 아닐까요? 검찰 출신 대통령과 검찰 출신 금융감독원장이 범죄 수사 하듯 금융권을 압박하면서 '은행이라는 악당무리를 해치우는 정부라는 구원자' 이미지는 시간이 흘러 정당하게 평가받을 터입니다.

 

우려하는 바와 달리 정말 다방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은행업의 제도적 완화와 다양한 서비스와 전문성을 갖춘 인터넷 은행이나 전문은행들이 출범하고, 억지로 예금금리를 올려서 COFIX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인상하는 것도 막을 방법을 찾아내고, 은행의 주주 배당을 줄이고, 대손충당금에서 긴급 서민 대출을 실행해도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아낸다면 모를까... 그런게 아니라면 그토록 외치던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구호일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집자주: 물론 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다만 기타루맨님이 글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이 정부와 은행 중 누구의 몫인가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고 여겨 이 글을 올립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의 2월 17일 칼럼 일부를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칼럼 링크 : ‘금융 대통령’ 이복현 [아침햇발]).

 

고금리·고물가로 고통받는 다수의 국민은 윤 정부의 ‘은행 때리기’를 속 시원하다고 여길 수 있다. 이는 정권 차원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한 고도의 정치행위일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무능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 관심을 돌리고, 정부 책임도 회피하는 1석 2조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눈앞의 정치적 유불리만 계산해 포퓰리즘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노조 때리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은행 때리기는 노조 때리기와 마찬가지로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문제의 근본은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과 비용만 키울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가장 큰 근심은 한국 사회가 어렵사리 이룩한 역사적 성과들이 부정되면서, 과거로 퇴보하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을 앞세운 윤 대통령의 신() 관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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