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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당한 그해. 국회에 걸린 '한 문제적 그림'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여당과 언론은 전시 대관을 추진한 야당을 거품 물고 공격했다. 그때 걸린 그림은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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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잠자는 비너스>, <올랭피아>, <더러운 잠>

 

여당과 일부 여성 단체에서 거품을 문 논리는 이랬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으며 그래서 그림을 본 대한민국 여성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

 

공세를 견디다 못한 야당 의원들은 사과했다. 결국 전시회는 12일 만에 중단되었다.

 

당시 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이 정도였다.

 

여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고전 누드화 = 나체 여성

 

이러한 일차원적인 미감을 가진 자들에게 여성은, 무릇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었고 그림에서조차 맨살을 드러내선 안 되는 대상이었다. 전시회를 기습한 보수 단체는 <더러운 잠>을 훼손했다. "처녀"인 대통령님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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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N>

 

존경해 마지않는 각하가, 순결한 여성으로 남길 바라는 충정이었던 것일까. 참고로 요새는 '처녀'라는 단어, 잘 안 쓴다. 여성을 차별하는 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작가들이 다시 돌아왔다. 2022년 <굿, 바이 전>. 2017년 <곧, 바이 전>의 후속이다. 이번에도 국회에 작품이 걸리자마자 전시 하루 전날, 시작도 못 해보고 쫓겨났다.

 

이날 국회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회에서 예정된 전시 일정은 1월9일(월)부터 13일(금)까지. 작가들은 8일 오후, 국회 로비에 작품 설치를 모두 마쳤다. 그날 저녁, 몇 작가들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중으로 작품을 철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전시회 개막을 몇 시간 앞둔 상황. 거기다 일요일인데 무슨 일이 있겠나.

 

다음날 찾은 국회 로비에는, 전날 설치한 그림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국회사무처에서 밤새 전시회 출품작을 모두 압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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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 팩트>

 

원래라면 개막식을 진행하고 있어야 할 그 시각. 작가들은 국회사무처에 들러 항의하고 압수당한 작품을 돌려받는다. 그리고 국회의사당 영정 사진을 앞세워 나머지 작품들을 운구차에 싣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국회는 죽었다'는 의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충정로 딴지 사옥에 그림을 걸게 되었다. 이쯤되면 전시 과정도, 고도로 기획된 일종의 예술적 퍼포먼스가 아닌가 싶을정도.

 

딴지 사옥으로 '망명' 온, <굿, 바이 전>을 관람해본다. 다짜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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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사옥 1층 벙커에 작품을 설치하던 날

 

몰래 온 손님

 

1월12일, 전시회 둘째 날 오후. 취재를 위해 내려간 딴지 사옥 1층 벙커.

 

심상치 않은 한 남자가 카페에 들어선다. 두리번두리번- 작품을 스캔하던 그. 이하 작가의 <하나, 둘, 셋 김치~>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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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는 사람은 취재하는 사람을 알아보기 마련. 그가 다가온다.

 

의문의 사내: 원래 사람이 이렇게 많나요?

 

금성무스케잌: (뭐지)잘 모르겠는데요.

 

의: 이 그림들, 파는 건가요?

 

금: (뭐냐구)아닐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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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몰랐다고...

 

한동안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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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의 중요 부위를 들춰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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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꿍

 

<민주주의를 배회하는 지나치게 크고 불쾌한 거인>의 나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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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감상했다.

 

그리고 그날, 그가 쓴 한 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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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씨, 벙커 카페 점장님이 전해달라는데요. 담부터는 컵 반납 부탁드린대요. 여기 셀프라서요.

 

시기 부적절

 

원래 국회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던 <굿, 바이 전>은 1월9일~13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이었다. 지방에 사는 이들은 물론 서울에 사는 직장인도 그림을 직접 감상하기 힘든 일정. 벙커로 옮긴 그림들은 다행히(?) 30일 동안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가만히 놔뒀으면 더 짧게 끝났을 전시, 국회는 그 짧은 기간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무처가 전시를 거부한 이유는 이것.

 

시기 부적절.

 

전시 내용이 10.29 참사 국정조사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얼마나 부적절한지, 작품을 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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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우 작가의 <기레기툰>

 

위 작품은 언론 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작가가 선별한 기자의 초상화 위로 분홍색 엑스를 쳤다. 현재 130여 명의 기자 중 22명이 그를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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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오종선<조선일보 100년>, 주홍<거짓말쟁이 조선일보>, 정삼선<무제1,2>

 

작가들이 전시 일정을 앞당긴 건 10.29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다. 전시회 곳곳에 10.29 참사 희생자 추모작을 걸고, 정부의 무능함을 고발하기에 앞서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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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김동범<가슴에서도 건져주오>, 이정헌<not number>, 아트만두<애도의 방식>, 김동범<나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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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전시회, 한번 각 잡고 관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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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를 따라 관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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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지리는 포스. 박찬우 작가의 <기레기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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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에서 꽃이 터져 나온다. 어, 건물이 어디서 많이 보던 거다. 하나는 광화문에 있는 거고, 또 하나는 그 길 건너에 있는 거고... 조중동이 무너지면 언론의 새로운 희망이 터져 나온다는 의미인 걸까. 아니면 저 건물에는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까? 아무튼 이 작품명은 고경일 작가의 <세쌍둥이>. 건물은 좀 다르지만 셋 다 똑같이 닮았다는 거겠군.

 

이를 두고 맨 왼쪽 맏형 조선일보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감상평을 남겼다.

 

9.11을 연상시키는 명백한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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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뭐 꽃가루 알레르기라도 있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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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아트만두<오구오구>&<우리끼리 다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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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전종원<해먹을 결심>, 김성심<환생>사진

 

김성심 작가의 <환생>은 실물 없이 사진만 남았다. 작가들이 국회의 기습 철거를 항의하러 간 사이, 작품이 뜯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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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들이 희망의 나비가 되어 환생하는 모습. 이번 전시회에서 유일한 설치 미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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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LeoDev<술과 재주와 스승>, 민정진<렬구와 동칠이>

(완쪽 하단부터)아트만두<클린국회>, 정민주<패륜스승>&<패륜정권>, 조아진<선무당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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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하단부터 시계방향)김운성<진행하라>, 최인수<법치자유>, 이화섭<돌잔치>, 유준<광기의 시대>, 백영옥<누가 괴물을 만드는가>, 양동규<썩은 바나나>

 

벤딩머신 측면엔 노호룡 작가의 <뻑! 뻑!! 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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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걸린 검은 리본을 두른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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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하단부터 시계방향)박재동 만평, 이하<조선일보>, 정삼선<무제>&<애창곡 동백아가씨, 사랑2, 김앤장 Music>, 정세학<JULY당>, 이수진<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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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작가는 보리, 감, 쪽 같은 제주 산물을 소재로 얻는다. 제주민의 노동복이었던 갈천을 캔버스로 하고, '보리 아트' 기법(보리 줄기를 갈라 하나씩 펴서 납작하게 붙임)을 사용해 캔버스 위로 원하는 그림을 새겼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절규>는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묶고, (보지 않기 위해) 안대로 눈을 가린, (거짓말하는) 삐뚠 입을 가진 위정자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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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mi song&Ayako yamada<모두>

 

조선일보 기자가 떠난 자리에 걸려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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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김종도<기레기>, 양미경<아이들의 싸움방법>, 정용성<쓸자>

(왼쪽 하단)김운성 그림, 이하<하나, 둘, 셋 김치~>&<벌거벗은 임금님1,2>

 

윤家의 <해먹을 결심>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한 남자가 <해먹을 결심> 앞에 서 있었다. 방문객과 담소 나누는 모습이 영락없는

 

금성무스케잌(이하 '금'): 작가님...?

 

전종원 작가(이하 '전'): 아 예! 오뎅작가입니다.

 

우연히 만난 전종원 작가와 짧은 티타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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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을 결심(2022)>의 전종원 작가

 

금: 본업이 따로 있다고. 그림은 언제 그리나?

 

전: 보통 일과를 마무리하면 밤 11시에서 12시 사이다. 그때부터 한두 시간씩 매일 그림을 그린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본업도 그림과 관련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만화 동아리에 들어가거나 홍보팀에서 일러스트 일을 했다.

 

금: 시사만화는 언제부터 그렸나?

 

전: 21대 총선 당시, 지지하는 후보 얼굴을 그렸다. 그게 꽤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의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고. 시사만화는 조국 사태가 있었던 2019년부터. 좋아하는 얼굴을 그리고 싶어 그림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그러지 못해 조금 힘이 든다. 폴더에 들어가면 윤석열, 김건희 얼굴이 제일 많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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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영화 <헤어질 결심>. 어떻게 봤나?

 

전: 사실 영화를 안 봤다. 영화를 패러디할 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지금처럼 배치 용도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해먹을 결심>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왼쪽이 첫 번째 작품. 김건희가 윤석열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림이다. 출품작은 수정한 두 번째 그림. 영화 포스터 속 탕웨이처럼 김건희가 정면을 응시한다.

 

왼쪽부터 건진법사, 윤석열 부부, 천공 이렇게 네 명이 등장한다. 카피는 '대통령실 사저 공사 수의 계약'.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제외하고 해당 이슈에서 자주 등장했던 두 인물을 그렸다. 수의 계약으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그럼, 언론에서 보도하고, 검찰은 관련한 내용을 조사해야 한다. 근데 그 누구도 의혹을 다루지 않더라. 답답한 마음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금: 벙커에 온 소감은?

 

전: 국회사무처는 작가에 대한 배려 없이 전시회 하루 전날, 전시회 허가를 취소했다. 거기다 일방적인 작품 철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전시 공간을 제공해준 딴지에 고마운 마음이다. 작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볼 수 있으니까.

 

금: 작가 전종원이 생각하는 풍자란?

 

전: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권력을 가진 공인의 뼈를 때리는 것. 무드는 최대한 유쾌하게.

 

금: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전: 많은 사람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위아래 텍스트 설명을 덧붙인다. 사건을 디테일하게 알지 못해도, 그림을 보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정도의 관심을 가진다면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내 그림이 아주 조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아, 마지막으로. 우리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태도

 

카페테라스에 앉아 전화 통화를 하던 한 남자. 전종원 작가와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금: 저분은...?

 

전: 이번 전시회 주최자, 고경일 작가님.

 

금: (죠아써)작가니이임!!

 

그렇게 시작된 삼자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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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상단)고경일 작가의 <세쌍둥이>

 

금: 국회 기습 철거 날, 현장에 있었나?

 

고경일 작가(이하 '고'): 1월8일 아침. 작가들이 국회 로비에 모여 오후 4시까지 작품 설치를 완료했다. 지방에 사는 작가들은 일찌감치 본가로 내려갔고. 그런데 갑자기 오후 9시까지 작품을 모두 철거하라는 연락이 왔다. 회수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자체적으로 떼겠다고.

 

금: 전시회 하루 전에 철거 명령을 하는 경우가 있나?

 

고: 작가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이 전시 시작인데, 거기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설마 철거하겠나 싶었다. 근데 새벽 2시에 진짜 떼어 갔다.

 

금: 전무후무한 사건이라고.

 

고: 그렇다. 소위 사회 리더라고 하는 '정치인'들이 문화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작품을 만지고 옮기는 것 자체가 작품 훼손의 시작이다. 만약 <모나리자>라면 그랬을까?

 

이구영 작가의 그림은 눕혀서 가지고 나왔다. 작품은 그린 방향으로 들고 다녀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마음대로 작품에 손을 댄 무식한 행동은 차치해도,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다. 국내 작가를 하찮게 생각하니까 가능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일본인 작가 동료들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했다. 일본에서도 그림에 천을 씌우거나 벽을 세워 돌아가게 한 적은 있어도, 작가 이외의 사람이 작가도 모르게 작품에 손을 대는 경우는 절대 없다.

 

금: 작가 고경일이 생각하는 풍자란?

 

고: 풍자는 권력자가 불편해야 한다. 풍자 대상이 그걸 보고 웃는다면 그 풍자는 망한 거다. 살아있는 권력은 밥 한 끼, 차 한잔에 사용하는 금전도 검증받아야 한다. 우리가 뽑은 사람이고 우리가 주는 월급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풍자화가 수치심을 유발한다면, 그건 보는 관객들에게 손가락질받아야 할 일이다. 오로지 시민들이 판단할 문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이 작품은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시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금: 앞으로의 계획은?

 

고: 지금까지 광주, 제주, 서울 세 지역을 돌았다. 국회사무처의 비상식적인 행동 '덕분'에 이슈가 됐다. 다른 지역에서도 꾸준히 전시 요청이 들어온다. 3월 정도 대전에서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나체'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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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를 옆으로 틀면 대통령 부인의 얼굴이 보이니, 이 나체의 주인공은 부인이다!

 

여자 대통령의 '나체'를 그린 전력 있는 작가라고 쉽게 봤던 것일까. 아니면 관객 시력을 테스트해보려는 심산인 걸까. 2022년 <굿, 바이 전>에 출품한 이구영 작가의 작품 속 거인을 보고 보수 진영에서 들고나온 논리가 이렇다.

 

'누드'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덮여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이제는 작품에 대한 논란이 아닌, 작품 속 이야기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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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2017)>, <민주주의를 배회하는 지나치게 크고 불쾌한 거인(2022)>의 이구영 작가

 

금: 올해도 핫했다. 소감은?

 

이구영 작가(이하 '이'): 큰일이다. 자꾸 대통령을 발가벗기는 작가로 캐릭터가 잡혔다(웃음). 사실 풍자화 외에도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금: 어떤 그림인가?

 

이: 개인전을 연 적이 있다. 전시 제목은 '싸가지의 방'. 일반회화, 풍자회화, 민중미술, 게릴라미술 모두 작가 이구영이 걸어 온 길이다. 특히 거리 예술을 좋아하는데, <더러운 잠> 이후 풍자전문 불온 작가가 됐다.

 

금: 이번 작품의 제작 소요 시간은?

 

이: 약 한 달 정도. 크기도 크고, 마을을 통째로 그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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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인>

 

금: 고야의 작품 <거인>을 선택한 이유는?

 

이: 윤 정부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원작에서 거인은, 스페인에 쳐들어온 프랑스 군대를 막는 수호자라는 썰과 스페인 시민을 공격하는 공포의 거인이라는 썰, 두 가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시민을 해치는 공포의 무법자. 현재 윤석열 정부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금: 몸통은 하나인데 얼굴이 세 개다.

 

이: 그렇다. 윤석열 부부 외에 제3의 인물이 있다. 뒤통수 헤어스타일로 예측할 수 있는 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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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거인이 활보하는 마을은 특정 동네를 그린 건가?

 

이: 직접 보러 가자(그림 앞으로 이동). 한남동에서 보이는 달동네 어딘가를 그렸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골목길도 숨어있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시민들이 발견하고 연상할 수 있도록 했다. 10.29 그날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금: 노란 꽃은 뭔가?

 

이: 이 꽃은 피어 있는 꽃이 아니다. 죽어서 떨어진 꽃이다. 목이 툭툭 잘려서 건물 곳곳에 떨어진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소중한 가치를 거인이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고 밟고 다닌다.

 

금: 노란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꽃인가?

 

이: 꽃이면서,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촛불이다. 집마다 촛불을 켜면, 그것이 모여 민주주의를 회복한 꽃밭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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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여기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이: 이건 현실을 지켜보는 작가(본인)의 모습이다. 뭉크의 <절규> 속 얼굴을 하고 옥상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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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또 숨겨놓은 장치가 있다면?

 

이: 거인이 들고 있는 칼에 눈이 있다. 원래는 윤석열의 눈이 칼에 비친 것인데, 거인의 망나나짓을 바라보는 시민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거울 같은 거다.

 

금: 그 위로 달도 보인다.

 

이: 작년 11월, 개기월식이 있었다. 블러드문(붉은 달)을 통해 미래에 대한 경고. 안 좋은 예감을 표현했다.

 

금: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 미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아름다운 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창구여야 한다. 여기 있는 작가들은 문화면보다 사회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소리 내야 할 때를 알고, '붓'으로 '칼'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관객들이 우리 그림을 보고 위로받고,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비록 지금 탄압받고 있지만, 옳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게릴라 미술도 소개하고 싶다. 길을 걷던 사람들에게 짧은 순간의 행복을 주는, 소박해서 더욱 여운이 남는 그런 작품들이다.

 

한 달간의 여정: 망명작가 X 벙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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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 많은 시민이 벙커를 찾았다.

 

카페를 찾아온 사람들, 망명 작가를 응원하기 위해 저 멀리 지방에서 온 사람들, 길을 가다 북적이는 이유가 궁금해 즉흥적으로 방문한 사람들까지. 남녀노소 국적 불문 다양한 시민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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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 같이 온 지인에게 말한다.

 

모두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위로가 된다고.

 

2월9일, 전시회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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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작가들이 하나둘 씩 벙커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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뽁뽁이로 싼 그림을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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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나눠 타고 어디론가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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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한 데 모아 보관하기로 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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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음 목적지를 향한 준비.

 

오후 6시 정각. 한 달간 벙커에 걸렸던 그림들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굿, 바이 전 in 서울> 관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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