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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올리버트위스트.jpg

출처-<민음사>

 

 

19세기 대영제국의 현실, 신 구빈법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누구에게나 고통은 아니며 호황 역시 누구에게나 축복이 아니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 우주의 팽창에 따라 별과 별 사이가 멀어지듯이 빈부격차는 벌어질 뿐이다.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산업 혁명을 일으킨 자본주의의 아버지 영국은 19세기에 세계 최고 초강대국이 되었다. 전 세계에 널린 식민지들로부터 막대한 부를 착취했다. 그러나 부는 모든 영국민의 것이 아니었다. 상류층만의 것이었다. 거리에는 빈민들이 넘쳐났다. 가난한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비참해져 갔다.

 

“산업도시를 걸어 다니다 보면 그을음을 뒤집어쓴 작은 벽돌집들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곤 한다. 이런 집들은 진창투성이 골목길과 석탄재 깔린 좁은 뜰가에 무질서하게 늘어선 채 쇠락해가고 있다.”

 

-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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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시기, 런던 이스트엔드의 빈민층 아이들

출처-<한겨레> 

 

12명의 가족이 단 하나의 방에서 살아야 하는 것, 걸음마의 시작과 동시에 영양실조와 중노동을 선물로 받는 것. 이것이 당시 영국 노동자 계급의 현실이자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이었다. 그 결과, 당시 영국의 노동자 계급 평균 수명은 18~19세에 불과했다.  

 

벤담과 멜서스의 공리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이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신 구빈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난은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죄악이었다. 신구빈법의 핵심은 구빈원에 의존하는 빈민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최저수준의 급식을 제공하고 가혹한 노동을 의무적으로 강요하는 비정한 공리적 조치들일 뿐이었다. 여기에 행정 관리들의 부패와 무능이 결합되어 신 구빈법은 구빈원의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보육원의 두 아이, 올리버와 딕

 

올리버는 우렁차게 울어댔다. 자신이 고아가 되어 교구 위원과 민생 위원 나리들의 자비롭고 친절한 저 악명 높은 손길에 내맡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더욱 크게 울어댔을 것이다.

 

시골 읍의 구빈원 -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자들에게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주던 시설 - 에서 올리버 트위스트가 태어났다. 빈민 노파, 그리고 계약상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킨 교구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리버의 엄마는 곧 죽었다. 올리버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 교구 보육원에 맡겨졌다. 이후 열 달 동안 올리버는 젖이 아닌 멀건 죽으로만 길러졌다. 올리버는 키가 작고 비쩍 마른 어린이로 성장했다.

 

한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영양가 없는 음식을 최소한으로 먹고 생존하는 경지에 마침내 도달한 바로 그 순간 열에 여덟아홉은 그만 영양실조와 감기로 병이 들거나...... 그 불쌍한 어린 것들은 대개 저세상으로 불려가서는 이승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곤’했다.

 

밥먹는 사진.PNG

영화 ‘올리버’ 中

 

올리버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교구의 하급 관리 ‘범블’ 씨가 보육원을 방문했다. 올리버는 그때 석탄 저장실에서 보육원 또래 두 명과 함께 생일을 기념하고 있었다. 이 세 아이들은 감히 배가 고프다고 주장한 것 때문에 실컷 매질을 당한 후 그곳에 갇혀 있는 중이었다. 범블 씨는 보육원 책임자인 맨 부인에게 올리버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아홉 살이 된 올리버는 보육원을 떠나 구빈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자란 아이는 어른의 눈치를 갖는 법이었다. 올리버는 무서운 얼굴을 한 맨 부인이 범블 씨 몰래 주먹을 흔드는 것을 보고 짐짓 보육원을 떠나는 것이 몹시 섭섭하다는 시늉을 했다. 더구나 방금 전까지도 학대당했고 굶주려야 했던 어린아이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올리버는 두 눈에 눈물을 고이게 했다.

 

범블 씨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떠나며 올리버는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 뒤에 남겨 두고 가는 비참한 어린 친구들은 이제껏 그가 아는 유일한 벗들이었다. 특히 자신을 형처럼 따랐던 창백한 얼굴의 딕은 놀이 친구이자 단짝이었으며 함께 수도 없이 두드겨 맞았던 아이였다. 어린아이는 이제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고독감에 울고 또 울었다.  

 

 

죽을 더 달라고 한 죄

 

구빈원 이사회의 이사들은 대단히 현명하고 자비로운 분들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구빈원 수용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사는 묽디묽은 죽으로만 하루 세 번 지급했고, 일주일에 두 번 양파 하나, 일요일엔 빵 반 덩어리를 각각 추가로 제공하도록 했다. 비록 싸구려 관 값 대금 때문에 지출이 늘긴 했지만, 그들은 야위어가는 구빈원 수용자들과 줄어가는 그들의 수를 보며 환희에 차곤 했다.

 

아이들이 사용한 죽그릇은 닦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윤이 반질반질 나도록, 아이들이 워낙 깨끗이 긁어먹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솥을 앉힌 아궁이의 벽돌이라도 삼킬 듯한 간절한 눈초리로 가마솥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죽은 오직 한 그릇씩만 배급될 뿐이었다. 굶주림과 비참함으로 막다른 상태에 내몰린 아이들은 죽을 더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가장 어리고 체격이 작은 올리버가 뽑혔다.

 

죽 더 달라.PNG

 

구빈원이 발칵 뒤집혔다. 뚱뚱하고 혈색 좋은 주방장은 죽을 더 달라는 올리버의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고 범블 씨는 몹시 흥분한 얼굴로 이사회로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다. 이사회의 신사들은 올리버가 크면 분명 교수형을 당할 놈이라며 경악과 공포에 몸을 떨어 댔다.

 

올리버는 그저 하루 종일 구슬피 울기만 했다. 무섭고 긴 밤이 오면 어둠이 보이지 않도록 조그만 두 손을 펴서 눈을 가리고는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이사회는 죽을 더 달라는 신성 모독의 불경스러운 범죄를 저지른 어린아이에게 벌로 캄캄한 독방에 일주일 동안 감금했다. 그리고 구빈원 대문에 누구든지 올리버를 도제로 데려간다면 5파운드를 주겠다는 공고를 붙였다. 참으로 통 큰 인심이었다. 

 

 

도망쳐 나온 올리버, 런던으로 향하다

 

춥고 어두운 밤이었다. 올리버의 눈에 비친 하늘의 별들은 그날따라 지상에서 더 멀리 떨어진 듯했다. 지금까지 올리버는 그나마 운이 좋은 듯했다. 이미 두 명의 아이를 죽인 굴뚝 청소부가 아닌 장의사의 도제로 팔려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의사 집안의 매질과 비아냥과 경멸은 어린 올리버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올리버는 도망칠 것을 결심했다. 새벽이 되자 올리버는 길거리로 나섰다.

 

런던으로 가는길.PNG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올리버는 문득 예전 장례식 때 마차들이 읍내 밖으로 나가던 길을 떠 올렸다. 올리버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보육원 앞을 지날 때였다. 올리버는 보육원 정원을 들여다보았다. 작고 창백한 얼굴의 아이 하나가 풀을 뽑고 있었다. 딕이었다. 딕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올리버에게 주어진 마지막 작은 선물이었다. 올리버를 발견한 딕은 보육원 대문의 쇠막대살 사이로 야윈 팔을 내밀었다.

 

“날 봤다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딕.” 

 

올리버는 말했다. 

 

“난 지금 도망가는 중이야. 사람들이 하도 때리고 괴롭혀서 그래, 딕. 어디 먼 데로 가서 살길을 찾아볼 생각이야. 그게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한번 안아 줘, 형.”

 

아이는 낮은 대문 위로 기어올라 작은 두 팔로 올리버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잘가, 형! 하느님께서 형을 지켜 주실 거야!”

 

읍내를 빠져나온 올리버는 이정표를 하나 발견했다. 거기에는 ‘런던까지 112킬로미터’라 쓰여 있었다. 올리버는 런던으로 가기로 했다. 그 큰 도시로 간다면 무서운 범블 씨도 장의사도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잡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두 발이 온통 까지고 힘 빠진 다리가 후들거려도 하루 이십 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 가끔씩 구걸을 해가며 물을 얻어 마시며 걷고 또 걸었다.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가난한 고아가 사는 법은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부랑자가 되어 음식쓰레기를 뒤지다가 질병과 굶주림에 죽거나, 아니면 흉악한 범죄자들의 끄나풀이 되거나. 

 

 

범죄조직에 끌려간 올리버, 그리고 브라운로 씨와의 만남

 

올리버가 생각하기에 표준 농도로 낮춰 묽게 만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극빈자 350명분의 풍성한 식사가 될 만큼 진하디진한 국물이었다.

 

지독한 열병 속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올리버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깨끗한 침구와 난생처음으로 보는 진한 고기 수프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에 감사했다. 이 모두가 인자한 노신사 ‘브라운로’ 씨 덕분이었다. 브라운로 씨는 행복한 표정으로 수프를 먹는 올리버를 보며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올리버는 거리의 어린 범죄자들에 이끌려 유태인 노인 ‘페이긴’ 영감의 집에 끌려와 감금당했다. 일종의 납치였다. 페이긴 영감은 장물아비이자 어린 소매치기 집단의 두목이었다. 이 혐오스러운 얼굴을 가진 주름살 투성이 유태인은 올리버 같은 아이들을 납치해 소매치기 기술을 가르친 뒤 거리로 내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이 훔쳐 온 장물들을 되팔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있었다. 소매치기에 성공한 아이들에겐 술과 담배와 음식을 주었고 실패한 아이들에게는 모진 매질과 굶주림을 주었다.

 

페이긴 만난 올리버.PNG

페이긴을 만난 올리버

 

거리의 책방 판매대에서 브라운로 씨가 책을 고르고 있었다. 페이긴의 아이들 둘이 이 노신사의 호주머니에서 비단 손수건을 잽싸게 꺼냈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모퉁이를 돌아 도망쳤다. 일종의 실습을 나온 올리버는 이 장면을 보며 두려움에 온몸이 불에 덴 것 같았다. 겁에 질린 올리버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호주머니 속의 손수건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브라운로 씨는 도망치는 올리버를 보며 ‘도둑 잡아라!’고 외쳤다. 인간에겐 아마도 사냥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이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도둑 잡아라!’고 외치며 올리버를 쫓았다. 

 

이 불쌍한 아이는 기진맥진 숨이 넘어가도록 헐떡이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추격자들은 점점 늘어났다. 진짜로 손수건을 훔친 두 아이들도 낄낄거리며 신나서 추격자들과 함께 올리버를 쫓았다. 누군가의 주먹이 올리버를 갈겼고 올리버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손수건을 올리버가 아닌 다른 아이들이 훔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책방 주인의 말에 브라운로 씨는 올리버에 대한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올리버를 데리고 나와 자신의 집으로 온 것이다. 브라운로 씨의 집에 도착한 올리버는 곧 열병으로 쓰러졌다. 브라운로 씨와 집안사람들은 올리버를 극진히 간호했다.

 

유모 간호사진.PNG

 

열병에서 깨어나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 수프를 먹는 올리버를 보며, 브라운로 씨는 올리버에게 느꼈던 낯익음의 정체를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거실에 걸린 초상화 속 여인의 얼굴이 올리버의 얼굴과 유난히 닮았기 때문이다. 

 

 

잠시 스쳐 간 올리버의 행복

 

올리버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지 생각하고, 그 순간에도 굶주리고 매 맞으며 쓰라린 고통의 눈물을 흘릴 불쌍한 꼬마 딕을 한번 볼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따라 걸었다.

 

옆구리에 값비싼 책을 끼고, 주머니에는 5파운드를 넣은 채 올리버는 행복감에 겨워 브라운로 씨의 단골 책방을 향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책과 5파운드를 책방 주인에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브라운로 씨가 올리버에게 맡긴 첫 번째 일이었다. 브라운로 씨는 일을 할 테니 계속 머물게 해달라는 올리버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다.

 

가난한 자에겐 행복이 없다. 혹시 우연히 행복이 찾아와도 그것은 짧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낸시’가 거리를 걷고 있는 올리버를 발견했다. 흉악한 집털이 전문 강도인 ‘싸익스’의 애인이자 창녀인 그녀는 올리버를 알고 있었다. 싸익스를 따라 페이긴 영감의 집을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장물아비와 강도는 훌륭한 공생 관계였다. 천하고 사악한.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불량한 동네였으며,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저항해 봐야 소용없었다. 순식간에 그는 미로처럼 엉킨 어둡고 좁은 뒷골목으로 잡혀갔고, 곧 골목길을 따라 빠르게 끌려갔다.

 

다시 끌려온 올리버.PNG

 

싸익스는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페이긴 영감의 교활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원정 집털이를 계획하고 있는 그에게는 작은 창문으로 기어들어가 문을 열어줄 몸집 작은 아이가 필요했다. 페이긴 영감은 올리버를 추천했다. 싸익스는 페이긴 영감에게 자신이 올리버를 어떤 식으로 다루든, 어떤 징벌을 가하든, 올리버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페이긴 영감의 제안을 수락했다. 낸시는 이 두 악당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그 애로 하여금 우리와 한패가 되었다는 느낌만 갖게 하면, 일단 그 애 마음속에 자기가 도둑놈이 되었다는 생각만 집어넣으면 그럼 그 녀석은 우리 것이 되는 거네!”

 

이것이 교활한 페이긴 영감이 불쌍한 거리의 아이들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올리버의 비밀과 브라운로 씨의 의무

 

다음 순간 종소리가 크게 울리는 가운데 총소리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한데 뒤섞여 들려왔고...... 곧 죽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아이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싸익스의 원정 집털이는 실패로 끝났다. 도둑의 침입을 눈치챈 집안사람들이 총을 쏘았고 올리버가 맞았다. 싸익스는 올리버를 업고 도망치다가 힘에 부치자 그를 도랑가에 버렸다. 올리버는 피에 젖은 왼팔을 부여잡고 추위와 탈진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리고 싸익스가 도둑질하려 했던 그 집, 자신에게 총을 쏜 사람들이 있는 그 집으로 다시 갔다. 

 

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총에 맞은 강도가 자신들의 생각과 달리 너무나 어리고 병약한 아이임에 놀라 치료를 해 주었고 수소문 끝에 올리버를 간절히 찾고 있었던 브라운로 씨에게 연락해 주었다. 

 

연락한 사람.PNG

 

“아까 말한 그 그림과 그 애가 몹시 닮아서 나는 아주 깜짝 놀랐네. 더럽고 비참한 모습을 한 그 앨 처음 보았을 때도 그 애 얼굴의 어렴풋한 표정은 마치 어떤 옛 친구의 모습이 생생한 꿈속에서 퍼뜩 스쳐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었네.”

 

브라운로 씨는 올리버와 너무나도 닮은 초상화 속 여인을 보며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옛 친구와 그를 사랑한 아름다운 처녀의 비극적 사랑을 떠 올렸다. 어린 나이에 강요된 결혼을 해야 했던 친구. 그래서 평생을 떠돌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와 사랑에 빠져 임신까지 했고, 그것 때문에 분노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야 했던 처녀에 대한 기억이었다.

 

벽에 걸린 초상화는 브라운로 씨가 떠올린 그 친구, ‘에드윈 리포드’가 유산 상속을 위해 로마로 떠나며 그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가 손수 그린 자신의 유일한 사랑 ‘애그니스 플래밍’의 초상화였다. 그러나 에드윈 리포드는 로마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이국의 열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애그니스 플래밍은 임신한 채로 종적을 감췄다.

 

브라운로 씨는 올리버가 에드윈 리포드와 애그니스 플래밍 사이의 사생아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밝혀 친구가 남긴 유산을 올리버가 물려받게 하는 것, 올리버를 옭아맨 악인들이 처벌받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 생각했다.

 

아저씨.PNG

 

 

훌륭한 잔혹 멜로 드라마의 결말

 

훌륭한 잔혹 멜로드라마에서는 언제나 비극적인 장면과 희극적인 장면을 베이컨 옆면의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 층처럼 규칙적으로 번갈아 가며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올리버는 브라운로 씨를 비롯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준 선한 사람들과 함께 사륜 역마차에 올랐다. 역마차는 올리버의 고향, 올리버가 고아로 태어나 자란 그 읍을 행해 달렸다. 올리버의 마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 때문에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차는 자신을 도와줄 친구도, 머리를 누일 지붕도 하나 없이 떠났던 그 길을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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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로 씨의 노력 끝에 올리버는 이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 에드윈 리포드의 상속자가 되었다. 물론 악인들이 처벌받게 된 것도 브라운로 씨의 노력 덕분이었다. 싸익스는 살인과 강도 혐의로 쫓기던 중에 죽었고, 각종 유괴와 절도 등의 혐의로 페이긴 영감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모든 것보다 올리버를 더 기쁘게 한 것은 딕을 보육원에서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브라운로 씨는 올리버의 청에 따라 딕에게 옷을 입히고 공부를 가르치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올리버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행복 중에서도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올리버의 몸은 달리는 역마차 속에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딕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 세상은 실망으로 가득 찬 곳인바, 우리가 참으로 소중히 간직하는 희망들, 그리고 우리의 인간성에 가장 큰 명예를 안기는 희망들은 특히 자주 좌절되곤 한다.

 

그러나 올리버가 도착했을 때, 불쌍한 딕은 이미 죽어 있었다.

 

 

가난한 인생들의 선택지, 혁명이냐 정치냐

 

어릴 적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으며 느꼈던 것들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마도 중학생이 되기 전이었을 것입니다. 올리버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눈물을 흘렸고 잠시 찾아온 행운에 너무나도 기뻐했습니다. 올리버가 다시 끌려가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해피 엔딩에 안도와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었습니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러 중년 어른이 된 지금, ‘100개의 인생’을 위해 올리버 트위스트를 다시 꺼내 들어 읽었습니다. 같은 책이었지만, 어린 시절 읽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800 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 속에서 올리버보다 어린 보육원 친구인 딕은 서너 개의 문장이 다일 정도로 비중이 미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딕이 올리버와 대등하게, 아니 어쩌면 올리버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읽는 이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고아로 태어나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가 선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동화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딕은 사실주의이고 올리버는 판타지임을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른은 더 이상 이 소설을 읽고 안도와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 수 없습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는 경쟁자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광풍처럼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새로운 인물로 나타난다는 어느 통속 드라마 속의 캐릭터처럼 올리버가 살았던 시대의 그 비인간적 자본주의가 ‘신’자 하나 찍고 다시 등장했습니다. 

 

부의 불평등.jpg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고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전 세계적 조류가 되었습니다. 세계 부유층의 1%가 세계의 자산 중 절반 가까이 갖고 있는 반면, 가난한 하위 50%는 세계 자산의 단 1%만 갖고 있는 현실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한국은 더 심각합니다. 한국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부자가 될 확률은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입니다. 우리나라 부자 중에서 애당초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들, 즉 상속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들의 비율은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합니다.

 

연합뉴스.PNG

<연합뉴스> 링크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것은 죄입니다. 나의 죄가 아니고 체제의 죄입니다. 국가의 죄입니다. 만약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그런 죄를 범하고 있다면 사회 체제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고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의무입니다. 

 

혁명의 시대가 끝났다면, 21세기에 혁명은 어울리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혁명이 아닌 체제를 변화시킬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정치입니다. 총알보다 강한 것이 투표입니다. 혁명이 아니라면 정치입니다.

 

농경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복잡한 세상입니다. 행정, 경제, 복지 등 모든 것을 총괄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 중 정치와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약자들,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사람들. 미우나 고우나 이들이 기댈 곳은 정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인생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또 판매점을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곧 쓴웃음을 짓습니다. 확률에 대해 초등학생 수준의 이해만 있어도 압니다. 그것이 될 리가 없습니다. 딴지일보 게시판을 기웃거립니다. 로또 살 돈 몇천 원으로 기부할 정치인을 찾아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jpg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개인적 답변을 소개하며 올리버와 딕의 인생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각자의 대답은 각자의 선택입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확대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막아야 합니다.)

 

건강 보험료는 지불 능력에 따라 부담해야 할까, 아니면 필요에 따라 부담해야 할까?

 

(지불 능력에 따라 부담해야 합니다.)

 

부유한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에 비해 자녀 사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 상황은 정당할까?

 

(정당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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