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지난 기사

   

(27) 아내가 결혼했다 : 두 남자와 결혼한 여자

 

(28) 변신 : 버러지가 된 가장의 비극적 인생

 

(29) 폭풍의 언덕 : 현명한 복수란 무엇일까

 

(30) 아버지의 해방일지 : '오죽해도' 살아내야 하는 이유

 

(31) 전쟁의 슬픔 : 6년을 최전선에서 보낸 이가 쓴 전쟁소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ddd.jpg

<출처 - 민음사>

 

 

1968년, 프라하의 봄

 

1.JPG

 

1956년, 소련의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주의자, 노보트니 정권이 유지되었다. 이에 슬로바키아 민족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다.

 

1968년, 개혁파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당 제1 서기를 맡으면서 프라하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보도, 표현, 이동의 자유 제한’ 철폐를 주장하고, 의회제도 확립, 민주적 선거법 제정 같은 개혁적인 강령을 채택했다. 소비에트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1968년 9월, T54 탱크와 장갑차 2,000대 그리고 20만이 넘는 군대를 프라하에 파견한다.

 

성적으로 굶주린 불쌍한 소련 군인 눈앞에서 행인에게 키스를 퍼붓는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 차림 소녀들의 사진이 실렸다. 거듭 말하지만 소련군의 침공이 비극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이상한 도취감을 이해하지 못할 증오의 축제이기도 했다.

 

세계 최강 소비에트 군대에 맞서기에, 체코 군대는 물리적으로 한없이 부족했다. 프라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T54 탱크 위에 올라서거나, 젊은 소비에트 병사 앞에서 키스와 미니스커트로 그들을 조롱하는 것뿐이었다. 1945년 ‘해방군’이었던 소련군은, 1968년에는 ‘정복자’가 되어 체코를 억압했다. 둡체크가 납치되고 프라하의 봄은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이 역사는, 인생을 가볍게 살고자 했던 한 남자 ‘토마시’와 무거운 인생에 짓눌린 채 사랑을 갈구한 한 여자 ‘테레자’의 운명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벼운 인생,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

 

uiuiui.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을 지킨다는 것은 토마시가 자신의 삶에서 사랑을 배제한다는 것도 의미했다.

 

외과 의사 토마시는 특유의 매력으로 많은 여성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여성들과 잠자리했지만, 그것은 우정에 불과했다. 에로틱한 우정을 추구한 토마시는 잠자리를 원했을 뿐, 자고 일어나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파트너는 원치 않았다. ‘동반 수면’은 사랑에 있어서 명백한 범죄 행위 같은 것이었다. 잠자리 후, 여인이 혹시라도 자기 아파트에 머물까, 소파 하나만 남기고 모두 치워버렸다. 그리고 자정이 지나면, 여자를 집에서 내쫓았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했다.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인생이란 의미 없는, 한없이 가벼운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테레자’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한 도시 병원에 치료가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다. 토마시 병원 과장이 그곳에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좌골 신경통을 앓게 되는 바람에 토마시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서 테레자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토마시는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마침 테레자는 그날 바의 당번이었다. 바람둥이 토마시는 그녀에게 명함을 쥐여준다.

 

 

테레자의 <안나 카레니나>

 

fgfg.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자신이 일하던 호텔 바에서 토마시를 마주했을 때, 혹시 프라하에 오게 되면 나를 찾아오라며 토마시가 명함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그가 미래를 함께할 운명의 남자임을 직감했다. 미쳐가는 병든 어머니와 가난, 틈만 나면 엉덩이를 만지는 주정뱅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테레자는 명함, 큰 트렁크 그리고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챙겨 프라하로 향한다.

 

그녀가 그날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던 ‘안나 카레니나’는 토마시를 속이기 위해 그녀가 사용했던 가짜 신분증이었다.

 

수술이 막 끝났을 때, 토마시는 테레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프라하에 정말로 온 것이었다. 그는 선약이 있으니 다음 날 찾아오라고 말했다. 약속 당일 나타난 그녀는 바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손에는 두꺼운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 프라하에 왔다는 그녀의 설명은 빈약하게 들렸다. 프라하에서 다닐 직장을 찾는 눈치였다.

 

그녀의 무거운 트렁크를 자기 아파트에 들이며 그는 스스로 놀랐다.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토마시에게 맡기는 중이었고, 그는 그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은 동정심과 연민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그녀보다 넉넉한 위치에 있으며 나의 몸을 낮춰 그녀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과 같았다.

 

테레자가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 있다니!

 

토마시는 그녀와 ‘동반 수면’을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테레자는 깊은숨을 쉬며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찌나 단단히 잡고 있는지 손을 뺄 수 없었다. 그녀가 잠에서 깰까 차마 손을 빼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돌아누워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유일한 안식, 강아지 카레닌

 

3명.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토마시에게 세상 모든 여성은 잠재적 애인이었다. 그의 가치관과 행동 때문에 테레자는 고통에 시달렸다. 밤마다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녀가 점점 거친 성격이 되어가는 동안, 토마시는 여전히 ‘에로틱한 우정’을 유지했다.

 

토마시는 다른 여성에 대한 탐욕을 지배할 힘이 없었다. 그에게는 특별히 깊은 ‘우정’을 나누는 여성이 있었다. 바로 화가 ‘사비나’였다. 사비나와의 관계는 그에게 가장 편안한 휴식처였다. 어느 날, 테레자는 토마시와 사비나가 주고받은 편지를 발견한다. 그날 그녀는 심한 악몽에 시달리는데, 그 악몽 속에서도 토마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서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쓴 사비나의 편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인 것처럼 느꼈다. 그는 테레자를 이해했고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토마시는 테레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그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작은 강아지를 선물했다. 토마시는 ‘테레자가 키우는 개’임을 알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프라하에 온 첫날,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책 <안나 카레니나>에서 영감을 얻어, 강아지에게 ‘카레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카레닌은 테레자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카레닌은 테레자를 사랑하기로 작정한 놈처럼 그녀에게 살갑게 굴었고, 토마시는 그것이 고마워 이따금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카레닌. 내가 네게 기대했던 것이 바로 그거야 나 혼자서는 어쩔 수 없으니 네가 날 도와야 한다.”

 

 

스위스 망명

 

erere.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중부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오로지 범죄자들의 창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진리를 어둠 속에 은폐하고 있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소련 탱크가 전국을 점령하고 열흘이 지났다. 체코 정치인들은 잡범처럼 소련군에게 끌려갔고, 납치되었다 돌아온 둡체크는 라디오 방송에서 죽어가는 목소리로 연설문을 낭독했다. 연설문의 내용은, ‘보헤미아(체코)는 정복자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마시는 한 잡지에 ‘반 소비에트와 민주화’에 대해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장 체코를 떠나야 했다. 그 시기, 사비나는 제네바로 망명해 있었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했다. 두 사람과 강아지 카레닌은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사비나가 머무는 제네바와 취리히는 거리가 멀었지만, 테레자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취리히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 토마시는 이내 사비나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제네바까지 가기엔 먼 거리였다. 긴 여행을 위해 테레자에게 둘러댈 어떤 구실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사비나가 취리히로 오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토마시는 퇴근 후, 그녀가 머무는 호텔 방을 찾았다. 그녀는 속옷만 걸친 채 늘씬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뽐내고 있었다.

 

토마시는 자기 삶에서 테레자와 사비나, 두 여성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너무나 다른 두 여성은 멀리 떨어져 화해가 불가능하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운 극점이었다.

 

한 손에는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카레닌을 묶은 줄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위스 생활 7개월 만에, 테레자는 카레닌을 데리고 그를 떠났다. 토마시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강한 수면제를 먹어도 새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각자의 선택, 이별과 재회

 

ffff.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테레자가 취리히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카레닌 덕분이었다. 토마시는 하루 종일 병원에 머물렀고, 테레자는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카레닌과 함께하는 산책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여느 날처럼 토마시 없는 일상을 보내던 테레자는 그를 찾는 한 여성의 전화를 받는다. 그 순간,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카레닌의 털복숭이 머리에 뺨을 댔다. 개는 변화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혼자 남겨진 토마시. 그는 테레자와의 재결합을 위해 스위스를 떠나 그녀가 살고 있는 프라하 아파트로 찾아간다. 그녀가 스위스를 떠난 지 닷새 만이었다. 카레닌은 그를 보고 반가움에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아직 키스도 하지 않은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다가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아무것도 없어. 기다리는 중이야.”

 

“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작은 소련’ 프라하, ‘노동자'가 된 토마시

 

hhhhh.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소련군 장교 가족들은 체코에 살림을 차리러 왔고, 라디오는 해고당한 기자 자리를 대신해 내무부 공무원의 협박조 연설을 방송했으며, 토마시는 가는 곳마다 술을 마셔서 이 잔치에서 저 잔치로 불려 다니는 사람의 기분이 되어 프라하 거리를 비틀거리고 다녔다.

 

프라하는 작은 ‘소련’이 되어 갔다. 토마시는 실력 있는 외과 의사였지만 예전에 썼던 글이 문제가 되어 더 이상 병원에서 일할 수 없었다. 그는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가 되었고, 테레자는 다시 바 일을 시작했다. 토마시는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테레자는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했다. 하루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둘은 일요일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토마시의 삶에서 테레자가 없어졌다. 다시 독신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녀는 한밤중에 돌아왔고 그는 선잠 상태로 그녀를 맞이했다. 하루 열여섯 시간, 그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자유란 여자와의 만남을 의미했다. 더 가벼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고, 그는 더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

 

아침 6시, 자명종이 울리면 강아지 카레닌은 침대로 뛰어왔다. 잠에서 깬 테레자는 카레닌을 데리고 아침 장을 보러 나갔다. 토마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테레자는 그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그가 출근하면 다시 잠들었다. 일요일을 제외한 다른 날, 그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그녀는 우유, 빵, 버터를 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토마시를 위해 크루아상 하나를 산다. 돌아오는 길에 카레닌은 크루아상을 물고 그녀 곁에서 타박타박 따라온다.

 

 

테레자의 행복한 농촌 생활

 

6.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토마시는 사랑과 섹스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테레자에게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토마시는 나이가 들수록 더 가벼운 사람이 되어 갔다. 테레자는 그 가벼움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그녀가 살아온 날들이 너무 무겁고 심각해 그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당신 머리카락에서 몇 달 전부터 심하게 냄새가 나. 성기 냄새가.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당신 정부의 성기 냄새를 들이마신 지가 몇 날 밤인지 모르겠어.”

 

토마시는 테레자의 말에 위경련이 일었다. 며칠 전 그의 얼굴에 걸터앉아 그의 얼굴과 머리끝으로 정사를 하라고 요구했던 여자가 떠올랐다. 토마시는 고통스러웠고, 테레자는 그런 그의 이마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둘은 나란히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라하를 떠나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공산 치하에서 시골마을 농부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많은 사람이 도시로 빠져 터를 잡기를 꿈꿨다. 농촌은 점점 한산해졌고, 국가는 시골 변두리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 덕분에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에 비해 어느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토마시는 마을 트럭을 몰았고, 테레자는 하루에 두 번씩 마을 송아지를 데리고 풀밭으로 나갔다. 그녀 옆에는 항상 카레닌이 있었다. 풀밭에 도착한 그녀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카레닌은 무리에서 이탈하는 개체가 없도록 소를 몰았다. 일과가 끝나고 셋은, 근처 언덕으로 산책을 갔다. 전원생활 이후, 토마시는 과거 모든 인연과 단절했고, 그 사실은 테레자를 행복하게 했다.

 

테레자는 술주정뱅이가 우글거리는 바와 토마시의 머리카락에 성기 냄새를 남기는 미지의 여인들이 있는 도시로부터 멀리 떠나게 되어 행복했다.

 

 

두 사람을 위한 마지막 헌신

 

gggg.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카레닌이 암에 걸렸다. 수술받은 네 번째 다리를 절뚝거렸지만, 여전히 테레자를 따라나섰다. 이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테레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카레닌이 죽었다. 숨을 멎기 직전까지, 절룩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와 산책하러 가자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의 즐거움을 위한 카레닌의 마지막 헌신이었다. 카레닌을 땅에 묻던 날, 테레자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의 집은 토마시가 아니라 바로 카레닌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 테레자는 트럭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바퀴를 분해하고 있는 토마시를 봤다. 토마시는 늙고 서툴러 보였다. 그것은 트럭 운전사가 된 전직 의사여서가 아닌, 젊음을 잃은 한 남자의 서툶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dfdsfsdf.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사비나가 파리에 정착한 지 3년이 지나고. 그녀는 우울증 약을 먹으며 버텨야 했으나 자기 삶에 만족했다.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망 소식이었다. 토마시가 몰던 트럭의 브레이크 고장으로, 차가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둘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다고 했다.

 

사비나는 정신이 혼미했다. 과거의 유일한 끈이 사라진 것이었다. 시비나는 비로소 자신이 벗어나려고 했던 그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덧없는 인생에서 행복 찾기

 

ffdss.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니체가 말한 ‘영원한 회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원한 것은 무한한 것. 회귀란 출발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두 의미를 이어보니 영원한 회귀란, 뫼비우스 띠를 도는 구슬과 같은, ‘무한 반복’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입니다. 한 번 지나간 인생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생, 후생, 현생이 나뉘어 있다면, 잘못 산 인생을 바로 잡거나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허설 없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특별하지 않고 안전한 보통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다 문득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낍니다. 뫼비우스 띠를 따라 도는 구슬에서 우리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last.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동시에 쉽게 불행을 느낍니다. 단적으로, 가벼운 일상이 반복되면 자극성 없는 인생에 무료함을 느낍니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는 가벼운 인생을 추구하고, 테레자는 무거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행복한 삶을 산 존재는, 강아지 카레닌이었습니다.

 

카레닌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물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없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강아지 카레닌보다 불행했던 이유입니다. 동물은 반복되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반면 인간은 평탄함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쳤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반복되는 하루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gggg.JPG

<출처 - 영화 '프라하의 봄'>

 

우리도 카레닌처럼 행복한 생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가벼움을 인정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무탈함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뫼비우스 띠를 도는 영원한 회귀에 만족할 줄 알고, 그것에게서 벗어난 직선의 삶을 억지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복도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니 일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면 더 불행해질 것을 감안하고 반복을 거역할까요? 답을 찾기 힘든 질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거리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에 따른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골라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결과가 나타나도 행복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니체의 말로 서른 두 번째 인생 탐구를 마칩니다.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Prof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