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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어쩌면, 자신들의 표를 위해 병사들에게 끊임없이 인센티브를 던져 줬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복무 기한이었고, 기한을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꺼낸 카드는 월급이었다.

 

병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당연한 정책이지만 이게 장기적으로 국방력 강화와 어떻게 결부되는지, 하다못해 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은 해 봐야 했다.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이 ‘장기적인 고민’ 없이 만들어진 공약이란 단적인 증거가 하나 있다. 바로 ‘공보의’다.

 

의대생들은 보통 31살 전후에 입대한다. 의대 6년, 인턴 과정과 전공의 과정 5년을 거친 뒤 31살에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게 일반적이다. 군의관의 경우 군사훈련 6주를 받고, 36개월을 근무한다. 공중보건의도 비슷하다. 3주 정도 군사훈련을 받고 36개월을 근무한다. 이들은 섬이나 오지에서 근무하며 의료 사각지대를 커버하고 있다(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들 대부분이 공보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보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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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이후 의대 정원이 줄고, 의대에서 여학생 비율이 높아지면서(여자들은 군대를 안 가니까) 공보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들이 코로나19와의 사투에서 선봉장 역할을 한 걸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들 공보의와 군의관들이 자신이 왜 이걸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는 거다.

 

의대생의 현역 입대가 증가하는 이유

 

의대생들에게는 크게 3가지 군 복무 방법이 있다.

 

첫째, 의대생일 때 현역이나 공익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는 경우

 

둘째, 의사면허를 따자마자 공보의 복무 지원서를 내고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하는 경우

 

셋째, 의사면허를 딴 직후 의무사관후보생 수련 서약서를 작성하고 인턴, 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다 밟은 후 공보의나 군의관이 되는 경우

 

이다. 자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예전 의대생, 그러니까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군대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군의관’을 가면 됐고, 그 이외의 선택지... 그러니까 ‘병사’로 군대를 간다는 선택지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로 분류됐다.

 

그런데 지금은 2, 3번 케이스와 1번 케이스를 놓고 고민하게 됐다는 거다. 1번의 경우 군 복무 기한은 불과 18개월이다. 군의관의 절반 수준이다. 봉급의 경우도 군의관이나 공보의가 200만 원 초반대를 받는 걸 생각한다면, 병사로 가는 게 훨씬 더 이익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군의관을 하지 않고, 병사로 짧게 복무하고 나온다면 이후 개업하든, 페이닥터를 하든 나머지 기간 동안 버는 돈이 군의관 생활 3년을 꽉꽉 눌러 담아서 버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벌 거다. 더구나 병사들의 처우 개선을 생각해 보라. 이제 병사들의 군 생활이 꽤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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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핸드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핸드폰 하나가 주는 변화는 크다. 사회와의 단절이었던 군대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연결이 가능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유의미하게 올랐다. 군의관 월급과 비교할 수 없었던 90년대가 아니다.

 

이 정도면,

 

“짧고, 편하게 군 생활하고 나올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의무실과 보건소가 사라진다

 

실제로 군의관의 임관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2002년 1500명이 넘어가던 군의관 임관 숫자가 꾸준히 줄어서 지금은 600여 명 대 수준이다(여대생은 군 복무 의무가 없기에 늘어난 여대생 숫자만큼 그 수가 줄어들고 있고, 의대생들이 대학 재학 중 입대를 선택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요인이다).

 

이미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서는,

 

“군의관과 공보의 복무 기간을 24개월로 단축해야 한다.”

 

란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금도 말이 많은 게 군의관과 공보의는 훈련 기간을 의무복무 기간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방부의 논리는 장교는 병사와 달리 자질 검증 과정이 필요하므로 후보생 기간 동안은 의무복무 기간에 산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의사들 입장으로선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러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37개월, 거의 38개월을 복무하는 상황이 됐다).

 

가뜩이나 군 복무 기한 때문에 군의관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이제 병사 월급 200만 원이라는 공약까지 나오면서 고민은 깊어지고 실제로 병사로 군 복무를 하는 의대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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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그것도 취임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만들겠다는 윤석열 후보의 공약이 얼마나 ‘즉흥’적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병사 월급이 오르면, 그 여파로 모든 간부들의 인센티브도 흔들린다는 걸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책이나 유인책이 필요하다. 허나 이런 게 준비되었을 리 만무. 군의관에 대한 인기가 줄어드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건 아무런 대책 없이 내지른 공약이다.

 

병사 월급 인상이 징병제에 끼치는 영향

 

대한민국이 모병제를 고민할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과연 얼마를 제공해야 하는가?”

 

라는 대목이다. 국방부가 생각하는 ‘적정 병력 수’를 충원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냐는 거다.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병적 자원의 ‘질’은 세계 어디를 내놔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인적자원들이다.

 

높은 교육열 덕에 고졸은 기본이고, 4년제 재학 중에 군대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학력이 높다고 인적자원이 우수하다는 게 아니다. 이들은 ‘상식’이 통하는 이들이다. 한글을 쓰고 말할 수 있고, 사칙연산을 할 줄 알고, 높은 윤리 의식이 있고, 민주주의를 이해하며(적어도 투표를 왜 하는지 알고, 그게 자신의 권리인 걸 안다), 이 모든 걸 상식으로 탑재하고 있다. 이런 인적자원은 미군이나 일본 자위대의 수준을 생각해 봤을 때 흔하지 않은 양질의 자원이다.

 

지금 이런 훌륭한 자원들로 부대를 채울 수 있는 건, 우리나라가 ‘징병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강제로 끌려가니까 이런 수준의 병력 자원들을 모을 수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군대가 의무가 아니고 선택일 경우, 국방부가 이 정도 수준의 병력 자원들을 모을 수 있을까?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 그리고 지금 나온 병장 월급 150만 원과 내일 준비 자금 55만 원의 조합은 상당히 애매한 형태의 기준점이 됐다. 모병제 논의 이전에 징병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봐도 된다. 왜? 우리가 잠깐 잊고 있지만, 군 초급 간부들 그리고 직업군인들이 직업으로서 군인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기왕 가는 군대, 간부로 가겠다.”

 

인데,

 

여기에는 ‘그냥 갔을 때’ 받게 되는 월급과 ‘의무복무기한’과의 계산도 포함돼 있다(예전, 학군단 모집과 군 부사관 모집할 때 언제나 나왔던 병사들과의 월급 비교는 이제 옛말이 됐다). 지금 한국 군대의 인력 풀은 초급 간부는 부족하고, 중령급 이상의 간부들은 넘쳐나는 형태다. 문제는 우리 군에서 초급 간부는 한국군 간부 구성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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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 530,000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중 장교가 69,900명, 부사관 131,000명, 병 329,100명이다. 부사관의 비율은 최근 국방개혁을 시행하면서 꾸준히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장교의 경우는 거의 7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매년 육, 해, 공군이 5~6천 명의 장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5천 명의 장교 중 90%에 해당하는 간부들이 ROTC로 충원했지만, 이제는 ROTC가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인력 수급이 여의찮다.

 

던져도 너무 막 던졌다

 

징병제하에서 우수한 자원들을 유인했던 유인책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지금 군대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간부 충원에 대한 어려움이다.

 

너나 할 거 없이,

 

“짧고, 편하게 병사로 갔다 오자.”

 

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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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던진 게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이다. 이 근시안적이고 생각 없는 선심성 정책이 국방력에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이제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가? 대통령실로 쓰겠다고 국방부 청사를 밀고 들어간 건, 이 파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