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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덧없는 섹스와 무거운 인생 사이에서

 

 

 

소설 『팔레스타인의 양치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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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파라주니어>

 

 

무고한 이스라엘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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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포

출처 - <나눔문화>

 

수 천 년 전, 동부 지중해 연안, 레반트 지역에서 유목과 농경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그 설화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라는 세 개의 종교를 만들었다. 각 종교에서 모시는 유일신, 야훼와 알라의 뿌리는 같은 것이었다.

 

유대인을 향한 유럽의 학대는 러시아부터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이어졌다. 학대의 끝은 히틀러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그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수단으로 팔레스타인 영토를 선택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유대 왕국의 땅이자 팔레스타인 영토에, 현대 유대인들이 건국하도록 허가했다. 그렇게 UN은 1947년,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채택했다.

 

해당 결의안은, 아랍인의 1/3을 차지하는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를 배정했다. 이들이 차지한 56%의 땅은 알짜배기였다. 지역 경제의 핵심인 ‘올리브 농장’과 ‘곡창 지대 80%’가 포함되어 있었다. 

 

1948년,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통치를 포기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고,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6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을 떠났다. 몇 주만 버티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사람들은 그대로 난민이 되고 말았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맹수의 사냥처럼,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은 계속되었다. 팔레스타인인의 터전 한가운데 정착촌을 세웠다. 정착촌의 이스라엘인은 무장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군대와 마찬가지였다. 마을은 점점 확장되고 이스라엘인은 팔레스타인 국민이 들어올 수 없도록 높은 장벽을 세웠다. 마을 사이로 도로를 관통해, 팔레스타인인을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힘없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어떤 저항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무고한 이스라엘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양 치는 팔레스타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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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아마니와 그녀의 가족은 할아버지 집 앞 베란다에 모였다. 내일이면 아마니는 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가 된다. 아마니는 그 사실이 싫었다. 여섯 살 무렵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양 떼를 몰고 ‘씨도(할아버지라는 뜻)의 산’으로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한 살배기 양이 새끼를 낳았다. 그녀는 양이 무사히 출산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를 도왔다. 건강한 새끼 양을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마니는 할아버지를 따라 양치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난 이제 늙었고, 언젠가는 아마니에게 양치기의 일을 물려줄 생각이다. 아마니를 내 제자로 키우고 싶구나.”

 

할아버지는 아마니의 마음을 알고, 가족들 앞에서 근엄하게 말했다. 아마니의 부모님과 오빠 오마르, 큰집 사촌 언니들까지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태도는 단호했다. 집안 어른의 말을 따르는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관습이었기에, 결국 가족들은 할아버지 뜻을 따랐다. 

 

할아버지와 그녀의 어머니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어린 양치기가 된 소녀 아마니에게 당부했다.

 

그런데 정말로 헬멧을 쓴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 어떻게 하지? 아마니는 엄마의 손을 힘껏 쥐고는 어른들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들이 움직여도 좋다고 할 때까지 길 위에서 조용히 기다려라.

 

“그곳엔 더 이상 가지 마라. 이스라엘이 그곳을 안전지대(이스라엘 마을을 팔레스타인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정한 구역)로 선포했단다.”

 

할아버지는 산의 북쪽 비탈로는 가지 말라고 했다. 아마니는 행복한 양치기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양 떼를 몰고 씨도의 봉우리로 향했다. 6년의 세월이 지나고, 열두 살이 된 아마니. 그동안 큰집 사촌 언니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는 ‘와르데’만 남았다. 어머니는 그 사실이 속상했으나 아마니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글을 배우는 것보다 ‘양이 새끼를 낳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양 떼를 잘 돌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무장한 이스라엘 정착민

 

열세 번째 여름을 맞이한 아마니에게 세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는 생리를 시작한 것, 하나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아마니가 사는 마을에도 이스라엘 정착촌이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곳에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고 고속도로를 짓는답니다. 그 고속도로가 우리 마을을 지나갈 가능성도 있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게 될 겁니다.”

 

부엌에서 큰엄마를 돕던 아마니는, 큰아빠의 말을 듣고 놀라 커피를 쏟았다. 팔레스타인 곳곳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고 있었고, 그렇게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땅과 물, 모두를 빼앗았다. 국민을 보호하는 법은 이스라엘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유 없이 체포되고, 감옥에 들어가고, 총에 맞아 죽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무도한 행위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스스로 고향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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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창설

출처 - <나눔문화>

 

저녁 시간, 식사도 잊은 채 가족들의 격론이 이어졌다. 큰아빠는 무기를 챙겨 싸우자고 말했고, 아빠는 반대하며 평화시위를 하자고 했다. 잔뜩 긴장한 오마르는 어른들의 표정으로 살폈다. 할아버지 역시 큰아빠의 무력 투쟁에 반대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아빠가 집안의 가장이 되면, 가족 모두가 큰아빠 결정에 따라야 했다. 아마니는 유독 쇠약해진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마니는 몇백 년 묵은 수백 그루의 올리브나무들이 여러 나라의 침략을 견뎌 내고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렇다면 이번 침략도 견딜 수 있을 거야. 인샬라(Insha’allah, 신의 뜻대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아마니에게 당신의 지팡이를 유산으로 남겼다. 양치기에게 지팡이는 신성한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성적이 좋았던 오빠 오마르는 장학금을 받고 ‘버제이트 대학’에 진학했다. 그의 꿈은 과학자였다. 반면 아마니는 할아버지 지팡이를 챙겨 매일 아침 양 떼를 돌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씨도의 산봉우리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시작되었다.

 

 

난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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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이스라엘 정부는 여전히 정착촌 확대, 신규 건설을 진행 중이다.

출처 - <로이터>

 

이스라엘인이 마을에 온 뒤, 아마니는 함부로 씨도의 산으로 갈 수 없었다. 그들과 마주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양 떼를 몰 때는 우선 오아시스 근처에 양을 방목하고, 양치기 개 ‘사헴’에게 양을 지키게 했다. 산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헴과 양을 데리고 산을 올랐다.

 

산에 오른 양들이 씨도의 산에 난 풀을 뜯어 먹는 동안, 아마니는 정착촌 건설 현장을 살폈다. 공사장 인부들은 멀리서 아마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쇠기둥을 박고 철조망을 쳤다. 그 옆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는데, 군인은 아마니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떠나라는 손짓을 보였다.

 

아마니는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곳은 수천 년도 넘게 우리 조상 땅이었어!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홀로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헴이 어딘가를 향해 짖었다. 곧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렸다. ‘탕!’ 하는 총소리였다. 두 번째 총소리가 나더니, 아마니 앞에 있던 양 한 마리가 검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아마니는 어린 양을 들쳐 안고 산 아래로 내달렸다. 총소리를 피해서 바위를 뛰어넘었다. 총에 맞지 않기 위해 지그재그로 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족이 있는 올리브 과수원에 와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이마니는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전 양치기예요. 정착민이 제 양을...... 한 마리 죽여요. 정착민은 영어를 써요. 난 영어가 필요해요. 그들을 말려야 하니까요.”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에 아마니는 떠듬거리며 자신이 학교에 온 이유를 말했다. 아마니의 촌스러운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던 아이들은 곧 웃음을 멈췄다. 아마니의 말이 끝나자 교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짐승이 되어버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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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건설

출처 - <나눔문화>

 

정착촌에서는 밤마다 환한 불빛이 비쳤다. 가족들은 그 불빛 때문에 깊이 잠들 수 없었다. 넓은 고속도로가 정확히 마을 중심을 관통했고, 아마니 가족 소유의 포도 과수원, 올리브 과수원은 뭉텅 잘려 나가 고속도로의 일부가 되었다. 양들은 더 이상 씨도의 산에 난 풀을 먹을 수 없었다. 집 주변에 양을 풀어 풀을 먹였으나, 양들은 해골처럼 삐쩍 말라갔다.

 

포도 공장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밤 안으로 포도를 가져오면 모두 구입하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킬릴’을 통해 가야 했지만 이스라엘 검문소에 막혀 지나갈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만든 고속도로였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은 도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황천길이라 부르는 위험한 산길로 포도를 운반해야 했다.

 

아빠, 큰아빠, 큰엄마까지 세 사람은 트럭에 올랐다. 큰집 언니와 아마니는 트럭 짐칸에 들어갔다. 농익은 포도 냄새가 짐칸에 진하게 퍼졌다.

 

“할 수만 있다면 저들은 우리가 숨 쉬는 것까지도 막으려 들 게다. 포도가 물러 터지기 직전인 게 안 보이냐? 황천길로 가면 껍질이 다 터져서 팔 수 없어.”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큰아빠는 자기 뜻대로 고속도로를 탔다. 큰아빠는 트럭의 전조등을 끈 상태로 어둠 속을 달렸다. 골짜기 위에 세운 정착촌이 보였다. 그곳은 불빛으로 환했다.

 

어두운 고속도로에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군용 지프차 네 대가 속도를 높여 아마니 가족을 향해 달려왔다. 지프차 안에는 군인들이 가득했고, 큰아빠는 트럭을 멈췄다.

 

큰아빠는 손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음이 들렸다. 군인들은 가족을 향해 라이트를 비추더니, 차에 실린 포도 상자들을 도로 위로 던졌다. 포도 알갱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히브리 말과 바둥거리는 소리, 쿵쿵 울리는 발소리, 누군가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큰아빠는 하얀 플라스틱 끈 같은 줄로 팔이 묶인 채 얼굴에 자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군인들은 큰아빠를 질질 끌고 갔다. 

 

큰아빠가 잡혀간 이후, 양들은 더욱 말라갔다. 정착촌의 총 든 보초들 때문에, 씨도의 산에 있는 싱싱한 풀을 먹일 수 없었다. 오아시스 주변에 난 풀로는 양 떼를 배불리 먹이기에 역부족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마니는 양 떼를 데리고 고속도로 갓길을 걸었다. 뒤에 남자들을 태운 작은 트럭이 고속도로를 지나갔다. 그들은 아마니를 보고 주먹을 흔들며 소리쳤다.

 

“개 같은 아랍년!”

 

 

내 피가 이 땅의 흙과 섞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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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소재 올리브 농장

 

올리브 수확 철이 왔다. 온 가족이 올리브 수확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이 시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올리브 방학을 준다. 먼 곳에 사는 친척들도 이곳을 찾아왔다.

 

아마니는 사다리에 올라 올리브를 따기 시작했다. 높은 사다리 위에서는 총 멘 정착촌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아마니는 갑자기 화가 났다. 우리 땅이니 꺼지라고 외치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그때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그들 중 누군가가 올리브 과수원을 향해 총을 쐈다. 총소리에 깜짝 놀란 아마니는 나무에 걸친 사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졌다.

 

군용 지프차 두 대와 총구를 겨눈 정착민 세 명이 다가왔다. 지프에서 내린 장교는 아빠에게 다가가, 더 이상 올리브 과수원에 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올리브 과수원이 정착촌과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평화롭게 농사만 짓는 사람들이고, 이 과수원은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땅이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그들은 우리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올리브 과수원은 물론, 집까지 떠나라고 했다.

 

“도대체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이러는지 모르겠소.”

 

그 장교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안전을 지킬 권리요. 우리의 모든 권리는 거기에서 나온다는 걸 모르겠소?”

 

그들에게 항의하는 아빠의 목에 핏대가 섰다. 아마니도 치가 떨렸다. 사촌 언니는 아마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결국 가족들은 올리브 수확은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마니에게 소원이 하나 생겼다.

 

내 이름은 아마니, 여러 가지 소원이라는 뜻을 가졌다네. 하지만 내겐 오직 한 가지 소원뿐. 내 피가 이 땅의 흙과 섞일 때까지 절대로 이 땅을 떠나지 않는 것뿐이라네.

 

 

소녀의 무력한 돌팔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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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전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소년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 차가운 바람이 고원을 휩쓸고, 먼지가 바람에 날렸다. 이맘때 아마니 양 떼들이 몰살당했다. 정착촌 사람들이 양 떼가 물을 마시는 오아시스에 독을 풀었기 때문이다. 아마니는 소중한 양 떼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양들은 발작과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다. 수의사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울음만 터뜨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알라조차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정착민들이 올리브 과수원을 덮쳤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벴다. 나무가 잘려 나간 농장은 마치 무덤 같았다. 노란 굴착기는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의 뿌리까지 파헤쳐 들어냈다. 윗동은 트럭에 실어 가져갔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굴착기는 할아버지 집을 깔아뭉갰다. 그다음은 아마니 집과 큰아빠 집이었다. 고속도로 갓길에는 군용 지프가 주차되어 있었고, 불도저의 육중한 이빨이 아마니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붕이 쫘악 갈라졌다. 전진, 후진을 반복하며 불도저는 두 그루의 레몬 나무를 쓰러뜨리고 나머지 집을 폐허로 만들었다.

 

아마니는 펄펄 뛰면서 집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킨 다음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섰다. 제발, 제발 그만해요!

 

아마니가 소리쳤다. 군인 네 명이 달려와 몸부림치는 아마니를 제압했다. 군인들은 히브리 말을 퍼부으며 그녀의 얼굴을 땅에 찍어 눌렀다. 아마니는 엎드린 채 고개만 겨우 든 상태로, 자기 집이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봤다. 

 

“안 돼요! 우리 집이란 말이에요!”

 

아마니의 울부짖음은 소용없었다.

 

그 순간, 군인들의 시선이 고속도로를 향했다. 아마니도 함께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나귀를 탄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군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빠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나귀가 총에 맞아 쓰러졌고, 같이 땅에 떨어진 아빠는 일어나기 위해 애썼다. 군인들은 군홧발로 아빠를 세게 차더니 총을 겨누고 질질 끌고 갔다. 옆에는 총에 맞아 죽은 양치기 개 ‘사헴’이 쓰러져 있었고, 아빠도 지프 쪽으로 끌려가 아마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파괴되었다. 양 떼, 양치기 개 사헴, 올리브 과수원, 할아버지의 집 그리고 자기 집과 큰아빠의 집까지 모두. 남은 것이 없었다. 아마니는 돌을 들어, 노란 불도저를 향해 힘껏 던졌다. 세 번째 돌을 던지자 불도저가 아마니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니는 언덕 위로 뛰어올랐다.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불도저의 거대한 삽날이 그녀를 덮치기 직전까지 돌을 던졌고, 다시 뒤를 돌아 뛰어 도망갔다.

 

 

나의 골짜기, 나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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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주민의 모습(앞)과 이스라엘 정착촌(뒤)의 대비되는 모습

출처-<국제적십자위원회>

 

그날 오후, 파괴된 아마니 집 아래쪽에 국제 적십자사에서 제공한 큰 텐트가 쳐졌다. 당분간 아마니 가족들이 기거할 곳이었다. 아마니 가족을 돕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유대인 랍비도 있었고, 미국 출신의 기독교인도 있었다. 텔아비브에 사는 인권 변호사도 이곳을 방문해, 법적으로 국제 사회에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마니를 예뻐하던 학교 영어 선생님이 텐트를 찾았다. 선생님은 얇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라말라에 있는 국제 학교 교육 프로그램 자료가 들어 있었다. 아마니만 원한다면 진학을 도와주겠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하지만 아마니는 자신은 양치기로서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조금 더 생각해보라는 말과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텐트를 떠났다.

 

선생님이 떠난 뒤, 아마니는 학교 소개서를 꺼냈다. 그녀의 발밑에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검은 양, ‘희망이’가 쉬고 있었다. 아마니는 ‘희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골짜기 건너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서진 집 잔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오아시스 아래 과수원 자리는 나무 하나 없는 텅 빈 언덕이 되어 있었다.

 

아마니의 골짜기, 아마니의 고향.

 

 

강대국의 '선택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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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영토 변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 년간 이어온 터전에 유대인들이 나타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지내던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근거로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했습니다. 그 와중에 UN까지 나서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을 보조합니다. 올리브 농사를 짓고 양을 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UN 결의안을 알 리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국제법을 만들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한 건 영국과 미국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선진 국가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 성공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누렸던 해외에서의 경험, 사회 운영 능력, 선진국의 법과 제도 활용 능력은,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신식 무기와 탄탄한 자본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스라엘의 든든한 후견인은 바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입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은 신속하게 법과 제도를 만들었고,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복잡한 행정 명령과 가혹한 처벌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만 적용되었고, 법의 보호와 인권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팔레스타인의 영토와 물은 이스라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의 약탈은 진행 중입니다.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적용되는 정의란, 이스라엘의 승리이자, 선진 제국들 사이에서 말하는 공허한 활자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고향 땅을 지키는 양치기로서의 삶을 원하는 아마니의 꿈은 아마 좌절될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팔레스타인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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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팔레스타인을 위한 단결 촉구 시위현장

출처 - <트위터_@Rehan_Alfarra>

 

 

무관심, 권력의 하수가 되는 법

 

이제 우리가 속한 사회, 한국을 봅시다. 한국은 팔레스타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 문화적으로 선진화된 국가입니다.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며 ‘Korea(코리아)’ 하면 이제 세계인 모두가 아는 문화 선도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는 어떨까요. 한국 사회는 최소한의 체면치레 식 정의 구현이 이루어지는 사회일까요?

 

인간성은 약자에게 보이는 태도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래 사례와 같이, 약자 편에 서지 않는 대한민국은, 그런 점에서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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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는 정당, 85만원 받은 검사 면직은 부당?(링크)>

출처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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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도 아들 받은 50억 "뇌물 증명 안돼" 무죄에 "이게 나라냐" 분노 폭발(링크)>

출처 - <미디어오늘>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조금 더 잘 산다고, 힘 있다고,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그들의 삶에도, 우리 사회에도 ‘사필귀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에 대한 체념과 포기는,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약자입니다. 그래서 더욱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연대하고 소리내야 합니다. 화를 내는 것을 감정적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노는 정의 구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스테판 에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도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분노하라' 한국어판 출간 기념 인터뷰 중, 스테판 에셀의 발언

 

사회가 정의롭지 못할 때, 최악의 선택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우리에게 참고 견디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이 바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지속시키는 강자입니다. 노란 불도저를 향해 돌을 던진 아마니의 모습은 우리의 분노를 대변합니다. 인간의 돌팔매질이 탱크 앞에서 무참히 밟히더라도,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약자인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입니다.

 

오늘은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에서 드러난 ‘정의’의 민낯을 우리 사회에 투영해보았습니다. 아마니 인생에도, 우리네 삶에도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며, 세른 세 번째 인생 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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