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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芸者)는 일본의 전통무용·샤이센 연주·서예 등을 하는 기생이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의 오랜 수도였던 교토에서는 게이샤 문화가 꽤나 큰 규모로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최근 업계를 대표하는 '사츠키(紗月)'라는 게이샤는 연봉이 10억 원에 달한다고 하여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사츠키 씨는 중학교를 졸업 후 고교진학 대신 게이샤의 연습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코(舞妓)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사츠키 씨는 데뷔 4년 만에 여성게이샤인 '게이코(芸妓)'로 에리카에(襟替え)하였다. 2021년 10년간의 게이샤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였다(에리카에는 옷깃을 바꿔입는다는 뜻으로 마이코에서 정식 게이코로 승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이코 '사츠키'의 이야기는 NHK에서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인지 전통예술을 잇고 싶다는 소녀들이 늘어나 한때 교토에는 마이코 지원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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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사츠키의 사계절

출처-<NHK>

 

하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접객업·공연업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던 하나마치(花街-꽃 거리라고 하여, 게이샤들이 모여있는 지역)에도 커다란 타격을 주고 말았다. 그리고 코로나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던 찰나, 또 하나의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1. '마이코 출신' 여성의 충격 폭로, 불똥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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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거장 영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처-<티캐스트 유튜브 채널>

 

2022년 6월 키리타카 키요하(桐貴 羽)라는 여성 카피라이터가 자신이 과거 마이코로 활동하던 시절 직접 겪었다는 마이코 업계의 어둠을 폭로하였다. 그 내용들은 몇 년 전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범죄와 다름없는 내용들이다. 일본 사회는 물론 해외까지 번져나갔다. 해당 내용을 집중 취재했던 주간문춘은 2022년 주요 사건 중 하나로 이 사건을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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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타카 키요하

출처-<프라이데이>

 

그리고 2023년 1월 넷플릭스에서는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야심 차게 준비한 드라마 시리즈 '마이코씨네 행복한 밥상'이 공개되었다. 제작진과 넷플릭스는 하나마치에서 일본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애쓰는 마이코 소녀들의 기특한 모습과 이들의 성장기에 국민적인 응원을 기대했을 터이다.

 

그러나 시간을 반년 전으로 돌려보면 대중들에겐 충격적인 폭로의 내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음주 강요·노예와 같은 합숙 생활은 물론, 미성년자 성매매 같은 충격은 쉬이 기억에서 사라질 리 없다. 게이샤에서 매춘 이미지를 지우고자 애쓰던 업계 사람들은 더더욱 곤란해지는 상황에 부닥쳤다.

 

지속되는 '미화 논란'에 고레에다 감독은 이례적으로 장문의 반박, 해명 글을 게재하기도 하였다(해당 글 링크 : Netflix「舞妓さんちのまかないさん」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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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폭로된 내용이 얼마나 충격적인 내용들이었기에 이런 소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인가. 키리타카 씨가 주장했던 내용들을 알아보자.

 

- 단나상(旦那さん)이나 미즈아게(水揚げ)가 아직 존재, 나는 5천만 엔에 처녀를 팔릴 뻔했다. 그 수익은 마이코에게는 오지 않는다.

 

- 음주 강요가 빈번하다. 손님 30명과 게이코, 마이코 20명이 술 마시기 대결을 벌이기도 했는데 미성년자 마이코도 포함되어 있었다.

 

- 손님과 혼욕을 강제로 시키려 해서 도망쳤다. 옷자락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과 가랑이 사이를 만지기도 했다. 이것을 엄마(관리인)에게 말했더니 오히려 혼났다.

 

- 5년, 6년 동안 급료 없이 적은 돈의 용돈만 받으며 온갖 체벌 속에서 살아야 한다. 상한 음식을 먹은 일도 빈번하다.

 

-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편지나 공중전화밖에 없다. 휴대전화는 금지된다. 밖의 세상을 알면 도망치기 때문이다.

 

(※ 단나상이란 마이코나 게이코가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 게이샤의 숙소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후원해주는 부자 남성이다. 마이코는 자신을 소개할 때 단나상의 성을 대야 한다. 이 풍습은 스폰서 형태로 발전되거나 이용되기도 한다. 

 

미즈아게는 마이코에서 게이코로 승급하는 의식인 '에리카에'를 할 때 단나상과 관계하는 행위다. 2차대전 후 풍속법이 생기며 사실상 금지되었다. 자칫 '게이샤=매춘'이라는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사례는 절대 없으며 만약 이루어진다면 자유연애에 가까운 것으로서 여성이 먼저 원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자 추가 폭로와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어느 마이코는 언니들에게 비밀파티라는 곳에 초대되어 갔더니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매춘을 권유하였다는 폭로를 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폭로에서 나온 내용들을 겪어 본 적은 없으며 미성년 마이코는 다과회 자리만 참석할 수 있고, 술자리로 바뀔 땐 게이코와 교대하며, 항상 감시역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손님이 함부로 마이코를 손댈 수 없는 구조라는 주장도 올라왔다. 교토에 하나마치가 5개 구역이 있는데 구역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다는 의견도 다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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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치인 교토 폰토쵸

 

혹시나 그런 일이 더 있더라도 폭로에서 나온 '5천만 엔'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반응이다. 그러한 거액이 암거래로 오고 가면 탈세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마이코들이 무급으로 생활하는 것은 "대부분이 연습생 신분으로 숙식을 무료로 제공받으며 교육비 역시 무료로 제공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처우와 관련해서는 가족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으며 쉬는 시간이나 휴일에는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SAYURI(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일본 제목)' 내용 때문에 마치 가난한 부모가 자식을 마이코로 팔고 가버리는 듯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오해를 개선하고 싶다"

 

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2. 폭로의 신빙성 논란, 일명 '승인욕구 몬스터'가 벌인 과장된 폭로?

 

최근 일본에선 '승인욕구 몬스터(承認欲求モンスタ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 단어는 유튜브나 SNS상에서 '좋아요'를 얻어내는 쾌감에 취해 과도한 컨셉 샷을 찍거나, 거짓 사연을 올리는 등, 관심을 끄는 행위나 무리수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작년 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애니메이션 '봇치 더 락!'으로 한층 더 유명해졌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번 폭로의 주인공인 키리타카 씨의 경우도 후술할 이유로 이 승인욕구가 발동하여 '승인욕구 몬스터화' 되어 거짓 주장이나 과장된 폭로를 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에 휩싸였다(마이코 출신이 맞냐, 마이코 컨셉 유흥업소였던 것 아니냐, 라는 의혹도 있었는데 당시 커뮤니티 자료나 사진 자료가 남아있어 마이코 생활을 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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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치더락中

 

키리타카 씨가 지금껏 올려왔던 글들의 앞뒤가 맞지 않으며, 마이코 업계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등 글에 위화감이 드는 지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녀의 과거 이력과 진정성에 대한 의혹이다.

 

키리타카 씨는 11살에 주니어 모델을 시작하여 14살 경에는 언니와 지하 아이돌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이때 일본 무용을 배워 15살에 마이코에 도전하게 되지만 1년 6개월 만에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이후 본인은 international college of japan에 입학했다고 하지만 논란이 일기 훨씬 전인 2018년 5ch 마이코 관련 스레드에 그녀가 이전 오사카 키타신치 유흥가에서 일했다는 글이 발견되었다. 상황상 그녀의 당시 나이는 17살이기 때문에 호스티스로는 일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 후 18살 때 도쿄 긴자의 바에서 일하며 연 수입이 2천만엔 (약 2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역시나 '술을 마실 수 없는 나이에 긴자 고급 바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혹이 따랐다.

 

키리타카씨 16세 시절 음주장면.jpg

키리타카, 16세 시절 음주 장면

 

그 후, 그녀는 2억 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2020년 9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1살 연상의 남성과 결혼하여 2021년 4월에 아이를 출산하였다고 밝혔는데, 이미 기혼·임신 중이던 2020년 10월, 호스티스 여성을 의미하는 '히메(姫)의 새 계정'이라는 소개와 함께 트윗 계정을 개설한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 키리타카 씨는 작가 활동을 선언한 터인데 블로그·인스타·트윗·유튜브 등 여러 매체에 본인의 끔찍했던 마이코 시절 사진을 홍보 도구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하였다.

 

키리타카 홈페이지.jpg

키리타카 홈페이지

 

두 번째 논란은 마이코 시절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뒤바뀌었단 것이다.

 

2021년, 키리타카 씨는 한류 아이돌 관련 콘테스트인 미스얼짱 콘테스트에 출전하게 된다(미스얼짱 콘테스트에 참가한 것 때문에 혹시 한국계가 아니냐는 질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상 모두 순수 일본인이라고 답변했다).

 

당시까지 그녀는 본인이 마이코였다는 사실을 함구하고 있었는데 2차 심사를 통과하여 준우승까지 진출한 상황이 되자 숨겨왔던 마이코 이력에 대한 이야기, 아이돌 활동을 했던 이야기 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트윗에는

 

키리타카씨 마이코시절 일을 용서받고 싶다는 트윗.jpg

(미스얼짱 콘테스트에서) 혹시 1등을 하면 당당하게 마이코 시절 엄마나 언니들에게 '성장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어. 이 계정도 알려주고 용서받고 싶어. 내가 실린 잡지를 가지고 가서 안아달라고 하고 싶어. 더 이상 숨기려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라며 오히려 마이코 시절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용서받고 싶다는 내용을 올렸다. 본인의 블로그에는 아래와 같은 글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해당 글 링크 : 嘘つきと呼ばれた私には、ちょうどいい).

 

내가 마이코를 하고 있었을 당시, 저는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확실히 저는 거짓말을 자주 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거짓말쟁이'의 일면, 그것을 강함으로 바꾸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소설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가, 아니면 거짓말일까.

여러분도 한번 파헤쳐보시기를 바랍니다. 승부입니다.

거짓이 사실일까, 사실이 거짓일까 헷갈리신다면 저의 승리입니다.

(후략)

 

이렇게 마이코 시절의 추억을 곱씹던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6개월 뒤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하나마치를 항해 신랄한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일부 네티즌은 미스얼짱 콘테스트에서 우승해서 유명해졌으면 이번 폭로 건도 없었을 것이라는 악플을 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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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타카의 마이코 활동 당시 모습

 

추가로 제기된 의혹이 있다.

 

분명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라고 폭로하였는데 본인이 음주 강요를 받았다는 증거로 올린 글에는 당시 본인의 셀카 사진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이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몇몇 사람들이 따져 묻자, 그녀는 손님의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며 후에 연락해서 전송받았다고 해명하였다.

 

해당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것이 메이저급 언론이 아닌 '프라이데이'와 '주간문춘' 같은 가십을 주로 싣는 잡지라는 점을 지적하는 여론도 있다. 이들은 대표적인 황색언론으로 화젯거리를 위해서라면 의도적으로 부풀리기를 하거나 거짓 내용을 싣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특히, 주간문춘은 얼마 전 인기 아이돌 '르세라핌'의 일본 활동 선언 일자에 맞춰 김채원 양의 스캔들을 잡았다며 대대적으로 폭로 예고까지 했는데 보도에 쓰인 증거 사진은 팬이 만든 합성사진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망신을 사기도 했다).

 

휴대폰 금지 당했다던 키리타카씨의 셀카.jpg

휴대전화 이용이 금지당했다던 키리타카의 셀카

 

3. 전통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폐쇄성과 애매모호한 규제가 문제

 

해당 폭로 사건은 정치권으로까지 불이 번졌다. 후생노동성 고토 시게유키 장관은 2022년 6월 28일 기자브리핑에서 게이코와 마이코의 법적 보호 방침에 대해 질문을 이렇게 답했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것이라 명확하게 답변하기가 어렵다. 마이코들과 게이코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잘 활동해달라"

 

라며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하였다. 한편 '마이코 씨의 행복한 밥상에서는' 만 16세 소녀인 주인공이 '견습생' 신분으로 심야 연회 자리에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두고 노동기준법이나 풍속영업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점에 대해 교토시는 '마이코는 교토시 조례에 따라 '전통 예술 계승자'로 인정되어 술자리에 나오는 것을 특례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일본 인터넷상에서도 마이코에 관련해서만 유독 느슨하게 적용되는 규제와 애매모호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규정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접대업 희망자를 모집하는데 미성년자를 받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번 폭로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미성년이 노인네들의 술 시중을 드는 마이코는 없어져야 할 문화", "쓸모도 없는 AV신법은 잘도 만들더니 정작 미성년자 보호가 필요한 법 제정은 안 하느냐" 등의 의견들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더 나아가서는 "애초에 매춘 문화를 전통예술인 척 포장해놓은 놈들이 나쁘다.",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가게군요." 등의 조롱 글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일본의 전통문화로써 대접받던 동시에 전통문화라는 핑계로 규제의 칼날을 피해 가던 게이샤 문화도 드디어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거세를 시키든 아예 풍속업으로 변신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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