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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민주주의는 없다

 

1950년 7월 26일, 낙동강 방어 전투가 한참 시작되려 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육군총참모장이었던 정일권 소장은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결사 항전을 위해,

 

“명령 없이 전장을 이탈하는 자들은 즉결처분하겠다!”

 

라면서 분대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에게 즉결처분권을 주는 훈령을 발표한다. 뒤이어 미 제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Walton Walker) 중장은,

 

“죽을 때까지 싸워라!”

 

라는 전선 사수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린다. 이 명령을 접한 언론인들이 난리가 났다.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명령하는 건 비인도적이고, 비민주적이다!”

 

이 모든 비판 여론을 한마디로 정리한 게 맥아더 원수였다.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앞에서 언급한 한마디를 내던진 거였다.

 

“군대에 민주주의는 없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를 보면, 이와 비슷한 대사가 램지 함장의 입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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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크림슨 타이드> 중 램지 함장(오른쪽)

 

군인은 민주주의 수호자이지, 민주주의의 실천자가 아니다.

 

분명한 건 군대 내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여러 매체를 통해 군내의 악습과 부조리가 개선된 건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특히나 핸드폰이 병사들 손에 들어가고 나서 군 문화는 엄청나게 바뀌게 된 건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군 복무하는 병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사회와 격리된 고립감인데,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이 부분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툭 까놓고 말해서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요즘 군대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꽤 많다. 아니, 소통이 아니라 국방부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방법을 국민 모두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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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육대전

 

일례로 <육대전 :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이 있다. 운영자 스스로가 ‘군대의 미투 운동’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육대전은 군내의 문제점을 일반 대중에게는 자가 격리 장병 부실 급식 논란 등, 예전이라면 묻혔을 만한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됐다.

 

핸드폰과 공론화의 장이 결합하는 순간 그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군 지휘계통도 육대전의 위력을 실감했기에 이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육대전의 문제점도 많다. 운영자의 말처럼 ‘군투’가 되면서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고, 이 때문에 잘 걸러지지 않은 제보와 이로 인한 사건들(해군 함장의 자살 사건)도 있었고, 아무래도 병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군 간부와 병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가 되기도 했다(물론, 간부들도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 툭 까놓고 말해서 징병제 국가에서 간부와 병사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걸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뭔가 물어선 안 될 거 같지만... 물어봐야 할 걸 대신 물어준 게 램지 함장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실천자인가?”

 

군대 선진화와 간부

 

군 복무를 하는 동안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실천자가 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해봤다. 적백내전(10월 혁명 이후 혼란해진 러시아에서 벌어진 내전. 1차 세계 대전의 상흔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러시아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공격 결정을 하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까지 거슬러 올라간 건 아니다.

 

“군기 빠진 놈들은 몽둥이가 약이야!”

 

라면서, 철 지난 군기타령이나 구타가혹행위를 옹호하는 입장은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군대가 과거보다 훨씬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다(당연히 국민의 눈치는 봐야하고).

 

물론, 원활한 소통은 건전한 병영문화를 만들고 군대 내의 부조리를 없애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핸드폰이나 육대전, 국방헬프콜(군대에서는 ‘버스터 콜’로 더 유명한), 군 인권센터 등등 수많은 ‘신문고’가 있다. 이제 병사들의 억울함이 군에 의해 묵살되는 경우는 줄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님들도 동창회 밴드 찾듯 아들 중대 밴드에 들어가 아들 사진과 동향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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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헬프콜1303 홈페이지

 

군대란 곳은 있기 싫은 곳에, 있기 싫은 사람과 원하지 않는 기간 동안 끌려가는 것... 그럼으로 군대 그 자체가 힘든 경험이란 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군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불합리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 그것도 여러 개 있다는 건 군 생활에 큰 힘이 될 거다. 물론, 미흡한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중요한 건 국방부가 사건사고를 은폐하는 게 전보다 쉽지 않아졌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변화가 누군가에겐 ‘군의 약체화’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올바른 변화 방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기사에선 이런 논란을 제외하고,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볼까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게 바로 ‘간부’들이다.

 

초급 간부의 사정

 

2016년에 정재극 교수가 한 편의 논문을 내놓게 된다. 『초급 간부 인권과 군대 폭력 근절 방안에 대한 연구』란 짧은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주목해 봐야 할 몇 가지 대목이 있다.

 

① “병 계층과 지휘관 사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초급 간부들은 어느 계층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② “초급 간부 계층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 초급 간부 중 하사는 장기복무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과중한 업무로 휴식권 등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복무 의욕 저하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③ “육군의 초급 간부의 경우 2.2%가 상관으로부터 구타를 경험했으며, 언어폭력에 대해서도 35%가 1회 또는 수회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④ “군인은 헌법과 군 법규에 의해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초급 간부들은 상급자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주거권, 휴식권, 교통 통신권, 복지시설이용권 등에서도 차별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간부들의 경우 기혼자들은 일과시간 이후의 생활 등에서 미혼자들과 다르게 통제방식이 적용되고 있으며 업무 전념과 건전한 소비생활, 사고방지 등의 이유를 내세워 사적 권리를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⑤ “육군의 경우 관심병사로 분류되고 있는 비율이 전체 병력의 23.1%이며, 사고 예측 판별 검사에서 8%에 해당하는 5만여 명이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위험군과 관심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⑥ “최일선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분대급 이상 중대급 이하의 간부들에게 행정업무가 가중되는 원인 중 하나는 각종 검열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장려 사항에 대한 행정 서류, 서면보고서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다.”

 

우선 ②번 항목은 지금의 상황(?!)에서 약간 괴리감이 느껴진다. 장기(복무)가 됐음에도 군을 떠나는 인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게 지금 군의 현실이다. 여기서 가장 고민해 봐야 하는 게 ④번 항목이다.

 

『주거권, 휴식권, 교통 통신권, 복지시설이용권 등에서도 차별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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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가 있는 곳은 강원도나 경기도의 오지이다. 관사나 독신자 숙소가 주어진다고 하지만, 그 퀄리티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요즘 같은 시절에 배달 음식 시켜 먹기도 힘든 곳이라면 알만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괜찮은 교육’이 가능할까? 더 큰 문제는 그나마도 2년 이상 한 곳에 있기 어렵다는 거다(전출 가야지). 본인이야 군에 뜻을 품고 군대에 들어갔지만, 그 가족들은 어쩌란 말인가? 특히나 요즘 같은 시절에 SNS에 친구들 삶을 보게 되는 경우라면, 군인의 아내, 군인의 자식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나마도 위수지역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다(병사들처럼 함부로 점프 뛰기도 어려운 게 상관이 수시로 찾는데 어쩌란 말인가?).

 

여기에 과중된 업무도 생각해 봐야 한다. ⑤, ⑥ 항목이 간부들의 실질적인 문제점이다. 2014년 윤 일병, 임 병장 사건 이후 군 간부들의 업무는 폭증하게 된다. 군 부조리를 없애는 건 좋지만, 그 지휘 부담이 고스란히 일선의 소대장, 중대장에게 떠넘겨진 거다. 그나마도 실질적인 거면 좋겠지만, 거의 대부분 ‘보고를 위한 보고’로 점철되고 있다.

 

인구 절벽 시대의 군대

 

여기에 불을 붙인 게 인구감소다. 병력 자원이 꾸준히 줄어들면서 징병률이 치솟게 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징병률은 50%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2022년 국회 외통위 소속 조태용 의원실이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연도별 징집률’ 자료를 보면, 2021년 징병률은 96.6%에 달한다. 자조 섞인 농담조로,

 

“팔, 다리만 붙어 있으면 다 끌고 간다.”

 

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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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다 보니 군 복무 중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제대하는 병사들의 비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심신장애. 및 가사 사정 등에 의해서 전역한 병사들의 숫자는 2017년 5.1%에서 2018년 6%로 증가하게 된다(이건 육군의 경우이다. 그러나 해군, 공군, 해병대 등등 이런 심신장애, 가사 사정에 의한 전역은 육군처럼 그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게 고스란히 지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거다. 그린캠프(육군 내 관심 병사 관리를 위해 군단 단위에서 주관하는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병사들도 늘어나고 있기에 아예 사격이나 유격 등 굵직한 훈련이 있을 때 일부러 관심 병사를 그린캠프로 보내버리는 경우도 많다. 관심병사는 그 자체로 지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관심병사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군 생활 잘하는 병사들도 초급 간부들에게는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관리해야 하고, 수시로 ‘소통’하다 보니(부모들에게 보고도 해야 하고) 이건 고스란히 간부들에게 일이 떠넘겨지게 됐다(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인원이 부족하다는 거다). 결정적으로 ‘보고를 위한 보고’가 나온다.

 

대한민국은 현재 휴전상태지만, 전쟁을 멈춘 지 70년이 넘어가면서 ‘싸웠던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군대에서 나오는 것이 ‘관리’이다. 잘 싸우는 군대, 전쟁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현재 상태를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게 된 거다. 이러다 보니 어느새 군대는 관료화가 됐다. 수많은 검열과 보고가 이어지게 된다. 훈련을 잘 시키는 걸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군대를 잘 유지하기 위한 일들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일반 병사들도 이건 선뜻 이해할 거다. 총 잡은 시간보다 삽자루 잡은 시간이 더 많았다는 걸 말이다.

 

“병 계층과 지휘관 사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초급 간부들은 어느 계층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더 심각한 사실은 이것을 지적한 이 논문이 나온 지도 7년이 지났다.

 

지금 현실은, 더 처참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