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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영국.

 

2년 앞으로 다가온 밀레니엄을 맞아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계획했던 때, 나름 새천년을 맞이하는데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생각했던 때, 말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에 일가견이 있는 영국 정부는 획기적인 안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끌 만한 뭔가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런던 아이(London Eye)'유럽 대다수 국가 중 수도에 고층빌딩이 있는 도시가 흔하지 않았고, 따라서 조망권을 갖춘 대관람차 같은 관광상품이 생긴다면 그것만큼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진행된 밀레니엄 프로젝트다.

 

당시엔 이런저런 비판도 있었다. 게다가 위치는 워털루역. 영국에서 일일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는 장점이 있어 관광명소로 이름을 알리기에 안성맞춤이긴 했지만, 가뜩이나 출퇴근 시간 가장 붐비는 역으로 유명한 곳에 관광객들까지 들끓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예측도 있었다. 더불어 웨스트민스터 의회, 사원, 의원회관 등 각종 정치활동이 이뤄지는 지역을, 일반인들이, 그것도 하늘에서 다 내려다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에 보안 문제가 생길 여지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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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시>

 

하지만 런던을 한눈에 담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런던 아이는 역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건축·물리학적으로도 영국에게, 특히 런던이라는 세계적인 도시에 랜드마크로서 큰 의미를 안겨주며, 지금은 연간 5천억 규모의 관광 자원으로 발돋움했다. 해마다 런던 아이를 타보고자 영국을 찾는 관광객 수만 300만 명 이상인 터인데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왜 유명한가?

 

런던 아이는 기울어진 A자형 모형으로 건축하였다. 원형 관람차 양쪽에 지지대를 세운 것이 아닌 한쪽에만 지지대가 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한 면에 지지대를 세워 관람차를 돌리도록 하는 것이 물리학에서 얘기하는 힘의 원리를 극대화·현실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별다른 지지대 없이 단면을 끌어당기는 힘을 이용해 높이 140m의 거대 관람차를 수직으로 세워 가동하게 한 셈이다.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내진 설계하였고, 언제든 철거할 수 있도록 분리가 쉽게 조립하였다고 하니 세간의 이목을 끌 만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런던은 총 33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이 강동구·강남구·강서구 등 25개 구로 구성하듯이 런던도 행정구역을 구분하는데, 그게 총 33개. 과거, 왕조차도 시장의 허가가 있어야 진입할 수 있었다던 런던 경제 중심가를 제외한 런던 아이(London Eye) 관람차 수는 총 32개다. 행정구역 32곳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그래서 런던 '눈[Eye]'이라고 지었다고)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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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런던아이 인스타그램>

 

그러하다. 한눈에 다 뵌다. 가까이는 빅벤과 웨스트민스터부터 트래펄가 광장, 뮤지컬의 고향 웨스트엔드, 워털루, 그리고 멀게는 타워브리지까지 영국 혹은 런던 하면 떠오르는 웬만한 관광지, 꼭 봐야 할 거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동서남북으로 런던아이보다 높이 쏘아 올려진 뭔가가 없으니 더더욱 시야가 넓게 확보된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쯤 왜 안 타보고 싶겠는가. 한 번 타는데 40파운드, 우리 돈 약 6만 원씩 한다 해도, 고작 30분 만에 한 바퀴 돌고 내려야 하는 관람차임에도 영국에 오면 누구나 한 번씩 타게 된다는, 그게 바로 런던 아이다.

 

데이비드 마크(David Marks)와 줄리아 바필드(Julia Barfield)라는 영국의 걸출한 부부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이라는 걸 몰라도,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 지었고, 현재는 코카콜라가 소유권을 갖고 운영한다는 사실을 굳이 모른다 해도, 런던 아이를 세운 때부터 지금까지, 나름 부여한 의미에 충실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아이코닉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아는 터이다. 경제적인 효과라는 덤까지 해서. 물론, 런던 아이를 벤치마킹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 하지만 그냥 아류작일 뿐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대관람차를 언급할 때 싱가포르를 얘기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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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tor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링. 제2의 수상택시 사업?

 

서울링 사업을 시작한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왜 이 시점에서 거대 관광용 대관람차를 서울에 짓겠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업을 시작하게 될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은 지워지질 않는다. 이것 땜에 내가 사는 영국의 런더 아이 썰을 좀 풀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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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시>

 

비슷한 사업이 있긴 했다. 지금은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수상택시. 이 또한 과거 현 서울시장의 사업 중 하나로 선택하여 추진하였지만 망했다. 런던 템스강이나 파리 센강과 같은 강들은 폭이 좁고 접근이 용이해 수상택시나 운송수단을 통해 이동이 용이하다. 따라서 단순히 다리를 건너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상·하류를 왕복하는 방식의 수송은 오래전부터 이용하여온 운송수단이었다.

 

하지만 한강은 폭이 넓고, 한강공원이라는 거대한 녹지가 개발되어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 못하다. 수상택시를 이용하려면 지하철이든 버스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 후, 한참을 걸어야 수상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특성상 봄이나 가을에야 운치 있게 강에 띄워진 배 타고 이동이 괜찮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름에는 택시 타러 가는 사이 온몸은 땀 범벅이 되어버릴 테고, 겨울에는 손발이 꽁꽁 얼어붙거나 귀가 떨어져 나가도 모를 추위를 뚫고 택시를 타러 가야 한다니 이용객이 없을 수밖에. 결국 망했다.

 

서울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은 강남과 잠실이고 그다음이 홍대·선릉·신림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서울링을 마포구 상암동에 짓겠다고 하니 더더욱 난감하다. 왜 상암인가? 더 많은 이들이 가도록, 그래서 상권을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함일까? 그런데 누가, 왜, 뭘 보러, 그곳까지, 간단 말인가? 런던 아이가 성공한 건 워털루역에서 도보 1분 거리인 까닭이다. 유동 인구도 많지 않고 경복궁이나 광화문과 같은 역사적인 장소도 아닌 곳에(상암 무시하는 거 아니다...!! 어디까지 난 런던 아이를 따라하려는 오세훈 시장의 비판하는 것이니 상암 시민 분들은 화내지 마시라...!)누가 굳이 먼 발길을 돌려가며 서울링을 타러 상암까지 가겠는가. 설마 한강 보러? 롯데타워가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될 것이라는 초창기 기획과 달리 지금은 내국인들로만 가득 차 있는 면모만 봐도 결과는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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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서울의 경우,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 군데군데 나뉘어 있다. 한눈에 안 들어온다는 얘기. 굳이 서울의 야경을 보고자 한다면 남산에 있는 N타워가 있다. 이마저도 케이블카 타러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만 해도 너무 오래라 잘 안 가지만. 즉, 안 봐도 훤한 미래다. 서울링은 결국 수상택시처럼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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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현지 시각) 런던 아이에 탑승해 도시 경관을 보고 있는 오세훈 시장

 

왜 반대하는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서울은 서울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써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상암이 월드컵 경기장도 있고 이런저런 상권이 급격히 발달해 명소로의 역할을 한다지만, 냉정하게 볼 때,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매력이다. 결국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종국에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될 터이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 굳이 캡슐에 갇혀 한강을 조망하겠노라 상암까지 찾는 사람들은 점점 없어져 파리만 날릴 게 뻔하다. 기업에 외주를 주고 설계부터 설비, 관리까지 맡기겠다고 하나 결국 흉물이 되어 철거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엉뚱한 곳에 혈세가 낭비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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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이를 탑승한 뒤 런던 아이 설계자 및 운영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대 최대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부동산 시장 불안정과 노동시간 확대·유연화로 가뜩이나 술렁술렁한 판국이다. 힘든 시민들을 위해 대책 마련은 하지 못할망정, 한가하게 서울링 같은 소리나 하는 서울 시장이, 이 먼 영국에서도 화가 나게 한다. 

 

영국의 런던 아이를 따라하려면 이게 왜 성공했는지 정밀히 공부하고 따라해야 할 게 아닌가. 벤치마킹도 상황이나 여건, 역사적 배경, 환경 등을 고려해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 이것 좋다고 따라 하고, 저것 좋다고 해보고, 결국 화제가 되어 연임에 유리한 업적에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 손해 보는 건 국민, 답답한 시정 지켜보며 정신건강 나빠지는 것도 시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서울링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