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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시중 은행 중 한 곳에서 8,000억 원의 불법 외화자금이 송금되었고, 일부는 가상화폐로 거래되는 등 자금세탁 의심 거래가 발생하여 기사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은행의 횡령 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금액과 수법 등도 제법 충격을 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외에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들에서 자금세탁과 관련된 의심 거래가 발생하거나 하는 등 '자금세탁'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렸었는데요.

 

자금세탁, 돈세탁이란 단어만 들었을 때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자금세탁이란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발생하며 어떻게 예방되는지, 어디서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자금세탁에 관여해보신 게 아니라면 일반인이 알기 어려울 터입니다. 관련 사건이나 이슈도 적은 것 같아서 접하기 어려우실 텐데, 이번에 자금세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신용도를 좀 올리자면(실제론 제 자랑입니다만...!) 국제공인 자금세탁방지 전문가(CAMS), 국제공인 제재전문가(CGSS)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고 자금세탁방지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생소할 수도 있고 상당히 방대한 양의 개념이지만 간략하고 쉽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금세탁 수법

 

자금세탁, 영어로는 Money laundering이라고 합니다.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썰들이 있는데 다수설은 미국 마피아의 전설 알 카포네가 무기 판매·밀수·마약 거래 같이 불법적으로 번 돈을 자기 조직이 운영하는 세탁소를 통해 합법적으로 벌어들인 것처럼 위장했던 것입니다. 즉 자금세탁행위란 범죄행위로부터 얻은 불법자산을 합법적인 자산인 것처럼 위장하는 과정입니다. 역사적으로 1986년 미국에서 최초로 자금세탁 관련 법을 제정하였고, 1988년 UN에서 제정한 '마약 및 향정신성 물질의 불법 거래 방지에 관한 협약'에서 구체적으로 정의하였습니다.

 

UN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초기의 자금 세탁범죄는 마약류 거래가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중남미 마약범죄 조직이 미국 내에서 마약을 판매하여 얻은 달러를 자국 내 통화로 바꾸거나, 미국 내에서 합법적인 자금으로 사용하고자 자금 세탁행위를 많이 저질렀지요. 지금은 그 범위가 많이 확장되어 마약을 포함한 각종 범죄자금과 탈세를 목적으로 한 행위 그리고 테러 자금 조달에 관한 부분까지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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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PUBLIC ENEMIES) 왼쪽 상단에 자리 잡은 알 카포네

 

테러 자금에 관한 규제는 1999년 UN 총회에서 처음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직후 여러 국가가 이를 비준했습니다. 한국도 꽤나 빠르게 2004년부터 테러 자금 규제를 시작했지요. 자금세탁 행위와 테러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자금 세탁행위는 자금의 출처가 거의 99.9999999% 불법적인 것에 반해 테러 자금조달은 항상 불법적인 자금인 것은 아닙니다. 쉽게 예를 들어 9.11 테러에 사용된 자금의 출처 중엔 이슬람 신도들의 기부금이나 합법적인 사업으로 확보한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어쨌든 자금세탁, 테러 자금조달 행위는 목적이나 자금의 출처 등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범죄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제재하고자 국제단체와 각 국가는 법률을 제정하고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범죄화하고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하지만 이 같은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각종 범죄 활동이 더욱 양성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범죄행위는 마약·인신매매 같은 강력범죄를 포함하기에 국가의 치안에도 영향을 주지만 불법 다단계(폰지사기)·사기 거래 등도 포함하기에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줍니다. 이렇게 경제에 지속적인 악영향은 국가의 대외적인 신뢰도나 평판을 하락하게 합니다. 가령 마약범죄와 치안이 안 좋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시면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자금세탁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우선 각종 불법행위 및 범죄를 통해 수익금을 벌어들이는 전제 범죄가 일어납니다. 위에 잠시 언급했듯 사기·인신매매·마약·불법카지노 등 다양한 수법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있고, 이 현금은 전통적으로 3단계에 걸쳐 '세탁'됩니다.

 

첫 번째는 범죄수익금을 금융시스템에 유입시키는 배치(Placement)단계 입니다. 범죄수익금은 대부분 현금으로 보유하게 됩니다. 마약 대금을 카카오페이로 이체하거나, 납치 후 몸값을 요구하면서 계좌번호를 알려주지는 않지요? 보이스피싱도 계좌를 통해 송금이 이루어지지만 그 계좌는 불법 대포통장이고, 피해자가 대포통장으로 입금하면 그대로 범죄자의 계좌에 재이체하는 것이 아닌 ATM을 통해 직접 출금합니다. 당연하게도 계좌를 통한 송금방식은 그 증거와 증빙이 남습니다. 범죄자가 추적당할 위험이 있기에 범죄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결국 현금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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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금은 다 좋지만 부피가 크고 무거워 사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서 얻은 100억을 현금화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100억으로 차를 사거나, 집을 사거나 하기는 어렵습니다. 10억짜리 주택을 구입하는데 007가방에 10억을 담아서 준다면… 조금 의심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불법 수익금을 은행에 다시 입금하게 됩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스머핑과 전위사업체라고 하는, 흔히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 등으로 불리는 합법·불법적 사업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스머핑은 우리가 아는 파란색 그 스머프에서 따온 말이 맞고요. 거액의 자금을 작게 분산해서 다수의 사람이 소액으로 입금·송금하는 수법입니다.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당 사업체가 현금수익을 발생시켜서 입금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맨 처음 말씀드린 마피아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불법 수익금을 세탁소 수익금인 것처럼 위장하는 식이지요.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사례지만 '하왈라'라고 하는 지하 환전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여행자 수표 등을 이용하는 수법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입금된 자금을 추적하기로 어렵게 하는 반복 단계입니다. 앞서 배치단계를 거친 자금은 금융시스템에 유입이 되었지만 혹시라도 범죄 수사 등이 발생하면 추적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한 단계가 바로 반복인데 말 그대로 추적을 피하고자 송금·이체 등을 반복합니다. 주로 사용되는 패턴은 흔히 조세회피처라 불리는 카이만 제도·버진아일랜드 등의 페이퍼컴퍼니 등으로 자금을 송금하거나, 제3자들과의 반복적인 이체 등이 있으며 고가의 보석이나 물건을 구입하고 환불하거나 물품을 정가 혹은 고가에 구매하여 싸게 되파는 방법도 많이 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지만 거액의 보험을 일시불로 가입 후 해지하고, 카지노에서 칩을 구매 후 환불하는 방법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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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세탁 루트로 활용될 위험도가 높은 암호화폐

출처-<연합뉴스>

 

재밌는 것은 이런 서비스의 해지나 물건의 환불, 재판매가 발생할 때 어느 정도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점입니다. 자금세탁을 하려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금의 일부 손실보다 혹시라도 있을 수사와 그에 따른 자금의 추적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마지막 세 번째는 추적이 어려워진 자금을 합법적 자금과 통합(Integration)하는 단계입니다. 배치와 반복 단계를 거쳐 추적이 어려워진 자금은 범죄조직 및 범죄자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합법적인 자산과 통합하게 됩니다. 이로써 최초 범죄로 인해 발생했던 불법 수익인 '더러운 돈'은 이제 경제 전반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돈'으로 세탁을 완료한 것입니다. 이제 합법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자동차를 매입하고, 사업체를 운영하고 직원들 월급도 주면서 떳떳하고 건실한 사업가로 위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자금세탁으로 실제 발생했던 사례는 그 유명한 조희팔 사건입니다. 조희팔 사건이 불법 다단계 사기 부분만 부각되어 실제 사기를 통한 범죄수익금을 어떤 식으로 관리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터입니다. 그들은 차명계좌를 이용하고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해외에서 고철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범죄 수익금을 분산한 뒤 입금과 출금을 반복하는, 위에 언급한 전형적인 자금세탁 방법인 배치-반복-통합 절차를 이용했습니다. 이 밖에도 미국의 메이도프 사건이 폰지사기를 이용한 자금세탁 방법으로 유명하고요. 2010년대에는 러시아의 가상화폐거래소 BTC-e가 자금세탁 혐의로 거래소 폐쇄 조치가 내려졌었지요. 

 

피해자만 5만여 명! 조희팔 사기수법 대해부!  _ 그알로 보는 '조희팔' 0-1 screenshot.png

피해자만 5만 명, 희대의 불법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

 

언급한 내용들 외에도 전 세계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하기 위한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을 터입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법과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기어이 말이지요. 언제나 법은 사후적으로 조치 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해 법률로 제한하지 못했던 것들이 문제화되면 그때야 법이 제정되기 때문이지요. 법도 중요하지만 자금세탁은 특성상 국내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국내외를 걸쳐서 발생하기에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합니다. 

 

2. 세탁 방지 국제기구

 

한번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자금세탁을 하고자 하는 미국의 범죄자들입니다. 위에 말씀드렸던 배치-반복-통합의 작업을 하고자 범죄수익금을 가방에 넣고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가려고 합니다. 미국 국경은 문제 없이 넘었는데 멕시코 국경에서 검문에 걸렸습니다. 이 많은 돈이 무엇인지 묻는 멕시코 국경경비대에게 슬쩍 돈뭉치 두어 개를 찔러주니 '아미고~'라고 웃으며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그 후 멕시코 내에서 달러를 환전하고 은행에 입금할 때 은행직원이 의심스럽게 자금의 출처를 물어보았습니다. 역시나 돈뭉치 두어 개를 슬쩍 앞으로 내밀자 '아미고~'라고 웃으며 문제 없이 처리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배치작업을 마친 후 반복과 통합을 거쳐 범죄자금을 세탁할 수 있었습니다.

 

자금세탁을 방지하지 위해서는 개별국가의 노력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국가마다 금융에 대한 기준과 법률이 상이하고 자국의 금융거래는 자국에서만 관리·감독할 수 있는데 국제거래가 활발해 짐에 따라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도 낮아지고 있기에 자금세탁 범죄는 감독 당국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국가를 이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 비해 신속해진 국가 간 송금과 가상화폐, 사이버 머니 등을 통한 가래까지 생기면서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기준설립과 공조가 필요하게 되었지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생긴 것이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라 불리는 자금세탁방지 금융 대책기구입니다. 1980년대 국제적 마약 거래와 이에 따른 국경 간 불법 자금의 이동 및 자금세탁이 문제화되면서 생긴 국제기구입니다. 이후 1989년 G7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독립적 기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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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2023년 4월 3일 대검 청사에서 

라자 쿠마 FATF 의장과 만난 이원석 검찰총장

출처-<대검찰청>

 

FATF는 권고사항이라고 불리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사법, 금융제도와 국제협력 강화에 대한 사안을 각 국가에 권고합니다. 이후 자금세탁방지 외에도 테러 자금조달 금지·가상자산 관련 국제기준·부패 척결 등 자금세탁 방지와 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9년에 정회원이 되었고 현재까지 세계 37개의 정회원 국가와 두 개의 국제기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밌는 건 FATF에서 발표하는 권고안은 법적 구속력이 원래 없지만 이를 지키지 않을 시 회원국을 통해 해당 권고안을 지키지 않은 국가와의 거래제한, 여타 제재 등을 통해 사실상 구속력을 발휘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FATF는 IS(‎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가 국제적 문제가 되었을 당시 IS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여 자금을 동결하도 했습니다. 또한 회원국과 회원국은 아니지만 FATF 스타일의 지역기구(아시아지역기구, 아프리카지역기구 등)간의 상호평가를 통해 권고안이 이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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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F 회원국과 관할 구역

출처-<링크>

 

FATF와 더불어 자금세탁방지에 기준을 제시하는 국제기구는 Egmont Group과 Wolfsberg Group이 있습니다. Egmont Group은 각국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을 설립하도록 하여 금융정보분석원들 간 국제적 공조를 통해 국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국도 2001년 금융정보분석원(KoFIU)이 설립되었고, 금융기관들이 제출한 의심 거래 보고 등을 분석하고자 법무부·관세청·한국은행 등의 전문 인력 등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Wolfsberg Group은 국제적인 은행들의 연합으로 은행이 준수해야 할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자금)세탁 예방 제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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