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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이 읽은 제주 이야기

 

책을 빨리 읽지 못한다. 진득하게 앉아 많은 양을 읽어 내는 재주도 없다. 어떤 양반처럼 ‘무학의 통찰’이라도 있으면 세상 이치가 그깟 글줄에 있느냐며 꺼드럭거리기라도 해볼 텐데 애당초 그런 건 없다. 느려도, 귀찮아도 자꾸 읽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보는 것이 무식한 꼰대로 전락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가장 손쉽고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안다. 여전히 힘들 뿐.

 

그런 내게도 하룻밤 사이 장편소설 한 편과 단편소설 한 편을 독파했던 경험이 있다. 신들린 듯 읽어나갔던 두 작품은 현기영 작가의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와 단편 “순이 삼촌(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 38: 제주 4·3이 부숴버린 한 여인의 인생-관련 기사 링크)”이다. 속독이 가능한 이들에게야 우스운 양이겠지만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데에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 나에게는 정말 예외적인 경우였다. 양이 적은 단편소설이나 만화책 정도를 제외하고 하루에 한 작품 이상을 읽은 적은 저 이후로 없다. 일주일에 한 작품을 읽은 사례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한 달 전쯤 사무실 동료들과 회식 중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에 뜬 죽돌의 이름을 보며 원고 청탁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한 번쯤은 안부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 이번엔 그냥 원고도 아닌 서평을 청탁했다. 광고도 뭣도 아니었다. 지나치기 아까운 좋은 책이 나왔는데 4.3을 맞아, 꼭 읽고 글을 써줬으면 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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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을 다룬 신간 〈4·3 기나긴 침묵 밖으로 19470301-10540921〉. 나의 윗세대만 해도 4·3을 직간접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4·3은 내게도 먼 사건이 아닐뿐더러 제주 출신으로서 4·3을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책을 받은 시점이 사무실 일에 개인적인 일들까지 몰렸던 기간이라 들춰볼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서평을 써야 한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쯤 캘린더를 보았고, 4·3이 머지않았음을 자각한 순간 헐레벌떡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3일간 하루 3시간씩 9시간여 만에 적지 않은 볼륨의 책을 모두 읽었다.

 

양과자 운동 : 4.3의 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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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양과자 반대시위>

 

‘양과자 반대 운동’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흐름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약 4천 톤의 과자에 대해 우익 진영이 모여 결성한 독촉국민회(대한 독립촉성국민회)에서도, 좌익 진영의 통일전선인 민전(민주주의 민족전선)에서도 강한 비판의 논조를 이어갔다. 미약하나마 좌우 합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식량 문제가 극심했던 제주에서 미군정이 대금 치를 길도 막연한 양과자를 들여와 배급하는 일은 청년 학생들에게 큰 반감을 심어주었다. 1947년 2월 10일에는 천여 명의 학생들이 관덕정 광장에서 양과자 배격 시위를 벌여 그중 일부가 군정중대 비행장 잔디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20여 일 뒤 열린 ‘제28주년 3·1절 제주도 기념대회’에서 청년 학생들이 선두에 선 것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양과자 반대 운동의 주역이었던 현정선 선생은 당시 운동이 다른 단체나 조직과 연계되지 않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었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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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1일, 28주년 3.1점 기념 행사를 구경하던 아이가 관덕정 부근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다쳤다. 경찰이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이를 습격으로 오인한 무장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발사하여 주민 6명이 사망했다. 4.3사건의 도화선이었다.

 

몇 년간 일상생활을 뿌리째 뒤흔들었던 코로나 사태를 두고 나의 할머니는 당신이 젊을 적 겪었던 ‘호열자(콜레라)’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 해방 직후 일본에 갔던 이들이 제주로 돌아오면서 인구가 폭증하였지만 일자리는 없고, 보리 작황은 최악의 흉작을 기록한 가운데 전염병인 호열자까지 창궐하여 제주도민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제28주년 3·1절 제주도 기념대회’에 제주 인구의 10%에 달하는 2만 5천 명에서 3만 명가량이 운집했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이 제주도민에게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4·3 기간 동안 딱 그만큼이 희생되었다. 일본으로 밀항한 수는 1만여 명에 달한다. 한 지역의 10%에 달하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3%에 달하는 인원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국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로 떠나갔다.

 

전쟁으로 가려놓은 학살

 

내가 유년기를 보냈던 한림에서는 1948년 11월 16일 9연대 군인들이 한림중학교 3학년 학생 4명을 폭도(무장대)와 연락을 취했다는 이유로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한 가운데 총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4·3 발발 초기 무장대 진압을 위해 파견된 국방경비대 김익렬 9연대장은 평화 협상으로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이승만 정부가 설치한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의 새로운 9연대장 송요찬은 10월 17일 해안선으로부터 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역에 대한 무허가 통행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총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17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송요찬 9연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대학살이 벌어졌다. 11월 16일 한림중학교 학생의 공개 총살은 대학살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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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20일 제주4·3사건 진압을 위해 출동했던 제9연대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이승만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은 이 책의 9장, ‘그날 그곳 · 1949년 1월 17일 북촌리’에서 다룬 참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북청년단(이하 ‘서청’) 회원 위주로 편성돼 ‘서북대대’로 불렸다는 2연대 3대대 중대 일부 병력이 함덕리로 가는 너븐숭이 부근에서 무장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주민들을 모아 270명을 집단 학살한다. 이 사건은 당시 연대장인지 대대장인지 불분명한 누군가의 사격 중지 명령이 없었다면 더욱 참혹한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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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서북대대’라고 불렸던 2연대 3대대의 서청 회원 출신 누군가일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볼 수는 있겠다. 소설 “순이삼촌”에서 평안도 출신이자 서청 회원이었으며 제주를 처가로 둔 고모부가 북촌리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조카의 말에

 

“기쎄, 조캐, 지나간 걸 개지구 자꾸 들춰내선 뭐하간? 전쟁이란 다 기런 거이 아니가서?”

 

느닷없이 30년 전 쓰던 평안도 사투리로 ‘뻘갱이’에 대한 분노를 늘어놓고, 큰아버지와 당숙들이 이를 못마땅하게 외면하는 장면은 1970년대 후반 여전했던 갈등의 골을 잘 보여준다.

 

제주 사람에게 4월은 몸에 박혀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에 이제는 제법 무덤덤해졌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게 먼저 솟구치던 청년 시절의 감정은 빛이 바래져 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 “이제사 말햄수다”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이 책을 읽으며 슬며시 올라왔다. 책에서 소개한 학살과 만행의 사례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것인 양 괴로움과 슬픔, 한탄이 얽혀 가며 올라왔다.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김복순, 김복남 남매의 어머니가 복남에게 생전의 마지막 주먹밥을 건네고, 아버지는 무명 두루마기를 벗어 복순에게 옷을 해 입으라고 주는 모습에서 이 억울하고, 참담하고,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참화의 직전에서도 제 새끼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애틋함이 전해지는 것이, 사실이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4·3이 그렇다. 사실이면서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이 책은 오랜 기간 기자이자 학자로서 4·3을 취재하고 기록해 온 흔적이 잘 녹아들어 있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어렵지 않게 읽히고,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은 솎아내되 4·3의 골자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충실하게 담겨 있다. 저자가 제주 출신이고 저자의 집안이 4·3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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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제주 4.3 평화기념관

 

그래서 그런지 비록 몸은 서울에 있지만 여전히 제주 사투리가 입안에 맴도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쩔 수 없는 제주 섬 놈임을 절감했다.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식개집(제사집)에서 4·3 이야기가 나올 때면 무거워지고 숙연해지던 그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현기영 선생의 소설 두 편을 하루 만에 읽은 것도 비슷한 배경과 감정에서였을 것이다. 책의 12장 ‘여성들’에서 참혹한 비극의 역사를 몸소 겪어야 했던 제주 여성들이 고통 속에서도 삶을 살고, 가족과 마을을 일궈 내게 한 말이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아진다)’라고 했다. 나도 어멍에게, 할망에게 종종 듣던 말이다. 어릴 적에는 동어반복처럼 들리던 저 말이 갈수록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 4·3이라는 극한의 고난과 처절한 파괴의 현장에 다시 길을 낸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을, 나는 이참에 되새겨 보려 한다.

 

 

관련 기사

 

4·3에 대해서 딴지일보에 두 차례 기고한 적이 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링크로 대신한다.

 

[추모]5.18 그리고 4.3: 우리는 그들의 피 위에 서 있다

 

제주 출신은 4·3에 대한 태생적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