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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넷플릭스>

 

나는 별다른 소속이 없는 빈민 운동가 출신의 길거리 목사다. 해당 연재 글은 넷플릭스에서 이슈화되었던 <나는 신이다>를 통해 삘을 받긴 했으나 특정 단체를 폭로하거나 특정 인물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님을 우선 밝힌다. 조금 더 이해(?)를 넓힌다는 관점 정도로 봐라봐주면 좋겠다.  

 

지난 첫 편(길거리 목사가 만난 사이비 1: JMS 수료자들과 만나며 느낀 것들-링크)에서는 JMS를 수료하고 지금은 탈출에 성공한 신도들의 후기와 한국 종교 사회에서 정명석 같은 인물이 주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오늘은 그들의 교리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한 마디로 무지의 행진이다.

 

'무지'의 사전적 정의는 '아는 것이 없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식하다고 말할 때, 고작 신문 몇 줄에서 얻은 지식으로 썰을 푸는 사람이 있고 감탄할 정도로 박학다식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무지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무지의 세계에서는 모를수록 더 고수가 된다. 무지한 사람의 언행을 '무지막지하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솔직히 행동보다 생각이 '무지막지'한 사람이 더 무섭다.

 

10년, 100년이 흘러도 새로운 정명석은 또다시 등장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 기반을 이루는 종교적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 체질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즉 '존재 모순'인 것이다.

 

자, 그럼 맛보기로 한 번 들어가 보자.  

 

하와의 타락

 

대체적으로 보자면 '그들'의 교리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까지 올라간다. 타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즉, 이브가 메뉴에 없는 과일을 아담에게 권해 타락이 시작되었다는 기독교 근본주의 해석이나 

 

루시퍼가 이브를 따먹어서 타락하게 됐다.”

 

라는 성적타락으로 해석하는 JMS는 성서에 나온 문자 한자 한자가 Fact(사실)라고 믿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게다.

 

여기서 등장하는 첫째 키워드가 선악과

 

성경을 글자 글대로 믿는다고 해도 세상에서 제일 큰 과일 가게에 가 아무리 안약을 넣고 보아도 ‘선악과’라는 과일은 없다. 그럼 뭐냐? 여기서부터 해석을 놓고 지랄이 풍년이다.

 

통일교를 중심한 신흥 종교에서는 창세기를 본격 포르노그라피 버전으로 전개한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3대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한 대목이 있다. 창세기를 경전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에덴동산의 타락을 성적모티브를 가지고 해석하는 일이 어찌 유독 조선땅에서만 일어났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선명이나 정명석이 성경을 가지고 요사를 떠는 것이 결코 독자브랜드일 리가 없다.

 

선악과를 성적코드로 해석하는 일은 혹할 일이긴 하다. 허나 여기에 기가 막힌 트릭이 있다. 타락이 ‘성적(Sex)’인 것이라면 구원 또한 ‘성적(Sex)’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JMS의 타락론에 따른 구원의 의미를 가지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메시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아무리 힘들고 고난이 따르더라도... 그러니까 정명석의 ‘Sex’는 선택사항이 아닌, 십자가의 고난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무종교인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어떻게 퉁쳐서 설득이 된다는 말이다(설마 이 대목에서 ‘아멘!’ 하는 사람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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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넷플릭스>

 

다음은 <창세기 3:22,23>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사탄은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할 뿐만아니라 오히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니, 하나님이 알고 금지명령을 내렸다고 압박한다.

 

여기서 야리꾸리한 것은 사탄은 금단의 열매를 시식한 결과,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할 것이라는 경고는 은폐하고 자신들이 기소하고 싶은 사실들만 물고 늘어지는 개검 마냥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만 공소장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정명석의 설교이다.

 

"천사장 사탄 루시퍼가 장성기에 있는 하와를 따먹기 전에 차라리 아담이 따먹는게 훨씬 난겨. 알겄어. 사탄이 먼저 따먹어서 죄가 오느니 차라리 아담이 먼저 따먹었으면 사탄의 세상이 되진 않았을 것 아니여. 결혼하기로 약속한 애인을 깡패가 따먹게 하느니 결혼 전에라도 애인이 따먹는게 난겨. 알겄어?. 그런데 아담이 병신같이 그걸 못하고 사탄 루시퍼에게 당한겨."

 

정명석은 타락론에서 하와가 미완성기 때, Sex를 해서 타락한 것이라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이전에 혼인신고는 했는지 모르지만 이미 사실혼 관계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25)

 

부부가 Sex를 안하면 뭐 할건가? 도대체 정명석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하는 걸까?

 

“원죄는 처음 죄일 것이고, 뱀의 꼬임은 사탄의 꼬임, 무화과로 앞을 가린 거 보니까 아하 성적 타락이구나.”

 

하는 무식이 풍년인 문자대로의 해석을 하면 누구나 정명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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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될 수 있다...?!?

출처 - <넷플릭스>

 

선택적 해석과 정당성

전문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여서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닌데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현상이 쉽게 나타나는 곳이 종교계이다. 예를 들어 종교계에서 ‘원죄’라는 개념은 전문용어에 속한다.

 

원래 저작권이 어거스틴에게 있는 ‘원죄’의 의미를 철학적 언어로 표현하면 ‘인간의 유한성’,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소외’, ‘악’,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궁극적인 죄’ 정도될 것이다. 따라서 그 ‘원죄’의 내용은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주 구체적으로 과일 하나 잘못 먹었다고 원죄가 생겼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일반적인 용어를 전문용어화 하여 자기들만의 은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좋은 예가 바로 이번에 신천지에서 사용해서 유명해진 ‘모략’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로마서3:7)

 

신천지는 이 구절을 가지고 신앙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그러나 바로 8절 후반부에서는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게 함정...!). 

 

참고로 신천지에서 사용하는 '모략전도'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에게 접근해 포교하는 방식. 위장 카페, 미술 치료, MBTI, 타로, 사주팔자 등을 이용한다. 신천지 신도임을 숨기고 일반 교회에 잠입해 오랜 시간 신뢰를 쌓는 경우도 있다. 보통 3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이토록 치밀하게 활동하는 이유는, 포교를 달성해 제사장(종말이 왔을 때, 구원받을 수 있는 14만 4천 명) 자격을 얻기 위해서다.

 

'맹신'이라는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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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예배 모습

출처 - <한겨레>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때 JMS에서 길을 찾았다고 믿었던, 열정을 가지고 모였던 인재들이다. 종교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삶의 가치를 온전하게 하늘의 가치에 두고 살았던 그들의 순수함은 절대로 폄하되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그래봤자 다 범죄단체!!" 라는 말을 듣겠지만 왜 그렇게 순수하고 똑똑한 이들조차 빠지는지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신흥종교에는 기성교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나름의 메카니즘이 있다. 그들은 길을 찾다가 샛길에 빠졌지만 그 길이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신흥종교를 깊이 경험했던 사람들은 종교적 판타지, 마치 그들만의 교리에 빠지고 조직에 얽혀, 마약을 한 것처럼 일상화된 황홀경을 경험하게 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신흥종교에는 '부분적이지만' 마약중독자처럼 삶을 포기 했던 이들에게 희망, 삶의 절제와 가치를 부여했던 기능도 있었다는 것이 미스터리한 부분으로 남는다는 생각이다.

 

글을 끝내면서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 있다. 19세기 독일 무신론의 역사를 다룬 '헤겔에서 니체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오랜 마을인 타렌트를 접령한 후에 병사들이 파비우스 장군에게 탈취한 신상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에게 노여워 하는 신들을 남겨두어라”고 했다.

 

한니발의 무지막지한 침공을 막아내어 ‘로마의 방패’라는 칭호를 얻었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지연전술’ 즉, ‘게김의 전략’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막시무스답게 ‘자유롭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허용하라’는 말이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어렵게 쓰느라고 힘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