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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송주홍은 노가다꾼이다. 지식인이 아니란 말씀. 유럽에서 시작한 노동조합 역사랄지 선진국 노동정책 같은 거, 모른다. 뿐더러, 대한민국 현안도 세세히 모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까지 현장 나가 종일 망치질해야 일당 받는 노가다꾼이다. 매일매일 뉴스 챙겨볼 체력도, 여유도 없다. 전 정권과 현 정권 노동정책 비교, 현 정권의 노동개악 분석, 이런 거 못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노가다꾼으로서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겪은 거, 그것만 조금 떠들 수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도, 완전한 집단도 없다. 공자, 예수도 허점은 있었을 거며, 세종대왕, 이순신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건설노조라고 왜 문제없을까. 내가 민주노총 건설노조 가입한 게 2018년 말이다. 겪어보니 여기도 다르지 않다. 수천수만 명이 모인 단체다. 완벽할 거라고 기대하는 게 판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기능이 더 많은 단체인 건 분명하다. 내 망치와 줄자를 걸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보완해나가면 될 일이다. “문제가 있으니 썩 꺼져.”라고 말하는 순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조폭 두목과 똘마니들을 소개합니다

 

철이 드나 보다. 제법 성실하게 살아가는 나를, 문득문득 발견한다. 뿌듯하다. 그뿐이랴. 예전엔 나만 잘났고, 나만 생각했다. 요즘은 생판 모르는 남에게 양보를 다 한다. 내가! 놀라운 발전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부모님께 용돈도 드린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나에게 조폭이란다. 학창 시절에도 주먹보단 ‘말빨’로 상대를 제압하는 쪽이었다. 말하자면 코피보단 귀에서 피가 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 물에 빠져도 ‘주댕이’만큼은 둥둥 떠오를 나한테 조폭이라니.

 

그래 까짓거, 우리 조직 한 번 소개나 해보자. 절 짓는 대목장 시다로 시작해 전국 팔도 방방곡곡 40년 가까이 떠돌며 망치질하다 이제 겨우 처가가 있는 대전에 정착한 정 팀장님이 우리 조폭 두목이다. 왕년에 청주에서 가구점 크게 하다 온라인 쇼핑몰 여파로 말아먹고, 야구선수인 중딩 아들 메이저리그 보내는 걸 목표로 성실히 살아가는 손 차장님이 부두목이다.

 

상고만 나와도 은행 취직하던 시절에 4년제 경제학과까지 졸업해놓고, 사촌 형 꾐에 넘어가 30년 넘게 땡볕에서 고생하는 기술반장님은 조폭 행동대장이다. 시장에서 악착같이 생선 팔아 두 자식 키워낸 기술반장의 형수님은 팔자에도 없는 ‘조폭 마누라’가 됐다.

 

시골에서 노모 모시며 소소하게 농사만 짓다가, 쉰 가까워 결혼하고 대출까지 받아 집 사는 바람에 뒤늦게 이 바닥 들어온 선규 형님, 부산에서 장사하다 코로나로 접고 어쩌다 대전까지 굴러와 여관방 전전하며 망치질하는 용순이 형님,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하다 때려 치고, 20대 내내 공돌이로 고생하다 서른 넘어 이 바닥 들어온 내 친구 민우, 1년 전 결혼해서 최근 아이까지 임신해 돈 열심히 벌어야 하는 창설이, 부여에서 올라와 카센터 전전하다 노가다판에서 적성 찾은 철훈이, 안 다녀본 공장 없고, 안 해본 노가다 없을 정도로 20대부터 부모님 부양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승원이까지. 모두 내가 속한 조폭의 똘마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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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노가다꾼이 노조에 가입하는 이유

 

어떤가. 원희룡 장관 말마따나 우리가, “무법지대에 있는 조폭” 혹은 “집단적 위력을 내세워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처럼 보이나.

 

아무리 그래도 원희룡 장관이 ‘폭력’ 운운하는 건 코미디다. 사법연수원 시절, 노상 방뇨 및 주민 폭행, 파출소 기물 파손 및 경찰관 폭행 등 ‘공무집행방해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 조사되어 일찌감치 사회면 장식했던 양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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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둘에 노가다 잡부로 시작해 올해 서른일곱이 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노가다밥 먹었다. 웬만큼 겪었다. 노가다꾼들, 다 똑같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망치질뿐이요, 취미라고는 낚시가 전부인 사람들이다. 처자식 밥 굶을까, ‘쎄 빠지게’ 망치질하며 살아온 인생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조폭 된 거다.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게, 누가 가입하래? 그냥 살던 대로 망치질이나 열심히 하면서 살 일이지. 그러니까 조폭 소리 듣지. 바보들.”

 

그러게나 말이다. 뭐 한다고 건설노조에 가입해 이 수모 당하나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왜 가입했느냐고?

 

1. 위장 취업한 누군가의 꾐에 넘어가서

 

2. 운동권 출신으로서 식지 않은 투쟁력 때문에

 

3. 빨갱이

 

4. 김일성 추종자

 

다 틀렸다. 노가다판을 굳이 왼쪽 오른쪽으로 구분하자면 오른쪽에 가깝다. 구성원 전부가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인 우리 팀만 봐도 지난 대선에서 절반은 윤석열 찍었다. 남은 사람의 절반이 이재명이나 심상정, 김재연, 심지어 허경영 등을 찍었다. 그 나머지는 투표 안 했다. 여전히 박근혜 얘기 나오면 불쌍하다고 눈물짓는 형님이 서넛이다. 집회 가도 “이놈의 빨갱이들 왜 이렇게 집회를 자주 해~~!!”라고 투정 부리는 형님이 너덧이다.

 

비단, 우리 팀뿐일까. 건설노조 조합원 다수가 그렇다. 하위계층일수록 보수적 성향 띤다는 거야 여러 전문가 의견과 통계자료가 널렸으니 더 말할 것 없고, 늙을수록 1번 찍는다는 건 태극기부대만 봐도 알 수 있다.

 

통계청 따르면 2021년 건설업의 50대 이상은 51.8%다. 노가다판 절반 이상이 ‘노인’이다. 참고로 농림어업이 49.3%다. 시골에서 노인 찾는 것보다 노가다판에서 노인 찾는 게 빠르다. 그런 노가다꾼들이 무슨 대단한 리버럴과 혁명을 꿈꾸며 건설노조에 가입했겠는가.

 

그럼 건설노조에 들어간 진짜 이유가 뭐냐고? 간단하다. 쉽게 말해, 오야지 밑에서 일하기 X 같아서 가입했다. 그게 전부다.

 

노가다판에 의리가 어딨어

 

노가다판엔 예로부터 전해지는 말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거다.

 

“노가다판에 의리가 어딨어~!”

 

함께 몸 쓰고 땀 흘리는 ‘싸나이’끼리 의리가 없다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싶을 텐데 정말로 그렇다. 어느 집단에 가든 통성명 시작으로 나이, 결혼 유무, 사는 동네, 심지어 집안의 숟가락과 칫솔 개수까지 묻는 게 한국인 DNA이다. 노가다판은 그런 거 없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뿐더러, 좀처럼 정을 안 준다. 이름조차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김 씨, 박 씨다.

 

왜? 노가다꾼은 기본적으로 소속감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속감 느낄 ‘회사’가 없다. 노가다꾼은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오야지 밑에서, ‘그냥’ 일용직으로 일한다. 그러니 오늘까지 피 나눈 형제처럼 지내다가도 내일부터 일 없으면 남이다. 다른 현장으로 미련 없이 떠난다. 평생 스승으로 모실 것처럼 오야지에 아부하다가 내일 당장 오야지가 일 못 따오면 다른 오야지에 전화한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뭉친다.

 

이게 노가다판이다. 내일 당장 내가 떠나게 될지, 네가 떠나게 될지 모른다. 통성명이고 뭐고 필요 없다. 각자 맡은 일 하고 일당 받으면 그만이다. 회사원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할 감성이지만, 이 동네는 그렇게 굴러간다. 그래서 의리가 없다. 슬픈 얘기다.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정식적인 채용 절차 같은 거 없다. 고로, 근로계약서 없다. 근로계약서 없으니 노동자로서 받을 수 있는 권리와 혜택이 아무것도 없다. 막말로 오야지가 일당 안 줘도 방법 없다. 일하다 다쳐도 하소연할 데 없다. 나름대로 ‘빡세게’ 일했는데, 더 ‘빡세게’ 일 안 했다고 쌍욕 하면서 20만 원 주기로 했던 일당 18만 원 줘도? 할 말 없다. 오야지가 점심에 불러서 갔더니만 지금 당장 짐 싸서 다른 현장 알아보라고 하면? 짐 싸야 한다.

 

법으로 보장된 휴게시간(근로기준법 제4장 근로 시간과 휴식 참고)은 넣어두고, 참 시간에 5분쯤 앉아 있으면 득달같이 쫓아와 빨리빨리 일하라고 소리 지르는 거? 흙바닥에 주저앉아 컵라면 먹어야 하는 거? 화장실이 아예 없어 구석에다 오줌 쌀 수밖에 없는 거? 그런 건 애교 수준이다.

 

상습적인 임금체불과 쓰메끼리(임금 유보, 노가다판은 기본 보름에서, 많게는 두 달까지 월급을 깔고 준다. 3월 1일부터 일 시작했으면 4월 1일에 첫 월급 받는 게 아니라 최소 4월 15일, 늦으면 5월 1일에 받기도 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부당 해고와 고용불안, 안전사고와 부실 공사, 노동자의 기본권과 노동환경 문제까지. 오야지 밑에서 일하면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 나야 목수 일 시작할 때부터 건설노조에 몸담았던 터라 그런 경험 많지 않지만, 오야지 밑에서 일했던 형님들 얘기 들어오면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난다.

 

월급 두어 달 밀리는 건 기본이요, 얘들 학원비 내야 해서 다만 한 달 치라도 먼저 달라고 했다가 기분 나쁘게 했다고 잘리는 건 덤이었단다. 겨울에 일이 없어 아는 오야지한테 일거리라도 구걸하려면 치킨이라도 한 마리 튀겨서 ‘찾아뵈어야’ 했고, 해가 떨어지고 날이 어두워져도 공정 바쁘다는 핑계로 조명까지 켜놓고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단다. 물론, 그런다고 돈 더 주는 거 아니고. 일하다 자잘하게 다치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에 실금이 가도 다쳤다면 잘릴까 봐 진통제 먹어가며 일했던 날은 또 얼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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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꼴들 보기 싫어서 건설노조 들어온 거다. 그래도 건설노조 소속으로 일하면 오야지한테 돈 떼먹힐 일 없고, 오늘 갑자기 현장에서 쫓겨날 일 없고, 일하다 다쳐도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해서. 한마디로 인간답게 일하고, 일한 만큼 일당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래서 들어온 것뿐이다.

 

까놓고 한 번 물어보자. 우리가 무슨 대단한 걸 요구하는 건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