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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소중하다!

2011-10-1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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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군 추천0 비추천0
2011.10.12.수요일
정치불패 거북군
 
 


 

0. 나는 '진빠'다. 진중권의 책은 거의 다 소장하고 있다. 생업에 쫓겨 진중권의 행적을 샅샅이 훑지는 못하지만, 그의 행적이 언론에 보도될 때 마다 거의 대부분 통쾌함을 느껴왔다. 나를 깔테면 까보라는, 이 사회의 대부분 지식인에게서 찾기 거의 불가능한 그 호방한 결기를 난 사랑한다.

나는 진중권이 이 사회, 특히 진보진영에 진실로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빈정거리는거, 진심으로 아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자.


1. 곽노현 사건에 대한 진중권의 견해와, 사실관계 파악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10월 11일 오마이 기사에 진중권 견해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까지 올라왔다. 상당히 논리 정연하며 명료하니 궁금하면 직접들 보시라. 동의하는 논리를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원문보기 클릭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8449). 

 

 

 

2. 단, 곽노현 교육감이 사퇴해야 한다는 진중권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즉, 곽노현이 도덕적, 윤리적인 잘못을 했고,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면직되기 전까지는 사퇴하지 않는것이 맞다고 본다.


3. 많은 진보진영 사람들이 이걸 못한다.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왜? '논리적으로'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당하는게 맞거든. 이건, 논리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들 일상에서 참인 것이 맞다. 연역적으로나 귀납적으로나 참이니, '논객'을 자처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개선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진보진영-들 대부분이 부정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그러니 암만 봐도 이상한 논리들을 들이대가며 곽노현을 옹호한다. 곽노현이 잘못한 걸 인정해 버리면, 곽노현에게 사퇴를 요구하거나 처벌하라고 해야 하거든. 진중권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논박해 줬지만, 그렇게까지 들이 팔 필요 없이 시민들의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성聖' 곽노현이냐.(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만.)

3-1. 심지어는, 진중권이 '선동' 했다고 말하는 나꼼수에서 까지도, 법적으로 유죄판결나면 처벌 당하는게 맞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 물론 방송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게 당연하긴 하겠지만. 하지만, 아마도 총수 김어준은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씨바. 그깟 2억정도 주고받은걸로 지롤도 가지가지 한다.'고.



4. 근육질 거구의 깡패가 피묻은 회칼을 들고 내게 다가온다. 이미 내 친구들 다수가 깡패에 의해 죽거나 다쳤다. 내 주머니 안에는 독침을 쏠 수 있는 총이 있다. 이걸 쏘면, 깡패는 죽는다. 하지만, 생명은 소중하며, 살인하면 안된다는 것은 참인 명제이므로 나는 이걸로 깡패를 쏘지 않겠다... 응?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진중권의 주장이나, 비슷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보기엔 결국 이거다. 지금 당장 우리가 그들에 의해 도륙당하든 말든, 돈 없는 애들이 밥을 굶든 말든, 나님들은 '고결하게'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하겠다 이거다. 가카를 비롯한 우리의 적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작자들인지는 별 관심이 없다. 

4-1. 그런 소리도 잘 한다. '결국 역사가 우리를 평가할거다.', '현실과 타협해서는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없다.' 등등. 진중권을 비롯한 똘똘이들은 역사공부도 많이 해서, 꼬장꼬장하게 이런 소리만 늘어놓다가 말라 죽거나 잊혀진 딸깍발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알지 싶다.


5. 하지만 씨바, 생각해봐라. 교육감 그거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다. 불법이든 탈법이든, 비윤리든 뭐든 하여간 곽노현이 그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껏 그가 구상해 왔던, 내가 지지하는 정책들 실천에 옮기고 있다. 하루라도 더 그 자리 붙잡고 있으면, 뭐라도 하나 더 할 수 있다. 도의적 책임 그거 하나 위해 이 막강한 권력을 내다 던진다면, 곽노현은 지지자들에게 죄 짓는거다.


6.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을 아무런 정치적 고려나 독자(혹은 비판 대상)에 대한 배려 없이 지르는 진중권의 호방함 때문에, 진중권의 주장은 이런 '헛똑똑이'들의 한계를 아주 제대로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반감마저 슬며시 느끼게 해 준다. 

['어차피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논'객이 할 일은 없는 셈.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정희준)가 되는 곳에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선동은 몇 마디로 되지만, 그것을 논박하는 데에는 몇 페이지가 필요하다. 이 긴 글의 스크롤 압박을 인내할 대중이 얼마나 될까? 친애하는 대중이 선동가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다만, 아무리 비루하고 허접해도 내 영혼은 최소한 그런 짓에 동참하지 않을 정도만큼은 고결하다.]
 

 

 

 

 

이 문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들? 난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과없이 지르는 이 호방함에 통쾌함을 느꼈고, 다음으로는 졸라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이 짧은 단락에서 읽히는 진중권의 생각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너희들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 자들이다. 즉, 나만 논리적이다. 특히 정희준 너 무척 '비'논리적이야.
: 맞다. 진중권의 논리가 가장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 니입으로 이야기하는건 좀 그렇지... 

 

 

2) 나를 깐 너희들은 선동가지만, 난 논리적인 논객이다.
 

3) 너희가 별다른 고민이나 생각 없이 내지른 몇마디 선동을, 난 이렇게나 논리정연하게 논박해줬다. 친절하지?

 

 

4) 대중은 보통 이렇게 길고 섬세한 논리는 싫어해. 짧고 강렬한 선동을 좋아하지.

 

: '친애하는' 따위의 빈정거림이라도 좀 자제해 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5) 너희는 비루하고 허접하지만, 난 고결하다. 

: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다. 진중권이 이야기하고 싶었던건 결국 이거다!

 

 

 

7. 글을 이쯤 써 놓으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재수없다고 느낄게 분명하다. 자기 글을 읽는 사람의 감정이나 글의 설득력 따위를 눈꼽만큼이라도 고려했다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글이다. 나 혼자 도덕적으로 앞서나가는 천 걸음이, 천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글인거다. 특히나 글의 마지막 문장은 진보 논객 자아도취의 결정판이다.

 

 

 

8. 바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진중권은 소중하다. 우선 그는 우리에게 정교하고 명료한 논리를 제공한다. 화살의 방향이 가끔은 우리를 향하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이번과 같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니까 상관없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하멜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현실감각이 결여되어 있는 진보 '논객'들을 홀려서 저 하늘 너머 구름 위 어딘가로 데려가버린다. 소소한 것이라도 한걸음씩이나마 나아지기를 바라는 평범한 장삼이사들로부터 확실하게 분리되도록. 

 

그런 후에 그는 자신의 논리적 신성성을 이번 글에서처럼 스스로 찬란하게 드러냄으로써, 그의 논리에 동조한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과 같은 '자뻑형 재수없음'의 가시면류관을 씌워 버리는 것이다. 이런 진중권 선생님을, 평범한 시민이고자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9. 진중권의 사랑스러움은, 그가 키워이자 독설가인 지금의 모습일때만 허락된다. 정치적 감각을 익혀 능글능글해진 진중권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이 글만 해도, 진중권이 '진중'하고 점잖게 곽노현을 비판하면서 현실도 적절하게 고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겠는가. 안그래도 논리적으로 이렇게 훌륭한데. 논리적 완결성과 설득력간의 심오한 관계를, 그가 '깨닫는' 날이 오지 않기를 한사람의 진빠로서 바라마지 않는다.

 

 

뱀발 : 진빠로서, 이 글에 진중권 본인이나 그를 옹위하는 친위대쯤 되는 분들이 논리적 반박을 하는 사태를 극도로 걱정하고 있다. 그들과 논리로 대결하여 내가 뭐라도 건질 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털끝만틈도, 개미 눈물만큼도 없다. 그러니 살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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