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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0.월요일

리턴 오브 사마리탄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염화칼륨을 주사하여 사망케 만들었다."

 

만약이 이런 하나의 '사실'(fact)만 놓고 본다면 그 의사는 의사 자격 박탈은 물론, 1급 살인죄를 선고받고 20년 징역형을 피할 수 없다. 


범죄 구성 이전에 그는 의사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이미 '도덕적인'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만사가 그렇듯이, 하나의 피상적인 'fact'는 그 뒤에 감춰진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닥터 케보키언은 130명이 넘는 환자를 염화칼륨을 주사하는 방법으로 '살해(!)'했고, 그 혐의로 6차례나 기소되었지만 전부 배심원 무죄 판결로 실형을 살지는 않았다(그 뒤 1998년 환자의 자살을 돕는 비디오를 공개한 후 미시건주에서 20년형을 선고 받고 8년 실형 후 가석방).

 

물론 당연하게도 존엄사나 자살방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피상적인 하나의 팩트가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곽노현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억원을 주었다"

 

이 또한 똑같은 상황이다. 저 하나의 팩트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진중권은 "돈을 줬으니, 그것도 2억이나...그건 끝난 얘기"라고 했다.

 

끝나기는 무엇이 끝나는가? 진중권의 곽교육감에 대한 '논리적(자기 주장에 의하면)'비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해관계가 걸린 상대방끼리 돈 거래는 절대 안된다"라는 명제를 절대적인 '참'으로 인정하고 시작한다.

 

과연 그런가?

 

"의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환자를 의도적으로 사망케하면 안된다"는 조건도 이미 '절대 명제'가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는 안락사,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의사가 이를 돕는 것은 합법적이다. 당연히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마찬가지로, "선거로 이해관계가 걸린 두사람 사이에 돈거래는 절대 안된다 "는 것은 절대 '참'인 명제가 아니다.

 

그런데 진중권의 논설은 대전제로써, 이 명제를 '참'으로 깔고 시작한다. 그러니 그 뒤의 논설에 아무리 나름대로 '논리적인 심혈'을 기울인들, 제대로 된 정답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교수에게 절대로 돈을 주면 안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곽교육감이 선거 후에 만나서 밥먹고 헤어지는데 박교수가 버스비가 없어서 곽교육감이 대신 버스카드를 두번 찍었다고 현행법 위반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게 도덕적으로 책임져야할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곽교육감이 박명기 교수 아들에게 책 사보라고 돈 만원을 주면 그게 문제가 되는가?

 

마찬가지로, 곽교육감이 임기를 끝낸 후 박명기 교수가 큰 병이 걸려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수술을 하지 못핼 때 수술비를 내 주면 그게 형법상 문제가 되는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말하자면, 진중권이 금과옥조로 '참'이라고 믿어야 되는 명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을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이 아니라,

 

"선거와 연관된 돈 거래는 절대로 안되는 것" 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곽교육감이 진짜로 '선거'와 관련된 거래관계로 돈을 주었느냐로 명제가 바뀌는 것이며,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의 사퇴를 주장하거나 권고하기 위해서는 그 돈거래에서 "선거와 연관된 무엇, 증거든 심증이든"을 찾아냈어야 하는 것인데, 현재 증거는 아무 것도 없고, 심증은 그 두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진중권이 멋대로 판정 내릴 일은 아닌 것이다.

 

진중권과 본지 기자 신짱. 이너뷰 <아이돌 중권을 만나다> 中


그 돈을 준 사람이 '댓가성과 관련이 없이 주었다'는데, 또 받은 사람이 '댓가성과 관련이 없었다'는데 왜 진중권이 그 댓가성에 대한 판정을 대신 내린단 말인가? "에이, 그 뭐 뻔한 걸. 꼭 증거가 있어야 되나? 돈거래면 다 그거지" 라는 것은 진중권 혼자의 생각일 뿐. 그런 식이면 사람을 130명이나 죽인 닥터 케보키언은 옛날에 사형을 당했던가 감옥에 갔을 것이다.

 

진중권은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2억원을 건넸다고 밝히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떤 명목으로도 그런 돈은 절대로 줘서는 안 되며, 이미 돈을 건넨 이상 곽 교육감은
마땅히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
라고 10월 4일 한겨레 신문 칼럼을 통해서 밝힌바 있다.

 

그리고 이 논리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중권 개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의 곽교육감 사퇴에 대한 자기 '개인'의 의견은 그와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들의 논리를 포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학식 높음을 인정하고, 그의 독설에 쾌감을 느끼며,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 그와 같은 입장을 가진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곽교육감에 대한 판단은 너무 서둘렀고, 서툴렀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날카로운 풍자를 기대하겠지만, 이번 곽교육감에 대한 판단은 '절대적 옳음' 혹은 '충분히 객관적 전제'에서 출발한 논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지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