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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11. 화요일


아하스


 





 


모든 명제는 예외가 존재한다. 여기서 메타적으로 들어가면 '모든 명제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한마디로 어떤 경우에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명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선언이 자기부정으로 이뤄지는 명제가 있다면 거기엔 오류가 있다는 말이다. 결국 어떤 명제는 예외가 존재하나 그렇지 않은 명제도 있다.

곽교육감을 엄호하기 위해 나오는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거의 유비추론이다. 물론 유비추론이라고 해서 그것이 다 틀렸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 비유가 제 주장을 증명하고자 하는 대상의 구조와 유사할수록 진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유는 결국 은유일 뿐.


곽교육감이 2억원을 건넨 사실과 관련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피해갈 수 없다. '선거에서 후보가 다른 후보에게 사퇴를 대가로 금품이나 직위를 제공하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다.' 다른 경우로 대체가 불가능한 이 고유한 경우를 어떻게 변형하든, 선거라는 민주주의 핵심절차에 중대한 결격사유가 발생했다는 것에는 의견을 달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외없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거다.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을. 그게 아군이어도.


배고파서 빵을 훔친 행위라 할지라도 절도죄는 성립한다.


 


모르고 수입된 물건의 매매사실을 잘못 신고했어도 관세포탈죄는 성립한다.


 


국회의사당 의원모니터에 찬반 표기를 급해서 누군가 대신 눌렀다면 법적효력을 상실한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어떤 행위를 침해했는가 여부를 두고 심사하는 것이지, 침해행위를 일으킨 당사자의 마음이 선한의도였는지 악한의도였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어떤 행위을 일으킨 동기가 선한가 악한가 하는 것은 증명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믿음의 대상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비켜나가려니 이런 무리수를 둔다.



말하자면, 진중권이 금과옥조로 '참'이라고 믿어야 되는 명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을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와 연관된 돈 거래는 절대로 안되는 것" 이라는 말이다.


 







이건 진중권만 믿는 명제가 아니라 이미 선거 전에 모두가 공유한 명제다. 그걸 전제하지 않고서 어떻게 선거후보매수죄라는 법률제정이 가능한가 이 말이다. 두 번 말해 손이 귀찮지만, 선거와 연관된 돈 거래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곽노현과 박명기가 어떤 사이인가. 후보단일화를 실행한 당사자가 아닌가. 법이 관심있고 관심있어야 하는 관계는 곽노현과 박명기가 서로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 무슨학교 동기동창인지, 몇 촌 관계인지, 박명기가 얼마나 곤궁한지, 곽노현이 얼마나 도덕적 삶을 살아왔는지 따위가 아니다.

정의를 목표하는 도덕 또한 관심있고 관심있어야 하는 관계는 모두가 마땅히 공유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한계 내에 들어와야 하기에 바로 후보단일화 및 사퇴 여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보단일화를 실행했다고 하는 팩트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적합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공정택이 다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문제에 걸려 지금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면, 그래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억지로 넓혀서 모두가 입을 다물 것인가?

도덕적인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비도덕적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형법이 있다면 그건 원칙이 될 수 있는가? 정당한 법인가?

염화칼슘으로 살인을 행한 의사의 의도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병원 침대의 회전률을 따져본 것일 수도 있다.

제발 깨어나자. 곽노현이 사퇴한다고 그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오, 교육개혁의 영구적 좌절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곽노현의 사퇴에 대하여 조중동이 뭐라고 떠들든, 여전히 그의 진실은 유효하며 선의 또한 그러하다. 곽노현과 검찰 간의 재판싸움이 3년을 넘겨 모두가 잊는다해도, 지금 횡행하는 고의적 착각마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P.S 질문을 바꿔보자. 박명기의 곤궁한 돈문제가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 왜 하필 곽노현을 통하여 해결되어야 했을까.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자신을 속일 수 있다고 남들도 속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