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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4. 금요일

키노


 


글을 쓰기 전에 전제할 것이 있다.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에 대해 ‘충격!’ ‘분노!’따위의 말을 하지 말 것.


 



 


나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민노당 선관위원이었다.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례대표후보 선출 투표 개표 과정에서 투표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경기도의 모 지구당에서는 특정 정파의 후보에게 우체국에서 소인 찍듯 기표한 투표용지가 접히지도 않은채 수십 장이 펼쳐져 묶인 채로 투표함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민노당에서 당비대납, 위장전입과 같은 일들은 너무도 흔한 일이었고 특정 정파에 비판적인 인물은 당직선거에서 단독으로 출마해도 무더기 반대표를 조직해서 떨어뜨리는 일도 허다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번에 확인된 통진당 당권파들의 부정선거가 ‘선거관리가 부실해서 생긴 해프닝’쯤으로 여기고 계신 분들이 있으신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는 이미 진보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파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파구성원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저들’은 수십 년 간을 그렇게 해 왔다. 그 과정에서 당원들과 민주노총조합원들을 위시로 한 대중조직 구성원들은 충실하게 거수기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늘 여러분이 목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정치가 곪아 썩어가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내부자정기능을 작동하지 못하도록 끊임 없이 방해하고 거세해 온 자민통의 기만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늘상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닥치고 통합! 반한나라당으로 대동단결!” 구호에 동의하고 손들어 준 여러분의 공범자적 역할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관악을 경선과정에서 퇴장당한 이정희에게 ‘잔다르크의 월계관’을 씌워 준 이들은 누구인가. 자칭 진보언론들의 최근 들어 벌이는 비판과 훈계질도 역겹긴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정치현실에서 진보가 도덕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대중들은 살얼음처럼 놓인 자신의 지지 선택을 아주 손쉽게 뒤집기 마련이다.


 


진보는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패배할 수 있지만, 권력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과정을 조작하거나 자정능력을 상실해 버리는 순간 더이상 진보로서의 존재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여러분은 단 하나라도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선거과정이었다!” 라고 느낄 만한 기억이 있으신가!


 


자기자랑 같지만 진보신당의 당원인 개인으로서 1.14%의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비정규직여성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를 만나고 그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만나고 그들과 격하게 포옹하는 숱한 장면들을 보면서 그를 비례대표 1번으로 세웠던 당이 자랑스러웠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힘든 여건에서도 그 선거과정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오늘 확인하는 가짜진보정치의 아수라장에서, 그가 원내에 진입해서 ‘진짜진보’가 하는 진보정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국민들에게 선보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더욱 안타깝다.


 


총선 이후 진보신당의 정당등록이 취소되자 통진당은 기다렸다는 듯 당명을 ‘진보당’으로 바꾸었다. 정치는 잔인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선거기간 내내 ‘진보신당 죽이기’에 앞장섰던 통진당의 패악질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사진-진보신당


 


오늘 ‘가짜’진보는 죽었다.


 


아니 가짜진보를 죽여야 진짜진보를 소생시킬 수 있고 올 연말 대선에서 또다시 이명박 시즌2이거나 김대중, 노무현 시즌2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지금은 너나없이 통진당 까고 있는 제 책임 면피하기 운동에 한술 보탤 시점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하는 것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진보정치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 수십 년 간 그런 식으로 해먹어 왔지만 늘 도마뱀 꼬리 자르듯, “늘상 시간이 우리 편이네!” 하며 버텨 온 ‘가짜 진보!’ ‘썩은 진보!’의 퇴장을 선언할 때다.


 


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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