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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4. 금요일

김기창


 


 



 


 


10.26선관위 접속장애 사건에 대하여 오픈웹에 게시된 30여 개의 글 중, 하나라도 읽으신 분이 우리 국민 중 과연 몇 %일까요? 아마 0.000001%?


 


대담하게 거사를 감행한 자들의 계산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디도스로 뻗었다”는 스토리를 대대적으로 뿌려대고, “범인도 잡았다”면서 전과자 몇 명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다음, 내막을 밝혀내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숨겨버리면 그대로 묻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관위가 예측 못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 오레건 대학교가 전세계 모든 라우터들의 up/down 상황을 실시간으로 기록하여 저장해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http://archive.routeviews.org/bgpdata/2011.10/UPDATES/ 이 자료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그날 아침의 접속장애가 디도스로 인하여 생긴 것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오픈웹이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만, 기술적으로 복잡해서 과연 어느만큼 전달되었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런 기술적 데이터는 아예 살펴보지도 않고 추리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그것이 논리적이라 믿는 “신기한” 분들도 계시고요)


 



<6:00-8:30 사이 선관위 라우터 Down 현황 - 위 도표 클릭>


 


많은 분들은 “라우터(router)”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인터넷”이 무엇인가요? “inter”-”net”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망과 망들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망이라는 뜻입니다. Network of networks 이지요. 하나의 망에는 여러대의 컴퓨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반드시 다른 망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라우터(트래픽 처리만을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컴퓨터)입니다. 자기 망에서 다른 망으로 나가는 트래픽과 다른 망에서 자기 망으로 오는 트래픽이 모두 이 라우터를 거쳐서 오고 갑니다.


 


트래픽이 망 내부에서 망 외부로 들어오고 나가려면 “트래픽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특히 선관위는 두 개의 망(KT망, LG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통정리 규칙이 더욱 복잡합니다. “라우터 설정”이라는 것이 바로 트래픽 교통정리 규칙입니다.


 


이 교통정리 규칙이 이상하게 바뀌면, 트래픽이 오고가지 못하게 됩니다. 사거리에 있는 신호등을 이상하게 조작해 버리면, 차들이 서로 충돌하고 꽉 막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선관위 K사무관은 아침 내내 선관위 라우터에 붙어 앉아서 트래픽 교통정리 규칙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했습니다. 그 당시 선관위 서버실에는 K사무관 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고, 이들은 이 상황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우터에서 이런 조작을 하면, 그런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모두 기록됩니다. 이것이 “라우터 로그(log)”입니다. 구린 짓을 한 적이 없다면, 라우터 로그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우터 로그에는 어떠한 개인정보나 민감한 정보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26일 아침 선관위 “라우터 설정”이 이리저리 변경되었을 뿐 아니라, 그런 조작을 한 흔적을 감추기 위하여 “라우터 로그”가 변조되었다는 사실이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관위가 현재 내놓고 있는 라우터 로그에 기록된 라우터 up/down 상황과 미국 오레건 대학교가 당시 실시간으로 저장해 둔 up/down 상황을 비교해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관위측 라우터와 연결된 LG망, KT망 쪽 라우터의 로그와 대조해 봐도 됩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라우터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p.s.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요, 선관위 네트워크 전문가이신 K사무관께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그날 아침 7:10에 라우터 설정을 어떻게 바꾸셨길래, 라우터가 계속 죽는 문제가 감쪽같이 해결되었나요? (물론, 7:30에 또다시 설정을 도로 바꾸었으니까 라우터가 다시 계속 죽었지만, 왜 그랬는지를 제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지요)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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