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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6. 목요일

Matti


 


- 한총련


 


* 체계


한총련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줄임말입니다. 한총련은 90년대 NL 학생운동 그 자체입니다. 학생회에 매몰된 학생운동가들에게 총학, 단과대 학생회의 연합체인 한총련은 당연히 시작이자 끝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96935"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지금은 폐쇄된 한총련 홈페이지 http://hcy.jinbo.net/"][/caption]


 


한총련의 체계는 한총련 의장을 중심으로 과학생회까지 수직으로 뻗어있는 구조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총련-지역총련-지구총련-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과학생회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총련은 주요 도시 및 도 단위의 총련 단위입니다. 지구총련은 그 밑에서 쪼개지는 단위입니다. 홍익대를 예로 들면, 홍익대의 체계는 이렇습니다. 한총련-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부총련(서울서부지구총학생회연합)-홍익대총학생회로 이어집니다. 각 단위마다 의장이 있고 집행부가 있으며 대의원체계가 존재합니다.


 


이름은 총학생회연합이지만 의결기구는 각 대학 총학생회장과 단과대학 학생회장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도 총학생회장과 같은 1표를 가집니다. 그래서 한총련대의원이라고 하면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과 단과대학생회장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자격은 당연직이라고 해서,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총학생회장이나 단과대학생회장이 되면 정치성향에 관계 없이 자동적으로 한총련 대의원이 됩니다. 굉장히 문제가 많은 규정입니다.


 


한총련을 잡게 되면 엄청난 이점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과 조직을 장악하게 됩니다. 전국대학의 총학생회는 정치노선과 관계 없이 한총련 분담금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거대 규모의 정치집회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생회까지 수직으로 뻗어있는 구조이기에 한총련 중집(중앙집행부)의 지침이 말단까지 빛의 속도로 전파가 됩니다. 그래서 학생운동 자체의 영향력은 줄었지만 예전과 비슷한 숫자의 동원이 가능합니다. 일방적 동원에 유리하고 운동가 하나하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체계는 필연적인 문제점을 내포합니다. 통제는 용이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진보진영에서 내부 문제가 외부로 터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왜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고 외부로 발설하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입니다. 불만이 있으면 조직체계를 통해 제기하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과-단과대-총학-지구-지역-한총련까지 무수히 많은 단계들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커트 당합니다. 내부에서 절차를 밟고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은 그냥 묵살하겠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한총련이라는 체계는 조직동원에는 유리하지만 기층 단위에서의 연대는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개개인들이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들을 서로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체계는 윗선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들 간의 연대를 통한 반란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의식은 소수의 생각일 뿐입니다. NL 운동가들에게 한총련은 절대적 대상입니다. 흔한 표현으로 '중앙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워낙에 방대한 조직이기 때문에 한총련을 벗어나서 무언가를 해본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대안도 없습니다. 그래도 투쟁의 현장에는 언제나 한총련 깃발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사 뭔가 불만이 있더라도 한총련을 버린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습니다.


 



 


한총련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투쟁지침들이 떨어집니다. 그것들을 소화하기도 벅찹니다. 운동가들에게 토론이란 상부의 지침들을 어떻게 하면 잘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지,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아닙니다. 거대한 조직에서 내려오는 지침들은 운동가 개개인의 소박한 고민들을 지워버립니다. 어쨌든 내려오는 투쟁지침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필요해보이는 것들이기는 합니다. 모두가 시급해보이고 유의미한 과제들입니다. 그래서 조직은 올바른 지도를 하고 있고 다만 내가 그걸 소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한총련이란 조직에서 1, 2년을 운동하다 보면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자세가 사라져버립니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위에서 지시만 내려오기를 기다립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날려도 이에 대해 일단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하다 못해 스스로 대응논리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섣불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중에 나오는 조직의 방침과 충돌하게 된다면 나도 곤란해지고, 조직에도 해를 끼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안에 대해 침묵으로 외면하다가 며칠 뒤 상층에서 관련 문건이 내려오면 그제서야 그 문건의 논리대로 반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NL과 관련한 문제가 터지면 늘 며칠 뒤에야 반박이 시작되고 다들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단어와 문장들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 의장님


한총련에서는 '의장님'에 대해 엄청난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의장님'이라는 호칭은 물론이며 출범식 때는 엄청난 규모의 '옹립식'을 거행합니다. 운동가들이 '의장님'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처음에는 선배들의 열광적인 '의장님' 사랑에 거부감을 갖는 초보운동가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출범식에서의 장엄한 옹립식부터 해서, 끝없이 강조되는 의장님과 지도부에 대한 찬양을 접하다 보면 어느샌가 거부감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한총련이라는 거대 조직의 이런저런 성과들을 보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의장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투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한총련 차원에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과학생회장에게까지도 '회장님'이라는 존칭과 함께 평소에도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NL에서 '직선(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표)'을 대하는 과도한 태도는 내부에 있을 때도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수평적이어야 할 운동가 간의 관계는 이런 일들을 통해 어그러지게 됩니다.


 



 


이런 과도한 예의는 언어의 제한을 가져오고, 사고의 제한으로 이어집니다. 동지에 대한 예의라는 미명 하에 하고픈 말을 못 하게 만듭니다. 존중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대표자 스스로도 내부회의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끌고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인이 과도하게 받은 게 있으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는 법입니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틀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틀에 능숙하고 미리 결론을 준비해온 사람들에게 유리한 구조가 됩니다. 언어의 제한은 당연하게도 사고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그것만이 열광을 가능케 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정권의 탄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를 믿고 그를 중심으로 한 단결만이 최선의 길이라는 비장한 인식도 한 몫을 차지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는 전쟁 중이니 그에 걸맞는 군대가 필요합니다. 군대에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뛰어난 지휘관과 그에 따르는 일사불란한 군사조직입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NL 운동가들이 생각하는 한총련도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한총련 의장은 군대 지휘관의 역할에 더불어 사상의 지도자 역할도 함께 겸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장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주체사상으로 들어가 결국 수령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데는 이런 조직 문화와 현실 인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 문제점 1


한총련의 문제점은 학생운동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학생운동이 곧 학생회가 되는 구조다 보니, 운동가들은 공식적이어야 할 기구를 비공식적기구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 통합진보당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학우들에게 한총련은 본인들이 뽑은 학생회의 연합체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학우들의 의견들도 반영되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NL 운동가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총련은 운동 조직이고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생각은 굉장히 나이브한 태도라고 비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책임과 의사결정의 분리라는 NL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한총련 의장은 '상징성'이 큰 존재지만 말 그대로 '상징성'에 머무릅니다. 실제 모든 결정들은 그 주변의 중집이나 때로는 그것도 아닌 '비선' 조직에서 이뤄집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체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건 총학생회 단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총련 의장이 잡혀가든, 총학생회장이 잡혀가든, 모든 것은 흔들림 없이 멀쩡하게 돌아갑니다.


 


이건 학우들이 던진 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총학생회장이든, 단과대 학생회장이든 학우들이 투표를 할 때는 그 사람을 보고 표를 던집니다.. 그리고 선출된 대표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기를 바랍니다. 이게 상식입니다. 그렇지만 한총련의 운영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우들이 상식적인 기준에서 한총련을 비판하면 정세의 엄혹함이라던가, 수배 중인 학생회장들의 불행한 처지와 같은 다른 세계의 대답들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학우들의 손으로 뽑힌 학생회장이 수배를 당하고 감옥데 들어가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집니다. 97년 이후로는 하도 많은 학생회장들이 잡혀가서 만성화가 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생회라는 조직에 대한 관점 차이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찬반의식과는 별개로 우리 학생회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됩니다.


 


* 문제점 2


모든 것은 위에서 결정되어 밑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언제나 그 지침들을 가지고 '토론'을 벌입니다. 다른 정파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NL에서는 아무리 봐도 형식적인 과정들을 반드시 거칩니다. 토론을 했고, 모두가 동의했으니 각자 거기에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합니다. 경험 하나를 기술합니다.


 


운동가들은 겨울방학이 되면 수련회를 갑니다. 이 때 하게 되는 게 한총련 총노선 토론입니다. 이때도 역시 총노선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방식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먼저 사회자를 맡은 운동가가 칠판이나 벽에 붙은 대자보 용지에 올해 한총련 총노선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씁니다. 그리고 토론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럼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뒤 이 시기에 참 적절한 노선이다라던가, 거기에 덧붙여 이런 면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듣고 난 뒤에 학교 책임자 선배가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지금 나온 노선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라고 정리를 합니다.


 


4학년 때였습니다. 그 날도 한총련 총노선 토론이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날은 뭔가 잘못 먹었던 듯 싶습니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토론 초장에 손을 들고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토론을 해는데 만약 지금 나온 이 총노선이 아니라고 결론이 난다면 한총련 차원으로 들고 가 바꿀 수 있는 거냐고 말이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토론'이라는 말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상황은 저로서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사회자 선배는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이어붙였지만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제가 '토론'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주위 동료들도 손을 들고 발언을 하며 제가 잘못하고 있다며 지적을 했습니다. 그 전부터 뭔가 마음에 균열이 가고는 있었지만, 그 날이 저에게는 결정적 하루가 되었습니다.


 


* 문제점 3


한총련은 구조상 좌파들이 결코 장악할 수 없습니다. 매년 좌파에서도 후보가 나오지만 표를 까면 9:1 정도의 압도적 차이로 NL계열이 당선됩니다. 여기까지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소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좌파도 대학사회에서 유의미한 운동세력인데 한총련에서는 티끌만큼의 존재감도 없습니다.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인데 운동가들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표대결을 해서 이겼으니 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권이나 여당을 비판할 때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건 사상적으로도 정당화가 됩니다. 다른 정파들을 배제하는 것은 권력욕이나 독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운동의 단일대오 형성을 위한 지극히 바람직한 행위입니다.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면 그건 나이브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상임으로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선의의 폭력인 법입니다.


 


한총련 단위까지 올라가게 되면 과학생회 같은, 밑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딴 세상의 일이 됩니다. 입으로는 '대중'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떨어져버린 운동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해 밑으로 내려꽂습니다. 아래에서 보면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지시들만 쏟아집니다. 이걸 정말 학우들에게 이야기를 하라는 건지 싶은 내용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면서 학우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다가가라는 조언도 깨알처럼 함께 내려옵니다. 결국에는 한총련 중앙은 중앙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따로 놀게 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지시들은 단위 책임자들이 그냥 씹어버립니다.


 



 


제가 처음 단책(단과대 책임자)이 되었을 때 직속 선배가 해 준 조언이 '후배들을 위한 핵우산이 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지시들은 제 선에서 알아서 무시하라는 겁니다. 참 고마운 조언이었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제가 너무 심했던 건지 상층에서도 얼마 뒤부터는 저를 거치지 않고 후배들에게 직접 통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총학생회선거


 



 


늦가을에 치러지는 총학생회 선거는 각 정파들이 1년 동안 쌓아온 대중사업의 성과가 표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학생회 선거가 정파들에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앞부분에서 설명을 했으므로 여기서는 총학 선거가 어떻게 치뤄지고,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에 대해 기술하겠습니다.


 


* 결의


정파의 운동가들 중에 누가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갈 것인지는 조직이 결정합니다. 리더쉽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가 조직원들을 규합하고, 나름의 고민들을 풀어놓는 총학생회 선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중성, 사상적 투철함, 외모, 언변, 정세 등 여러 요소가 고려됩니다. 주로 해당 연도 단과대 학생회장이나 낙선자 등 4학년들이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소속 단과대입니다. 사범대나 공대 등 규모가 큰 단과대에서 후보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거기서 몰표가 쏟아지고 표계산에 유리해집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 총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학생회장 출마는 운동가들에게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총학을 잡으면 1년 뒤에 총학생회장이 차를 뽑는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왠만한 대학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특히 총학생회장 출마의 경우 인생이 완전히 바뀐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집회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 확률이 높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 학교 운동의 대표라는 총학생회장을 맡고 나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운동을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운동가라면 누구나 나중에 발을 뺄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게 현실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97년 이석 씨 치사사건 이후에는 한총련 자체가 이적단체로 규정됩니다. 그래서 한총련 대의원인 단과대학생회장들도 당선과 동시에 수배가 떨어집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학번들이라면 교내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수배자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별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당선된 뒤 경찰서에 한총련 탈퇴서를 내지 않으면 수배가 떨어지고, 잡히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제의가 들어오면 일단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자신 하나라도 어쨌든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보통 학생회장 선거 출마를 결의시킬 때는 MT를 가는 등 분위기를 잡습니다. 가을이 되고 이런저런 선배들이 MT 제의를 하면 당사자들도 감이 옵니다. "왔구나." 그렇지만 안 갈 수도 없으니 일단 갑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많습니다. 끝까지 출마를 거부하는 운동가 앞에서 상 한가운데 칼을 박고 을러대기도 하고 무릎 꿇고 애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학생회장 출마란 큰 짐을 후보 하나에게만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출마를 강권하는 선배나 동기들은 최소한 그와 함께 하는 1년 동안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을 함께 결의합니다. 결국에는 조직의 힘으로 결의시키고 돌파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예 2학기가 되면 휴학을 하고 잠적하는 운동가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두고 비난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잠수하는 것 역시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 준비


총학생회 선거와 단과대학생회 선거는 같이 치뤄집니다. 규모가 있는 정파들은 여력이 있는 한 모든 곳에 후보를 냅니다. 그리고 슬로건이나 선본명을 통일시킵니다. 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입니다. 총학 후보와 단과대 후보 모두 같은 계열에 투표를 하도록 전략을 짭니다. 그렇지만 이게 꼭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침몰하기도 합니다.


 


선거는 곧 돈입니다. 학생들의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대형 광고판이나 통일된 복장, 리플렛 등 모두가 돈입니다. 학생들이 부담하기에는 꽤 많은 돈입니다. 이것 역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학생회비를 끌어다 쓰지는 않습니다. 각 후보들과 선거운동원들이 갹출해서 부담합니다. 또한 운동을 했던 선배들로부터 후원을 받습니다. 이걸 반진담, 반농담으로 '보투(보급투쟁)'라고 합니다. 선배들의 지원은 꽤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조직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규모가 작은 조직에서도 어쨌든 다른 선본만큼은 해야 합니다. 그럼 해답은 하나뿐입니다. 빚입니다. 이 빚 때문에 심적고통을 받는 운동가들이 적지 않게 생깁니다. 이건 결국 누군가의 개인 부담으로 처리되어 떠버리게 됩니다. 조직 차원에서 해결해달라 말하고 싶어도 순간순간의 일정에 치이며 돈 문제에 허덕이는 후배들에게 차마 빚 갚아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직장에 들어가든, 알바를 하든 개인적으로 해결을 합니다.


 


* 고민 1


선거 운동에 들어서면 운동가들은 몇 가지 고민들에 부딪치게 됩니다.


 


먼저 그동안 쌓았던 인맥의 활용입니다. 아무리 목적의식 없이 인간관계를 쌓았다 한들 선거 때가 되면 그걸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 오다 불쑥 선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민망한 일입니다. 마치 이때를 위해 인간관계를 맺어온 것은 아닌가 오해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실제로 지지 관련 부탁을 하면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싸늘하게 비웃는 학우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처음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밤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취급을 받아가며 운동을 해야 하나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처들에 대해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결국 운동가들 사이에서 풀어내야 하지만 운동가의 올바른 자세와 같은 모범답안 말고는 위로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눈 딱 감고 사람들을 만나갑니다. 여린 마음들이 어느 한 쪽에서부터 차갑게 식어가고 무감각해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철면피가 되어가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 고민 2


학생회 선거가 매년 이어질수록, 학우들의 무관심과 냉소도 더해갑니다. 간단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결국 당선이 되면 본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거에 임할 때만큼은 운동가들 모두가 다들 진심을 가집니다. 학우들 뜻대로 학생회를 운영하리라 생각합니다. 진심을 갖지 않고서 그렇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올해만큼은 당선이 된다면 새로운 차원의 학생회를 만들어가리라 다짐을 합니다. 선거운동원들 사이의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당선만 되고 나면 이 모든 진심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고 강경한 입장을 가진 선배들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잡아가고, 1년치 일정이 나오고, 다들 바쁘게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돌아보면 다들 마음만 있지 고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정들과 눈 앞에 놓인 과제들에만 급급하며 1년을 보내고, 선거 때가 되면 다시 반성의 마음을 갖고 임합니다. 학우들의 싸늘함 역시 반복되고 커져만 갑니다.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상황은 점차 나빠져만 갑니다. 머리는 잘 돌아가지 않고, 답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부에서 결단을 내려주고 혁신해주기를 바라는 관성만이 존재합니다. 어쨌든 지도부만 믿고 더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할 뿐입니다.


 


* 비권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점차 비운동권 후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총학생회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때라 노골적으로 반운동권을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고 센스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는 마냥 반대하고 공격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동의하는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인정하면 지는 거니까요.


 


비권이 총학을 잡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일을 잘 못해서 학생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운동권을 비판하고 학내 복지 등을 주장하며 당선이 되었지만 정작 복지 공약조차도 지키지 못합니다. 운동권 총학보다도 학우들을 위한 사업에 소홀합니다. 비운동권 총학생회는 대개 1학기 중간고사가 되면 퍼지기 시작합니다. 다들 학생이기에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전후해 2, 3주는 총학생회가 마비가 되고, 한 번 풀어진 긴장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중간고사 이후에 벌어지는 축제까지 어찌어찌 치루고 나면 평범한 학생들로 이뤄진 비권 총학은 1년이 끝나버립니다. 총학 선거 때 야심차게 내세운 복지공약들을 챙길 여력은 집행부 누구에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비권의 무능을 탓하기 전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역시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총학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들이 집중되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걸 소화할 수 있는 집단은 오직 조직화된 운동권뿐입니다. 운동권조차도 총학 일은 버겁기 때문에 집행부 중 상당수가 휴학을 하면서 꼴아박아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들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운동권만이 아닌 비권들도 능히 꾸려갈 수 있는 학생회 시스템이 되어야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학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학생운동가들에게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학내에서 운동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안티조선 운동이 학우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진다고 하면, 그걸 기어이 본인들의 영향력 하에 두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운동들은 올바른 지도 하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미,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틀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 운동이라면 그건 운동대오를 흐트러뜨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NL 운동이 온갖 분야에 퍼져 있는 데에는 그 분야 자체에 대한 순수한 신념과 분노가 가장 기본이겠지만, 전체적 틀에서 부문운동들이 움직이게끔 하는 의도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모 이런 게 아니라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야권의 여러 정치세력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연대를 해야 한다는 사고구조와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게 이론으로 정립되어 있고, 신념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게 좀 다를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축제, 학내 행사 등도 본인들이 주도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결국 대중사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갖 일들이 모두 학생회 사업으로 들어옵니다. 시험기간 때에는 야식 판매조차도 운동가들이 맡아서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게 학생회 시스템의 하나로 편입됩니다. 새롭게 들어오는 비권 총학에서는 동의 여부를 떠나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한 사업들입니다.


 


비권 총학은 무엇보다 아마추어입니다. 세부적인 규정들이나 학생회 시스템에 무지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 운동권들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입니다. 운동권들은 학생회 시행규칙 등 세부적인 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빠삭합니다. 그래서 회의 진행 규정 중 지엽적인 부분을 문제 삼아 비권 총학을 흔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하는 측에서는 억울합니다. 그냥 상식대로 진행해서 처리했을 뿐인데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절차적 하자를 지적 받고 죽일 놈이 됩니다. 이걸 몇 번 당하게 되면 애초에 운동권에 적대적이지 않았던 비권들도 학을 떼게 됩니다. 물론 가끔씩은 운동권 머리 위에서 노는 인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자보를 비롯한 여론주도 능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비난여론을 뒤집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권들이 당선 뒤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운동권은 정치투쟁에 있어 프로입니다. 세부규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서 상대 선본들의 작은 잘못들을 집어내서 경고를 먹입니다. 그래서 선관위에서의 회의 분위기는 살벌합니다. 때로는 선관위 구성에 대한 의문들이 꼬리를 뭅니다. 어느 선관위원이 어떤 쪽 선본과 친하고 그쪽에 유리한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소문이 돌고, 지나고 나면 슬프게도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각 선본장들은 악역을 맡습니다. 상대를 고발하고, 작은 실수를 용납치 않으며 때로는 후보자격 박탈도 주도합니다. 선거규정의 해석을 놓고 밤을 지새는 회의 끝에 합의점에 다다랐어도 밖에 나가 전화 한 통을 하고 들어오면 판을 뒤집기가 일쑤입니다. 운동권 간에는 현장에서의 타협이나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회의에 들어올 때 이미 정파 지도부에서 정해놓은 결정들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오직 관철뿐입니다. 사실 악역을 맡은 운동가도 괴롭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본인에게 재량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동권은 회의시간이 깁니다. 뻔한 목표를 뻔하지 않게 포장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거를 한 번 치루고 나면 이 사람들은 상대정파에게 영원한 원수가 됩니다. 정파가 다르다고 언제나 으르렁거리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어쨌든 운동하는 동지들이기에 술도 마시고, 친분관계도 유지합니다. 그렇지만 선거 때 직접 칼을 들이댔던 인사들은 감정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얼굴가죽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대 정파의 그런 시선들을 모르지 않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심성이 진짜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죄의식 없이 잘 살아갑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들도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되지만, 가해자들도 자신들이 행한 짓들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용서를 구할 데도 없어집니다. 적을 만들고 산다는 것은 본인의 업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도 인생의 온갖 적들을 만들어가는 행위입니다. 진심과는 관계 없이 누군가들에게는 분노할 만한 내용들이니까요.


 



 


 


M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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