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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수생각

2012-07-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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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7. 27. 금요일


너클볼러


 


1.


사실 생각은 아래의 사진 몇장으로부터 시작됐다.


 



 


7월 20일. 콜로라도 오로라시의 한 극장에서 다크나이트 라이즈 상영 중에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12명이 목숨을 잃고, 59명이 다쳤다. 재앙이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팬들이 가장 기다렸던 작품이었고, 기대에 걸맞은 결과물로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던 차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사건 직후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화관은 집과 같은 소중한 곳이라는 내 생각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 비극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뒤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 그리고 사망자 추모식 장소에서 팬들과 파파라치들에 찍힌 몇 장의 사진이 포함된 기사가 denverpost.com에 개제된다. 주인공은 바로 크리스천 베일과 그의 아내였다.


 


제작사의 말처럼 크리스천 베일과 아내의 개인적인 방문이었다. 조용히 찾아가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 일과 관련해 크리스천 베일은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접한 이들의 생각은 대부분 이러했다.


 



누군가는 크리스천 베일을 진짜 배트맨이라고도 했다


 


나는 크리스천 베일의 행동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했을 뿐'이라는 그저 평범한 당위만이 느껴졌다. 그 외에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위의 답글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그 때쯤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이름 석자가 있었다. 나쁜 일은 하지 않을 것만 같은 친구이자, 영희의 영원한 남자 친구. 철수, 바로 안철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철수 생각'을 좀 했다.


 


 


2.


사실 난 안철수를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고, 그가 나온 프로그램 중 '무릎 팍 도사''힐링 캠프'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나마 힐링 캠프는 다 보지도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오늘날의 안철수를 있게 한 백신 프로그램 V3도 쓰지 않는다. 알에서 막 약이 나오는 그걸 쓴다. 1-2년 사이 가장 주목 받는 유력인사였으나 오히려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려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사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그가 한때 잘나가는 CEO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CEO, 그러니까 소위 '사장'이라는 직업 군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속해있는 기업(회사)의 사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눈치, 강요, 권위 뭐 이런 것들을 존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게 나만 그런 건지 우리 함께 생각을 좀 해보자. 주변에 자기 회사 사장 좋아 죽겠다는 사람 본 적 있는가? 난 없다. '별 관심 없다'는 50%, '좀 싫다'가 25%, '존나 싫다'가 20%, '좋다'는 5%정도 될 것 같다. 아마 '별 관심 없다' 군도 술 한잔 하면서 살짝 구슬려보면 '좀 싫다' 거나 '존나 싫다'가 태반일거다. 아무튼 난 싫다. 전전 회사의 사장(전전 사장 이야기 '사장학개론' 링크)도 그랬고 전 회사의 사장도 그랬다.


 


전 회사 사장이 내건 슬로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뻔하디 뻔한 '고객 만족'이 아니고 '직원 만족'이었다. 사실 '직원 만족'은 구글의 기업이념을 이루는 핵심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모토를 전 회사 사장은 입에 달고 다녔다. 솔직히 난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7년간을 일한 나의 퇴사 이유는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겠다'였다. 함께 일하는 팀원 중 누군가는 떠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회사와 사장을 믿고 열심히 해보자던 니가 먼저 튀는 게 어딨냐?'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 씨발 미안하다.'


 


안철수의 좋디 좋은 얼굴에서 내가 아는 사장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사장들은 모두 안철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힘들어도 잘해봅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대부분 임원을 타고, 팀장을 타고 내려와 '죽어도 끝내라'로 내 앞에 도착한다. 생각해 봐라. 안철수가 임원들에게 그 특유에 착한 표정을 하고 앉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끝내야죠'라고 말한다고... 이후의 벌어지는 일들은 독자덜의 생각에 맡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기업이라는 조직에 관계되어 있지 않으면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사장도 사실 퇴사하고 나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회사 안에서 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실제로 회사 밖의 누군가는 사장을 '선비'로 비유하기도 했다. 난 문득 우리 눈에 비친 안출수의 이미지가 바로 이거 일수도 않나 싶었다. 철저하게 무엇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은 '개인 안철수' 말이다.


 


어쨌든 (내가 아는)사장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리고 직접 모시지는 않았지만 잘 아는 사장님 한 분 계시다. 이상하게 그분은 좋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바로 이.명.박. 그분이 그렇다. 청와대가 아니라 회사다. 장관이 아니고 부하직원 혹은 따까리다. 안 들어도, 안 봐도 잘 굴러간다는 걸, 나 먹고 사는 데 별 탈 없다는 걸, 탈이 나도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몸으로 체득하는 순간. 위대한 '사장'은 탄생한다. 결제 서류에도 언제든 지울 수 있도록 연필로 사인을 했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오는 위대한 사장님. 우린 뭐 그런 이명박 사장님을 모셔왔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언급하기도 싫다.


 


'철수 생각'을 시작하고 난 뒤 돌아가는 형국을 보아하니,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힐난하거나 경계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의 거취와 상관없이 환호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사장'으로서 어떤 사람일지 경험해보지 못해 모르겠다. 전해 들은 바로는 그가 만든 회사도 빡세기로는 유명하다고만 알고 있다. 회사가 빡세다고 해서 비난할 이유는 없는 것이니깐.


 


계속되는 '철수 생각' 중에 꼴렸던 건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의 태도였다. 내 눈에 보이는 그의 태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필요한 것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차분히 고민하고 있다는 딱 그 정도였다. 안철수는 보수가 총 집결하여 지지를 선언한 박근혜를 앞설 수 있는 대중적 지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지지가 확인되고, 권력의 냄새가 풍기고, 사람들이 들러붙고, 그 권력과 지지가 피부로 와 닿아 아드레날린이 존나 분비되는 순간에도 그는 똑같은 표정, 똑같은 태도를 하고 있었다.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음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새누리당 의원 하나는 '어린 왕자의 얼굴을 한 기회주의자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뭐 기회주의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기분 나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안철수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 꿈?


 


대선이 눈앞에 서서히 다가오면서 여야를 대표하는 대선 주자들은 경쟁하듯 출정을 선포하고 슬로건을 뽑아 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군사 쿠데타에 대해 당연한 선택이라 귀결해버린 장한 딸 박근혜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내 꿈? 아니 너 꿈? 아니 박정희의 꿈? 내 꿈이 뭔지는 들어보지도 않으면서 꿈을 이뤄주겠단다. 고객 게시판이 Q&A가 아닌 A&Q인 꼴이다. 그래. 황당하긴 해도 신선하다.


 


하지만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도 멀게만 느껴지고,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는 것 같긴 한데, 그 역시 별 감흥이 없다. 그러니 오히려 대중들은 그 흔한 슬로건 하나 없는 안철수에 환호한다. 쇼 프로에 등장한 안철수는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지럽게 펼쳐 있던 책상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책을 출간했다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할 수 있을지 없을 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 다음날 우연히 만난 선배의 한 손엔 안철수의 책이 들려 있었다. '출판사 직원들이 다 비상이래. 주문이 폭주 해서'라며 묻지도 않은 말에 셀프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안철수의 태도는 일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대중들의 환호는 점점 더 큰 파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치적이지 않은 이가 정치적이지 않은 태도로, 조직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보다 앞선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떡 줄 철수는 아직 생각 중인데 대중들이 집단적으로 그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꼴이 벌어진 것이니 말이다 .


 


나는 정치라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 한번 맛을 보면 빠져 나올 수 없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시에 그 맛은 대부분 '마약'처럼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다들 그 지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십 수년 전에 선배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결국 정치권력, 곧 '당'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당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났다. 이석기와 김재연이라는 슈퍼스타가 등장했고, 세상을 바꾸자는 진보적 포부는 정치와 권력을 맛본 다른 넘들과 다를 게 없다는 촌스럽고 진부한 패배로 귀결되었다. 정치와 권력이 마약임이 확실한 이유다. 동시에 안철수에게 관심이 이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명박의 5년이 실패라 보지 않는다. 실수고 실패라면 사장이라는 자리에서 권력을 맛본 이명박에게 나라를 맡긴 것이다. 하고 싶은 건 하면 되고, 해서 문제가 된 건, 실무자 몇 명 보내버리고 격노하면 된다. 그냥 5년은 그래왔을 뿐이다. 오히려 실패는 뭔가를 반드시 바꾸고 개혁해주길 원했던, 그 기대를 담아 나라를 맡겼던 참여정부의 5년이라는 게 맞을 거다.


 


안철수도 사장이었다. 그리고 국가라는 조직의 어떤 수장이 될지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가장 감이 안 오는 이력의 소유자기이기도 하다. 기회주의자라고도 하고, 정치와 권력 앞에 별반 다를 바 없는 강남출신의 성공한 CEO일 뿐이라고 하기도 한다. 의심이 가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철수라는 카드는 매력적이다. 게다가 그 카드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다. 안철수라는 카드의 매력은 이미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확인했다.


 


박원순시장이 뭔가 대단한 걸 하고 있나. 아니다. 박원순시장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합리적 권력'이다.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이 맡겨놓은 권력을 합리적으로 행사되고 있다는 증명을 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 권력의 행사'가 감동적일 만큼 우리 사회는 여전히 후진거다. 박원순시장 덕분에 참여정부를 통해 호되게 통감했던 '누구 하나 바뀐다고 뭐가 되냐'는 패배감에서 이제 조금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노무현이 당선되던 그때 등장했던 정몽준과의 단일화라는 카드가 얼마나 재미없었나. 그건 그냥 권력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카드였을 뿐이다. 결과는 당선이었지만 과정은 '쉣'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주어진 안철수라는 카드는 다르다.


 


 



고개 숙여 사과하면 될 일인가


 


 


3.


자 이제부터 슬슬 확인해 보자. 안철수가 기회주의자인지, 진짜 어린 왕자인지, 별다를 바 없는 CEO출신 대권주자일지, 뭔가 다른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안철수 그대로인지 말이다. 당장 출마를 선언하던 아님 막판에 선언하던 그건 그의 몫으로 놔두자. 영양가 없는 선택을 할 정도의 바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니 말이다. 안철수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들어보자. 기존의 정치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그에게 기대했던 것들을 다른 대선주자들에게도 던져보자. 안철수를 통한 그 과정으로 인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권력부터 잡고 보려는 결과의 맹신으로 인해 내용이 담보되는 과정의 중요성을 놓쳤던 경험을 이미 우린 뼈저리게 하지 않았던가.


 


난 이번 대선이 지난 대선과는 다르게 흥미진진해 질 거라는 데 오백원을 건다. 보수는 이미 고전적인 원톱 시스템으로 채비한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생각과 요구를 담아 월패스, 스루패스, 센터링 등을 해줄 안철수라는 플레이메이커가 있다. 골은 그가 직접 넣을 수도, 다른 이가 받아 넣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안철수란 존재는 곧 잘만하면 '뻥축구'를 탈피할 기회라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관전포인트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눈 부릅뜨고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지켜보는 '지구력'이 되겠다.


 


안철수가 보여줄 태도가 그가 말했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의 결과라면 나는 그의 당선이고 뭐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라는 카드를 들고 판돈을 전부 털어 넣더라도 레이스를 함 해보고 싶다. 미국인들이 크리스천 베일에 환호했던 바로 그러한 태도. 그 태도에 변함이 없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젠가 벌어질 안철수와 누군가의 의미 있고 흥미진진한 경쟁을 졸라, 기꺼이 기대해볼 생각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뜨거운 여름임은 확실하다.


 


 


 


추신.1)


마지막으로 여든, 야든 안철수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 질투하는 넘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당연 그 관심의 상당수는 '니덜이 싫은 탓'이라는 것이다. 니덜이 하는 꼬라지가 싫으면 싫을 수록 안철수에 대한 관심은 비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지랄 하는 모습이 안스러울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철수는 바로 니덜이 만든 '어린 왕자'임을 잊지 덜 마시라.


 


추신.2)


진짜 힐링이 필요한 건 우리다. 우리.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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