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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광수생각

201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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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3. 29. 금요일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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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이 대학 때, 뭐가 그리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았는지 수업에 안 들어가고 방황하기 일쑤였다. 1학년 1학기만 잘 다녔지 이후부터는 학교까지 가서 낮부터 술을 먹거나 교정에 앉아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공상하는 따위로 소일했다. 왜 그랬는지 나름의 내면적 이유들은 있지만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는 않도록 하자. 확실한 것은 우원은 수업 안 듣고 시험도 빼먹는 매우 안 좋은 학생이었다는 거고, 결국 자퇴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 대학 생활에 한 가지 내세울 점은 있다. 4년간 한번도 대리출석을 한 적이 없었다. 내 머리 속에서 그런 짓은 해도 중고교, 어린애 때 끝내야 하는 거였다.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머 혹자는 수업을 하도 안 가서 결국 짤리다시피 한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고 할 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자랑스러운 건 아니고 결국 우원은 서른 넘어 영국까지 가서야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되지만, 기실 이 두 가지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수업에 안 들어가고 성적이 안 나오는 건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다. 그래서 나쁜 성적과 중퇴라는 형식으로 그 책임을 지는 거다. 하지만 대출이나 컨닝 등을 해서 부당한 방법으로 좋은 성적 받고 졸업한다면 그건 사회적 새치기다. 정직하게 학교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정직하려던 학생들마저 지만 손해 볼 수 없으니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리도록 암암리에 강요한다. 머 어쩌다 한번이라면 젊은 치기로 넘길 수도 있지만 이게 이미 습관화되고 시스템화 되다시피 한 게 8말 9초의 우리 대학이었다.

 

 

허나 수업 안 들어온다고 우원을 비난하던 넘뇬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 했을 때 그걸 납득하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대출 좀 하는 거에 대한 죄의식을 드러내는 경우도 없었고 그저 불성실한 학생인 우원이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웃을 뿐이었다. 머 거기에 대고 굳이 진지하게 항의하기도 그렇고 해서 나도 같이 웃고 말았다.

 

 

하지만 말이다. 우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관점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원은 대학이라는 곳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의 억압과 주입식 수업 등은 진정한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가기 위한 관문일 뿐이고, 대학에 와서는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학문과 이성을 진지하게 추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간 대학의 현실은 내 그런 기대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교수들의 암기식 수업은 고딩때나 별 다를 게 없었고, 학생들은 거기에 습관적인 대출과 컨닝, 족보로 맞서고 있었다. 대학 때 내 방황이 그런 모습에 대한 실망감에 전적으로 기인했다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일부분은 영향을 받기도 했던 거다.

 

 

진짜 마법을 가르치는 호그와츠를 꿈꿨는데 막상 간 곳은 눈속임 기술 자격증이나 따려는 학원 같았다고나 할까. 그게 그냥 울 나라의 ‘클라스’였던 거다.

 

 

이거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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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가 책을 강매했다고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첨엔 아이고 저 양반 또 사고 치네 했는데 내용을 보니 마냥 그런 게 아니다. 그 교재라는 게 두 권 합쳐 봐야 9천원 + 만 3천 8백원이니 2만 3천원이 안 된다. 차 마시고 밥 먹으면 웬만한 학생들 하루 이틀이면 쓰는 돈이다.

 

 

이걸 500권을 판다 한들 그가 버는 인세는 10% 생각했을 때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거기에 13800원짜리 책은 7천원짜리 E북으로 사도 된다고 했으니 결국 그가 이 ‘강매’로 버는 돈은 채 100만원이 안됐을 거다. 정년을 보장받은 노교수가 한 학기 백만원 인세를 벌기 위해 책을 강매했다는 생각은 무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년 수강생 600명 중에 교재를 산 학생은 50명밖에 안됐단다. 그렇다고 매번 어디서 구해오는 것도 아니어서 – 연대 도서관에는 해당 교재가 3권 뿐 – 수업 들어가면 책을 펴 놓은 학생이 없었단다. 그런 꼴을 보다 못해 이런 방법을 택했다는 건데, 그랬더니 이제는 강매한다고 비윤리적인 교수로 매도를 한다는 거다.

 

 

머 솔직히 자기 책을 사라고 한 부분이 그런 의심과 비판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있고, 영수증을 붙이라는 건 좀 거친 방법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일의 앞뒤를 고려해 보면 마 교수가 천박한 책 장사꾼으로 매도 당해도 되는 일까지는 분명히 아니고, 대학생쯤 되면 각종 정황들을 통해 상황의 본질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책 팔아 푼돈 벌려는 게 아니라 공부를 시키려는 의도였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왜?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런 부분에 에너지를 쓸 의지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우원 때는 체면치레로라도 학식과 지성 운운하는 개념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대학은 노골적으로 지식을 쌓고 지성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무슨 과목이 되었던 학점을 잘 받아서 졸업 때 높은 평점을 받는 것, 그래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뿐이니 말이다.

 

 

초중고부터 그 목표를 향해 병적으로 내 몰리고 초조함에 젖어 살아온 이 친구들에게 만만하던 노교수가 갑자기 제동을 걸고 들어온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아 지가 뭔데, 씨바 스펙 쌓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책 사라고 지랄이야' 다. 돈이 없어 못사는 건 물론 아니다. 그저 교재를 살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거다. 학문적인 관심도, 뭘 배워 보겠다는 생각도 없다. 단지 학점을 잘 주거나 대출이 쉽거나 등등의 이유로 수강신청을 했을 뿐이니까.

 

 

그래서 짜증이 나고, 상황의 외형만을 갖고 마 교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일을 몰고 가는 거다. 근데 이게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게 더 무섭다. 그저 이 사회의 수준이 이제 이런 식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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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애들 욕을 했다만 사실 이게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는 울나라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 명예심 등이 바닥부터 실종된 데 기인한다. 젊은이는 노인을 무시하고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믿지 못한다. 자기도 지키지 못할 엄격한 잣대를 남에게만 들이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런 걸 변명 삼아 자기 타락을 합리화한다. 요령과 한탕주의, 꼼수, 집단 이기주의는 이 사회의 기본 정서다.

 

 

근데 이게, 위에서 열거한 '기본 정서'의 물리적 현현이라고 할 가카 치하 5년을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훨씬 심해졌다. 느끼는 분덜도 있겠지만 요즘은 대로 사거리가 아니면 횡단보도 건너기가 무섭다. 너무 많은 차들이 아무렇게나 신호를 무시한다. 예전에는 인적 드문 교외에서나 그렇던 게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그렇다. 전엔 그래도 눈치라도 봤지 이제는 택시고 버스고 승용차고 아무 거리낌이 없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나한테 불리하거나 기분 나쁘면 누구던 즉각 폄하, 공격하고 내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러니 남을 이해하거나 배려하려 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감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을 저렇게 만든 건 기본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마광수 교수도 개인적으로는 답답하겠지만, 뭐가 문제의 본질인지 이해하려는 준비가 하나도 안된 학생들한테 갑자기 세게 나간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세상을 만들어 놓고 서로 믿고 배려하자고 한들 통할 리 없다.

 

 

노무현 때, 다들 살기 어렵다는 둥 우는 소리를 했지만 사회가 이런 지경은 아니었다. 마 교수도 2천년대 중반 이후부터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90년대 중반에 신호등 지키는 운전자를 찾는 양심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때 발견한 개인의 명예심 같은 것이 대략 2천년대 중반까지는 유효했을 거다.

 

 

하지만 요즘 그런 프로그램을 다시 한다면 누가 보려 할까. 요즘 사회 분위기에서는 뻘짓이라고 웃음거리나 될 뿐이다. 도대체 그런 식의 양심을 지키는 것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남아들 있나?

 

 

수구들이 소위 ‘잃어버린 10년’ 이라고 이야기하던 그 때에 이 사회는 어느 정도나마 선진국스런 면모를 갖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30년 전으로 다시 후퇴해 있다. 부자 되게 해 준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뻔뻔한 장사꾼을 지도자로 뽑고 그 아래서 같이 타락해 버린 결과다. 그것도 모자라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로 아무 능력도 소양도 보인 바 없는 그 딸을 대통령으로 만든 어리석은 나라,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대체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거냐. 아 씨바.

 

 

 

 

논설우원 파토
@pato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