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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29. 월요일

딴지편집장 너부리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하듯, 나 역시 아이들을 천재로 키우고 싶어.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의 천재도 좋고, 피카소와 같은 미술의 천재도 좋고,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문학의 천재도 좋고, 연아처럼 피겨의 천재로 자라줘도 정말 좋을 것 같아. 뭐, 하다못해 엄마 친구 아들 처럼 국영수의 천재만 되어줘도 감사할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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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천재는 그야말로 타고난 사람을 일컫는 것이니 내 맘대로 될 리 없을 거야. 하지만 만약 신이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나는 내 아이들이 ‘사랑의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어. 섹스의 천재 말고 이 씨바들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섹스의 천재만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 뭐, 그런 얘기는 아니야. 사실 될 수만 있다면 섹스의 천재도 몹시 훌륭할 것 같아. 섹스의 천재라면 적어도 말초신경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도 행복해질 확률이 높을 테니까 말이야.

 

 

말을 꺼내놓고 보니 사랑의 천재와 섹스의 천재가 따로 분리가 가능하기나 할지 의문이 들기도 해. 왜 그렇잖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만족스러워 하는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라고들 얘기하잖아. 그러니까 섹스의 천재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 역시 사랑의 천재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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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랑의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해. 사랑의 천재가 되었을 때 내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바꿔 말하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데 필요한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효율적인 수단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천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거지.

 

아마 각자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 이견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요즘 같은 장기불황의 시대에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돈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돈의 천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도 있을 테니까.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치겠지. 나 역시 내 아이가 돈의 천재가 되어 떼돈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하면 결코 말리지 않을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부모랍시고 자식의 고집을 막 꺾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아이가 돈을 잘 벌기 위해서라도 사랑의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돈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고, 사람은 대체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 법이니까.

 

 

다시 말해 내 아이가 위폐제조술의 천재가 되어 골방에서 기계로 돈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면 돈을 벌기 위해서는 특정한 일을 하거나 직업을 가져야 하잖아. 그런데 일, 직업의 본질이 뭐겠어? 사전을 보면 일 혹은 직업이란 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것’이라 되어 있더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정의하고 싶어.

 

 

일이란 건 대략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동료)와 함께 다른 누군가(고객)를 만족시켜 나의 만족(돈 포함) 을 얻는 행위’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 순서를 좀 바꿔서 ‘나의 만족(돈 포함)을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 (동료)와 함께 다른 누군가(고객)를 만족시키는 행위’ 라고 해도 상관 없을 것 같아(그러니까 타인의 만족을 통해 나의 만족을 도모할 것이냐, 아니면 나의 만족을 위해 남의 만족을 꾀할 것이냐의 순서를 따지는 건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순서를 따지는 것과 같아 보여. 순서는 뭐가 먼저일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그냥 닭과 달걀 둘 다 필요하다는 거야. 사랑을 주는 게 먼저냐 받는 게 먼저냐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걍 둘 다 중요한 거야. 받기 위해 주든, 주고나서 받기를 원하든).

 

그 일이 정기적인 업이 되면 직업이 되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깐 나의 생계, 적성, 능력 등 내 본위적 관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은 새로운 정의인 거야.

 

그렇잖아. 현대사회에서 일 혹은 직업은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된 협업, 분업의 한 형태인 거잖아. 나 혼자만 존재할 때는 일이나 직업이란 말은 무의미한 언어일 거야. 그냥 생존활동 만이 존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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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투르니에의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보면 로빈슨이 무인도에서 밭 갈고 목축하는 생존활동을 넘어서 지가 지를 무인도의 총독으로 임명하면서 일종의 공식적 직업을 갖는 장면이 나오긴 해. 허구에 불과하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냥 제도에 익숙한 문명인이 무인도에서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벌인 놀이라고 해석하는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

 

 

결국 일이란 건 타인과 공존하기 때문에, 혹은 지속적으로 타인과 공존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발생된 무엇이라는 거야. 따라서 일을 함에 있어 공존의 가치, 즉 타인의 만족 없이 나의 만족이 있을 수 없고,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의 만족을 희생할 수 없다는 게 일의 가장 근본적 속성일 수밖에 없다는 거지.

 

아놔, 씨바, 너무 아름다운 얘기 같네? 이런 아름다운 얘기가 내 입에서 나오니깐 사실 나조차도 지금 좀 어색하고 그래. 하지만 내가 애초 아름다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 몹시도 상식적인 얘기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란 걸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내 아들이 자라서 어떤 기업의 신입사원이 됐다고 쳐. 그리고 내 아들이 이 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쳐. 이때 부모가 조언할 수 있는 항목의 보기는 대충 아래와 같을 것 같아.

 

 

① “어떻게든 사장 딸과 결혼을 하거라.”


(하지만 사장에게 딸이 없을 경우 낭패, 결혼하더라도 임원 안 시켜주면 낭패, 임원이 된 후 그 돈과 명함으 로 드디어 바람피다 걸리면 낭패. 그 밖에도 배경으로 임원이 되었지만 사실 별 능력이 없다는 게 탄로나 일 생을 무시 받거나, 그 모욕감을 못 이겨 장인어른의 술에 약을 타거나, 능력 있는 아랫 동서의 PT자료를 몰 래 훔치다 들키면 낭패.)

 

② “어떻게든 미래 사장이 되거나 고위 임원이 될 것 같은 사람의 라인을 잡거라.”


(이는 사장 딸과의 결혼 계획에서 낭패를 볼 수 있는 경우의 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썩은 동 아줄이면 낭패. 라인의 윗대가리는 사장됐는데 내 아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이면 낭패. 임원은 됐는데 다른 라인의 지같은 놈에게 묻지마 칼부림 당하면 개낭패 등등.)

 

③ “어차피 약육강식의 사회. 약한 놈들을 잘근잘근 밟으면서 올라가거라.”


(신입사원인 내 아들이 가장 밟기 쉬운 약한 놈일 것이므로 말 하자마자 낭패)

 

④ “글로벌 경쟁시대, 너만의 실력을 키우거라.”


참으로 이명박스러운 말처럼 보이지만 내가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사실 이거야. 다만 영어, 중국어로 경 쟁하고, 남다른 기획력, 영업력 등을 실력으로 쌓으라는 말 대신 사랑으로 경쟁하고 사랑력(?)을 실력으로 키워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만약 내 아들이 높은 토익 성적표를 소지하고 있다 치고, 바로 그 이유만으로 외국 바이어와의 단란한 한 때를 꿈꾸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직장인의 미래를 상상한다면 난 병무청에 가서 아들의 재입대를 상담하고 싶을 것 같아.

 

외국어를 왜 공부하는 거겠어.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한 거잖아. 타인과의 소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결과물이 뭐겠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거잖아. 금발 미녀와의 뜨거운 사랑만 떠올리지 말고 이 씨바들아!

 

다시 말해 단순한 언어 교환이 아닌 서로 호의를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소통을 할 줄 알아야 그만큼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질 거라는 몹시 당연한 얘기야. 혹자는 그래서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잖아.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거야. 보다 효과적인 외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그 문화에 대한 이해를 선행려는 시도와 의지가 발현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원동력이 사랑력인 거라고.

 

사랑력이 있은 후에야 대상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생기고, 관심과 궁금증이 있어야 학습을 하고, 학습을 하다 보면 문화도 알게 되고 언어도 습득하게 되는 거잖아. 근데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그 반대의 순서로 사랑을 강요당하고 있거나, 아니면 맥락은 다 빠져버린 채 언어습득기술만을 요구 받고 있는 형국인 거지. 그래 놓고서 부모들이 그러잖아.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란다.”

 

 

아이 씨바. 이러니 애들이 안 미치고 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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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력이니 영업력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세탁기에 대한 기획이든, 음식 메뉴에 대한 기획이든, 모바일 앱에 대한 기획이든 뭐든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기획은 고객인 ‘인간’을 위한 거잖아. 그렇다면 좋은 기획이란 건 고객의 구체적 요구를 꼼꼼히 반영하거나, 또는 아직 뭐라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좀 누가 만들어주면 잘 쓸 거 같은, 그러니까 아직 언어화 되지 않은 마음의 요구를 짚어 내는 게 좋은 기획인 거잖아. 그러려면 뭐가 필요하겠어? 인간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넓어지려면?

 

그야 당연히 인간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 인간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은 <베르세르크>에서 그리피스의 힘줄 하나하나를 뜨개질했던 고문기술자에게도 충만한 법이니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 아닌 공존을 위한 사랑에서 기인한 관심과 궁금증이어야 할 테고 말이야(여기서 사랑의 양면적 두 속성. 소위 선에 대한 사랑과 악에 대한 사랑, 이타적 사랑과 이기적 사랑 등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뤄볼게. 참고로 나는 선과 악, 이타와 이기가 따로 분리되거나 대립되는 무엇이라 생각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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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베르세르크 中>

 


자, 바로 이쯤에서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이 몰락하는 것에 대해 장탄식 한 번쯤 내쉬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지원이 줄어 대학의 인문관련학과가 통폐합되거나 정원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이 몰락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야. 그것 역시 본질이 아닌 현상에 불과할 거야. 묻지마 살인이 난무하고 생활고 자살이 급증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여전히 재벌이고 고위관료는 여전히 안전한 것. 이런 게 바로 인문학의 몰락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생각해. 사랑이 없잖아. 사랑이).

 

영업은? 영업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사랑력이 요구되는 직종일 거야. 기획은 불특정 다수의 관념적 고객(인간)에 대한 사랑력을 바탕으로 이론을 만드는 영역이라면, 영업은 다시 그 기획을 바탕으로 개별의 구체적 고객(인간)에게 실전적 사랑력을 적용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거지. 따라서 영업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말을 잘해야 하고,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둥의 매뉴얼이 있지만 내 아이에게는 이렇 게 조언하고 싶은 거야.

 

 

“사랑의 영업사원이 되렴. 사랑이 충만하면 말 안 통하는 금발 미녀와도.. 아니 외국인과도 얼마든 소통을 할 수 있거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처럼. 잘 입은 옷차림이 주는 좋은 인상 보다 호감이 충만한 표정이 주는 좋은 인상이 훨씬 강력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어떤 영업의 각론적 스킬 보다 상위에 있는 건 바로 사랑일 거야.

 

물론 여기서 ‘사랑’이란 관념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 없다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이해를 한다면 너는 재입대를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아.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하지만 사랑 때문에 적절하고 효과적인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것일 수 있는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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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일을 잘하기 위해, 그러니까 돈을 잘 벌기 위해서라도 내 아이는 사랑의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인 거야.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사랑의 천재로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고민해볼 차례야.

 





 더딴지 6호에서 계속


 

편집부 주


4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한번도 변치 않은

본지 역대 최장기 편집장

너.부.리.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인간 수와 재들의 집합소인 본지에서
단 한번의 쿠데타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들을 조율하고 통제해온

자라면

마치 절대 비기가 있을 것 같은

링이 들지 않는가.



링의 실체,

무규칙2종매거진 [더딴지 6호]에서

확인 가능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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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