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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아마 일년 반 전 즈음인걸로 기억해.


어느 작은 맥주 수입사에서 어떤 맥주를 수입하기로 했어. RB(ratebeer)나 BA(beer advocate)에서 최상급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괜찮은 평을 받는 맥주들이었기에 국내 맥덕들은 관심을 가지고 기다렸지. 약간의 문제로 시간이 지연되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맥주는 수입이 되었고 몇몇 보틀샵을 중심으로 맥주와 맥덕들과의 만남은 이루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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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난 이야기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병당 가격이 9,000원에서 만 원 정도였을거야. 저렴한 가격이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하겠지만 벨기에에서 수입되는, 비슷한 레벨로 여길만한 맥주들은 고가인 경우가 많았기에 '아쉽지만 이 정도 가격이라면 수긍해야겠지'라는 마음으로 구매를 했었지. 맛나긴 했지만 크게 맘에 들은 것도 아니었고, 이전과 비교해서 수입되는 맥주들이 갑작스레 늘어나던 시기라 경험치삼아 한 번 마시고 곧 새로운 맥주로 눈을 돌렸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크게 이야기거리가 될 정도는 아니었어.


논란이랄까, 이야기거리랄까. 맥덕들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것은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지. 뭐 별 건 아니고, 그 맥주가 OB를 통해 수입이 될 예정이라는 이야기었어.


또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 맥주가 대형마트를 통해 풀리기 시작했지. 평상시 가격은 4,000원 근처로 설정되었어. 모 수입사의 가격과 비교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싼 가격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인행사라는 딱지를 붙이고 대대적으로 풀기 시작했지. 그때 가격이 2500원 근처던가 아마. 곧 어떤 마트에서는 2,000원에도 풀렸는데 이게 같은 시기였는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인지는 정확하지 않네.


한 병에 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 사마셨던 맥주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2,000원, 2,500원에 팔리는 모습을 보는 맥덕들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그 맥주를 수입했던 모 수입사의 관계자는 기분이 어떠했을까.


어쨌든 쏟아지는 비난 속에 사태를 해결해야 할 모 수입사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해당 맥주의 수입을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남은 맥주는 낮은 가격에 처리하기로 했지. 깔끔하게 해결 되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노력을 다 했던 걸로 기억해. 물론 그 수입사는 상당한 손해를 보았어(듣기로는 수백에서 1천만원 사이라던가). 적지않게 시끄러운 말들이 게시판을 달궜지만 그건 중요치 않으니 생략하기로 할게.


무슨 맥주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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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든 그랑크루호가든 포비든프룻에 관한 이야기야. 그래 홈익스(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맥주 대란으로 딴게를 포함해 각 게시판을 달군 그 맥주야. 한때는 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었으나 한시적이지만 오늘은 1,000원에 사고 있는 그 맥주. 신기하지? 그 맥주가 한 때는 만 원이었다는 사실이.




2


'소규모 수입사를 박살내기 위해 대기업이 부린 횡포'였다면 피가 뜨거워질 이야기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이야기는 전혀 아니야.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호가든을 만드는 기업과 OB맥주는 둘다 AB-Inbev(세계 시장 점유율 20.8%의 1위 기업, 2008년 벨기에-브라질 인베브 그룹과 미국의 안호이저 부시가 합병한 회사로 버드와이져, 호가든, 스텔라, 코로나 등의 상표를 보유하고 있는 대표 세계 맥주 기업)에 속해있는 업체이고 계열사의 여러 맥주들을 수입하려는 과정에서 겹쳤던 것 뿐이지.


"그걸 네놈이 어찌아느냐!"고 호통치며 반문할지도 몰라. 사실 OB가 무슨 생각으로 그 시기에 그 맥주들을 들여오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 아는 건 없어. 단지 그런 방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모 수입사가 너무나도 작고 신생업체였기에 그런 생각을 할 뿐이야. 정말로 그 업체를 조지고자 했다면 고작 두개의 맥주만이 겹치게 수입하진 않았겠지.


문제는 누군가는 9,000원, 만 원에 팔아야 하는 맥주를 누군가는 2000원, 1000원에 팔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싸게 파는 게 무에 문제란 말인가! 비싼 가격에 들여온 자들이 무능한 게 아닌가!"라고 호통을 칠지도 모르지. 맞아. 일개 소비자로서는 같은 물건을 싸게 판다는데.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싸게 판다는데 그저 감사할 일이지. 비꼬는게 아니라 정말 감사해.


사실 2000원, 1000원이라는 가격은 엄청난 거야. 아마 현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싼 가격일걸. 주류세가 꽤나 높은 편인 우리나라에서 이 맥주들을 그 가격으로 만난다는 건 거의 사기에 가깝다고. 21, 22일 있었던 홈익스 맥주 대란의 가격인 1,000원은 일시적인, 극단적인 가격이니(병당 1000원이면 현지가격보다 쌀 걸) 제외하고 이젠 거의 일상화 된 2,000원의 가격만으로도 그렇다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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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당시 벨기에 브루헤 모 마트에서의 가격이라지


호가든만이 아닌, 지속적인 할인행사에 참여하는 몇몇 맥주들의 그러한 가격들이


a. 수입업체가 실제 수입가격보다 낮게 신고가격을 정하고

b. 그로 인해 낮은 주류세를 적용받아 낮은 가격을 유지하여 시장을 점유하고

c. 그 차액을 후에 수출업체에 돌려주는(리베이트라고 해야하나?)


시스템으로 인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는 어느 바닥에선 공공연한 이야기이고 그저 의심이라 할지라도 병신같은 주류세 체계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라 생각해. 사실 의심의 수준을 넘어섰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증거 따윈 없어서 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 이해해주길 바라.


나 또한 절대적으로 소비자의 입장에만 서 있는 사람인지라 시장 구조가 어떠하든 싼 가격에 좋은 맥주를 마시는 것이 너무도 좋아. 그런데 이게 독과점 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 된달까. 지금 당장은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언젠가 이 문제는 수입맥주 시장을 한 차례 흔들어 놓을 거라 생각해. 그때 주류세 체계를 포함해서 관련한 많은 것들이 합리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네. 그러한 체계를 바꿀 권한이 있는 분들이 만드신 단통법을 생각해보면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괴리감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에 맡기겠지만...(맥통법 = "우리모두 다 같이 만 원에 사 마시는 거야!" 일지도 모르지)




3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싸다보니 어찌 마무리 해야할지 모르겠네.


호가든 그랑크루와 포비든프룻, 그리고 레페를 대량 구입한 딴지의 횽,누나들. 축하해. 1,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정말 잘 산거야. '싼 게 비지떡'인 수준이 아니야. 취향만 맞다면 충분히 괜찮은 맥주라구. 긴 겨울에도 어울릴 만한 나름 고도수의 맥주니까 천천히 오래 즐기길 바라. 단, 상당히 강력한 편인 맥주니까 너무 자주 마시진 마(횽들이 알던 그 호가든과는 전혀 다른 맛이니까 주의하길 바라) 매일같이 마시기에 적절한 스타일의 맥주는 아니야. 너무 자주, 많이 마시면 간도 혀도 금방 지칠 수 있으니까 여유를 가지고 길게길게 즐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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