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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군단 출신이다. 당시엔 한국외대 영어과 ROTC 70~80%가 공수부대로 배정을 받았다. 외대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문과 출신 ROTC들이 그랬던 것 같다. 특전사가 미국 합동훈련에 자주 동원되기 때문에 영어 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실제로 특전사가 영어를 빈번하게 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외대 영어과에서 ROTC는 기수당 늘 7~8명이 있었고 이들 중 한두 명을 빼고는 모두 특전사로 가곤 했다. 신기하게 내가 속해 있던 24기에선 영어과 ROTC가 티오가 4명으로 줄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가 입단하기 전 22기 선배 한 명이 사고를 쳤다고 했다.

 

학군단 2년 차 때 학군단복을 입고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고 삐라를 뿌렸다가 ROTC에서 퇴출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 외대 영어과에 사상이 위험한 반정부 분자들이 많이 끼어있다는 판단에 따라 입단 정원이 절반으로 대폭 줄었다고. 이미 입단한 23기 8명을 퇴출할 수는 없으니 24기는 4명만 뽑기로 했다고 한다.

 

내가 속한 24기는 모두 특전사로 차출될 상황이었는데, 한 선배가 나를 찍어 제 3땅굴 브리핑 장교로 끌려가는 바람에, 나는 빠지고 나머지 3명 중 2명은 특전사, 1명은 특공여단으로 배정받게 됐다.

 

어쩐지 군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 기수 정원을 절반으로 날려버린(?) 그 용감한 선배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 당시 ROTC 출신이라면 100% 대기업 취직이 약속돼 있던 시절이었으니 더더욱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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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 2011년 하반기에 비로소 그 선배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나는 꼼수다'를 듣다가 정봉주 의원이 자신이 ROTC 하다가 데모로 짤렸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것이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그때 그 22기 선배가 정봉주 의원이었다. 전혀 몰랐지만, 그의 행동에 내가 영향을 받았던 게 두 번이나 있었던 셈이다. ROTC와 나꼼수.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몇 달 후, 그는 BBK 저격수로 찍혀 선거법 위반이라는 허울로 1년간 감옥에 가야 했다. 선배라서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하다 나쁜 놈들의 보복으로 옥살이를 한다는 게 너무나 개탄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활기찬 방송인이 돼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내 선배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가끔은 좀 부끄러울 때도 있고, 가아아끔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그가 2017년 12월 29일 사면복권 됐다.

 

그의 사면을 비난하는 인간들도 있고, 그의 정치 복귀 가능성을 아예 막아버리려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사면되어야 마땅한 이유를 넘치도록 안고서 옥살이를 했던 것이고, 그가 앞으로 정치를 할지 말지는 오로지 그가 선택한 일이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내일 빨간 빤쭈를 입을지 노팬티로 돌아다닐지 스스로 선택할 일인 것처럼.

 

 

후배로서, 지지자로서, 동료 시민으로서 정봉주 전 의원의 사면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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