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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너는 착한 아이’(오미보 감독, 2015)에는 신출내기 초등교사인 오카노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어느 날 따돌림을 당하는 한 학생이 교실에서 바지에 오줌을 싸는 일이 벌어진다. 더럽다고 놀리고, 소리 지르고, 도망치는 아이들로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다. 오카노 선생은 서둘러 걸레로 바닥을 치우고 학생을 보건실에 보내는 등 나름 침착한 대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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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건 오줌 싼 아이 학부모의 싸늘한 항의였다. 교사가 따돌림을 방관했고, 아이가 선생님이 무서워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못했다며 담임교사를 탓했다. 학부모의 요구와 부장교사의 조언에 따라 오카노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가도 좋다고 말한다(물론 그 전에도 못 가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많은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들어 화장실에 가겠다고 외친다. 오카노 선생은 진땀을 흘린다. 장면을 보는 내내 남일 같지 않았다.

 

 

교사, 정치인이자 재판관

 

위와 비슷한 일들은 학교에서 흔히 벌어진다. 약하고 소외되는 학생이 있고, 인기 있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학생이 있다. 관계망과 서열이 눈에 분명히 드러나기도 하지만 힘이 미묘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교실 내 유일한 성인인 교사는 비상사태를 인지하고 뇌를 풀가동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오줌을 싼 아이가 느낄 수치심과 주변 아이들의 심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자원(보건교사, 여분의 옷 등)을 신속히 확보한다.

 

향후 상황에 대한 예측과 대비도 필요하다. 아이를 위로하고, 함께 추후를 모색하고, 다른 학생들이 놀리거나 외부에 소문을 내지 않도록 지도한다. 학부모와의 면담도 건설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학생들이 마냥 어리게만 보여도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는 초등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영화 속에서 야뇨증이 있는 학생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에 엉뚱한 학생들이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교실은 작은 사회다. 나는 교사가 하는 일 중 일부는 규모가 다를 뿐 정치인, 재판관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 학생의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방향과 해결책,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최선의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며 이는 말 그대로 고도의 정치행위다. 교사는 재판관으로서도 활약한다. 학생들 사이에 분쟁, 다툼, 따돌림 등은 수시로 발생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본인이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주장할 때가 많다. 피해와 가해의 범위를 판단하고 교육적인 처치와 예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이 외에도 교실 내 역할 분배, 자리 배치, 심지어 급식실로 이동할 때 줄을 서는 순서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공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장면들은 수없이 많다.

 

정치인이자 재판관으로서의 교사는 학생들의 개별성을 존중하면서도 보편성을 놓지 않고 공정하게 전체를 아우른다. 개별성에 매몰되면 편애, 보편성에만 머물면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합의를 통해 내적 타당성을 갖춘 규칙을 생성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을 교사는 수시로 해내야 한다.

 

사회에 정당한 공권력이 필요한 것처럼 교실에도 건강한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주의는 물론 타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교사가 건강한 지적, 도덕적 권위를 갖지 못하면 교실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고 만다. 아이들에게는 공정하고 믿을 수 있는 어른과 함께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보호막이 없는 환경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안녕을 제외한 모든 일에 무심하고, 둔감해진다. 타인을 믿고, 환경에 반응-개입하고, 연대하며 가치를 추구해갈 수도 없다. 반면 안전하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학생은 타인과의 연대, 민주주의 가치에 신뢰를 품은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교육은 진정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교실은 사회로, 사회는 교실로

 

최근 롯데 일가 경영 비리로 기소된 신동빈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씨도 집행유예, 성완종 리스트 관련 홍준표 씨 무죄,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비리 사건은 파기환송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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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은 징역 8년을 구형받고, 1심에서 5년,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3년형을 판결받아 복역중이다

 

 

법조인들의 판단을 보고 있자면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하나 싶다.

 

어린이 여러분! 목표와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지 마세요. 자기 생각을 과감하게 표출하지도 마세요.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것보다 선생님, 윗사람, 대다수 친구들의 의견에 적당히 동조하는 편이 낫습니다. 부자들의 지원을 받는 단체에 가입하고, 그들이 정한 목표를 따라가세요. 친구는 가려서 사귀세요. 돈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둘수록 좋습니다. 될 성부른 떡잎에겐 사전에 약을 좀 쳐 놓으면 큰 보험이 됩니다!”

 

농담이 아니다. 어떤 교사도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생계에 지장을 겪고, 조롱의 대상이 되고, 감옥에 가길 원하지 않는다.

 

법치주의가 늘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줄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법이 분노와 좌절감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기득권 세력에게 햇살처럼 따사롭고돈 없고 힘없는 자들에게 한결같이 가혹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법조계는 참으로 일관성이 있다. 

 

법조인들의 잣대와 상상력은 터무니없이 기울어져 있다. 수년 전 한 재벌회장은 사람을 납치해 쇠파이프로 폭행하고도 그간 사회에 공헌한 바를 참작해 집행유예를 받았다.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비행기 항로를 변경한 재벌 역시 온갖 맥락을 다듬어 집행유예를 받았다. 반면 박근혜 정부 당시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최한 한상균 씨는 폭력집회를 열어 도로교통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5년 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한국의 법조계는 개인의 부당한 사리사욕 추구보다 공적 가치 추구 행위를 더 중대한 범죄로 판단하고 있다.

 

사회도 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적, 도덕적 권위를 잃은 공권력은 야만과 폭력성 분출을 유발한다. 신뢰할 곳 없는 시민들은 연대와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각자 도생의 정글 속으로 침잠하게 될 것이다.

 

 

시적 정의(Poetic Justice)

 

앞서 말한 영화 너는 착한 아이에서 오카노 선생의 누나는 이런 말을 한다.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그대로 보고 배워. 따뜻하고 다정하게 자신을 대하는 어른과 함께 한 아이는 자신이 받은 따뜻함을 그대로 돌려주려 하지. 그러니 아이들에게만 잘해도 사회는 행복해지지 않을까. 어머니는 정말 위대한 존재야.’

 

동화같은 말로 들린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을 모방하고 사랑을 받은 아이가 사랑을 줄 수도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건 보편적인 경향성이다. 여기에서 사랑을 정의’, ‘민주주의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정의롭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정의로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정의로운 교실은 정의로운 시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다시, 정의로운 교육은 정의로운 사회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학교는 수도원이 아니다. 교육과 사회는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가치와 정의를 교육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 최소한 아이들에게 정의를 추구하는 행위를 향한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미약하게나마 보내고 있는가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공적인 삶문학적 상상력의 중대한 연관성을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한국 법조인들이 손쉽게 부르짖는 법치주의와 정의, 우리가 꿈꾸는 정의의 결이 다른 이유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시적 정의'는 깊은 영감을 준다. 형편없이 기울어진 잣대와 상상력을 발휘하는 법조인들은 물론이고, 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 법의 역사와 판례에 대한 이해, 적합한 법적 공평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 등은 필요하다. 재판관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훌륭한 재판관이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이성적이기 위해 재판관들은 공상과 공감에 능해야 한다.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까지도 배워야 한다. 이 능력 없이는, 그들의 공평성은 우둔해질 것이고 그들의 정의는 맹목이 될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오랫동안 말이 없던목소리들은 침묵에 갇힐 것이며, 민주적 심판의 태양은 장막에 가려질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끝없는 노예 세대들이 우리 주변에서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이며, 자유를 향한 희망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시적정의, 마사 누스바움, p.252, 궁리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