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1. SOD 『매직미러호』 시리즈의 대히트 (1996년)

 

사진11.jpg

평범한 영세업체였던 SOD를 경영난에서 구제한 ‘매직미러호’

 

 

8~90년대에는 h.m.p, 쿠키, 앨리스 재팬, 우주기획, VIP 등 5개 AV 제작사가 메이저로 손꼽혔습니다. 이들은 모두 비데륜의 통제를 받는 ‘렌탈계’였습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예쁜 배우들을 섭외하고 수려한 영상미를 뽐냈지만, 표현에 제한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규모가 작았던 ‘셀계(인디즈)’ 제작사들은 항상 예산이 부족해 전전긍긍했지만 훨씬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둘 사이의 우열관계는 2000년대로 넘어오기 직전의 세기말에 역전됩니다. 셀계가 급부상해서 렌탈계를 추월해버렸어요. 업계의 판도가 바뀌면서, 제작과정, 연출방식, 배우공급체계, 심의 기준 등 모든 면에서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AV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대표적인 셀계 제작사가 ‘SOD’라는 약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소프트 온 디맨드(Soft On Demand)’였습니다. 시작은 비디오 판매왕의 하청업체였지만, 1996년부터 발매된 『매직미러호(マジックミラー号)』시리즈가 예상치 못했던 흥행 대박을 터트리면서 전체 매출 1위의 메이저 제작사로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선 밖이 보이도록 특수 개조된 차량 안에서 AV 촬영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었어요.

 

SOD의 성공비결은 독창적인 기획력과 소비자 중심주의에 있었습니다. 『매직미러호』 외에도 기발한 아이템들이 많았습니다. 모자이크 대신에 크로마키 효과를 주거나, 알몸으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기도 했으며, 사옥을 이전하는 도중에도 AV를 찍어 히트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SOD만 독특했던 건 아니었지만, 여기에 덧붙여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큰 각광을 받았습니다.

 

 

12. 주식회사 ’DMM닷컴’의 설립 (1999년)

 

사진12.jpg

오늘날 일본 최대의 성인 포탈사이트로 성장한 ‘DMM.R18’.

 

 

SOD와 함께 셀계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호쿠토(北都)’는 1990년 이시카와 현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던 ‘카메야마 케이지(亀山敬司)’가 설립했습니다. 카메야마 사장은 당시 만 29살 청년에 불과했지만 사업 감각이 뛰어났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호쿠토는 렌탈계에서 출발선을 끊었지만 변화하는 트렌드를 눈치채고는 일찍부터 셀계로 넘어갔습니다. 비디오 제작은 모두 하청에 맡기고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본사는 오로지 판매에만 집중했습니다.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손해를 아끼기 위해 소매점에 직접 비디오 판매를 위탁했고, 잘 팔리는 작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PO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을 각 매장에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1998년에는 인터넷 시장을 유망하게 보고는 성인사이트 ‘DMM닷컴’을 열었고, 이듬해 별개의 주식회사로 독립시켰습니다. 여기서 ‘DMM’이란 “디지털 미디어 마켓”의 머리글자를 따온 겁니다. 호쿠토와 DMM은 법적으로는 전혀 별개의 회사였지만, 두 회사의 대주주는 모두 카메야마 케이지였습니다. 호쿠토는 AV를 만들고 DMM은 그것들을 온라인으로 판매해, 서로가 서로를 먹여 살렸습니다. 한 달에 찍어내는 작품수만 2백여 편에 달했습니다. 

 

2000년, 호쿠토는 회사를 대표할 만한 AV 제작사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하고는 그 밑에 계열사를 하나 추가했는데, 이름하여 ‘무디즈(MOODYZ)’였습니다. 2002년에는 ‘어태커즈(ATTACKERS)’를 전격 인수했고, 어태커즈의 레이블이었던 ‘아이디어 포켓(IDEA POCKET)’을 따로 독립시켰으며, SOD 그룹에서 탈퇴한 ‘도그마(Dogma)’로부터 독점 판매를 위탁받았습니다. 

 

공격적으로 사세를 늘려간 호쿠토는 곧 SOD를 따라잡고 업계 최정상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습니다.  

 

 

13. 무수정 통신판매 사이트 ‘AV 엔터테인먼트’의 개설 (1999년)

 

 사진13.jpg

‘나가세 아이’의 무수정 영상 『Fuzz Vol.30』의 한 장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셀계의 판매 비디오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AV의 두 번째 황금시대를 열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해외로 수출되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클린턴 정부의 포르노 규제 완화 정책으로 덕 본 게 있었어요.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지에선 굳이 모자이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수출된 비디오들은 무수정(노모)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무수정 AV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성인사이트도 생겨났으니, 그중 하나가 1999년에 대만계 화교 자본의 투자로 미국 LA에 설립된 ‘AV 엔터테인먼트(AVE)’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캐리비안 닷컴’ 같은 후속 업체와 ‘스카이 하이 엔터테인먼트’, ‘도쿄핫’ 등의 제작사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누구나 인터넷만 할 수 있으면 무수정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정식으로 발매될 영상들이 우회해서 유통되는 것이다 보니 당연히 이전의 불법 비디오들보다 화질이 좋았습니다. 사이트의 본사가 모두 해외에 있으므로, 경찰이 적발할 일도 적었고요. 오이카와 나오, 나가세 아이, 시라이시 히요리 등 유명 AV배우들도 잇달아 무수정 영상을 남겨 큰 히트를 쳤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일본 국내에서도 모자이크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렌탈계 회사들은 비데륜이 버티고 서 있어서 모자이크를 건드릴 도리가 없었지만, 인디즈는 달랐습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조금씩 모자이크를 줄여나가는 시도가 가능했습니다.

 

가장 획기적인 시도는 ‘디지털 모자이크’였어요. 동영상의 프레임 하나하나마다 모자이크를 일일이 씌우는 방식을 말하는데,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보다 훨씬 세밀하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방식은 워낙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자주 쓰이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모자이크가 널리 쓰이게 된 건 ‘에스원’이 탄생한 이후부터였습니다.

 

 

14. ‘에스원 넘버원 스타일’의 설립 (2004년)

 

사진14.jpg

AV의 역사를 다시 쓴 히트작 『셀 데뷔 아오이 소라 기리기리 모자이크』의 한 장면.

 

 

2003년이 되면, 셀계와 렌탈계를 구분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셀계에서도 임대 비디오를 발매하고, 렌탈계에서도 판매 비디오를 발매했기 때문이죠. 새롭게 업계를 장악한 건 SOD와 호쿠토였고, 여기에 ‘KMP’가 끼어서 3강 구도를 형성합니다. KMP는 비디오 체인 ‘츠타야’가 렌탈계 마이너 제작사들을 규합해 세운 신진기업이었습니다.

 

메이저 3강 중에서 제일 잘 나간 건 ‘호쿠토’였습니다. 무디즈, 아이디어 포켓, 어태커즈, 마돈나 등 계열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이미 SOD그룹의 2~3배를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고가의 영상장비와 우수한 촬영인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다른 메이커에 소속된 인기 전속 배우를 빼가는 일도 잦았습니다. 

 

호쿠토의 독주에 가속 페달을 밟게 한 건, ‘에스원 넘버원 스타일(S1 NO.1 STYLE)’의 설립이었습니다. 호쿠토는 2004년 11월에 새로운 제작사 ‘에스원’을 설립하는데요, 에스원에서 처음 발매한 열한 편의 작품 중에서 『셀 데뷔 아오이 소라 기리기리 모자이크(セル初 蒼井そら ギリギリモザイク)』가 무려 10만 장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주연배우였던 ‘아오이 소라(蒼井そら)’는 이때부터 전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아오이 소라 외에도, 에스원은 아이다 유아, 호노카, 미히로, 오자와 마리아, 리오, 아사미 유마, 요시자와 아키호 등 인기 AV배우들을 불러 모아 전속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여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작품들이 매달 수십 편씩 쏟아져 나왔습니다. 연출자들 사이에서는 범작 취급을 받았지만, 소비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주연배우의 외모에 집착하는 AV를 ‘단독물(단체물)’이라고 부르는데요, 에스원은 이런 단독물을 업계의 ‘표준’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에스원의 성공비결은 ‘디지털 모자이크’의 사용빈도를 크게 넓혔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에스원에서 쓰는 모자이크는 항문과 음모가 보일 정도로 작았고 성기 윤곽이 보일 정도로 연했습니다. 이후로 에스원처럼 작고 연한 모자이크를 씌우는 업체가 늘면서, AV에서는 가짜 성행위가 없어졌습니다. 모자이크가 크고 진했던 시절에는 굳이 성행위를 하는 척 연기를 하더라도 눈치챌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이젠 얘기가 달라진 것이죠.

 

VHS에서 DVD로 AV의 포맷이 바뀌게 된 것도, 디지털 모자이크 덕분이었습니다. DVD는 VHS보다 화질이 선명하고 러닝타임도 2시간 이상으로 길게 넣을 수 있었습니다. DVD 영상은 여러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지루한 장면들을 건너뛰는 것도 수월했습니다. 연출자들은 챕터를 건너뛰어도 AV를 재밌게 볼 수 있도록 파편화된 코너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기 시작했습니다.

 

비디오 시대에 유행했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장르들은 DVD 시대가 되면 거의 만들어지지 않게 됩니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떨어지게 되었지만 AV 팬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장면들은 훨씬 많아졌죠. 이런 이유로, 원로 감독 ‘요요기 타다시’가 ”요즘 AV는 별다른 내용도 없이 너무 야하기만 하다“라며 잔소리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에스원이 탄생한 2004년이 비데륜이 사실상 몰락한 해라는 사실도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겁니다. 

 

 

15. 경시청의 비데륜 적발 (2007년)

 

사진15.jpg

SOD 아트웍스 모자이크 과의 작업실 내부.

(여기서 실수하면 SOD 사장님이 음란물 반포로 잡혀 들어가십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 비데륜 가맹업체의 85%가 탈퇴를 선언했고, 연간 2,200만 편이었던 심사 작품수는 1,300만 편으로 급락했습니다. V&R 플래닝부터 시작해서, 크리스탈 영상, 핫 엔터테인먼트 등등 여러 제작사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비데륜에서 이탈했습니다. 결국 비데륜은 항복을 선언하고 ‘디지털 모자이크’를 허용했으며, 2006년 8월에는 음모와 항문을 노출할 수 있도록 심사기준을 완화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2007년 8월 23일, 경시청 보안과는 음란물 반포 방조 혐의로 비데륜을 포함한 20개 관련 회사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습니다. 2008년 3월에는 비데륜 심사부 총괄부장과 h.m.p 등 제작사 사장들이 체포 및 기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자율심의기구를 음란죄로 적발한 건 1972년 로망 포르노 재판에서 ‘영륜’을 기소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 이제야, 그것도 다른 심사단체를 놔두고 지금껏 모범생처럼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유지해왔던 ‘비데륜’을 적발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경찰은 ”본보기로 혼내줬을 뿐“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일각에선 비데륜 사무총장직을 두고 경찰과 비데륜 사이에 불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도쿄고등재판소는 로망 포르노 재판에서 ‘영륜’의 심사를 통과했으면 음란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죠. 하지만 2011년 같은 재판소에서는 기소된 사람들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비데륜’은 ‘영륜’과 달리 믿을 만한 자율심의기구가 아니라고 못을 박은 것입니다. 피의자들은 음란죄를 규정한 형법 제175조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반세기 전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사건을 인용하며 형을 확정했습니다.

 

이제 ‘비데륜’의 심사만 있으면 적법하다는 건 옛말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심의기구도 언제든지 적발당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명예 법학 교수 시미즈 히데오(清水英夫)는 비데륜의 심의위원이 관련 사업자 위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는, 제3자로 구성된 독립기구를 편성할 것을 주장합니다. 시미즈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인 ‘비데륜’은 2008년부터 개편 수순을 밟았고, 2010년 SOD의 ‘메디륜’과 심사업무를 통합해 ‘영상윤리기구’로 새로 출범했습니다. 이후로 다른 심사단체들을 흡수합병하거나 심사기준을 통일해 현재는 ‘일본콘텐츠심사센터(日本コンテンツ審査センタ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율심의기구가 바뀌었다고 AV가 음란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본콘텐츠심사센터’를 어떻게 볼지가 관건인데, 아직 판례가 없습니다. 다만, 재판소에서 ”적절한 모자이크“를 언급했으니, 모자이크를 일정 수준 유지하는 이상 AV 제작사들이 또 체포될 일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아.마.도.

 

 

16. ‘지적재산진흥협회(IPPA)’의 설립 (2010년)

 

사진16.jpg

‘지적재산진흥협회’(IPPA)는 AV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NPO법인입니다.

 

 

2000년대 후반이 되면, AV 산업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CA’로 사명을 바꾼 ‘호쿠토’나, 아마추어 기획물로 새롭게 주목을 받은 ‘프레스티지’가 성장세에 있었지만, 전체 시장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불법 복제와 불법 공유가 급증한 탓이었습니다. 

 

‘지적재산진흥협회(IPPA)’는 AV의 저작권 보호를 목적으로 2010년에 설립된 단체입니다. 같은 해 ‘메디륜’과 ‘비데륜’이 통합하면서, 원래 ‘메디륜’에서 맡고 있던 저작권 업무를 따로 분리한 것입니다. 주로 일본 국내의 저작권 위반을 적발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국경을 가리지 않고 침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외에서도 종종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IPPA 소속의 7개 제작사가 미국 네바다 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FC2’에게 6,600만 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IPPA가 개별 동영상 업로더가 아니라 서비스 사업체를 고소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요, 2016년 화해가 성립되었습니다. 대만에서는 AV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지만, 2014년부터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AV의 저작권을 인정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2017년 12월 5일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AV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전혀 새로운 판례는 아니고, 이전에 음란물의 저작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발을 맞춘 것일 뿐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 복제 음란물 4만여 건을 올린 피고인에게 저작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확정했죠.(2015. 6. 11. 선고 2011도10872 판결)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IPPA의 저작권 관련 청구는 대부분 인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참고로 지난 2018년 1월 4일, 사단법인 ‘오픈넷’에서 위 서울고법 판결에 대해 반박하는 논평을 내놓았는데요, ”그동안 일본 AV 제작사들은 일본 법원에서도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언급이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어떤 판례를 참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AV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례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셀 수가 없습니다. 불과 두어 달 전에 도쿄지방재판소에서는 ‘아스카 키라라’의 AV를 불법 공유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발신자 정보공개청구가 인용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東京地裁 平成29.11.16 平成29(ワ)16883)

 

 

17. 여성을 위한 AV 제작사 ‘실크 라보’의 첫 작품 발매 (2009년)

 

 

사진17.jpg

신주쿠 극단 렉시의 2017년 12월 공연 『목욕 댄서(風呂ダンサーズ)』. 

‘아리마 요시히코’, ‘키타노 쇼타’ 등 실크 라보의 전속 남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렸던 AV는 대부분 남성 소비자를 타겟으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여성향 비디오를 만들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1988년에 발매된 『꿈♡보이』, 오자와 나미 주연의 『신데렐라가 되고 싶어서』 등이 최초의 여성향으로 불리는 것들이었고요, ‘요요기 타다시’, ‘나가사키 미나미’ 등 유명 감독들 중에서도 여성을 위한 AV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여성향 AV는 소수 호사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뿐,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외면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비디오보다는 ‘BL 동인지’나 ‘관능소설’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아무래도 남성향 AV에 익숙한 제작자들이 ”여자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실크 라보(SILK LABO)’는 SOD의 전 사장이었던 스가와라 치에(菅原千恵)가 2008년에 설립한 AV 제작사입니다. 2009년 7월 29일, 여성 잡지 『안 안(an·an)』 특별부록으로 발매한 첫 DVD가 호평을 받자,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을 위한 AV를 발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탭과 작가를 모두 여성으로 기용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에로티시즘을 작품 속에 반영했습니다. 스즈키 잇테츠, 츠키노 타이토, 무민 등 ‘에로맨’이라고 불리는 미남 AV배우들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기존의 AV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영상미를 선보였습니다.

 

실크 라보는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주시 디너’, ‘라 코비루나’, ‘러브 바디’, ‘TMA 어딕션’ 등 여성향 AV 제작사가 많아졌고, 잘생긴 AV 남자배우들도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아직까지는 AV 소비자 중에서 여성 팬은 6%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여성 비율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AV 업계에서 여성 소비자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한번 발매했다 하면 꾸준히 잘 팔린다는 겁니다. 단기간에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끊임없이 팔린다고 합니다. 발매한 지 2~3달만 되면 인기가 사그라지는 남성향 AV와는 다른 소비 패턴이죠. ‘야노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불황에도 불구하고 SOD 그룹이 간신히 흑자를 보고 있는 이유가 ‘실크 라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SOD 크리에이트에서는 재작년에 ‘걸스 채널’이라는 여성향 레이블을 또 만들었습니다.

 

SM계 AV 제작사 ‘유스트레스’의 사장인 ‘칸다 츠바키’는 ”여성이 주체로서 성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2011년부터 ‘도쿄 여성 에로 영상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AV 중에서 우승자를 결정하는 그랑프리였습니다.

 

 

18. 제3차 숙녀 붐 (2012년)

 

사진18.jpg

2017년 12월 22일 숙녀 전문 메이커 ‘마돈나’에서 중년 배우들의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AV 업계를 이끄는 주요 소비 계층이 청년에서 중장년으로 이동한 건 벌써 오래전의 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구매력이 약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작사들도 이들 4~50대 연령층의 취향을 맞춰 가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최근 숙녀물, 즉 중년 여성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이들 장르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이윤을 내기도 쉽다고 합니다.

 

중년 장르를 개척한 건 순전히 ‘타메이케 고로’ 감독의 공로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중년 여성이 등장하는 AV가 존재하긴 했지만 마니아들을 위한 소수 취향 정도로만 치부되곤 했어요. 타메이케 감독은 이러한 통념을 깨고 1999년 ‘카와나 마리코(川奈まり子)’의 데뷔작인 『새엄마 마리코』를 발매한 걸 시작으로 숙녀물을 크게 히트시켰습니다. 첫 번째 숙녀 붐이었습니다.

 

『새엄마 마리코』를 계기로 제작자들은 중년의 성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타메이케 감독은 카와나 마리코와 눈이 맞아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신의 이름을 딴 제작사를 설립했습니다. 숙녀물을 전문으로 만드는 제작사가 늘어나, 2000년대 중반에는 또 다시 숙녀 붐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세 번째 숙녀 붐이 불었습니다. 앞선 두 번의 숙녀 붐은 신 장르를 개척하는 수준이라면, 제3차 숙녀 붐은 숙녀물을 주류 트렌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카자마 유미, 호조 마키, 카와카미 유 같은 원로 배우부터 시작해서 이치조 키미카, 시라키 유코, 사사키 아키 등 숙녀 또는 유부녀 배우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심지어 나이를 실제보다 많은 걸로 속여서 데뷔하는 배우들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현재 숙녀 장르는 업계 전체 매출의 1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배우들의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60세 이상 노인 배우도 많아졌고요.

 

 

19. ‘휴먼 라이츠 나우’의 『AV 인권 침해 보고서』 발표 (2016년)

 

사진19.jpg

2017년 4월 26일 시부야에서 ‘AV 출연 강요’ 등 성(性)피해 근절을 호소하는 가두행진이 있었다. 

 

 

AV배우를 모집하는 일은 직업안정법이나 노동자파견법, 미혹방지조례 등으로 처벌당할 위험성이 높지만 위험한 만큼 고수익이 보장되는 직업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배우 한 명만 잘 데뷔시키면 일확천금을 꿈꿀 수도 있었습니다. AV가 폭력단이나 범죄조직과 연루되는 것도 대부분 스카우트나 사무소와 관련해서였어요.

 

자원자는 넘쳐났지만, 좀 더 예쁘고 인기가 많을 것 같은 배우를 욕심내다 보니 개중에는 ‘출연 강요’라는 부적절한 수단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탤런트로 만들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여서 계약서를 쓰게 하고는 촬영을 못 하겠다고 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계약서를 쓰거나 출연료를 받는 게 출연에 ‘동의’한 걸로 간주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나중에 문제 삼으려고 해도 호소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에서 AV 출연 강요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건 2014년부터였습니다. 이때 한 여성이 AV 출연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사무소에게 2,450만 엔 상당의 위약금을 청구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나우’(HRN)와 변호사 ‘이토 카즈코’의 도움으로 재판부는 여성의 손을 들어줬고, 이 일을 계기로 사람들은 AV로 인한 피해를 구제해야겠다고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3월 3일 ‘휴먼 라이츠 나우’에서 발표한 『AV 인권 침해 보고서』는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호시노 아스카, 코자이 사키, 루미 쿠루미 등이 직접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고충을 호소했습니다. 피해 사례는 다양했습니다. 주변과의 연락을 끊게 하고 “성공하려면 AV를 찍어야 한다”라며 여배우를 세뇌한 관계자도 있었고, 어떤 사무소는 정당한 출연료를 주지 않거나 맘대로 무수정 동영상을 발매하기도 했어요. 위약금 때문에 게이 동영상에 강제 출연한 남성 피해자도 있었죠.

 

정부가 실태 파악에 나서자, 업계를 규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거세졌습니다. 2016년 6월 11일에는 대형 AV사무소 ‘마크스 재팬’의 ‘무라야마 노리히데’ 사장이 노동자파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해 7월 2일에는 ‘카메야마 케이지’ 회장을 포함한 무디즈 『바코바코 버스투어』 관계자 전원이 공연음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2017년엔 배우 ‘니시카와 유이’와 ‘오시마 조’가 ‘캐리비안 닷컴’에서 무수정 동영상을 찍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가해자들이 소속된 사무소들은 자진 해체를 선언하며 논란을 잠재우기에 급급했습니다. 카메야마 케이지 회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CA(호쿠토)’의 지분을 팔아 ‘윌(Will)’로 사명을 바꾸었지만, 그저 ‘꼬리 끊기’로 보입니다.

 

 

일본 AV,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image1.jpeg

AV OPEN 2017에서 명예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요시타카 네네’.

 

 

2018 올해로 AV 탄생 37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쪽 세계가 항상 바람 날이 있겠냐마는, 계속되는 불황에 출연 강제 사건의 여파로 정부의 규제가 강해지면서 이번에는 유독 힘든 해가 같습니다. “이대로 AV 사라질지도 모른다 얘기가 괜히 앓는 소리는 아닌 같네요.

 

야노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17 오타쿠 시장 조사」에 따르면, 지난 동안 AV 벌어들인 돈은 495 엔이었다고 합니다. 2010년에 554 엔이었던 비하면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헤비 유저층이 두터워서 그나마 감소폭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AV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만 백만 명이 넘습니다. 업체들은 광고, 이벤트, 굿즈 판매 등으로 부수입을 늘리고 있고, 여성, 중년, 해외 시장에도 눈을 돌려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AV 시장을 넓힌다고 하더라도, 출연 강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난항이 계속될 것입니다. 몇몇 소수 악덕 업체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 다시는 촬영으로 피해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image2.jpeg

2017 4 17 ‘AV업계개혁유식자위원회기자회견 현장.

단체는 현재 ‘AV인권윤리기구 명칭을 바꿨습니다.

 

경찰 일각에선성인물을 로망 포르노 이전으로 되돌려 버리겠다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배우들의 인권에 대해 탓할 처지가 아닙니다. 출연 강요를 알고도 수수방관했던 데다가, 모모이 노조미 살인사건이나 바키 강간치상 사건에서 AV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모르쇠 잡던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얼마 호쇼 리리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했을 때도 “AV배우니깐 상관없지 않냐 식으로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무조건적인 표현 규제는 답이 아닙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발에 오줌 누기 불과합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로망 포르노 체제에서도 출연 강요 논란이 계속될 것입니다. 게다가 전시동원체제 시절처럼 국가권력이 일방적으로 사회규범을 재단하고는 도덕을 명목으로 시민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문제가 추가로 발생합니다. ‘라이트 하우스 일본의 인권단체들은 로망 포르노로 되돌아가려다가는 자칫 포르노 음성화만 부추겨, 해외 무수정 영상이나 디지털 성범죄가 늘어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AV인권윤리기구(AV権倫理機構)’ 만든적정 AV 지켜야 규칙 훨씬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출연 계약서에는 “AV 출연한다 문구를 명시해야 하고, 3자가 출연 의사를 확인해야 합니다제작사는 AV 5 동안만 사용할 있고, 5 후에는 출연자의 삭제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삭제할 있습니다. AV사무소는 출연료가 얼마나 주어지는지 공개해야 하고, 상담창구를 따로 설치해야 해요. (구체적인 내용은미노루님이 쓰신 [2017결산]2017 일본 AV업계 10 사건사고」를 참고하세요 - 기사 링크)

 

규칙은 지난 2018 1 1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IPPA 가맹업체와 일본 프로덕션 협회에만 적용되는 자율규제라서 법적인 강제성은 없습니다.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같습니다.

 

image3.jpeg

2016 7 11, ‘카와나 마리코는 AV배우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사단법인표현자 네트워크(AVAN)’ 설립했습니다.

 

한편, 여론의 압박은 강해지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업안정법의 취지를 오도해서실제 성행위를 하는 AV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AV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아동 포르노 몰거나, 관련 수치를 과장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AV 관계자들 중에 한국인이 많다며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덕 업체들의 극악무도한 만행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많은 사람들은 배우들의 구체적인 목소리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에 대해실제로 일하고 있는 저희들의 의견과 감정을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며 되묻는, AV배우아마츠카 모에 말은 정곡을 찌릅니다. 숙녀 붐의 주역이었던카와나 마리코 이러한 여론의 움직임이 스스로 원해서 일하는 AV배우들을 범죄자 것처럼 몰고 있다고 말합니다.

 

2016 7 11, ‘카와나 마리코 사단법인표현자 네트워크(AVAN)’ 발족한 AV배우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카와나 마리코가 보기에 출연 강제의 근본적인 문제는직업 차별입니다.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AV배우들은 사무소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만약에 사무소가 악덕 업체라면 임금착취와 출연 강요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입니다. 성노동자도 일반 노동자와 같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된다면 AV배우들도 사무소의 갑질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있겠죠.

 

AV 대한 편견은 없어지기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AV배우도 당연한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도덕과 윤리는 공허한 예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와나 마리코와 AVAN 한계점이 분명합니다. AVAN 설립 당시에 SOD, KMP, 프레스티지 관계 회사들로부터도 후원금을 받았으며, 카와나 마리코의 남편 타메이케 고로는 제작업체의 사장이자 현업 AV감독입니다. 업계의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아니라는 거죠. 배우들이 사무소나 제작사와 갈등을 빚을 얼마나 힘을 실어 줄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image4.jpeg

2017 12 29에비스 마스캇츠라이브 무대에서의 아오이 소라.

 

어찌됐든 2018 무술년은 AV 역사에서 가장 다사다난한 해가 같습니다. 경영난에 문을 닫는 회사가 있을지도 모르고, 경찰의 단속으로 어떤 장르들은 음지로 숨어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형법 175조가 음란죄를 규정하고 있는 이상, 법과 현실 사이의 충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것입니다. AV 완전히 사라질 일은 없으리라고 봅니다만, 모습은 많이 바뀔 겁니다.

 

이상으로 AV에서의 결정적 사건들 19가지를 훑어보았습니다. 구만리 위의 세상에 있는 대붕의 눈으로는 찰나의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잡새의 눈으로는 AV 걸어온 37년의 역사를 19가지로 짤막하게 압축해서 정리하는 벅찬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에는 보다 자세한 썰을 있기를 기약하며, 외람된 말이지만 마디만 하고, 글을 마쳐야 같습니다.

 

아오이 소라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