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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oice of Asia] 캄보디아 삼보 편

2004.7.26.월요일

딴지 국제부
 



독자제위 여러분, 삼복더위에 안녕하신가? 장군이다.


저번 기사에 대해 보내주신 의견들 감사하다. 오늘은 짧게 한 가지만 언급하겠다. 어떤 분이 지적하신대로 ‘중국계 말레이’라는 표현은 필자의 실수다. 지적하신대로 ‘말레이시아 차이니즈’ 혹은 ‘차이니즈 말레이시안’ 이라고 고치는 것이 정확하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저번에 말했던 대로 지금 APU에는 72개국에서 온 천 칠백 여 명의 유학생들이 있다.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섬나라에서 온 이들도 있고, 신생국에서 온 이들도 있다. 다양한 이들이 저마다의 배경을 가지고 모여있는 캠퍼스라 지내다 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생긴다.


그 중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자기 소개가 한국에서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졸업한 학교, 다니는 학교, 직장 뭐 이정도 말하면 땡이다. 물론 학교 동문이나, 같은 지역 출신을 만나면 말이 길어지지만.


하지만 여기서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자기 소개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갈 정도다. 한국처럼 단일 민족인 것도 아니고, 다들 여기저기 떠돈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말레이시아 차이니즈 아무갭니다. 아버지는 차이니즈고 어머니는 말레이죠.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나왔고, 대학은 베이징에서 잠깐 다니다가 APU에 편입했으며... 주절주절


인종도 국적도 천차만별이고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러시아인, 어린시절은 몽골에서 살았고, 커서는 중국에서 살았고, 등등등. 일본계 미국인, 중국계 캐나다인,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스트레일리아인, 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런 식이다.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도 섞여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차이니즈, 말레이 싱가폴리안, 말레이 말레이시안, 이런 용어를 접했을 때 혼란스러워지는 거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필자 아직 충분히 세계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문화적이고 인종적인 잡종성과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이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소속감을 은연중에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예로 들어보자. 예고한 대로 오늘의 이너뷰 상대는 ‘삼보(Smabo)’라는 캄보디아 청년이다. (학교에서 단 일곱 명 뿐인 캄보디아인 찾느라, 약간 힘들었다). 더구나 삼보는 차이니즈 캄보디안이다. (캄보디아에는 크메르 족이 95%다)


이 친구 프놈펜 수학 경시대회에서 탑 텐 안에 들었을 정도로 똑똑하고 문화적으로도 잡종성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넘이다. 중국 노래를 듣고, 일본 드라마를 보고, 영어권 소설을 읽고, 태권도를 즐긴다. 문화 상품은 모두 해당 언어로 접할 정도니, 한국에서 가끔 보이는 5개 국어를 자유롭게 식별하는 사이비는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정치적인 질문에는 민족적인 태도를 뚜렷하게 내보였다.


그래서 오늘의 포인트는,



오늘의 주인공~


“나는 매우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다.” VS “캄보디아의 영토는 18만 1035 제곱 킬로미터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더 이상 영토를 잃을 수 없다.”


는 두 마디 되겠다.


더 자세한 건 나중에 더 말하기로 하자. 그럼 인터뷰 시작한다.
 






이번 인터뷰는 캉 삼보(Kaing Sambo)라는 스물 한 살 먹은 캄보디아 청년과 함께, 6월 18일 기숙사 세미나실에서 두 시간 여 동안 행해졌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캉 삼보라고 한다. 성은 ‘캉’이다. 친구들은 그냥 ‘삼보’라고 부른다. 차이니즈 캄보디안이다. (만으로)스물 한 살이고, 지금 APU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2학년이다.


-언제 조상들이 캄보디아에 왔나


나는 중국인 4세다. 증조부가 20세기 초에 캄보디아로 왔다고 들었다. 당시는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때다. 증조부는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에 정착했고, 이후 계속 그곳에서 살고 있다. (잠깐 생각하다가) 아니다. 딱 한 번 프놈펜을 떠난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 내전이 벌어졌을 때, 가족들이 ‘캄퐁 참(Kompong Cham)’이라는 곳으로 피신한 적이 있다. (지도 참고하시라)



늘 그렇듯.. 지도 등장~


-크메르 루즈(Khmers Rouges) 시기였나.(크메르루즈는 프랑스어로 ‘붉은 크메르’라는 뜻을 가진 급진 좌익 단체다. 크메르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 전, 캄보디아의 이름이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폴 포트(Pol pot)를 수반으로 정권을 잡았으며, 그 시기에 유명한 ‘킬링 필드(Killing Fields)’가 자행됐다. 사망자의 숫자에 대해 논란은 있지만 전인구의 30%인, 150여만 명이 그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행삼림(Heng Samin)에 의해 태국 국경의 정글 지대로 쫒겨났다. 1998년 폴 포트는 사망했고, 다른 지도자들은 현재 전범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가 크메르루즈 시기였다. 당시에 모든 프놈펜 시민들은 프놈펜을 떠나야만 했다. 전쟁이 끝나고 프놈펜에 돌아온 후에 내가 태어났다. 나 역시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프놈펜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나


아버지는 철물을 만드는 회사의 메니저다. 그리고 어머니는 주부다.


-캄보디아에서는 여성이 결혼한 후에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음, 그렇다. 대부분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가 된다. 물론 요즘에는 조금씩 경향이 바뀌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형제는 어떤가


누나 셋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다. 큰 누나는 스물 여덟이다.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도쿄 근처의 추쿠바(Tsukuba)대학에서 국제 관계(International Relationship)를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둘째 누나는 프놈펜에서 의류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셋째 누나는 나와 함께 APU에 다닌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학(Asia Pacific Studies)을 공부하고 있다. 여동생은 프놈펜에 있는 프놈펜 로얄 대학(Royal University of Phnom Penh)에서 언론(Journalism)을 공부하고 있다.


-집에서는 어떤 언어를 쓰나


부모님과는 중국 남동부 지방의 방언인 ‘푸킨(Fukin)어’로 이야기한다. 타이완에서 쓰는 중국어와 비슷하고 생각하면 된다. 누나나 여동생과 대화할 때는 크메르(Khmers)어를 쓴다. 크메르어는 캄보디아의 공용어다.


-학교는 중국인 학교를 다녔나


많은 차이니즈 캄보디안들은 보통의 캄보디아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나는 캄보디아 학교와 중국인 학교를 같이 다녔다. 대부분 캄보디아 학교는 7시에서 11시까지 수업이 있다. 물론 오후에도 수업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유동적이고 빠져도 된다. 그리고 나서 오후에는 중국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중국인 학교는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수업을 한다. 중학교까지 9년 동안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중국인 학교는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학교인가


그렇지 않다. 중국인 학교에서 발행한 졸업장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두 학교를 다닌 거다.


-힘들지 않았나


음, 사실, 아주 힘들었다. 부모님에게도 불평을 많이 했다. (웃음) 하지만 두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예를 들어, 나는 중국의 역사와 캄보디아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다. 지금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중국인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누나와 여동생들도 다들 중국인 학교를 다녔나


그렇다. 중학교까지 다들 중국인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둘째 누나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1978년에 태어났는데 당시가 전시 상황이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또한, 내전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집이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둘째 누나를 고등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와 작은 누나가 고등학교에 갈 때는 집안 형편이 좀 나아져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 한국의 60년대를 보는 것 같아 눈물 나려고 한다)



가난이 죄냐? 불쌍한 둘째 누나~


-너랑 다른 두 누나가 일본까지 와서 공부할 정도면 괜찮게 사는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아니다.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일본에 올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캄보디아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일본에 올 수 있었다.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캄보디아에서 주는 장학금은 사실 일본 정부에서 지원하는 거기는 하지만 말이다.


-부모님에게 돈은 안받나


가끔 용돈 정도만 받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한 분이다. 전쟁 전에는 돈을 괜찮게 벌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랬음에도 다섯 명의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까지 시켰다. 정말 ‘슈퍼맨’ 같은 분이다. (웃음) 지금은 매니저를 하면서 괜찮게 돈을 벌고 있지만 곧 은퇴하게 된다.


-가족들은 모두 중국어와 캄보디아어를 할 수 있나


그렇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모두들 중국어와 캄보디아어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누나들과 나는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일본어와 프랑스어도 할 수 있다.


-프랑스어는 어디서 배웠나


사실, 이 곳에 오기 전 프놈펜 로얄 대학에서 1년 반 동안 경제학을 공부했었다. 캄보디아가 예전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건 알지? 그래서 내가 다니던 경제학부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프랑스어를 제 2외국어로 공부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다른 학부 학생들도 프랑스어를 공부하나


학부에 따라 틀리다. 대학생이라면 영어는 다들 한다. 그리고 법학부, 경제학부, 의학부, 공학부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 많다. 특히 의학부 같은 경우에는 아주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대학생이라면 영어는 어느 정도로 하나


음, 유창하게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 캄보디아는 외국의 지원과 투자를 많이 받고 있다. 때문에 그들 기업이나 기관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영어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지금 캄보디아에서는 영어 열풍이 불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이 어떻게 되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10퍼센트 미만이다. 대학에 가려면 입학 시험을 봐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시험이다.


-어느 종교를 믿고 있나


불교다. 하지만 보통의 캄보디아인들이 믿는 불교와 다르다. 알겠지만 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두 종파가 있다. 캄보디아인들은 소승불교를 믿지만, 우리 집안은 대승불교 쪽이다. 절에 갈 때는 중국 절과 캄보디아 절을 번갈아 간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종교적인 편이 아니다. 절에는 새해에 가족들이 갈 때만 함께 가는 정도다.


-종교적인 갈등은 없나


없다. 캄보디아인들은 95% 이상이 불교다.


-여자친구는 있나


캄보디아에 있을 때는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캄보디아에서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귀는 것이 일반적인가


음,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말 대신에 ‘가까운 친구’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의미는 똑같지만, 그렇다고 일본처럼 같이 자거나 하지는 않는다. 함께 놀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정도다. 그 이상 가까워지기는 힘들다.



손만 잡자, 알았지?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가진 이들의 비율은 얼마나 되나


5퍼센트 미만이다. 아직까지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놀거나 하는 일이 많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지만, 만약 캄보디아인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사귄다면 집에서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 상대자는 누가 정하나


본인이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아직까지 시골에서는 부모님이 결혼 상대를 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프놈펜에는 거의 없다.


-그럼 남자친구, 여자친구 없이 어떻게 결혼하나


결혼 적령기가 되면 주변에서 소개를 시켜준다. (말하자면 중매) 그 후에 몇 번 더 만나보고 적당한 상대라고 판단하면 결혼을 하게 된다. 데이트를 하기는 하지만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고 목적이 결혼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데이트와는 다르다.


-마음에 드는데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나









효도도 법이다?


결혼을 하려면 부모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부모님이 반대한다면,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부모님의 뜻을 따른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해야만 할 거다.


캄보디아인들은 부모를 대단히 존경하고 따른다. 또한, 캄보디아에는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자녀들은 은퇴한 부모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을 어기는 것이 될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매장당하게 된다. (이걸 ‘효도법’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로 그 법을 지키지 않아 감옥에 가는 이들이 있나


음, 그런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부분 부모님의 뜻을 이의없이 따른다.


-처녀성은 중요한가


남자들은 괜찮지만, 여성에게 처녀성은 무척 중요하다. 결혼 후에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공식적으로는 남자의 동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동정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실 어떻게 남자의 동정을 가려내나? (웃음)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안 된다면 남자는 누구랑 자나


직업여성과 하는 경우도 있고, 처녀성에 신경을 안 쓰는 소수의 여성들과 자기도 한다.


-매춘은 합법인가


불법이다. 물론 매춘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에서 강하게 단속을 한다. 작년에는 가장 큰 매춘 거리가 완전히 폐쇄되기도 했다.


-술집도 단속대상이라고 들었다.


사실 야간 업소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키기 때문에 정부에서 규제조치를 내렸다. 그 규제로 많은 술집들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술집이 많이 있고 사람들도 많이 간다.


-결혼 적령기는 어떻게 되나


이른 편이다. 프놈펜에서는 여성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곧 결혼을 한다. 22~23세 정도가 평균 결혼 연령일거다. 시골은 그보다도 빠르다. 열 여덟 정도면 결혼을 한다. 남자는 조금 늦게 결혼을 한다. 평균을 내면 24~25 정도가 될 거다. 그리고 캄보디아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건 한국도 그렇다. 취미는 뭔가


지금 세 개의 서클에 들어가 있다. 태권도, 하이킹, 서예다. 그 중에서도 태권도를 좋아한다. 또 하나의 취미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예전에 봉사 동아리에서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했다. 난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도 느끼고.



한국어 주간에는 태권도 시범도 보였다.


-어떤 종류의 책임감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그리고 어렸을 때 어른들이 우리를 돌봤듯이, 우리도 앞으로의 세대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른다. 그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키워줘야 한다.


-가서 구체적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하나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한다. 예전에 홋카이도에서 수화를 배웠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장애 아이들과는 수화로 대화를 한다.


-아이들은 널 좋아하나


아이들도 나를 아주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 집단에 쉽게 어울릴 수 있다. 내게 한 시간을 준다면 어떤 아이와도 친구가 될 자신이 있다. 아이들은 내가 외국인임에도 수줍어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갈 때는 울면서, 가지 말라고 소리지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한 마디로, 감동을 받는다. (웃음)


-용돈은 어떻게 충당하나


장학금에서 생활비도 지급된다. 하지만 때때로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모자라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는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한다. 장학금에서 나오는 생활비는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서클 활동을 하느라 돈이 모자란 경우가 가끔 생긴다.


-아르바이트는 안하나


일본에 와서는 안했다. 장학금도 받고 있고, 서클 활동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 있을 때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캄보디아에는 영어 학원이 아주 많기 때문에 쉽게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캄보디아에서 대학에 다닐 때, 용돈은 전적으로 벌어서 충당했다.


-캄보디아에서 아르바이트가 일반적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르바이트는 매우 구하기 힘들다. 캄보디아에는 아직까지 정규직 위주이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아르바이트가 활발하지도, 돈을 많이 주지도 않는다. (일본은 아르바이트가 시간당 최소 700엔(한국 돈 7000원 정도)부터다) 대학생 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은 10% 미만이다.


-노래는 어떤 노래를 듣나


주로 중국 노래를 듣는다. 홍콩이나 타이완 노래를 좋아한다. 영어노래도 듣지만. 가라오케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는 ‘하오시엔 하오하오 아이니’ 라는 노래다. ‘정말 너를 사랑하고 싶어’라는 뜻이다. (웃음)


-영화는 어떤 영화를 보나


홍콩 영화를 즐겨 봤다. 하지만 일본에 온 후에는 일본 드라마를 자주 본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아들을 수 있다.


-책은 어떤 책을 보나


영어권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 좋아하는 장르는 공포 소설이다. ‘공포에 대한 여섯 이야기(Six Tales of Fear)’라는 책을 재밌게 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책을 읽는 게 취미였다.


-태권도를 하고, 홍콩 노래를 듣고, 일본 드라마를 보고, 영어권의 책을 읽는 캄보디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나는 매우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다. (웃음) 게다가 캄보디아에서도 차이니즈 캄보디안 아닌가. 다만 내가 어디에 살고, 어떤 문화를 접하건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문화는 좋고, 어떤 문화는 나쁜 게 아니잖는가. 그저 내게 대가오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어차피 출생부터 뒤섞인 존재 아닌가. (웃음)



생각해보면, 나는 꽤 복잡한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논리적인 것만 믿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논리적인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전공이 수학이었다.


-잠깐, 고등학교에도 전공이 있나


그렇다. 중학교에도 있다. 그리고 꼭 전공이 아니더라도, 캄보디아 학교에서는 부모와 상의해 소질이 있는 분야에 집중을 하게 해준다. 수학, 문학, 뭐 이렇게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흥미가 있었고 부모님도 소질을 살리도록 도와주셨다. 뭐,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난 프놈펜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10명의 학생들 중 하나였다.


-앞으로는 뭘 할 생각인가


일단 이번 여름에 교환학생으로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에 갈 거다. 그 곳에서 일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와 졸업 준비를 할 거다. 졸업을 하면 대학원에 가고 싶다. 영국에 있는 대학원에 가는 것이 내 꿈이었다. 캠브리지 대학에 가고 싶은데, 그곳에 가려면 평점이 3.7 이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괜찮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왜 하필 영국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그건 아마, 내가 어릴 적부터 영어권의 책을 즐겨 읽었기 때문일거다. 그리고 교육의 질에 있어서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영국 학위가 있다면, 세계 어디서도 어려움 없이 통한다.


-미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미국은 너무 섞여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왜 하필 캠프리지인가, 학비가 비싸지 않나


비싸다. 하지만 일단 합격하면, 장학금을 받거나, 돈을 빌려서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필 캠브리지인 이유는 한 친구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아주 훌륭한 학력을 가진 변호사다. 그는 중국인인데 베이징 대학, 캠브리지 대학, 규슈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언을 해줬다. 나는 아직까지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없다.


-석사를 따고 나서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일본에 와서 몇 년 정도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싶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유망한 직업은 첫번째가 공무원이고, 두 번째가 회사를 차리는 거다. 나는 지금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정부를 위해 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공무원이 되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다. 그래서 두 번째의 길을 가려고 한다.


-회사를 차린다면 어떤 회사를 차리고 싶나


지금 캄보디아에서 가장 번성하는 업종은 의류업과 여행업이다. 캄보디아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고 앙코르 와트를 비롯해 여러 유적이 관광객들을 끌어오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캄보디아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의류업은 지금 정점에 가까운 상태라 앞으로 회사를 차린다고 해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회사를 차린다면 아마 여행사를 차릴 것이다.


첫번째로 여행업은 서비스업이고 3차 산업이다. 지금 서비스업은 전서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사업이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로 여행업은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본을 조달하기가 쉽다.


-캠브리지에 간다면 투어리즘을 공부할 생각인가


아마, 경영와 투어리즘을 같이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석사 과정을 마치면 일본에 와서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싶다.


-결혼은 언제 누구와 할 생각인가


스물 여덟 정도에 결혼할 생각이다. 상대의 국적은 상관없다. 종교도 상관없지만, 이슬람은 피하고 싶다. 이슬람은 지켜야 할 규칙이 너무 많다. 나처럼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많은 규칙을 따르는 것은 무리다. 물론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웃음)..



사랑한다면 귀찮더라도~


-이상형은


나보다 키가 작은 여자가 좋다.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의 캄보디아인처럼 나보다 두세 살 정도 어렸으면 좋겠다.


-결혼 후 아내가 일을 하고 싶어한다면


난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그녀가 일하고 싶다면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은 몇 명 낳고 싶나


난 평소부터 우리 가족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해왔다. (웃음) 아마 둘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뭔가


내가 무엇을 하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존경하는 인물은


아브라함 링컨이다. 그는 심플한 성격이었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차별을 철폐했다. 그리고 중국인 중에서는 청의 황제였던 강희제를 존경한다. 그는 논리적이었고 사심없는 인물이었다. 또, 난 때때로 내가 삼국지에 나오는 조위 (조조의 아들이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많은 이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각각 저마다의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나


믿는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해도 그 쪽에서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고,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운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헤어진 여자친구도 그랬다. 나도 그녀를 너무나 좋아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왜 헤어졌나


아마 헤어질 운명이었나보지. (웃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서로 많이 바빴다. 같은 학교였지만 전공이 달라서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 정말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차이니즈 캄보디안이었고, 수학을 좋아했고 같은 책을 읽었다. 사실, 그녀도 나처럼 프놈펜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학생 중 하나였다.









우리는 만나서 함께 수학문제를 풀곤 했다


-얼마나 사귀었나


7년 정도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니까.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귀신을 믿나


논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세상에 귀신은 없다. 나 역시 믿지 않는다.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것 역시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귀신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없지 않은가.


-사후 세계는 믿나


(강하게) 그런 건 없다. 동물과 똑같다. 죽으면 그냥 사라질 뿐이다. 물론 불교에서는 사후세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 종교가 교육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바람직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또한 종교인들은 사람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귀신과 사후 세계를 창조해냈다. 죽은 후에 지옥에 간다는 식으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꽤 잘 작동했다. 나 역시 종교를 존중하고 교육적 효과는 인정하지만,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캄보디아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자. 캄보디아의 공용어는 뭔가


크메르(Khmers )어다.


-영어는 어느 정도로 통용되나


캄보디아인들이 모두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로 살아남을 수는 있다. 사실 캄보디아인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외국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일본과의 차이점이다.


-인구는 어느 정도인가


1300만 정도다. 그 중에서 100만 명 정도가 프놈펜에 산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유명한 것 세가지를 꼽는다면


사실 외국인들이 캄보디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앙코르 와트고 두 번째는 지뢰다. 하지만 캄보디아인의 관점에서 나는 앙코르와트 뿐 아니라 캄보디아의 문화 유산 전체가 풍요롭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앙코르와트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두 번째는 동북부 지방의 자연이다. 우리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원시림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원주민들, 화산, 폭포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 개발이 안돼서 찾아가는데 좀 힘들기는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야생소와 호랑이를 비롯해 캄보디아에서 밖에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다.


세 번째로 유명한 것은 ‘빈곤’이다. UN에서는 ‘절대적 빈곤(Absolute Poverty)’의 기준을 ‘하루에 미화 1달라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프놈펜의 국민 소득이 하루 1달라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 대부분이 ‘절대적 빈곤’의 상태에 있다는 얘기다. (2000년 통계로 캄보디아의 국민 소득은 260달러다)



하루 1달러 벌기가 왜 이리 힘드냐


-네가 캄보디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은 뭔가


나는 앙코르와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선조들이 앙코르와트를 지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다. 앙코르와트는 석조 건물이다. 그것이 일본과 다른 점이다. 일본에도 많은 유산들이 있지만 목조가 대부분이고 디자인이 훌륭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다르다. (팔을 벌리며) 이 세미나실만한 돌을 아주 높은 곳까지 쌓아올렸다. 이것은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다.


-앙코르와트에는 몇 번이나 갔었나


(웃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아마 이번 여름에 외국 친구와 함께 갈 것 같다. 캄보디아에 살 때는,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앙코르와트에 대해서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아주 잘 안다. 다만 아직 가보지 못한 것 뿐이다. (필자도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 남산타워를 가본 적이 없다.)


-음, 어쨌든 한국의 독자들에게 앙코르와트를 잘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봐야 한다. 일주일을 봐야 앙코르와트에 대해 대략적인 것들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젊은 이들 중에는 문화 유산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눈앞에 있어도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지 못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하루면 충분하다. 하지만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다면 일주일동안 돌아봐야 겨우 대략적인 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음, 그리고 한국어는 모르겠지만 가이드들은 대부분 일본 말을 잘 한다. 가장 인기가 있는 가이드는 어린 아이들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열 여덟 살 미만의 학생들이다. 그들은 일본어를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음에도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앙코르와트의 역사와 유적에 대해 설명한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들의 설명이 끝나면 네가 원하는 만큼 돈을 주거나, 돈 대신 주고 싶은 물건을 줘도 된다.



세계의 신비, 앙코르와트다.


-캄보디아를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는


추운 지방에 사는 이들이라면 12월을 추천하고 싶다. 캄보디아는 크게 두 계절이 있다. 건기와 우기가 그것이다. 다만 건기의 중간에 한 달 정도 그렇게 덥지않고 서늘한 시기가 있다. 우리는 그 때를 ‘바람부는 계절(Windy Season)’이라고 부른다. 그 한 달이 12월이다. 우기는 5월부터 10월까지인데 그 시기에는 캄보디아를 찾는 것을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종 문제가 있나


캄보디아 내에서는 인종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타이와 베트남과의 문제가 좀 있는 편이다.


-동성애에 대한 정책은 어떤가


법적으로 금지돼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동성애자가 거의 없다.


-동성애자가 없는 건가? 숨는 게 아니라?


그런 행위 자체가 거의 없다. 나는 환경에 의해 동성애 행위가 생긴다고 본다. 동성애자가 늘어나는 것은 그러한 경향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구화’와 ‘세계화’ 경향 말이다. 태국에 게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동성애 경향을 가지고 태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동성애가 생길 수 없다. (동성애자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음, 어려운 문제다.) 캄보디아에서는 동성애자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주변 사람 중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게이로서 태어난다는 주장 역시 인정할 수 없다.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 대한 외국인들의 오해가 고정관념이 있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외국인들은 캄보디아를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앙코르와트와 지뢰를 떠올린다. 하지만 전자는 맞지만, 후자는 틀리다. 캄보디아에 지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한 지역에 매설돼 있을 뿐이다. 단순히 여행을 한다면 지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캄보디아에는 대략 1000만개의 지뢰가 매설돼있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캄보디아의 어디에나 지뢰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약간 흥분하며) 한 외국인 친구는 내게 ‘집 근처에도 지뢰가 있냐’고 물어본 적도 있을 정도다. 집 근처에 지뢰라니,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매일, 집 앞에서 이러진 않는다.


-지뢰지역에 대한 적절한 경고 표시가 돼있나


NGO와 국제 기구들이 함께 지뢰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때문에 지뢰가 있는 지역에는 대부분 철조망이 쳐져 있거나 경고 표시가 돼있다. 물론 모든 지뢰에 경고 표시가 돼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곳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괜찮다.


-술과 담배는 허용되나


그렇다. 열여덟 살만 넘으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마약은 어떤가


마약은 법으로 금지돼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는 부모를 여의거나 버림받은 가난한 청소년들이 아주 많다. 그들 중에는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마약을 운반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마약을 소비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 대신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태워 들이마신다. 그것은 마약보다도 더 지독하다. 그들은 금새 몸이 상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것은 최근에 프놈펜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코카인이나 헤로인은 어떤가


캄보디아에서 마약을 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일단 그들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 근처이기 때문에 마약의 운반 루트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마약 소비보다, 마약 운반이 더 큰 문제다.


-군대는 어떤가


징병제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군대를 줄이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정치적이고 인종적인 문제들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군대는 캄보디아에서 항상 문제를 일으켜왔다.


예전에 크메르 왕국은 거대한 왕국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점점 잃어왔다. 사실 예전에는 앙코르와트가 크메르 왕국의 중심이었다. 너는 얼마나 크메르 왕국이 얼마나 큰 영토를 가졌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북쪽으로는 중국과, 서쪽으로는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점령 시기에 지금의 베트남 남부 지방을 빼앗겼다. 그들은 아직까지 크메르어를 사용하는 크메르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전쟁 때문에 나머지 영토들도 빼앗겼다.


-캄보디아인들은 당시에 영토를 빼앗긴 사실을 아직까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나


(강하게) 나를 포함한 모든 캄보디아인들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영토를 다시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우리는 영토를 잃은 것에 대해 다른 이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자신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최선을 다해서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의 문화적 전통 중 하나는 서로 화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캄보디아인들은 권력을 가지려고 서로 계속해서 싸워왔다. 이 과정에서 예전에 가졌던 땅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선거가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암담한 일이다. 이런 일은 다른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작년 7월 총선을 치른 캄보디아는 1년이 지난 올해 7월에야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연립 정부의 두 축인 훈센 총리의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과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이끄는 푼신펙(FUNCINPEC, 민족주의연합전선) 당 사이에서 지분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또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의 사이에 있다. 태국도, 베트남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 국가가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면 다른 국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국제적인 공조도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않을 거라고 본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군대가 있으면 누군가가 그 힘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말이다. (군대가 있으면 내부 갈등이 생기니 차라리 군대를 포기하겠다는 생각, 얼마나 내전에 시달렸으면 그랬을까)



맨날 쿠데타만 일으키고, 차라리 군대가 없었으면 좋겠다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항상 태국과 베트남에게 시달려왔다. 찬란했던 크메르 왕국이 앙코르와트를 포기해야만 했던 것도,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도 결국은 양 세력의 중간에서 시달림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서 영토도 점점 줄어들게 됐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긴장관계는 최근에 있었던 해프닝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2년 태국 여배우가 ‘앙코르와트가 태국의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캄보디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태국 기업과 대사관을 공격한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보도는 잘못된 것이었다.)


-킬링 필드 얘기를 좀 해보자.


(약간 흥분하며) 킬링필드가 왜 일어났는지는 알지? 그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인 판단 착오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집권자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회를 현실에서 무리하게 구현하려고 했다.


(조금 지루해도 참고 읽으시라. 지구상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킬링필드에 대해 이야기할 참이니까.


20세기 캄보디아는 국제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독립 후 1960년대까지는 친중국노선을 걸었지만 1970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놀(Lon Nol)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친미정권을 세운 미국은 국경을 넘은 베트콩을 잡는다며 캄보디아에 무자비한 폭격을 퍼부었다. 이 때 수십만의 무고한 캄보디아인들이 희생됐다. 이에 민심이 등을 돌렸고, 설상가상으로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하게 되자 이 틈을 타 1975년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정권을 잡은 후 친중국노선이었던 크메르루즈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본따 사회 개조를 시작했다. 그것은 화폐의 폐지, 무역의 금지와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론놀정부에 봉사한 이들을 숙청하고 베트남의 스파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수십만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게 됐다. 안경을 쓴 사람, 손이 하얀 사람을 죽일 정도였다니 뭐. 그렇게 해서 5년 동안 크메르루즈 치하에서 죽은 이들이 100만~150만 명, 그 중 학살로 죽은 이들이 10만~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숫자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누구도 그 학살의 전모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 후반 친중국 노선인 크메르루즈 정부와 친소련 노선인 베트남간의 갈등이 격화됐고, 크메르루즈 정부가 과거 영토 회복을 외치며 메콩강을 넘자 베트남은 행삼린을 내세워 캄보디아를 점령해버렸다. 그리고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군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킬링필드를 전세계에 공개해버렸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킬링필드다.)


-영화도 유명한 데 봤나? (<미션>을 만든 롤랑조페 감독의 1985년작이다)


봤다. 그것은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기도 하고.


-영화에 나온 내용이 대부분 사실인가?


영화 자체가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서구적 시각에서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내용도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약간 과장되긴 했더라..


-크메르루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착잡한 표정으로) 나는 킬링필드가 크메르루즈의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본성이 나쁜 이들은 아니었다. 다만 정치적으로 판단을 잘못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크메르루즈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농업 생산량을 증가시키기로 결정했고, 모든 이들을 농부로 만들었다. 이처럼 그들은 지나치게 공상적인 사회를 구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다른 목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네가 크메르루즈가 좋으냐, 나쁘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쁘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답변이 호의적이다. 그것이 실수였다면, 너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나


(강하게)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았던 간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법정으로 가야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지금 전범재판이 진행중인 걸로 아는데


UN과 캄보디아 정부는 어떻게 그들을 재판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할 것인가 국내적으로 할 것인가, 판결은 누가 내릴 것인가, 하는 것 등의 문제다. 결국 재판은 ‘국제적 수준의 국내법정’에서 하기로 했고, 재판부도 캄보디아인과 외국인들이 함께 맡게 됐다.


-하지만 캄보디아인들이 더 많지 않나


원래는 반반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훈센 총리가 이를 거부했다. 그것은 외국인 재판관이 지나치게 많으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훈센 총리 자신도 한때 크메르루즈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는 것은 그에게 별로 유리하지 않다. 때문에 전범재판의 재판부에는 캄보디아인이 약간 더 많다. 하지만 외국인 재판관이 한 명 이상 동의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돼있다. 그것이 ‘플러스 원’ 제도다.


(후세인 전범 재판은 지금 열리는데, 왜 크메르루즈 전범재판은 25년이나 지나서 열리냐구? 거기에는 여러가지 얽힌 속사정이 있다. 훈센 총리는 자신과 측근들의 과거 문제 때문에 재판소 설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 동시에 크메르루즈 뿐 아니라 1970년부터 현재까지를 재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1970~1975년까지 미국의 폭격으로 인한 학살과 이후 크메르루즈에 대한 UN의 지원까지도 문제를 삼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크메르루즈가 베트남에 의해 물러난 이후에도, 베트남에게 악감정을 가진 미국과 UN은 베트남 괴뢰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크메르루즈를 UN에 출석시키는 등 직간접적으로 크메르루즈를 지원했기 때문에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결국 6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시기는 1975년~1979년 크메르루즈 통치기를 대상으로, ‘국제적 수준의 국내법정’에서, 외국인과 캄보디아인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의해 열리기로 합의를 봤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범재판이 합의됐는데, 공정하리라고 생각하나


약간 서구편향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엠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는 재판부가 지나치게 캄보디아 정부 쪽으로 치우치게 짜였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미국의 폭격을 재판에 세우는 문제는 어떤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관돼있다. 크메르루즈와 미국의 폭격, 그리고 훈센 총리까지도 말이다. 훈센 총리는 지금은 자본주의적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출신은 사회주의자다. 미국은 그런 훈센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훈센이 미국의 폭격을 법정에 세우자고 주장한 것이다. UN 역시도 미국의 폭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 폭격도 법정에 세우란 말이다!


-재판부가 서구적이라면, 더 많은 캄보디아인이 재판부가 되어야 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더 많은 캄보디아인이 재판관이 된다면 훈센 총리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고 크메르루즈에 호의적인 결정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훈센 총리는 크메르루즈를 단죄하는데 어정쩡한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서구편향이 아니라 크메르루즈 편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폭격 문제도 심판된다면 캄보디아인들에게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럼 만약 네가 재판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바꾸겠는가


(한참 생각하다가) 만약 공존을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고 과거를 잊자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선택이 최상의 선택이다. 사실 지금의 아웃라인은 거의 공정한 편이다. 문제는 재판 과정이다. 재판 과정에서 자본주의적인 관점과 사회주의적인 관점이, UN, 미국과 훈센정권의 관점이 부딪치게 될 것이다. 재판과정, 증거, 증인 모든 것에서 말이다. 전혀 다른 두 세계관이 부딪치면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무엇이 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인가


크메르루즈에 대한 재판만을 두고 보자면 재판부와 재판 절차는 지금으로서는 공정한 편이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관점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던 시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폭격 문제가 제외된 것도 그 때문이다.


-훈센 총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사실, 훈센은 아주 강한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판단하는데 아주 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이상이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사람이 현 총리 훈센이다.


-너는 그를 지지하나


그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캄보디아에는 훈센 총리가 있는 캄보디아인민당(CPP, Cambodian People’s Party), 라나리드 왕자가 이끄는 푼신펙(FUNCINPEC, 민족주의연합전선), 반정부 노선의 삼랭시당(Sam Rainsy Party)이 있다. 하지만 훈센 총리의 집권당이 너무나도 오래 정권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다른 당에는 인적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캄보디아인민당이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파가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그들이 국가를 잘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최악의 차선(Best of the Worst)’이라는 말인가


정확하게 그렇다.


-킬링필드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보자.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나


여러가지 통계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350만이 죽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캄보디아인 네 명 중 한 명이 죽었다는 거다.



참.. 죽기도 많이 죽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수치가 베트남 정부에 의해 과장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이 맞다. 사망자 통계를 낼 때, 중복해서 세어진 경우가 많다. 그것은 사망자의 숫자를 셀 때, 단순히 지역마다 집계된 수치를 더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쟁 당시에 부모와 자녀 5인 가족이 이산가족이 된 다음에 죽었다면, 그들은 각각 하나의 온전한 가족으로 세어졌다. 결국 두 배가 되는 셈이다.


-정확한 수치를 알고 있는가


모른다. 물론 여러 가지 수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수치가 정확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외부인이 집계했다고 해서 그 수치가 맞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의견은 어떤가, 어떤 수치를 믿고 있는가


(한참 생각하다가) 폴포트 정권 하에서 죽은 이들은 2백만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들이 모두 처형당한 것은 아니다. 굶주림이나 병 때문에 죽은 이들이 더 많다.


-미국의 폭격에 의해서는 얼마나 죽었나


역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폴포트 정권 하에서보다는 덜 죽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만큼 죽었다면 지금 캄보디아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마 10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약간 흥분하며) 하나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병에 걸려서 죽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한다. 또한 전쟁 당시에 죽었어도, 크메르루즈에 의해 죽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폭격에 의해 죽기도 하고 베트남군에 의해 죽기도 했다. 수백만이 죽었다고 해서 모두 크메르루즈가 죽인 것은 아니다.


-그 시기의 캄보디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단호하게) 암흑시기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캄보디아의 모든 가족은 구성원 중 최소한 한 명을 그 시기에 잃었다. 내 집안에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고모와 삼촌이 죽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완전한 암흑시기였다. 캄보디아인 누구도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암흑시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단 말이다!


-미국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


폭격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좋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의 입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싸운 것이고 반대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을 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누구 한 진영이 이런 참혹한 사태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책임은 모든 이들에게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명확하게 이것은 크메르루즈의 잘못, 저것은 미국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때문에 만약 재판을 한다면 크메르루즈, 미국, 베트남 모두를 재판해야 이치에 맞다. 인권과 평화의 이름으로 말이다.


-크메르루즈를 재판함에 있어서,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해야 하나


(단호하게) 크메르루즈와 그와 관련된 이들까지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미 죽었다. 폴포트도 죽었다. 어떤 시사만화에서는 전범재판이 난항을 겪을 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죽은 사람만 심판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체포된 이들도 모든 잘못을 폴포트에게 전가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미 흘러간 역사이기 때문에 진실만을 밝혀내고 용서하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심판과 진실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진실을 택할 것이다. 진실 없는 심판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심판도 중요하다. 지금 법정에 선 여섯 명에게라도 심판이 내려진다면 역사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더 많은 이들을 심판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폴포트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그의 이상은 그 당시에 정확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도? 어떤 이들은 그가 잔인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 논리적으로 더 큰 문제는 그의 이상 그 자체에 있다.



이 넘이 그 악명높은 폴포트다.


-다른 캄보디아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캄보디아인들은 그를 악마 같은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가족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결정은 그 혼자만 내린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동참했고, 중국 정부도 그를 지원했다.


-저번 총선에서는 어느 당에 투표를 했나


꼭 말해야 하나? 그냥 이렇게만 말하겠다. 나는 정부를 지지하는 편이라고. (웃음)


-베트남과 태국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싫어한다. 물론 베트남인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어렸을 적에 프놈펜에 사는 베트남 친구와 놀곤 했으니까. 태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과 태국이 자신들의 영토를 늘리려는 시도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최근에는 폭동을 일으켜 태국 대사관에 불을 지른 적도 있다.(이미 말한 바 있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만약에 그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국제사회 역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캄보디아의 영토는 18만 1035 제곱 킬로미터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더 이상 영토를 잃을 수 없다. 국경은 상호간의 조약을 통해서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다.



자꾸 슬금슬금 땅을 뺏어가면, 너같으면 화 안나겠냐!


-너는 앞으로 캄보디아가 계속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아마 정치적인 위기가 몇 번 더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캄보디아에는 불안정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 선거 시기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본다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또 다른 쿠데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더 이상의 쿠데타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사실 쿠데타는 힘의 불균형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고, 권력도 잘 분산돼 있다.


-시민들은 현 정부를 지지하는 편인가


선거결과를 놓고 보면 그런 것으로 보인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뭔가


그것은 빈곤과 정치적 위기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나


정치적 위기에 관해서라면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두 정당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두 정당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문제다. 그들은 매우 이기적이다. 권력을 가진 이는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지금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테러리즘’과 종교적, 지역적 갈등이다. 특히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갈등이 문제다. 중동 지역과 유럽 지역은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서로의 입장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동지역에서 나오는 석유도 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어떻게 풀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라크 전쟁은 언제까지 계속되리라고 보나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상황이 안정되면 그 때부터는 좀 더 안정적으로 되리라 본다. 물론 평화유지군이 파견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나는 UN이 국제사회에서 조금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번에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UN은 ‘평화를 지키는 활동(Peace Keeping)’ 뿐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내는 역할(Peace Making)’도 해야 한다. 전자가 전쟁이 끝난 후에 구호품을 들고 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전쟁의 중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UN도 결국 미국과 몇몇 서구 선진국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나


그런 면이 있다. 그렇게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먼저다. 사실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일방적으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점점 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더 큰 협상력을 가지게 되고 있다. 일본이나 인도처럼 말이다.



UN 너네 만나서 노냐? 똑바로 하란 말야!


-왜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나


그의 아버지인 부시 대통령 역시 이라크와 전쟁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끝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911 테러 말이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언젠가 인류가 멸망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구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소멸하게 된다. 물론 수명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연한 자연의 과정이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과정은 더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큰 위험은 뭔가


그것은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이다. 핵무기는 인간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조금씩은 조정될 수 있지만, 전체를 바꿀 수 는 없다.


-지금부터는 한국에 대해서 물어보겠다. 한국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먹거리에 관해서라면 ‘김치’가 떠오른다. 그리고 한국 남자들에 대해서라면 아주 ‘남자다운 남자들’ 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일본 남자와 비교하면 그 점은 더 확실하다. 어쩌면 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권도는 어떻게 배우게 됐나


사실 캄보디아에 있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와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APU에 들어와 태권도부에 들어간 거다.


-APU 태권도부에는 외국인들이 얼마나 있나


작년까지는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지금은 두 명의 일본인이 있다.


-아는 한국어가 있나


‘배불러’, ‘배고파’ (웃음) 나는 이 말을 한국 친구의 어머니에게 배웠다. 저번에 한국에 갔을 때 태권도부 회장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회장 어머니와 내가 함께 있었는데,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녀는 내게 ‘배고파?’ ‘배불러?’ 이 두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했다. 처음에는 뜻을 몰라서, 배고픈데 배부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웃음) 하지만 곧 기억하게 됐다. 지금은 ‘배고파요’, ‘배불러요’ 같은 존경어도 알고 있다. 숫자도 1부터 8까지 셀 수 있다. 해볼까? ‘하나’, ‘둘’, ‘셋’, ‘넷’... 멋진 경험이었다. 그 후에도 다른 두 명의 친구집에 초대받아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상품 중에서 아는 것이 있나


나는 3년 전에 ‘겨울연가’를 캄보디아에서 봤다. 요즘에는 일본 TV에서 ‘올인’을 보고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도 봤다. (또 ‘겨울연가’, ‘엽기적인 그녀’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가 캄보디아에서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다. 대신 캄보디아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자동차 기업을 알고 있다.








올인 이 것도 최근 일본 케이블에서 방송중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나


그들이 지금의 정권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들은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이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김정일 정권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희생해야 원하는 만큼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바뀌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첫번째가 더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한국이나 한국인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면을 꼽는다면


캄보디아인과 비교하자면 한국인들은 운이 좋다. 한국인들은 산업화된 국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생존 능력은 캄보디아인들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빙하기가 찾아온다면 한국인들은 캄보디아인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웃음) 캄보디아인들은 가진 것 없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견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이 현상은 어느 선진국에도 적용되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번 친해지고 나면 한국인들은 친구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준다. 그들에게는 친구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 같다. 그들은 친구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부정적인 면은, 간단하게 말하겠다. 그들은 컴퓨터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 컴퓨터를 하면서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운동이나 공부를 할 시간에 그것들을 하지 못한다.



게임, 한국에서만 문제는 아닌갑다..


-태권도는 어떤가


나는 태권도에서의 발차기가 마음에 든다. 킥복싱에서도 발차기가 있지만 태권도처럼 높이 올라가진 않는다. 그리고 킥복싱과는 기본 관점이 확연하게 다르다. 태권도는 자신을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운동이다. 그에 비해 킥복싱의 동작들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동작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런 이유에서 태권도를 좋아한다.


-태권도는 충분히 국제화된 편인가


그렇다. 캄보디아에서도 태권도를 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발전의 여지는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완벽한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태권도 내에서도 보수적인 이들과 개혁적인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국제화 시대에 맞춰 조금 더 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국은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지금 모습은 과거의 일본을 보는 것 같다. 일본 역시도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일을 해서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일본의 어느 대학에 가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그다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금의 발전에 만족하고 미래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한국은 그래서는 안 된다.


사실 APU에서도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별로 안 하는 편이다. 여기서 쉽게 발견할 있는 사실은, 선진국이고 더 발전된 나라일수록 별로 공부를 안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논리적이다. 그들은 생존에 대해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 인터뷰가 끝났다.


‘나는 복잡하게 뒤섞여있는 사람이다.’ VS ‘캄보디아의 영토는 18만 1035제곱킬로미터다. 우리는 여기서 더 이상 영토를 읽을 수 없다.’   


문화적으로는 섞여있지만, 민족주의적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차이니즈 캄보디안, 흥미로운 현상이다. 물론 이 현상이 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네티즌들이 가끔 놀라울 정도로 민족주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네티즌들이 고구려사와 관련해 한국의 서버를 공격하고, 일본과 한국이 인터넷 상에서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일은 이미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민족주의 경향과 국제화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에 나가니 애국자가 되었다는 얘기가 대부분 맞는 것처럼, 더 많은 세계를 접할수록 자신의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서일까?


같은 맥락에서 ‘국제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라는 상반되는 경향이 지금 전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 해볼만 하다. (어떤 학자는 이를 혼합해 ‘세방화(Glocalization)’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국제 기구의 발전과 지방 자치가 동시에 일어나고, 초국가적 경제 블록과 소규모 경제 집단들이 동시에 발전하며, 전지구적 네트워크와 사랑방 네트워크가 동시에 발전하고 있는 언뜻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지금 지구별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의 전공인 미디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상하게 생긴 접시를 달면 백 개가 넘는 전세계의 체널을 시청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 체널을 다 보는 게 아니다. 그들은 흥미가 있는 서너 개의 체널을 서핑하며 더 매니아적으로 변해갈 뿐이다. 또, 전지구적인 네트워크가 가능한 인터넷에서 접속한 채로, 우리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동창회를 만들거나, 일촌을 만들거나, 메신저를 하거나, 뭐 이 정도 아닌가?


어쩌면 그것은 전세계적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서 생기는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나도 넓은 세계를 접하면서 결국 의지할 곳은, 내 주변 밖에 없다는 식의 사고를 갖게 되는 것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지만, 그 본성과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아는 국제적 감각을 조화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 아닐까? 뭐 이 문제는 이 정도만 얘기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두 번째로는, 킬링필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여기까지 주의 깊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제 킬링필드에 대해 조금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됐으리라고 본다. 사실,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즈만의 작품이 아니다. 베트콩을 색출한다며 히로시마 핵폭탄의 스물 다섯배에 달하는 폭탄을 쏟아부은 미국의 책임도 있다. 결국 그 폭탄이 수십만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했고, 크메르루즈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폴포트는 악마고, 킬링필드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려했던 크메르루즈의 책임’이라고 정의하고 간단하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말이다. 책임은 삼보가 말했다시피 모두에게 있다. 물론 크메르루즈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말이다.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은 다음,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을 지원한 이들이 누구였나? UN과 미국 아닌가.


또, 베트남에 의해 크메르루즈가 물러난 다음 베트남이 침략의 책임을 덜고자 믿기 어려운 킬링필드를 공개했을 때, 미국과 UN은 전범재판의 ‘전’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무시해버렸을 뿐이었다. 베트남에 의해 세워진 정부 대신 계속해서 크메르루즈군을 캄보디아의 정식 대표로 UN회의에 참가시킨 것이 누구였나? 꼭두각시 정부를 거부한다며, 전범재판에 서야 할 이들을 국제회의에 참가시킨 미국과 UN 역시 킬링필드의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메르루즈의 전범재판이 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양상은 크메르루즈를 단죄하면서, 미국과 UN이 자신의 책임을 덜어보겠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지금 킬링필드의 모든 책임은 법정에 선 여섯 명의 전범들에게 집중되고 있고, 그 여섯 명의 전범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미 사망한 폴포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필자는 전범재판을 연다면, 최소한 미국과 UN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 사과하는 모습을 먼저 보였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사과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열리는 재판은 그야말로 정치적 게임이고, 비열한 흥정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크메르루즈가,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들이 악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레토릭일 뿐이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엔 ‘악마’도, ‘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뿐이다.


사실 ‘크메르루즈는 악마고 마더 테레사는 천사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긴 하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간단한 존재이던가? 세상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악도 죄악도 모두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죄의식 없이 편하게 잠자리에 들게 된다.


하지만 유태인을 죽인 것도, 세상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도 결국 우리의 이웃이 아니었던가. 한나 아렌트가 나치의 전범재판에서 ‘악이 저렇게 평범하다니’라고 탄식했던 것을 떠올려 보자.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 역시 제거되어야 할 우리의 일부인 셈이다. 또한 언제라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조건이 주어지면 악으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나갈 수 없는 셈이다.


이번 기사에는 말이 좀 많았다. 다음 주에는 더 좋은 기사로 찾아 뵙겠다. 다들 시원한 여름 보내시라~


(아직 다음주 기사를 뭐 쓸지 안 정했다. 두 개 중에서 망설이는 중이다. 고로 다음주 예고는 없다. 꾸벅)



 


딴지 특파원
장군(peacechao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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