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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메이저리거 카를로스 델가도의 반전시위

2004.7.24.토요일
딴지 국제부




알면서 당한 건지, 자해쇼를 벌인 건지 돌아가신 양반들만 불쌍한 9/11 이후로 메이저리그(Mager Legue Baseball, 이하 MLB)에 생긴 새로운 풍습이 하나있다. 야구장에서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선수 관중 모두 기립해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하는 건 예전부터 그랬지만 9/11 이후부터 야구장을 찾는 관중들은 5회말이 끝나고 몸푸는 시간에 일어나서 스트레칭 하는 것 이외에 한번 더 일어나야 한다. 7회말이 끝나고서 관중 선수가 모두 일어서 [God Bless Ameirica]라는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마치 애국가나 되는 듯이 기립해서 있어야 하는 거란다.


필자, 이점 심히 맘에 안 들지만 수만 관중들한테 집단 구타 당할까봐 겉으로는 말 못 하고 속으로만 God Bless Fucking Ameria라고 외치면서 나름대로 보이콧이라며 모두들 일어서 있는 동안 혼자 꿋꿋이 앉아서 버티었다. 지난번 언젠가 한번은 학생들 데리고 단체 관람 온 선생처럼 보이던 앞자리 앉은 중년 아저씨가 너 뭐냐, 왜 앉아있는 거냐 일어서라라는 소리를 듣고 그냥 쌩까고 수많은 눈초리를 견디며 앉아서 버티던 경험도 있더랬다.


지들이 보기도 너무 민망하다 싶었는지, 대부분의 구장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주말경기에만 이 의식을 거행하고, 몇몇 경기장에서는 아예 이 의식을 중단하고 있는 가운데 딱 한군데 매 경기마다 이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구단이 있으니.. 그 이름도 겁내 양키스러운 절대강자 뉴욕 양키즈.


제이슨 지암비 영입에 이어, 모험 삼아 일본에서 영입한 히데끼 마쓰이까지 대박을 터뜨리고도 2003 시즌 생각지도 못했던 플로리다 말린스에 막혀 우승을 못하더니만 올해는 아예 캐빈 브라운에다가 게리 셰필드에다가 케니 로프튼에다가 하비에르 바스케스에다가 이거로도 모자라 현역 최고 선수 중에 하나인 알렉스 로드리게스까지 영입한 야구계의 레알 마드리드 혹은 삼성화재 뉴욕 양키즈.


누가 양키 아니랄까봐, 이놈의 구단 운영하는 거 보면 끝내주게 미국적이다. 예컨대 9/11 이후에 양키스타디움 입장에 무료입장제도가 하나 생겼는데 현역 미군은, 한국의 잠실야구장으로 치자면 내야 2층석 정도에 해당되는 좌석에 신분증만 내밀면 무료로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양키스타디움을 방문한 사람들은 God Bless America를 자랑스레 외치고서는 지들끼리 좋다고 박수 치고 환호하곤 한다.



 


푸에르토리코(Puerro Rico)라는 나라가 있다. 나라라고 하기엔 좀 껄쩍지근한 요건이 있긴 하만 어쨌든 나라는 나라다. 이 나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미국의 자치령이라고 설명이 돼있다. 내정은 독립되어있지만 외교와 국방은 미국이 담당하고 있는 나라다. 간단히 말해서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후의 대한제국의 상태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가 푸에르토리코(PuertoRico).


보드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대중적이진 않지만 가장 정교하고 잘 디자인된 게임 중에 하나인 <푸에르토리코>라는 이름의 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게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유저들이


미국인 혹은 다른 나라에서 온 개척자가 되어 노예를 이용, 푸에르토리코의 생산물들을 경작하고 수확한 다음에 가공해서 본국(미국)에 내다 팔아 제일 돈을 많이 번 놈이 이기는 내용이다.


사실 필자 이 게임을 처음 접해보고는 그 정교하고 세련된 룰에 감탄하여 매니아가 되기에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게임 내용이 말하는 잔혹함을 생각하곤 재밌어도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왜냐, 거의 모든 경제/계발류의 보드게임들이 비슷한 형태이지만 그래도 <카탄의 개척자(The Settlers of Catan)> 같은 게임은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게임인 것에 반해 <푸에르토리코>는 아예 대놓고 푸에르토리코가 게임 이름이자 배경이다 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처럼 게임과 마찬가지로 푸에르토리코는 이름만 독립되어있지,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이고 국방을 미국이 책임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미군도 주둔하고 있는 그런 나라다.


확실히 푸에르토리코는 운명이 참 기구하다. 소수 원주민이지만 지들끼리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푸에르토리코가 처음 서양인들의 눈에 걸린 건 1493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 지난한 항해도중 코스타리카를 인도라고 착각한 콜럼버스가 다시 몇 번 대서양을 넘어서 여러 섬을 껄떡대다가 발견한 섬 중에 하나가 바로 푸에르토리코였던 것이다.


콜럼버스는 바로 이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외치고는 스페인령을 선포했고, 그 뒤로 1508년에 후안 폰세 레온(J. P. Leon)이라는 양반이 개발권을 위임받아 와서는 무자비하게 섬을 파헤치고 각종 농산물과 금광을 뺏어가기 시작했다. 1511년 원주민들이 스페인에 항의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대규모의 화력에 바로 진압되고 그 뒤로 계속 스페인령으로 남아 유럽의 자원기지 중 하나가 된다.


19세기 후반까지 끊임없는 원주민들의 독립요구에 1897년 스페인은 드디어 이 조그마한 섬나라에 독립... 은 아니고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였으나 그 자치제가 실시 되기도 전에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둘러싼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지고 여기서 이긴 미국은 스페인이 약속했던 자치제를 싸그리 무시하고는 미국령을 선포, 군정을 실시해버린다.


외교권 박탈-총독제 실시-제국주의 국가들끼리의 식민지 쟁탈 싸움-군정선포-승리한 제국주의 국가의 또 다른 2차 식민지화 어디랑 비슷하지 않은가? 교묘하게도 한반도의 역사와 거의 일치하는 게 이 나라 푸에르토리코의 운명이다.


그 뒤로 푸에르토리코는 노골적인 미국의 식민 지배가 계속되어오다가, 1952년 드디어 자치권을 이양 받게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국방, 외교, 통화는 빼고.. 게다가 몇 백 년의 세월이 너무나도 길었는지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일부 강경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1967년의 국민투표에서 스스로 독립을 거부하고 미국의 자치령으로 남아있기를 결의하는 내용을 통과시켜버린다.


그래서 이곳의 주민들은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는 있지만 국적은 푸에르토리코인 애매모호한 소속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또한 그들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워싱턴의 하원 의회에 있긴 하지만 그 의원에게 표결권이 없는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강경파들의 끊임없는 독립요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미국의 주로 승격되어 진짜 미국인이 되기를 바라는 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결국 푸에르토리코는 내선일체된 이광수나 서정주처럼, 미국의 풍요로움을 거부하지 못하고 굴복해버린,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미국에 종속되어버린 조그마한 섬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푸에르토리코는 MLB 선수들을 꽤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대표적으로 뉴욕 양키즈의 중견수 버니 윌리엄스와 포수 호르헤 포사다,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이반 로드리게즈와 휴스턴의 카를로스 벨트란은 모두 푸에르토리코 출신 선수들이다. 도미니칸 공화국과 더불어 자국출신으로만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짤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카를로스 델가도(Carlos Delgado, 32) 역시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얘가 속해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Toronto Bluejays)는 MLB를 보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인기가 워낙에 없는 미국 변방의 캐나다 팀인고로 경기를 볼 기회는 별로 없다. 팀은 이리도 볼품없지만 카를로스 델가도 개인으로 볼 때 실력으로만 따진다면 MLB에서도 정상급에 속하는 선수다.









카를로스 델가도(Carlos Delgado)


2003년까지 11시즌 통산 1295경기에 출전, 1,290안타, 815득점, 304홈런, 959타점, 타율 .284을 기록하고 있고, 커리어 하이를 때린 작년의 경우에는 아메리칸리그 타점 1위, 홈런 2위의 맹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레인져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즈에게 밀려 MVP 투표에서 아깝게 2위를 차지했던 슈퍼스타 중에 한사람이다. 연봉도 MLB 합쳐서 전체 3위다.


특기할만한 점은 카를로스 델가도는 얼마 안 되는 푸에르토리코 독립파 중에 한사람으로서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미공군이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섬에서 강행하고 있는 미사일 폭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수천만달러의 기부금을 뿌려가면서 여기저기에 호소해 왔고, 결국 그걸 중지하는데 큰 역할(주로 로비자금)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까지의 눈부신 성적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부상으로 2할대의 타율과 10개를 갓 넘긴 홈런, 40점의 타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던 그가 뉴욕 양키즈와의 시즌 첫 맞대결을 앞두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뉴욕타임즈>에 [God Bless America]를 거부하겠다는 인터뷰를 해 화제를 모았다.


사실 그의 [God Bless America]의 거부는 시즌 초부터 계속되어온 자신만의 저항이었지만 많은 구장들이 이미 이 곡의 연주를 중지해온 상황에서 매 경기 연주를 고집하고있는 양키스타디움에서의 그의 이러한 발언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를 본 악의 제국 양키즈의 수장인 조 토레 감독은, 그러면 안될텐데..라고 되내었지만 이튿날 7회말이 끝나고 국가가 연주될 때 카를로스 델가도는 다른 선수들이 모두 나와서 기립하는 가운데 덕아웃을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만의 뉴요커들은 우우~하는 야유를 보냈고, 일부 관중들은 USA! USA!를 연호하면서 자신들의 애국심(?)을 스스로 자랑했지만, 결국 델가도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그 날 경기를 마쳤다.









버드 셀릭 MLB 커미셔너


크게 논란이 된 이 사건이 다시 한번 맞이할 고비는 버드 셀릭 MLB 커미셔너의 반응이었다. 한국에 비교하자면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에 해당하는 MLB의 수장이 [God Bless America] 연주를 주도한 장본인이란 점에서 델가도의 반항을 어디까지 용납할 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커미셔너라는 MLB 사무국의 수장의 위치가 예전 무소불위의 권력에 비해서는 크게 축소된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짱으로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상당하는 점, 그리고 선수제재에 대한 모든 권한이 그의 서명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버드 셀릭과 카를로스 델가도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과 예상되는 충돌은 단순히 야구라는 스포츠를 넘어서서 정치적인 요소로 비화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던 거다.


실제로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뉴욕타임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이 같은 사실에 좀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있는 과정이지만 최종적으로 델가도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눌 것이다. 나는 국가에 대한 존경과 개인의사 표현의 자유 같은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라고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쏭달쏭하게 꼬아놨지만 잘 뜯어보자면, 개인의사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국가에 대한 존경을 거부한다는 건 인정 할 수 없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9/11 이후 국수주의에 광분하는 미국에 비해서 좀 더 이성적인 캐나다에 위치한 토론토 블루제이스 구단 측에서는 이러한 델가도의 항의시위에 대해 본인의 의사표현이라며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MLB가 캐나다가 아닌 미국의 리그라는 점에서, 또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의 비율이 3:1을 차지하고 있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도시인 뉴욕 사람들이 집단 야유를 보내면서 USA! USA!를 연호 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델가도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 중에 하나라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직 MLB 선수노조는 이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사회에서 MLB를 비롯한 주요 스포츠들은 정치적인 이슈에 중립을 지킨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경기장에서 [God Bless America]를 부르는 행위 자체가 적어도 외국인인 필자의 눈에는 집단적인 정치행위로 보였다. 이라크 인민에게 자유를 주겠다며 해방시키러 간 미국이 과연 이 마이너리티의 소수의견 표명의 자유에 대해서 얼마나 관용을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사실 필자 개인적으로는 MLB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서재응, 최희섭 선수 - 마이애미에는 안 가봐서 플로리다는 모르겠지만 서재응 선수가 뛰고있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 쉐어 스타디움은 주말경기마다 [God Bless America]를 연주한다 - 가 델가도처럼 조그마한 반전 시위에 힘을 더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자치령 푸에르토리코 소속으로 미국 시민권을 가진, 절반은 미국인인 델가도에 비해서 외국인 노동자인 한국인 선수들이 그런 입장을 표명하는 건, 관중들은 물론 팀내에서 자신의 입장도 굉장히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도 못하는 일을 그들의 밥줄을 걸고 해야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고 그냥 생각만 해본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영국과 스페인이 이에 공조하여 동맹군으로서 군대를 파병하였을 때, 시즌이 한참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Per la Pau(For Peace)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들고 El Bar&ccedil;a, per la pau (Barca for Peace)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은 채 경기 전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자국의 동조에 반대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


역시 파시스트 프랑코의 독재에 맞서 싸웠던 인민전선의 해방구이자, 오랫동안 마드리드 정부에 대항해왔던 저항의 땅, 까딸루니아의 팀다운 행동이었지만 이러한 시위를 메이저리그에서 혹은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 보는 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혹시나 그런 팀이 있다면 필자 지금 응원하는 팀 버리고 당장 그 팀 팬 되겠다.




델가도에 박수를 보내며
 뉴욕에서 샤이
(shyblu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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