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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대중음악으로 소통하기

2004.7.23.금요일
딴지 생활부


어제는 미국에서 막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온 친구 녀석을 만나 오랜만에 반가운 술잔을 기울였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언뜻 언뜻 스치는 이야기는 그립다는 것이었고, 뭐가 그립냐 하면 고향, 고향의 사람들이 그립다는 것이었다. 이런 감정을 스치는 것은 꼭 어제 뿐만은 아니었다. 해외로 떠났다가 잠시 돌아와 재회하게 된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면 가슴으로 눈빛으로 어김없이 그러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었던 것 같다.

 

웃음과 눈물을 섞어가며 친구들과 농담과 진담을 나누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그러한 감정들이 거세된 삶이, 그것도 장기간의 삶이 닥쳐오는 것은 어찌 보면 개인적인 불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대화판, 아니면 진지하고 감성 넘치는 대화판들...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는 그 어느 공간에도 쉬이 깃들 수 없는 이방인(異邦人)들의 삶이란 얼마나 답답할까 싶은 것이다. 물론 그는 고난의 대가로 사려 깊은 지혜 혹은 환금성 학위(學位)를 넘겨받기도 하겠지만.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삶으로서 향유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올 봄 어느 주요 일간지들에 실렸던 번역 논란 기사를 보아도 그렇다.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일급 번역가들이 번역한 책들마저도 오역 투성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유학까지 다녀온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네이티브가 아닌 이들의 언어 습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번역도 이러할 진대 외국의 언어를 삶으로서 향유하고 그를 통해 타인과의 공감에 이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메타포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제값이 온전히 발휘되는 예술의 영역에서는 두 말하면 잔소리일 터이다.

 

그런데 비교적 근래에 음반을 발표하고 있는 몇몇 인디 뮤지션들은 영어로만 이루어진 가사들을 통해 자신들의 새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아니면 노래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의 제목이라도 올 영어로 짓고 말던가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가끔가다 기억 저편의 염소목청 임병수를 환기시키며 들려오는 스페인스럽고 남미스러운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그들 대부분은 잉글리쉬를(가끔씩 콩글리쉬를) 사용하고 있다. 뭐 이들 중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영어권에서 살아온 까닭에 그게 더 친숙할 수도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은 것 같아 그 이유가 궁금하다. 왜 영어로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을까.




 
 

 

사실 모국어를 버리고 외국어로 혹은 종주국 오리지날 언어로 노래하는 습성이란 것이 뭐 그렇게 최근에 일어난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의 수많은 선비들도 기왕에 존재하던 한글 다 접어두고서 당시 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종주국이었던 중국의 시가(詩歌) 형식과 한문을 통해 자신들의 뜻과 감정을 노래하였다. 시조라는 노래형식을 취했던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는 문화적으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사회 일반이 지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콤플렉스를 갖게 만드는 서유럽의 경우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페라 같은 장르의 오락은 이태리가 본산이었으므로 그것이 훗날 프랑스로 또 독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많은 작품들이 모국어 대신 오리지날 언어로 쓰여졌다. 또한 오리지날 대신 모국어가 사용될 때는 상당한 논란과 냉소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었다.

 

그러므로 영어로 자신들을 치장하는 오늘날 몇몇 인디 뮤지션들이 남다른 비판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이들도 그 노래들을 꼬부랑 말씨란 이유 하나만으로 대략 좃치 안타고 비난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뮤지션들과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비판하고 인디 뮤직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에 대해 서운해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한국말 이외의 다른 언어로는 감정을 소통하기 어려운 이들이 99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영어로 된 노래들은 감성의 매개고리를 찾을 수 없는 생경한 음악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래들은 외면 받아 싼 노래는 아니지만 외면 받아 마땅한 노래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란 것은 단지 대중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그들에게 맞장구 쳐주는 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앎의 세계와 진보의 세계를 향한 길잡이 역할도 해야 한다고 믿는 어떤 흐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하는 인디뮤지션들 대부분은 전자의 경우는 물론 후자의 역할과도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운드의 심미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가사의 철학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사운드를 보자면 주로 영미권의 이렇고 저런 뮤지션들과 닮아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잘 닮았다고 하면 그것은 비난보다는 칭찬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허나 이런 경우를 영화 영역에서의 비평 개념에 접목시켜보면 장르영화의 맥락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척 단순하게 말하자면 장르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위해 대중을 유형화하고 다시 그 대중의 취향에 부응하여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인디 뮤지션들의 장르음악은 앞서 이야기한 후자의 기능을 담지하기 어렵다. 또한 가사의 경우도 영어로서의 특정한 내용적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고 유승준의 기타 애드립 대신 간주용 따발총 랩과도 내용의 차이를 보기 어려울뿐더러 어쩌다 등장하는 한국어 가사들을 보면 조성모나 이효리의 노래들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사랑타령과 질질 짜는 눈물 타령이 구리다면 자신만의 쿨하고 독특한 감정을 노래하는 것도 괜찮다. 된장 냄새나는 한글이 촌스럽다고 느껴진다면 빠다 향기 풀풀 나는 세련된 영어를 쓰는 것도 사생활로서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성과 기억을 나누는 대중음악의 자리에서 그것은 외로운 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당연한 운명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대중들의 삶이 얽히고 설키는 그 자리로 부지런히 달려가 함께 울고 웃고 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음악만담가
김토일(449tong@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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