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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싱] 추억의 명승부(9)
- 전설의 4인 세 번째 빠따 레너드 편

2003.9.16.화요일
딴지 복싱부


  앞장


  은퇴와 복귀


최대 라이벌 헌스를 격파하고 통합 왕좌에 오른 레너드는 브루스 핀치를 맞아 통합타이틀 1차 방어에 나서 2라운드에 두 번 다운을 뺏은 후 3라운드 강력한 원투 콤비블로우를 성공시키며 손쉽게 TKO승을 거둔다. 그러나 이 시합의 후유증으로 망막박리수술을 받게 되고 82년 11월 9일 은퇴를 표명하게 된다. 은퇴식이 거행된 곳은 데뷔전을 치렀던 볼티모어 시민센터였다.






레너드 vs 브루스 핀치 주요장면 동영상











슈거레이 로빈슨과 함께


레너드의 은퇴식에는 수많은 전현직 세계챔피언들이 올라와 링을 떠나는 레너드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으며 해글러는 레너드의 은퇴가 매우 아쉬우며 진실한 세기의 대결은 바로 자신과의 대결이라며 링 복귀를 종용하는 멘트를 날린다. 이에 레너드는 분명 복싱 사상 최고의 대결이 될 것은 자명하지만 링으로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은퇴의사를 분명히 한다.


은퇴 후 해설자로 활약하며 계속 복싱계에 몸담고 있던 레너드는 왼쪽 눈의 수술 경과가 좋아지자 링 복귀를 결심하게 된다. 복귀전 상대는 한 수 아래의 케빈 하워드. 84년 5월 11일 레너드의 링 복귀전이 열린다.


비록 9회 레퍼리스탑 TKO승을 거두긴 했지만 레너드는 예전의 화려한 모습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4회 들어 프로 데뷔 이후 최초의 다운을 당하는 등 한 수 아래의 케빈 하워드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경기 후 곧바로 레너드는 해글러와의 일전을 뒤로 한 채 다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너드 생애 최고의 업적 - 해글러를 잡다.





""나는 링에 다시 복귀하고 싶다. 해글러와 붙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해글러를 볼 때마다 싸우고 싶어 좀이 쑤신다. 눈만 뜨면 해글러가 창문가에 서서 손짓하고 있는 것 같다. 해글러를 이기고 진정한 Greatist가 되고 싶은 욕망뿐이다"


2차 은퇴선언 이후 레너드는 해글러와 무가비전이 열린 두 달 후인 86년 5월 해글러와의 대결을 위한 조건부 컴백을 선언한다. 레너드의 아내 주니아타는 해글러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남편의 링 복귀를 결사반대하고 나섰지만 레너드의 결심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


해글러는 무가비전 이후 카리브해로 휴가를 떠났다가 레너드의 복귀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해글러는 몇 주간 침묵을 지킨다. 해글러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안달이 난 건 매니저나 프로모터들이었다. 레너드가 도전장을 낸 두 달 후 해글러는 브록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드디어 말문을 연다.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해글러는 레너드는 랭킹에도 들어있지 않아서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링을 떠날 것을 선포한다. 일부 언론에선 파이트머니를 올리기 위한 술책이 아니냐는 힐난이 뒤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팬들의 예측대로 해글러는 인터뷰가 있은 6주 후인 8월 18일 대변인을 통해 톱랭크사가 프로모터를 담당하고 1천만 달러 이상의 파이트머니가 보장된다면 레너드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다.


"후세에 비겁한 챔피언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 레너드의 도전을 수락한다"


해글러의 자신에 찬 사자후였다(후에 흥행수입을 제외한 순수 파이트머니만으로 해글러는 1200만 달러를 레너드는 1100만 달러를 챙기게 된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87년 4월 6일 시저스팰리스 호텔. 당시 우리나라는 일요일이었고 MBC 생중계였다. 필자는 당시 고삐리였고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경기 전 예상은 이전 해글러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5 : 2 해글러의 우세였다. 미국 복싱전문가 26명 중 21명이 해글러의 우세를 점쳤고 국내 복싱전문가들도 해글러의 우세를, 단지 컴퓨터 가상대결 결과만이 레너드의 3 : 1 우세를 점치고 있을 뿐이었다.


시합이 거행되기 몇 달 전부터 양 선수의 불꽃튀는 입씨름이 벌어졌는데 몇 개만 모아보자.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영광을 레너드에게 내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길 수밖에 없다" (해글러)


"나는 2년 반 동안 해글러만 연구해왔다. 해글러는 링에서 마지막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는 나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늙었다”(레너드)


"레너드가 무얼 믿고 나와 싸우려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해글러)


"해글러가 나를 이기려면 13, 14R여야 하는데 12R 밖에 없으니 나의 승리다"(레너드)


"해글러의 장점은 머리, 단점도 머리. 나는 해글러를 보잘것없는 대머리로 만들고 말 것이다"(레너드)







레너드는 헌스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자신은 헌스와 달리 해글러의 공격 리듬을 죽이고 단계적으로 포인트 위주의 공격을 펼칠 수 있으므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고 어쩌면 KO승도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실제 시합에 임해서도 해글러의 주먹을 최대한 흘리면서 포인트를 쌓아 판정승을 거두며 생애 최고의 업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기실 경기가 벌어지기 한 달 전 레너드의 캠프에선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조트레이너인 J 브라운이 해글러의 캠프에 잠입해서 가져온 보고서에 의하면 해글러와 4인의 스파링파트너와의 훈련 모습과 해글러의 레너드 전 대비 전술과 작전구상 및 훈련일정까지 빽빽이 체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첩보전을 지시했던 것은 레너드의 변호사이자 재정자문인 마이크였고 보조 트레이너인 J 브라운은 한 치 오차 없이 해글러의 훈련 모습을 담아오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던디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해글러 전을 대비해 몇 가지 작전을 세웠다. 레너드가 유리한 것은 오로지 스피드, 첫째, 머리, 몸통, 다리 등 온몸을 해글러가 예측하지 못하게 좌우로 움직이며 깊고 날카로운 잽을 꽂는다. 둘째, 해글러가 파고들면 잽싸게 껴안고 떨어질 때는 거칠게 주먹을 뻗는다. 해글러는 거친 선수와 싸워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셋째, 가능한 오른쪽으로 돌지 않는다. 그리고 페인팅 위주의 변칙 공격을 펼친다.


결국 레너드는 완벽한 작전수행능력을 보여주며 해글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공격루트를 개척하는데 성공한다. 천하의 레너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글러 VS 레너드 전은 비록 화끈한 KO신은 없지만 복싱이 다다를 수 있는 기량의 최정점에 오른 최고의 시합이다. 경기 초반 레너드의 출발이 산뜻했다. 부지런히 해글러의 좌우를 돌며 시각적 효과가 높은 펀치를 여러차례 적중시킨다. 1라운드의 원투에 이은 레프트훅, 2라운드 보디에 이은 원투를 깨끗하게 성공시킨다. 라운드 막판 잠깐 스파크가 일기도 한다.






레너드 vs 해글러 1R~2R 주요장면 동영상


3라운드는 대등한 흐름. 4라운드는 유효타를 많이 터뜨린 레너드의 우세. 초반 4라운드까지 2점 정도 레너드의 우세로 채점(세 명의 부심 중 두 명은 초반 4라운드 전부 레너드 우세로 한 명은 동점으로 채점). 5라운드부터 슬로우스타터인 해글러의 프레싱이 빛을 발하기 시작. 라운드 막판 좌우 어커펏을 깨끗하게 성공시키며 최초로 자신이 앞선 라운드로 만든다.






레너드 vs 해글러 3R~5R 주요장면 동영상


6라운드. 레너드는 계속 사이드스텝을 밟으면서 원투를 날리고 해글러의 공격이 들어오면 곧바로 클린치해버리는 영악한 전술로 해글러의 전진을 교묘하게 봉쇄한다. 이런 양상은 경기 내내 이어졌으며 해글러는 레너드의 스피드와 교묘한 클린치 전술 때문에 레너드의 인사이드를 점하지 못해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레너드의 원투에 이은 클린치에 맞서 해글러는 롱훅을 자주 휘둘러보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세 부심 모두 레너드의 우세로 채점.


7라운드는 세 부심 모두 다른 채점을 매겼다. 필자는 해글러의 우세로 보았는데 레너드는 주먹숫자는 많았으나 공매가 많아 시각적 효과에 그치고 말았고 실속 있는 주먹은 해글러가 더 많았다고 본다. 해글러 우세. 8라운드는 부지런히 내외곽을 파고들면서 유효타를 터뜨린 레너드의 우세로 채점.






레너드 vs 해글러 6R~8R 주요장면 동영상


9라운드는 이 경기의 백미. 후에 레너드는 두란 전(3차전)을 앞두고 해글러 전은 생애 최고의 경기였으며 특히 9라운드는 눈에 선하다는 인터뷰를 남긴 적이 있을 만큼 최고의 라운드. 눈을 뗄 수 없는 불꽃튀는 타격전이 펼쳐지는데 양질의 펀치를 더 많이 히트시킨 해글러의 우세. 10라운드는 소강상태로 흘러간다.






레너드 vs 해글러 9R~10R 주요장면 동영상


11라운드는 세 부심 모두 레너드 우세로 채점했지만 필자로선 별다른 공방이 눈에 띄지 않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라운드. 마지막 12라운드는 해글러의 우세.






레너드 vs 해글러 11R~12R 주요장면 동영상


판정결과는 115 : 113(해글러), 118 : 110(레너드), 115 : 113(레너드) 2 : 1 스플릿 디시전으로 레너드는 해글러를 잡고 프로복싱 사상 10번째 3체급 석권과 더불어 생애 최고의 업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필자가 매긴 채점으로는 117 : 116 해글러의 우세. 1, 6, 11라운드를 레너드의 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이 시합은 무승부 또는 1~2점차 정도의 아주 미세한 승부라고 보이며 118 : 110은 어이없는 채점이라 생각된다.


 
  5체급 석권에 성공하다!


해글러와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레너드는 또다시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해글러와의 재 대결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의 링 복귀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레너드가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재기의 가능성을 비추었고 이윽고 WB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캐나다의 골든보이 도니 라론데와 신설되는 WBC 수퍼미들급과 기존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하게 된다.  


한 경기에 두 체급의 타이틀을 놓고 벌인 조금은 모양새가 우스꽝스런 시합이었다. 라론데는 라이트헤비급 선수인지라 골격부터 레너드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라론데의 힘에 밀리던 레너드는 경기 초반 한차례 다운을 뺏기기도 하는 등 좀체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으나 9라운드 들어 전매특허랄 수 있는 폭풍 같은 연타 세례를 라론데의 안면에 퍼부어 두 체급 위의 챔피언을 반쯤 기절시켜 버린다. 꿈의 5체급 석권이었다.






레너드 vs 라론데 주요장면 동영상


경기 후 곧바로 라이트헤비급 타이트을 반납한 레너드는 WBC, WBO 수퍼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헌스와 숙명의 재대결을 벌이게 된다. THE WAR라는 슬로건이 붙었던 두 선수의 재대결에서 레너드는 다소 불리한 시합을 펼치고도 무승부판정을 받아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다(헌스가 이긴 경기라고 생각하므로 헌스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험난한 말년









레너스 vs 케빈 하워드


헌스와의 재대결 이후 두란과 3차전을 치르지만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로 끝나버렸고 두란 전에서 입은 눈부상때문에 또다시 링을 떠났던 레너드는 91년 2월 링에 복귀하여 당시 떠오르던 신성 테리 노리스와 WBC 수퍼웰터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하지만 이미 예전의 레너드가 아니었다.


레너드는 두 차례의 다운을 당하면서 치욕적인 판정패를 경험하고 다시 링을 떠난다. 경기 후 노리스는 "나는 레너드를 KO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레너드에게 대쉬하는 순간 그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도저히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레너드를 KO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내게 패하긴 했지만 그는 영원한 나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이너뷰를 남긴다.


노리스전 이후 완전히 링과 결별한 것처럼 보이던 레너드는 97년 나이 마흔이 넘어 뜽금없이 링에 올라 헥토르 카마초와 노인정 매치를 벌여 5회 TKO패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 별로 이 경기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경기를 가지고 레너드를 폄하하는 복싱팬도 없을 테니 말이다.


 
  예술 복싱의 완성판


화려한 테크닉, 현란한 스피드, 탁월한 쇼맨쉽과 언론 플레이 등. 레너드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 기틀을 다진 현대 아웃복싱의 전형은 알리를 거쳐 레너드에 이르러 완성단계에 도달한다. 레너드의 매력은 단지 테크닉과 스피드에 의존한 포인트 위주의 복싱이 아니라 매우 공격적인 아웃복싱을 펼쳤다는 데 있다. 특히 찬스 포착시 레너드가 보여준 그 냉혹함과 폭발적인 결정력은 레너드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레너드만의 독문절기였다.


휘태커, 카마초, 호야, 모슬리, 로이 존스 등 90년대 이후를 대표하는 아웃복서들이 모험을 거는데 인색하고 포인트 위주의 안전운행을 펼쳐 갈수록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레너드의 복싱은 진퇴가 분명해 매 경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비록 4인방 중 필자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선수이긴 했지만 레너드가 보여준 달콤하고도 매혹적인 고감도복싱은 필자의 가슴에 평생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레너드는 어떤 시대든 웰터급 챔피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테디 브래너)


"레너드는 과거 4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다. 그는 로빈슨을 제외한 어느 누구와 싸우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보우 잭)


"그는 위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전대미문의 선수" (돈 차진)


"레너드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가장 훌륭한 선수들을 모두 이긴 위대한 챔피언이다. 그는 철저하게 성실했고 자신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선수였다" (래리 홈즈)


"지난 20년에 걸쳐서 최고의 승부사" (제이크 라모타)


"레너드는 위대한 선수라기보다는 위대한 전술가" (행크 캐플란)


"레너드는 복싱의 이미지 자체를 바꿔놓았다. 나는 그가 표현하는 복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플로이드 패터슨)


"레너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의 지성" (에밀 그리피스)


그는 기어를 바꿔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을 제대로 파악했고 서서히 상대를 제압해나갔다" (조지 추발로)



[덧붙임] 4인방 최종편인 헌스편은 다음 업데때까지 올리려고 최대한 노력해보겠으나 필자 새로 옮긴 회사 업무 파악해야 하므로 확실한 약속을 드리긴 힘들겠다. 그리고 지난번 크로스카운터 게시판에서 베니테스 vs 모리스 호프 KO장면 동영상 부탁하신 복싱팬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동영상을 편집부에 보내긴 했는데 화질이 너무 거칠어서 올리기가 힘들다는 회답을 받았다.


 
딴지 복싱부
paisa (pais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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