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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한국 인물 열전(17) - 설총

2003.9.8.월요일
딴지 역사학부

 돗자리가 꼽은 최악의 우화(寓話)... 설총의 <화왕계(花王戒)>


우화(寓話)란 뭐신가. 네이버를 보니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說話)"란다. 그럴 듯 하다. 따라서 의인화(擬人化)가 필수다.







우화하면 이솝우화가 떠오르실 거다. 이솝우화... 정말 명작이다. 독자들에게 단순명쾌/간단명료하면서도 잼나기 이를 데 없는 메시지를 팍팍 꽂아준다. 돗자리 생각에 이솝은 문호(文豪)다. 뭐 꼭 똘스또이처럼 기~일고 어려운 작품 써야만 문호냐.


그럼 기록상 울나라 최초의 우화가 뭔지 아시나들? 중고딩 국어시간 때 배우셨을 거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설총의 <화왕계(花王戒)>라고 말이다(『동문선』에선 <풍왕서(諷王書)>’로 나온다). 원효의 아들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줬다는 그 얘기다.


근데 말이다. 우화는 잼나고 쉬워야 한다. 어렵고 지루함 제대로 된 우화 아니다. 더불어 촌철살인의 풍자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화왕계>는 꽝이다.


"허허... 돗자리 이 넘이 간땡이가 부었구나"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다. 신라 3대 문장가 또는 신라 10현(十賢) 중 한 분으로 추앙받는 설총의 명작에 딴지를 걸다니 말이다. 맞는 말씀이시다. 간땡이 부었다. 글고... 솔직해지고 싶었다. 암만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안되고 감동도 안오는 내용인데 괜히 건방지거나 무식하단 얘기 들을까봐 알아먹은 척 하는 게 싫었다. 무식이 위선보단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자... 우리 괜히 폼잡지 말고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알라들처럼 단세포적으로, 보인 그대로 느낀 그대로 함 말해보자. 설총의 <화왕계>가 정말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대단한 작품인지 말이다. 글타. 오늘은 인물평이 아니라 작품평이다.



 설총은 뉘신가







<화왕계> 디벼보기에 앞서 설총에 대해 대충 훑어보자. 원효편에서 이미 나왔었다. 현란한 문천교퍼포먼스 직후 요석궁에 드간 원효와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빠를 닮았으니 머리도 좋았을테고 엄마가 공주니 살기도 괜찮았을 거다. 그치만 원효가 끽해야 6두품이었으니 설총도 그랬을 거고, 요직에 오르지도 못했으리라.


알라쩍부터 똘똘하기로 소문이 났고, 당나라에서 유학(留學)했다고도 하는데 확실친 않다. 우야튼 당시 신라를 대표할 만한 유학자(儒學者)였단 건 맞을 거다. 글고 설총이 이두를 맹글었다고 배우셨을텐데, 그 이전 금석문에도 이미 이두가 보인단다. 암튼 설총이 이두로 유교경전을 번역해서 학생들을 가르친 건 틀림없다【以方言讀九經 訓導後生 至今學者宗之】(『삼국사기』). 고려 현종 때 홍유후(弘儒侯)로 추증하여 받들어 모셨단다.


 


 <화왕계> 읽으면서 토를 달아보자


자, 이제 오늘의 텍스트다. 신라 신문왕(神文王 : 재위 681~692) 때다. 어느 여름날, 신문왕이 설총을 불러 뭐 재미난 얘기 없냐고 묻는다. 그러자 설총, 담과 같은 지지리 잼없는 얘기를 들려준다(민족문화추진위원회 번역을 약간 손질해서 옮긴다).


신은 듣자오니, 옛날 화왕(花王=모란)이 처음으로 이 곳에 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 속에 심고 푸른 장막을 둘렀더니, 늦은 봄을 맞아 곱게 피자 온갖 꽃들 중에서도 유독 빼어났답니다. 그러자 가깝고 먼 곳에서 곱디고운 젊디젊은 꽃들이 모두 달려와서 화왕을 뵈려고 애썼습니다.







화왕, 즉 꽃의 왕은 모란이란다(선덕여왕이 그림만 보고도 향기가 없을 거라 알아차렸단 그 꽃이다. 뭐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어서 눈치챘대나. 근데 이상타 화투짝 모란엔 분명히 나비가 그려져 있는데).


암튼 설총은 먼저 신문왕을 다른 꽃들과 쨉이 안되게 고운 화왕으로 팍팍 띄워준다【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안전판을 미리 깔아놓는 거다.







갑자기 한 아리따운 미녀【佳人】가 고운 얼굴과 하얀 이빨, 밝은 단장과 고운 옷차림으로 사뿐사뿐 걸으며 어여쁘게 앞에 와서 아뢰기를, "저는 눈처럼 흰 모래 물가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 위를 마주보면서, 봄비에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노닐었사옵니다【自適】. 제 이름은 장미라 하옵니다. 대왕의 아름다운 덕망을 듣사옵고, 저 향기로운 장막 속에서 모시고자 하오니, 대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미녀 장미의 등장이다. 화왕을 장막 속에서 모시겠단다. 쌈빡한 외모처럼 말하는 것도 화끈하구나. 지랑 하룻밤 자잰다. 텍스트엔 없지만, 화왕은 꼴깍 침삼키며 장미를 간택하려 맘먹었을 거다(근데... 모란이랑 장미랑 접붙이면 뭐가 나오나 궁금타).


또 어떤 장부(丈夫)가 베옷에 가죽띠를 띠고 흰 머리로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고불고불 걸어오더니 아뢰기를, "저는 서울밖 큰길가에 살고 있사옵니다. 아래로는 아득한 들 경치를 굽어보고, 위로는 높이 솟은 산을 기대고 살고 있사옵니다. 제 이름은 백두옹(白頭翁)이라 하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대왕께서는 좌우의 공급이 넉넉하여 비록 기름진 쌀과 고기로써 창자를 채우고 아름다운 차와 술로써 정신을 맑게 한다 하오나, 상자 속에 깊이 간직한 양약(良藥)으로써 기운을 도울 것이요, 악석(惡石)으로써 독을 없애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비록 생사(生絲)와 삼베가 있더라도, 왕골이나 띠풀도 버리지 않으며, 모든 군자는 결핍될 때를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그같은 뜻이 있으신지요?" 하였답니다.







백두옹은 할미꽃이란다. 근데 여기선 장부로 나오니 ♂이어야 한다. 그래서 할배꽃으로 부르련다.


장부하면 팔팔한 사내를 떠올리기 쉬운데 여기선 머리가 허연 꼬부랑 할배다. 지를 양약과 악석, 왕골과 띠풀에 비유한다. 나름대로 요긴하게 써먹을 데가 있단 뜻이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화왕을 꼬드긴다. 모름지기 군자(君子)라면 할배꽃도 받아줘야 한다는 거다. 바꿔 말하면, 지를 안받아주면 당신은 군자 아니란 거다. 부드러운 협박이다.


어떤 자가 아뢰기를, "이 둘이 함께 왔으니,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하였더니, 화왕은 "저 장부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미녀란 (놓지면 다시) 얻기 어려우니 어찌해야 좋겠는가?" 하였답니다.


온갖 이뿐 꽃들이 화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원근각처에서 몰려왔단다. 다분히 이뿐꽃 선발대회 성격이 짙다. 근데 어케 자격도 안되고 외모도 딸리는 할배꽃이 결승에 올라와 장미와 맞짱뜨냐.


글고 말이다. 미녀는 미녀대로, 인재는 인재대로 쏠모가 달리 있는 거다. 그러니 예쁜 뇬하고 어진 넘 중 양자택일할 필요도 없다. 구명보트에 한 명만 태울 수 있는데 누굴 고를까 하는 상황도 아니쟎은가. 양식 먹는데 크림스프 시킬까 야채스프 시킬까, 아니면 생선까스 시킬까 비후까스 시킬까 끙끙대면 모를까, 크림스프 시킬까 비후까스 시킬까 갈등때릴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러자 그 장부는 앞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저는 대왕을 총명하고도 의리를 아시는 분인 줄 알고 왔는데 이제 보니 아닙니다. 대개 임금이 된 자들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그래서 맹가(孟軻)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말단 벼슬로 머리가 희어졌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니 제가 어쩌겠습니까?" 하였더니, 화왕은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吾過矣 吾過矣】" 하였답니다.


누굴 고를까 화왕이 머뭇거리니 할배꽃이 대뜸 나와서 화왕에게 엿을 먹인다. 정직한 지를 안뽑으면 머리도 나쁘도 의리도 모르는 임금이란 거다. 창졸지간에 장미는 아첨과 간사의 화신이 되버린다. 그러자 대체 화왕은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라며 사과한다. 결국 할배꽃이 최종선발된 거다. 대체 화왕이 뭘 잘못했단 거냐.



 신문왕의 고민과 선택


이 우화를 들은 신문왕, 슬픈 표정을 지으며【愁然作色】, "그대의 우화에는 정말 깊은 뜻이 있구나. 이 우화를 글로 써서 왕이 된 자의 계감을 삼도록 하라【子之寓言 誠有深志 請書之以爲王者之戒】"고 말한다. 이어 설총을 높은 자리에 앉힌다【遂擢聰以高秩】. 우리 설총, 우화 하나로 출세하신 거다.


이 우화는 장미=간신이고 할배꽃=충신이란 단무지스런 설정으로 이뤄져 있다. 장미=진골이고 할배꽃=6두품이라 보기도 하는데, 돗자리 볼 땐 6두품 중에서도 지만 치켜세운 거 아닌가 싶다. 뭐 자신만만한 모습이 멋지기도 하다. 그치만 우화로서의 재미나 구성은 엉망스럽다. 이 내용이 설총이 쓴 그대로라면(신문왕이 글로 남기라고 했으니까) 그 분의 콘티 능력은 실망스럽다. 하긴, 대단한 유학자라고 해서 창작문예까지 능통했을 이유는 없지만.


암튼 이 우화를 들은 신문왕, 얼굴에 수심이 깃든다.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게 부끄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대체 저거이 뭔 소리여..."하고 헷갈려서였을까. 이 우화에서 칭찬해줄 만한 거 하난, 신문왕이 옴짝못하게 결말을 내고 있단 거다.


화왕은 할배꽃에게 잘못했다며 사과함으로써 간신을 멀리하고 충신을 가까이하는 현군(賢君)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문왕 역시(뭔 소린지 못알아먹었다 해도) 현군이 되기 위해선 설총을 높은 자리에 앉혀줘야 한다. 물론 설총이 신문왕의 총애를 받고 있단 가정 아래서다. 별 신임도 받지 못하는 넘이 깝쭉대다간 개무시 아님 개박살이다.
 


 이 우화, 김흠돌의 난과 관련이 있을지도...


근데 이거 굉장히 위험한 우화다. 자기 아닌 왕의 측근들을 장미와 같은 간신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설총이 왕에게 맨투맨으로 들려줄 때 옆에 다른 신하들도 같이 있었다면 얼마나 듣기 민망한 얘긴가. 진골귀족들의 세력이 빵빵했을 때라면 과연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달리 말하자면, 이 우화는 진골귀족들의 세력이 주춤했을 때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단 거다.


신문왕이 즉위하자마자 그 장인인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일당이 모두 잡힌다. 이 때 신문왕은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린다.


역적의 괴수인 흠돌?흥원?진공 등의 벼슬이 올라간 것은 재능 때문이 아니라 왕은(王恩)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시종(始終)근신하지 못하며 부귀를 보전하지 못하고, 불의(不義)와 불인(不仁)으로 위복(威福)을 삼고 관리를 깔보고 상하를 속이더니...  


재능도 없이 귀족이라고 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골들에 대한 불신이 구구절절 서려 있다. 이어 신문왕은 관련자들은 물론 국방장관 군관도 미덥지 못했던지 죽여버리고 경호실 내지 수방사격인 시위감도 없애버린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날고기던 진골귀족이라도 끽소리 못하고 찌그러져 있을 수밖에 없다. 진골귀족을 장미와 같은 간신으로 몰아붙여도 되는 상황이라면 일단 이 때쯤이 아닐까 싶다.


글고 이듬해 위화부령(位和府令) 2명을 두어 즉 관리를 선발하는 일을 맡게 했는데, <화왕계>는 이같은 시대적 배경을 깔고 나온 게 아녔을까. 정치판을 물갈이 하고픈 신문왕의 의지와 높은 자리에 오르고픈 설총의 의지가 맞아떨어진 걸로 보잔 거다. 김흠돌의 난으로 진골귀족들은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주인 없는 관직도 많았을테니 말이다. 화왕에게 잘보이기 위해 몰려온 꽃들이란 새로운 관리 후보들을 뜻하는 건 아녔을까.
 


 자화자찬의 화신... 설총


<화왕계>는 설총 자신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가득차 있다. 자칭 정직한 군자요 충신이요, 유능했지만 불우했던 맹자와 풍당이란다. 뭐 자신감의 표현이니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자만, 솔직히 재수띵이다. 일케 잘난 지를 높이 안써주면 당신은 화왕만도 못한 그저그런 왕이라는 경고까지 담고 있다. 대담무쌍하다. 과연 부전자전이다.


신문왕 2년 국학(國學)을 정비한 것도 설총과 무관하지 않을 거란다. 그치만 그가 남긴 글이 <화왕계> 뿐이고 그의 활동을 담은 믿을 만한 자료도 없으니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고려 때 범세동이 썼다는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를 보면 잼난 내용이 나온다. 신문왕에게 국학 설치를 건의한 이도 설총이요, 효소왕에게 건의해서 중국으로부터 성인(聖人)들의 화상을 모셔오도록 하기도 했단다. 성덕왕에게도 유교를 진흥시켜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네. 근데... 이 책은 사료적 가치가 꽝이란다. 그래서 걍 제껴버린다만, 아무리 허접한 내용이라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실렸으면 일케 개무시 당하진 않았을텐데...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든다.  
 


 "남따라 웃는 바보" 되긴 싫다


"남따라 웃는 바보"... 영국속담이란다(돗자리 소시쩍 고우영 화백님 『수호지』에서 읽는 적 있다). 뭐 우리도 가끔 그러지 않나.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남들이 명작이라니 명작이고 명언이라니 명언이란다.


중고딩 때 돌아보면, 문학작품 감상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참고서가 다 해줬다. 피카소가 그렸으면 당근 명화요 베토벤이 지었으면 당빠 명곡이다. 그걸 전제로 하고 그 담에서야 감상에 들어간다. 그치만 제아무리 명화요 명곡이라 해서 감동까지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옆의 그림은 피카소의 명작 <꿈>이다. 감동들 오시나. "마빡에 도끼 찍힌 여잔가보다" 하는 정도들 아니신가. 분명히 명작이지만, 피카소 작품에 대한 안목이 없으면 감동받기 어려우실 게다.


돗자리 말이다, 무식하지만 솔직하다. 명작이라고 해서 오지도 않는 감동 쥐어짜내진 않는다. 중딩 1학년 때 덕수궁에서 피카소 작품전이 열렸었다. 미술숙제가 그거 보고 감상문 내는 거였다. 근데 돗자리 감상문 잘썼다고 쉐임이 칭찬해주셨다. 뭐라고 썼냐고? 뭘 뜻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썼다. 딱 하나, 접시에 물감으로 그린 염소가 풀뜯어먹는 작품 하나 뭔지 알아먹겠다고 썼다.


쉐임은 돗자리의 무식이 아닌 솔직을 칭찬해주신 거였다. 아무리 명작이라지만 중딩 1학년이 어케 피카소 작품을 보고 감동을 먹을 수 있겠는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but just fade away)" 다들 아시리라. 1951년 4월 19일 미국의회에서 한 맥아더 장군의 연설이다(군가의 한 대목이라더라). 근데 대체 이게 뭔 소리냐. 의원들 모두가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더라. 뭔 소린지 그 넘들은 다 알아들었단 거냐.


알아듣긴 개뿔을 알아들었겠나. 보아하니 뭐 멋진 말을 하려고 한 거 같긴 한데... 뭔 소린지 잘 모르지만... 한두 넘이 예의 차원에서 기립박수를 치니... 너도나도 덩달아 따라하는... 뭐 그런 거 아녔을까(미국넘들 이런 거 참 보기좋긴 하다. 아카데미시상식 같은 거 보면, 별 엿같은 유머에도 활짝 웃어주고, 너절한 소감에도 기립박수 쳐준다.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니겠나. 우리도 본받자).







강호무림의 고수님들께 부탁드린다. 맥아더 연설 저게 대체 뭔 뜻인지 좀 갤차주시라. 정말 궁금해서 글타. 주위에 물어봐도 별거 다 묻는다며 다들 개보듯 한다. 설령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해도, 글케 단번에 삘이 팍 올 수 있는 건가. 군가의 한 대목이었다니 미국넘들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대한국인들이 저걸 듣고 뭔 소린지 퍼뜩 알아차린다는 건 기적 아니겠나. 제발 좀 션~하게 쌔려주시라.


중딩 교과서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예찬하는 글이 있었다. 그 표정이 우는 듯 웃는 듯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신비의 미소래나 뭐래나... 뭐 그런 내용이었다.







방학 때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실물을 본 돗자리,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돗자리 너절한 안목엔 걍 애매하게 눈을 쫙 그어놓은 이상도 이하도 아녔다. 감동을 억지로 짜내느라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곤 쪽팔렸던 격이 새록하다.


돗자리가 감동을 못받는다고 해서 걸작이 졸작되는가. 그럴 리 없다. 단지 우리 좀 솔직해지자고 말하고픈 거다. 단지 걸작이란 이유로 안오는 감동 쥐어짜며 "난 왜 이럴까?" 자책하진 말잔 거다. 다시 말한다. 무식이 위선보단 낫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배울 때, 감상보다 분석이 먼저였다. 작품을 일단 난도질하며, 이어 인수분해 → 미분?적분의 순서를 밟았다. "이 대목에 나타난 작자의 심경은?" 따위의 문제가 즐비했다.


젠장, 지금은 고인이 되셨으니 확인할 길이야 없지만, <국화 옆에서> 관련 국어문제 중엔 서정주도 못풀 문제 분명히 있을 거다. 제길, 창의성과 다양성이 중요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왜 우린 일단 명작이라는 전제를 깔고 감동을 강요하는가. 왜 "남따라 웃는 바보"를 양산하는가.


 


 심미안(審美眼) 테스트


뭐 당장 가능한 테스트는 아니다만... 나중에 함들 해보시라. 인사동 가면 고려청자 널려 있다. 물론 가짜다. 먼저 그 앞에서 감상좀 하시라. 담엔 박물관 가서 진짜 고려청자 감상을 하시라. 글고나서 어디선 감동이 왔고 어디선 안왔나 따져보시라(여러분이 똑같은 모양의 고려청자라도 진짜와 가짜 구별 못하신다는 비전문가라는 걸 전제로 하자).


① 인사동에서도 박물관에서도 온다
② 인사동에서도 박물관에서도 안온다
⇒ 솔직하고 담백하신 분이다. 주변 상황에 영향받지 않으니 냉정하신 분이기도 하다.


③ 인사동에선 안오고 박물관에선 온다
⇒ 위선스런 분이다. 본질보다는 환경에 더 영향을 받으며 감동을 짜내시는 분 되시겠다. 선입관을 떨쳐내시라.


④ 인사동에선 오고 박물관에선 안온다
⇒ 희귀하신 분이다. 소탈한 민중지향적 반항아 기질이 있으시다.


여러분은 몇 번이신가. 돗자리? 중고딩 땐 ③이었지만 대학 때부텀 ②로 바뀌었다. 무식은 여전하지만 좀 솔직해지긴 한 거 같다. 여론조사 해봄 아마도 ③ 〉② 〉① 〉④ 순이 아닐까 싶은데... 가장 일반적이지만 문제스런 분들이 바로 ③ 아닐까.



 문제는 설총이 아니라 우리다


문제는 <화왕계>를 지은 설총이 아니라, 그걸  읽고 너무도 쉽게 알아듣는, 아니 어쩌면 알아들은 척 하는 우리다(정말 알아들은 분들이 문제 있다는 뜻 절대 아니다). 돗자리가 이따우 우화 썼다간 개박살났겠지만, 설총의 우화라니 잘도 넘어간다. 관련 논문들을 보니 모두들 <화왕계>는 설총의 작품답게 구성도 탁월하고 비유도 절묘하단다. 동의하실 분도 많으시리라. 그치만 적어도 돗자리에겐 아니다.


말나온 김에 문학평론 하시는 분들께 부탁좀 하자. 좀 쉽게 써주시라. 원작보다 평론이 더 어렵다. 한번 읽고 이해되는 문장이 드물 정도다. 평론에선 멋좀 부리지 말아주시라. 우화도 평론도 다 청자나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하잔 거 아니겠나. 글고 좀 객관적으로 써주시라. 오죽하면 주례사비평이란 쪽팔린 말이 나오겠는가.


밸 허접한 걸 갖고 너절하게 딴지거는 거 보니 돗자리 이제 쓸 거 없나보구나 생각하실지 몰겠다. 딩동댕~이다. 소재와 기력이 모두 딸려서 20회가 되면 인물열전 막을 (일단) 내리련다. 3번만 더 참아주심 되겠다. 좋아하시는 분들 많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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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e-rig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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