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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명랑사회와 그 적들

2003.9.8.월요일
딴지일보

 




 
 

 

이왕 사람으로 태어난 다음에야 우리속에 갇힌 다람쥐맹쿠로 허구헌날 쳇바퀴만 돌고야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촌놈으로 태어나 모처럼 상경하여 서울거리를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다보면 짐작했던 길이 그 길이 아니요, 아까 갔던 그 길이 지금 이 길인지라, 머리엔 쥐새끼가 뛰어다니고 겨드랑이엔 삐질삐질 땀이 나기 시작하면 지나가던 행인에게 쪽팔림을 무릅쓰고 말을 건네는 수밖에 없다.

 

"저... 어디어디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되나요?"

 

아는 바 없기 때문에 질문 또한 간단명료하지만 애타는 속마음으론 대답 또한 알아듣기 쉬웠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같다.

 

그러나 상쾌한 아침 변마냥 명쾌한 대답을 받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사람 또한 이놈저놈이 똑같은 성격일 수는 없으나 어찌 이리도 초행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들이 널려있는고? 답답함이 한 맺힌 괴로움이 두고두고 가슴속 깊이 남아있기에 그들의 유형에 대해 몇 자 적어보나니, 이는 명랑사회 건설을 위해 필히 지양해야 할 바라 할 것이다.
 

 

 생까고 지나가기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웬 청년이

 

"저기여. 길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여..."






 
 

 

못 본척...

 

라고 말하며 다가갔을 때 상대는 일단 똥 밟았을 때와 비슷한 표정부터 짓는다. 타인의 접근을 캐치한 뒤 즉시 수신채널을 초고속으로 차단하고 앞만 보며 졸라 빨리 걸어간다. 가끔은 뛰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정말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복이 넘치시는데요?", "뭔가 상서로운 기운이 보여요."나 "이마에서 빛이 나요" 등의 말을 하며 따라가고 싶다.

 

이점에 대해선 일부 종교단체의 지나친 열의에도 책임이 있다. 필자도 얼빵하던 새내기 시절, 종교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길에서 만난 인연이 그들의 골방 아지트에까지 이어졌으니, 100대에 걸친 조상님의 은덕에 힘입어 전재산 3만원을 세계평화와 인류공존의 나아갈 길을 위해 헌금하게 되었으며 수백 번의 절 세례를 통해 온몸에 알이 배기는 은덕까지 입었었다.
(거기 가면 졸라 무섭다. 먼저 여러 사람이 둘러싼 뒤에야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워낙에 내용이 빈약한지라 그들이 뜻한 대로 전도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도 없다).
 

 

 빤히 쳐다보다 지나가기






 
 

 

걍, 빤~히...

 

자동적으로 욕이 나오는 경우이다.

 

길을 알려줄 듯이 일단 멈추어 섰으나 내 얼굴을 3초정도 빤히 쳐다보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는 경우이다. 왜 그러는건지 알 수도 없다. 마치 그가 똥을 밟은 듯한 표정을 지었으며 내가 그 똥이 된 느낌이랄까?

 

목적지에 도달하고픈 나의 숭고한 목적을 이해하고서도 차가운 시선을 남기며 사라지는 경우이다. 가끔 목적지 근처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럴 때는 안면몰수하거나 째려봐 주는 것이 상책이겠다.
 

 

 알려줄 듯하다가 그냥 지나가기

 

졸라 괴롭다. 이 부류의 사람에겐 욕을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진정 비난하고 싶은 것은 그의 주변머리 없음이다. 길을 모르면 시간이나 끌지 말지. 같이 고민을 하는 통에 길에서 상당히 쪽팔리다.






 
 

 

일종의 헐리우드 액션이랄까...

 

게다가 본 유형의 업그레이드형인 다음 단계까지 넘어가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친절도 좋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정도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모르는 길일 때에는 졸라 빨리 "모르겠는데요"와 함께 그냥 지나가 주는 것이 좋다. 체류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시키, 도대체 머 하자는 거야?"류의 짜증과 함께 그 동안 습득해온 육두문자를 마음속으로나마 실습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다 불러놓고 목적지에 대해 토론하기

 

아! 이 부류의 사람들은 고연령층에 많이 존재한다. 젊은이들이라면 누가 지나가는 아낙네와 남정네를 불러모으겠는가? 고연령층의 놀랄만한 친화력은 이를 가능케 한다. 비슷한 연령대라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들의 재능은 존경할만하다. 그러나 물어본 사람은 상당히 쪽팔리다.






 
 

 

"젊은이, 얼루 가는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한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두 명 이상이 달려들어 목적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 뒤끝이 안 좋은 수가 많다. 게다가 연장자인 경우 왜 그곳에 가는지 무얼 하러 가는지 간첩심문에 버금가는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럴 땐 대답 안하기도 어렵다.

 

도망가려 해도 이미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퇴로도 차단된 상태다. 자쥐가 근지러워도 긁을 수가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닥치는 것이다. 여러 친절한 분들의 아낌없는 대화 속에 10분 20분은 금방이다.

 

쉽게 알 수 있는 장소였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그분들도 모르는 장소라면 "그런 델 뭐 하러 가?"냐는 식의 퉁명스런 반응을 접하기도 한다(질문도 잘해야한다). 심한 경우 자신이 그 곳을 모르고 그런 곳(상황이 여기까지 진척되면 내가 질문한 그곳은 별 시덥잖은 장소가 된다)은 갈 필요가 없으니 다른데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목적지에 대한 탐구의욕 대량상실과 함께, 차선 행선지까지 알아서 제시해주시는 그분들의 친절한 유혹에 간혹 휩쓸릴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잘못 알려주기

 

필자는 이런 적이 없지만 이런 넘을 본적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평소 자신의 투철한 애국심과 반공정신을 자랑스러워하던 교련선생님께서 우천으로 다행히 교실수업을 하게된 날에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털어놓곤 하셨다.

 

학비를 냈으니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싶다고 걔기고 싶었으나 평소 전교생 앞에서도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내가 월남전 참전해서 베트콩 수십 죽였어. 너희들 죽이는 거 일도 아니야"라며 파리보다 못한 고딩의 덧없는 인생살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야외 교련시간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양볼을 붉게 만들어주어 이해창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애정을 보여주었던 게 그이기에 입 닥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 여행객을 만났을때 고것들이 대전역을 물어보아서 친절하게도 택시를 잡아주어 정반대 쪽으로 가게 유도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완조니 뭐 밟았구먼...

 

당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숙련된 일본어 실력을 자랑하려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공부에 지친 수험생에게 베푸는 소박한 개그 정도라고 생각하였었다. 당시에만 그랬단 얘기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을 되갚기 위한 그의 영웅적 행위(?)는 지금도 술김에 우스갯소리로 등장하곤 하는 내 기억 속에 추억꺼리로만 간직하고 있다...
 

 

 길 알려주곤 뒤에서 따라오기

 

공포스런 경우다. 모르던 길을 알려주어 고맙긴 하나 뒤에서 졸졸 따라오며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대로 가라고 손짓까지 해준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그의 목적지인지. 이럴 때는 예의 상 딥따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줘야 한다. 초행자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려주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두려움과 쪽팔림을 극도로 확장시켜주는 것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가 취한 은근한 미소되겠다. 여가 서양도 아닌데 언제 봤다고 씨익 웃어주는 건지.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지만 그렇다고 같이 웃어주기도 상황상 뭐하다. 정말 초행자를 생각한다면 딴짓도 좀 하면서 시간 보내고 오던가 멀찍이 떨어져 있어주면 좋겠다.
 

 
 


길은 늘 거기에 있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길과 길 사이에 다른 목적지가 있도록 믿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거나 얼굴이 하얗게 변한 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쪽지를 들고 있거나 도로표지판, 상호 등을 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주저말고 길 알려줘라. 명랑사회 건설은 올바른 길 안내처럼 간단한 습관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겐나.

 

모르겠으면 차라리 잽싸게 지나가 주시고...

 

 

 
이 땅에서 길치로 태어나 서글픈
총총이 (blue00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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