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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김병현, 과연 최고의 마무리일까?

2003.9.8.월요일
딴지 야구부








김병현은 정말 빨간 장갑의 마술사, 아니 빨간 양말의 수호신일까?


BK 8승... 2이닝 2K 무실점 (I스포츠)
김병현 2이닝 무실점, 3일연속 구원성공 8승! (스포츠S)
김병현, 2이닝 2K 무실점... 시즌 8승 (스포츠C)
김병현 철인투, 괴력 8승 (스포츠T)
김병현 4경기 연속 무실점 구원승 (G데이. 이상 해당신문의 제호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도록 이니셜처리하였음)


...9월 5일, 참으로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그날 온동네 스포츠신문은 바로 전날에 있었던 김병현의 시즌 8승 소식을 저토록 감격스러운 헤드라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더랬다(물론 1면 톱은 이승엽의 49호 홈런이 장식했지만). 철인투니 2이닝 2K니 하는 문구만 쓱 봐서는 무지 잘 던졌단 얘기인 것만 같지. 하지만 기사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9회엔 수비수들의 재빠른 릴레이송구로 홈에 쇄도하던 동점주자를 잡아냈고 연장 10회엔 홈런성 타구를 우익수 게이브 케플러가 빠른 수비위치 선택으로 무리없이 포구했다. ..." (스포츠T의 기사내용 중)


찌라시 오보부터 우선 짚고 넘어가자. 9회에 쇄도하던 주자는 동점주자가 아닌 결승주자였다. 4:4 동점이던 9회말 원아웃 주자 1루의 상황, 김병현은 상대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4번타자 매글리오 오도네즈에게 장타를 허용했다. 대주자로 투입된 발빠른 1루주자가 홈인한다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나는 상황. 다행히도 레드삭스 수비진의 깔끔한 중계플레이 덕에 김병현은 패전 일보직전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연장 10회말 게이브 캐플러가 처리한 타구도 결코 무리없이 포구했다는 한마디로 끝날 성격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졸라 후달리는 게임을 치렀단 말 되겠다.


박찬호가 연일 죽을 쑤고 있는 요즘, 가장 지명도 높은 코리안 메이저리거인 김병현의 일거수 일투족에 국내언론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속사정이야 어떻건 그저 대책없는 핥아주기에 급급한 보도태도라면 그거 말릴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문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김병현이 되게 잘 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데, 진짜 속내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자너...


말이 난 김에, 과연 김병현이 어떤 레벨의 선수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려고 한다. 그간 김병현의 활약이 그토록 열심히 핥아줘도 좋을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는지, 다시 말하면 언론이 그토록 호들갑을 떨어도 상관없을 만큼 대단한 선수인지를 함 히떡 디벼보자는 얘기다. 그리고, 그 근거는 찌라시 헤드라인보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서류, 아니 수치화된 성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때 언히터블로 군림하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삭발했었다는 소식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김병현의 성적을 논하기에 앞서, 진짜 최고 클로저 소리를 들으려면 어느 정도를 해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흔히 마무리투수가 갖춰야 할 자질로 삼진잡는 능력을 거론하곤 한다. 즉, 아무리 팽팽한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힘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구속, 혹은 확실한 승부구를 필수적으로 갖춰야 함은 불문가지일 테고. 또한 1년내내 꾸준히 최상의 구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복없는 안정성이 요구된다. 꼭 이겨야 할 팽팽한 게임에 주로 투입되는 클로저의 속성상 이는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라 하겠다.









두리뭉실한 몸매의 에릭 가니에. 하긴 공만 잘 던지면 됐지...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구원1위를 달리고 있는 에릭 가니에(LA)를 예로 들어보자. 9월 6일 현재 그는 71 2/3이닝을 던지며 무려 123개의 삼진을 잡아내고 있다. 이를 이닝당으로 환산해보면 1.72개라는 충격적 수치가 나온다. 아웃카운트의 절반 이상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가 올시즌 등판한 67게임 가운데 삼진을 잡아내지 못한 건 6게임에 불과하며, 그중에서도 3게임은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등판한 게임들이었다. 1이닝 3삼진을 기록한 게임만도 11차례에 달한다. 시속 98마일의 강속구가 폼이 아님을 톡톡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성적에서 무엇보다도 작살스러운 대목은 바로 세이브 성공률이다. 가니에는 올시즌 48번의 세이브 기회를 모두 살리며, 단 한차례의 블론세이브(마무리투수가 세이브기회를 말 그대로 날려버리는 일-일명 불쇼)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동점상황에 등판해서 패전을 기록하는 경우는 있었을지언정, 앞선 투수의 승리를 날려먹는 짓거리를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방어율도 1.38. 풀타임 소방수 2년차의 성적치고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가니에는 워낙 괴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그밖에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클로저로 인정받는 또다른 선수들의 성적을 분석해보면, 대충 김병현이 어느 정도 레벨의 선수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성적은 9월 6일 현재


이름
(소속)


현재순위


세이브


블론
세이브


세이브
성공률


삼진


투구이닝


이닝당
탈삼진


방어율


존 스몰츠
(애틀랜타)


NL 구원 2위


44


3


93.6%


67


61


1.10


0.89


키스 폴크
(오클랜드)


AL 구원 1위


39


5


88.6%


82


77


1.06


2.10


빌리 와그너
(휴스턴)


NL 구원 3위


38


3


92.7%


95


73 2/3


1.29


1.71


마리아노 리베라
(뉴욕 Y)


AL 구원 2위


32


6


84.2%


53


60


0.88


1.95


* 역대 최고의 클로저 중 한명이라는 리베라는 지난해부터 조금씩 맛이 가고 있음. 그런 성적이 저 정도라니...


표에서 보듯, 세이브 성공률이 90% 정도이며 이닝당 1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면 일단 우수한 클로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김병현은? 올시즌 초반에는 선발투수로 뛰었으니, 마무리로 전환한 7월부터의 성적을 분석해보자.


7월 이후 그는 15차례의 세이브 기회를 가졌고, 그중 12번을 성공시켰다. 80%의 세이브성공률은 분명 정상급으로 꼽히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수치이지만, 중간에 보직을 바꾼 탓에 세이브기회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나쁜 것만도 아니다. 또한 같은 기간 이닝당 삼진수는 1.10개. 괜찮은 수치이다. 같은 기간 방어율도 2.76. 그만하면 최정상급은 못되지만, 수준급의 클로저임은 분명하다. 선발로 뛰던 4~6월의 성적이 3승 6패 방어율 3.96에 이닝당 탈삼진은 0.69개이니, 마무리로 전환한 이후 성적이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사실 역시 확인해볼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다지 안정된 마무리솜씨를 보여줬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발견된다. 7월 한달간 김병현은 0.96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왕년의 언히터블 마무리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8월의 김병현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 5.74라는 형편없는 방어율로 추락하고 만다. 특히 8월 20일 오클랜드전에서는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를 잡고 4안타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며 최악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하필 이날 김병현은 기자들 앞에서 "사람들이 우리 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더라"는 뚱딴지스런 발언을 했고, 이 때부터 보스턴 지역언론이 일제히 김병현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월별방어율이 이처럼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김병현의 마무리 실력이 그다지 안정되어 있지 않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하긴 가니에도 5월 방어율이 4.96이니 비단 월별방어율의 차이만 갖고 안정감을 논한다는 건 좀 우습지만, 아무튼 김병현이 최근 부쩍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그리고 가니에의 세이브 실패율이 0이라는 사실은 이런 문제점을 능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특히, 하필 양키스한테 1승 2패 1세이브 방어율 5.14로 버벅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쩐지 어리버리해 보이는 윌리엄슨


보스턴은 무려 85년간이나 월드시리즈 우승 맛을 보지 못한 팀이다. 당장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보스턴의 팀사정상, 이런 불안한 클로저를 그냥 보고 놔둘 턱이 없다. 게다가 보스턴에는 스캇 윌리엄슨이라는 또다른 옵션이 있다. 윌리엄슨은 7월까지 신시내티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했으며, 그동안 21세이브를 올렸다. 그 또한 5월의 월간방어율이 5.40에 달하는데다 최근 김병현보다도 더 불안한 경기운영 모습을 여러차례 노출한 통에 확고한 안정감을 주지 못하긴 하지만, 김병현의 위상을 완전히 흔들어 놓을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음은 틀림없다(애리조나 시절, 매트 맨타이가 무던히 속을 썩이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고 보면 김병현은 안정된 자리를 가질 복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사실 김병현이 작년만 같은 컨디션을 꾸준히 유지해 줬더라면 이런 고심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애리조나에서 김병현은 85.7%의 세이브 성공률을 마크하며 36세이브를 올렸고, 이닝당 1.10개의 삼진을 뺏어냈으며 2.04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한데 올시즌은? 김병현은 한동안 선발로 활약하다가 황급히 마무리로 보직을 바꿔야 했고, 게다가 지난 4월 방망이에 다리를 맞는 부상을 입어 한달 가까이 등판하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악재를 만났다. 그런데다 소속팀 안팎의 상황마저 이토록 빡빡하니,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든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문제는 그 탁월한 구원솜씨를 제대로 펼쳐보인 시즌이 지난해 뿐이라는 것이고(물론 2001시즌의 성적도, 당시 완전한 붙박이 마무리가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훌륭한 것이긴 했다), 그런 와중에 올시즌 연이은 불쇼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섣불리 정상급 클로저라는 믿음을 부여하기 곤란한 이유 되겠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김병현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스타일(장신의 좌완 정통파)의 랜디 존슨이라는 선발투수가 김병현과 환상의 계투조를 이룰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기대할 형편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2미터가 넘는 장신 좌완투수가 꽂아대는 초음속 강속구를 구경하던 타자들이, 갑자기 우완 숏다리 투수가 땅밑에서 긁어올리는 무브먼트 한번 더러운 공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를... 그 넘들 구질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봐도, 절대 치기 쉬운 게 아니자너...









다시 못 볼 환상의 계투조... 빅 유닛 & BK

 

김병현은 확실히 한국이 자랑할만한 명투수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에 해당하는 클로저이다. 하지만 아직 최정상급 플레이어는 아닐 뿐더러, 팀내에서의 입지조차도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마당에 승, 패, 세이브와 같은 표면적 결과만을 놓고 필요 이상으로 미화시키고 부풀이는 것은 그를 위해서나, 팬들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


신문 한 부라도 더 팔아먹어보겠다는 속셈 탓에 그러는 줄은 알겠다. 그 어줍잖은 상혼이 박찬호에게 한때 메이저리그 정복자라는 명예롭기 그지없는 칭호를 부여했다가, 한 2년 부진하니까 금새 밥숟갈 놓은 넘 취급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 꼴을 보건대 김병현도 벌써부터 측은해지려고 한다. 이렇게 대책없이 핥아주다가, 나중에 박찬호처럼 부진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땐 어쩌려고? 이런 문제점이 서재응, 최희섭, 봉중근 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분통이 다 터질 지경이란 말이다. 졸라.



 
입사하자마자 정신 못차리는 딴지 야구부 우원
안전빵(comblind@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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