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어느 젊은 신용불량자의 초상 2003.9.7.일요일
자칭 인터내셔널 비즈니스맨이라며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중국을 드나들며 보따리 장사하던 본 기자의 친구. 중국에서 사스가 창궐하던 어느 날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들고 본 기자의 단칸방에 나타났다. 나 : 여긴 어쩐 일이냐? 그 가방은 뭐고? 그러나 넘은 이미 본 기자의 방 곳곳에 사스 바이러스가 묻었을 지도 모르는 보따리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쿨한 친구 어머니 덕분에 본 기자 보름동안 사스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맛봐야만 했다. 그리고 보름 후, 신세 잘 졌다면 짐 싸들고 아침에 방을 나간 넘이 저녁 무렵에 다시 나타났다. 나 : 또 어쩐 일이냐? 그 가방은 또 뭐고?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넘은 해본 노릇이 있는지라 아주 익숙하게 제 짐을 풀고 있었다. 평소 넘은 신용불량의 위기를 카드 돌려막기, 친구 삥 뜯기, 국외로 도피하기 등의 절묘한 금융수법으로 넘기고 있던 차였는데 갑자기 카드사에서 한도액을 절반도 안되게 확 줄인 탓으로 결국 신용불량자협회에 가입하고 만 거였다. 중국에 가 있는 사이 카드 회사는 기어이 넘의 집으로 최고장을 보냈고 쿨한 넘의 어머니는 역시나 쿨하게 넘을 내쫓았던 것. 뻔뻔하기 그지없는 넘은 오자마자 방 한가운데 턱하니 눕더니 한마디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참고로 본 기자 그 동안 딸 두 번 칠 거 한번 쳐가며 모은 돈으로 차렸던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극장구경은 엄두도 못내는 백수 신세다. 조또! 사주고 물어보면 밉지나 않지. 그 뒤 일주일 동안 넘은 카드회사에서 걸려오는 독촉 전화에 몸살을 앓는 눈치였다. 아침 9시 모닝콜은 신사적이기나 하지 밤 12시에 전화하는 채권추심업체(벌써 카드사에서는 채권을 XX신용정보에 넘긴 모양이었다) 넘들은 내가 봐도 심하다 싶었다. 열흘쯤 지나자 결국 넘은 핸펀을 끄고 지내기 시작했다. 나 : 그렇게 핸펀 끄면 니 인터내셔널 보따리 장사는 어떻게 하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넘은 보름이 지나도 방을 나가지 않았다. 하루는 넘이 기자의 핸펀을 이용해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데 계속 노래를 부르는 거였다. 나 : 연애하냐? 그 사이 넘은 여기저기 이력서 넣고 면접 보러 다니는 눈치였다. 하루는 넘이 모처럼 맥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친구 : 엉아도 드디어 먹고 살 길이 열렸다. 그 담날 친구 넘이 요금을 내는 조건으로 내 명의의 핸펀도 하나 장만해 주었다. 그리고 나흘 뒤 넘이 퇴근하면서 소주를 잔뜩 사들고 왔다. 나 : 왠 소주? 같은 일을 넘은 꼭 두 번 더 당했다. 그리고 구직 포기를 선언했다. 나 : 어디 편의점 알바 자리라도 알아봐주랴? 한 달 반이 지나자 넘의 외출이 점점 뜸해지면서 종일 나와 함께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 : 요새는 외출이 뜸하네? 얼마 지나지 않아 넘은 담배값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친구 : 에쎄 좀 사다놔라. 담배값마저 떨어지면서 넘은 새벽에 일어나 인력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력시장에도 일이 없어 공치는 날이 태반이었다. 배운 기술 없는 넘이 할 수 있는 건 잡부가 고작이어서 결국 넘은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를 다쳤다. 나 : 이 무슨 신파냐. 파스로 되겠냐? 병원 가라. 허리를 다치면서 넘은 아예 종일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기자의 컴퓨터를 끼고 살기 시작했다. 친구 : 역시 뽈노는 제나 제임슨이 왔다야. 진짜 돈 많은 싸모를 꼬셨는지 그로부터 며칠 간 넘은 분주하게 어딜 왔다갔다하더니 하루는 주방세제를 잔뜩 들고 왔다. 나 : 너 피라미드 다니냐? 그 뒤로도 넘은 한동안 피라미드에 매달리는 눈치더니 결국 포기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동거가 석 달로 접어들자 드디어 넘이 이상한 소릴 하기 시작했다. 친구 : 야, 목돈 좀 벌 수 있는 일 없냐? 넘이 사라진 건 카드빚에 시달리던 주부가 자녀 셋과 동반자살한 사건이 있고 얼마 후였다. 넘이 남긴 메모는 이런 거였다. "고마웠다. 어떻게든 살아보련다. 씨바". 그리고 지금까지 넘은 연락이 끊겨 있다. 넘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뿐이다. 새삼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한 카드사와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정부를 탓해봐야 헛지랄이란 거 안다. 알면서도 한마디하고 가야겠다. 이제는 시퍼런 청춘들이 신용불량의 족쇄 때문에 실업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결국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조까튼 시스템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는 거다. 신용불량자가 300만이 넘는데도 여전히 다 지가 잘못한 탓으로 돌리고 왕따시키는 분위기에서는 어느 누구도 신용불량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취직은 안되고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다 신용불량이 되었기로서니 그게 일생을 나락으로 몰아넣을 만큼 큰 죄는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대체 앞길이 구만리인 청춘들의 두 손 두발을 꽁꽁 묶어놓고 어쩌자는 건지 높은 자리 앉은 양반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 친구는 앞길이 구만리란 말이다. 씨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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