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함주리 추천1 비추천0




[타령] 어느 커트 빠순의 추억..

2002.5.13.월요일

딴따라딴지

 











 근데 이
꽃미남이
진짜루 커트 마죠..?


 track1. Come as you are
Dont have a Gun..


 






"오늘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있었어. 글세 수업 시간에 지도 교수가 들어오더니 갑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하지 뭐야. 그리고는 세상에.. 울음을 터뜨리지 뭐니."

라고 말하는 여학생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미국소설 중


내가 처음 커트를 본 것은 1994년 신촌의 어느 음악 빠에서였다. 친구가 억지로 데려간 그곳에서, 전날 레포트로 밤을 새웠던데다 락 뮤지션이라고는 본조비조차도 몰랐던 나는 심지어 판테라(당시 졸라 인기 많았다)의 초발악 사운드가 쏟아지는 중에도 대범하게 졸아댔다.


친구가 "쥑이지 않냐, 이거 좀 들어봐" 할 때만 겨우 눈을 뜨고(여전히 귀는 닫은 채) 고개만 끄덕이는 척 하던, 반쯤이나 죽은 딱딱한 머릿 속을 갑자기 먼가가 스쳐갔다.








 


난 요기서 닐바나 얘기 안해..
커트 얘기만 할고얌~ 싫으면 시집가~


눈을 뜨자 빛바랜 금발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취해 부스럭거리는 남자가 푸르다 못해 텅빈 눈을 비틀거리며 내 안으로 들어왔다.


저 사람 누군데, 묻는 나에게 친구가 "얼마 전에 뒈졌어 씨바" 했다. "왜?" 하고 묻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돈 해브 어 건, 돈 해브 어 건, 녹슨 금속 같은, 가슴을 후벼파는 금발의 목소리는 반복 해서 울려퍼지고, 만취하여 "짐 모리슨이나 틀어" 라고 소리 지르던 옆 좌석의 남자애 둘도, 울고 있었다.


서울로 대학을 간지 1년하고 또 몇 달. 하루 걸러 미팅을 하고, 수업 시간엔 이따 무슨 옷 살지 고민하고, T.G.I 에서 폼 잡고 밥 먹은 얘기나 하는 것으로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기를 쓰며 살고 있던 나는 그날, 그간의 갈망과 결핍과 괴로움과 외로움과 눈물을 한꺼번에 쏟았다. 그 텅빈 눈동자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토록 푸르게 멍든 영혼이 눈동자를 통해 후두둑 쏟아져 내리는 순간을 똑똑히 보았으므로.


그 이후로도 나는, 형편없이 약해빠진 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내게는 없는 작은 권총 한 자루와,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날아갔을, 약물에 쩔대로 쩐 새빨간 꽃잎 같은 그의 뇌혈관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울었다..


..지상에 남은 내 단 하나의 선함이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라고.
-알프레드 드 뮈쎄 <슬픔>-





 






track2. Jonny B Good
Back to  the past..


 
커트.. 눈에서 영혼이 튀나올 거 가타.. 흑흑


 






"전혀 새로운 음악이야... 들어봐!"
                   
                                                  - 백 투더 퓨처


커트를 추억하라고 하면 나는 이 두 친구를 제외하고는 떠올릴 수가 없다. 그 중 한 친구가 바로 저 신촌의 음악 빠로 나를 데려가 커트를 처음 만나게 해 주었던 사람.(뮤지션으로서는 랜디 로즈를, 남자로서는 데이브 머스테인을 좋아했던 미모의 음악처녀였다)


친구 역시도 나처럼 지방 출신 유학생이었는데, 과에 들어와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음악 얘기할 친구가 없어서였다고 한다.(본 우원 경우엔 만화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거)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술자리에서, 만화를 비롯하여 다른 여러가지 취향이 꽤 통한다는 걸 발견한 우리는, 이후 다소간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친구 어느 날, 은근한 기대감으로 내게 음악 모 좋아하냐, 이것 저것 물어 보았는데.. 당시 나는 락에 대해서 울트라 네버 조또 몰랐으니. 설마 그래도 LA 락 정도는 알겠쥐, 하구서 묻는 친구에게, 나는 본조비가 초코바 이름이냐고 되물었을 정도였고, 거기다 다른 한 친구는 "락이라면 어릴 때나 좋아하는 거 아녀?" 라고 하여 심지어 그 애를 열받게마저 했다.(젤루 열받는 말 아닌가 어릴 때나 하는 짓 운운 하는 거.. 쩝)


요튼 간에 다시 소원해진 관계. 그러던 어느 날 밤 우연히 그애랑 같이 기숙사로 올라오는 거리에서 들었던 척 베리의 "Jonny B Good". 그걸 흥얼거리는 나를 보고 그 친구는 가르쳐서라도 음악 칭구가 되겠노라 결심했었다 한다.


사실 중고딩이 시절의 나는 음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미술이나 문학 쪽은 꽤 섭렵하던 편이었는데, 다른 이들에게 털어 놓고 공유하는 취미라면 순정만화 밖에 없었다. 연예인 좋아하는 거랑 똑깉이 만화 주인공이나, 이미 죽은 예술가나, 모 그런 거 좋아하는 타입 있잖남.(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 죽은 것만 귀여워하고 아끼는 완죤 네크로필리아 스러운 체질..)


그러던 어느 날 <백 투더 퓨처>를 비됴로 빌려다 보고 미쳐 버렸는데, 6-7개월 동안 거의 하루에 한 번은 봤으니까 대사도 다 따라했다. 그 영화 안에서 마이클 J 폭스가 연주하는 음악에 반해서, 그 곡의 제목을 알기 위해 온갖 잡지며 신문이며를 다 뒤졌더니 제목이 바루 <자니 비 굿>였다. 아아 이너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상상이 안 간다. 하여간 그 곡 때문에 나는, 그 친구한테 간택(?)을 받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커트를 알게 되었고, 모, 곧바로 커트 빠순이가 되었지.


커트가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리드 밸리의 <Where did you sleep in last night>을 부를 때, 아.. 마이 걸아 마이 걸아, 뻥 치지 말구, 너 어젯밤 어디서 잤니, 라고 노래 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한숨을 내뱉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는 그 때 무엇을 보았을까. 그의 커다랗게 벌어진 동공에 담긴 것은 다만 머시룸 몇 알과 알콜과 니코친으로 범벅된 환각, 그거 뿐이었을까.


그건 너무도 절박한 공포라고,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결국 내가 보고픈 것만을 보았겠지만.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그는, 모두들 적당히 피해가는 삶의 추악함과, 세상의 수많은 고통들과, 타인과 나 자신의 그 모든 추악함에 대항하여, 생의 모든 순간 순간을, 온몸으로 직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절박한 눈동자가..
슬픈 비밀이 깃든 네 파리한 얼굴이 내 감수성을 온통 뒤집어놨지
-이정애 만화 <키 큰 지나의 다리>-



엠티뷔 언플러그드 때 내내 고개 숙이고 있거나 눈을 반쯤 감은 상태..
딱 두번 그 푸른 눈을 보여주는데 그게 지금 <웨어 디쥬 슬립..> 부를 때랑,
<어바웃 어 걸> 부를 때다.. 순백의 영혼이 그대로 튀나오는 이 눈동자에,
커트 빠순 뿐 아니라 커트 빠돌도 전국 각지로 확산 되었었다.


그리하여, 나 역시 커트처럼, 진실에 고개 돌리지 않기 시작했다. 진실은 늘 두려운 것이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진실은, 나는 쓰레기 라는 것, 내가 겁쟁이고 비열하고 추악하며 정말이지 조또 아니라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것. 그것 만큼 괴로운 일은 세상에 없었다.









바로 이 공연 때 모습이당..


학교는 짤려 버리고,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음악 빠에서 빠텐을 했다. 아까 말한 두 명 중 또다른 친구와 함께. 그녀 역시도 커트러버였는데, 초록색 머리를 흔들면서 천천히, 느리고 우아한 손놀림으로 음악을 틀고, 역시나 허스키의 우아한 말투로 욕설을 지껄이면서 위스키 콕을 만들었다. 매너 엄는 양넘에게는 늘, 오프스프링의 <Bad habit>으로 클라이맥스의 불쉿 갓뎀 머더 퍼커를 먹여주면서.


사실 이때부터는 쪽팔린 얘기지만 난 거의 알콜중독자의 삶을 살았다. 밤낮의 구별 없이 괴로우면 마시고 괴로우면 마시고. 환시가 심했기 때문에, 몇 번이나 커트가 <인 유테로> 공연 때 입었던 검은 가디건을 걸치고 내게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곤 했다.


(문득 생각나는데,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되나.. 최초의 순정잡지 <르네상스> 의 초기에 원수연이 <블루배런>이란 단편을 연재했었다. -존 레넌이 모델로 추정되는- 10년 전에 죽은 뮤지션을 너무 사랑하는 여자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 그가 살아있던 시절로 돌아가지만, 6살짜리였나 꼬마의 상태가 되어 있는.. 그래서 그넘하고 그넘 앤 하고 꼬마 하구 같이 사는.. 하여간 그런 걸 늘 상상하면서 잠들곤 했다)


당시의 내게 커트란, 진실, 삶, 죽음 그 자체였고, 나는 완전히 좀비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친구들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넌 완전한 루져이고 현실에서 도피한 거라고 비난했지만 그때만큼, 내가 진실과 맞대면 하여 치열하게 싸웠던 적은 없었다. 낮에는 취해서 자고, 밤에는 술 마시며 싸우고.. 초록머리와 함께 알바를 뛰던 그곳에서 말다.


거긴, 외국인들이 명랑하게 헌팅을 하도록 돕는 부니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커트의 노래, 특히나 그의 뮤직 비됴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주로 짐의 <엘에이 우먼>이나 R.E.M의 곡, 레드 핫 칠리 페퍼스나 블라인드 멜론도 꽤 나왔고, 음, 큐어도 자주 나왔다, 참 스매싱 펌킨도..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와 함께 언제나처럼 누군가랑(아마 손님이겠쥐) 싸우고 있던 그 순간에, 갑자기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오듯 울부짖던 닐바나의 아니 커트의, <Territorial pissing>은, 증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증말루..



바루 이 공연.. 그때 그는 몬가 엄청난 지옥을


헤매다녔던 듯 하다.. 시중에 나온 <솔드 아웃> 비됴에서.. 흑..


커트가 쉴새 없이 "gotta find a way"를 절규하며, 길을 찾아서,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때, 몇몇은 울고 몇몇은 정말 커트의 말대로 "테리토리얼 피싱"을 시작하고. 영역을 표시하는 오줌 갈기기란 뜻의 테리토리얼 피싱. 누군가 비명을 지르듯 토해내고 있었다.





 






track3. All apologies
Kurt! Kurt! Kurt!




97년인가 98년인가 나왔던 <써브>창간호 표지 사진.. 당시 브래드 핏 사진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음악지가 아니라 영화진 줄 알았다는 후문도..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젠킨스가 리에게 가서 소식을 전하려 하는데 리는 벌써 알고 있었다. "잭슨이 죽었어"라고 리가 먼저 젠킨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리는 비명을 질렀는데 그것은 원시적이고 가슴을 찌르는 비명으로서 마치 상처입은 동물의 소리와도 같았다. 리는 자신의 몸을 벽으로 내던졌고, "아냐! 아냐!" "잭슨! 잭슨! 잭슨!"이라고 소리치면서 그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돌아오기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리는 폭포와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잭슨, 잭슨, 잭슨"이라고만 소리쳤다.


- 김광우 저 <폴록과 그 친구들> 중


"잭슨이 죽었어." "커트도 죽었다."


폴록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커트를 생각했다. 술에 취해 여자들에게 "좋은 자쥐를 빨아본 적 있니"라고 묻고, 흑인에게 "넌 니 피부색이 맘에 드니"라고 묻는 폴록은 술에서 깨면 나약하고 더러운 바보가 된다. 어떻게든 현실에서 도망갈 궁리 뿐으로, 또다시 술에 취한다..


폴록이 먼 소리를 지껄여도, 인종주의자라고 여성폄하주의자라고 욕할 수 없다. 그는 어떤 주의도 없다. 자기를 세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을려는 의도도 없다. 그는 암 것도 없다. 폴록은 그냥 폴록이다. 미친 폴록. 또라이, 븅신, 바보 축구.. 커트도 마찬가지다. 개새끼 나쁜넘. 커트니 말대로 개자식.


야! 이 빙신아 나뿐 놈아 왜 죽니 왜 죽어.. 사람들 좀 속여 먹으면 어때서, 그 빡 돌아버리게 푸른 눈동자, 조금쯤 더럽고 탁해져서 마론 브란도처럼 뚱뚱한 돼지가 되어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하면서 대충 대충 살면 어때서. 이 바보 가튼 넘아.. 나는 걍 이렇게 살 거다. 나는 너처럼 그렇게 순수하지도 재능 있지도 못하다. 난 그냥 이래도 저래도 한 세상 하면서 맛 있는 거 꾸역 꾸역 먹구 돼지처럼 이 한 세상 살아버릴 거다..


  커트족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생을 갈망하는(사랑을 욕망하는) 종류들이야,
마른 몸.. 존재감이 부족한 금발.. 인어처럼.. 고통에 겨워 5센치쯤은 땅으로부터
살짝 떼서 걷는 듯이 위태위태한 다리에다.. 아름답지.. 아름답지만..
-이정애 만화 <베쓰 앤 샤워>


나는 라이브를 들을 때마다, 이제 세상 누구도 커트의 라이브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눈가가 붉어지곤 한다. 아니 사실 어떤 락 밴드의 라이브도 보고 싶지가 않다. 커트를 떠올림 없이는, 슬픔 없이는 음악을 듣기가 힘들다.


아아 그 1994년 4월.. I love You, I love You, 라고 쓰인 커트의 유서, 커트가 남긴 금발머리 딸 프랜시스. (물론 몇몇 커트 빠순들은 모이면, 커트니 씨파년 절때루 커트애를 낳았을 리 없다구 마구 지랄했지만, 다행으루다 커트애가 맞는지 클수록 닮았드라, 커트야 푸랜시스 보고 싶지도 않냐.. 왜 죽었써.. 글고, 커트니 니뇬은 오해 받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커트 죽은지 일 줄도 안돼서 마이클 스타이프랑 응응이나 하구 말야, 나뿐뇬 커트 살려내, 커트 가튼 놈한테 결혼하자고 조른 거부터가 죄악이야..)








푸랜시스가 이만큼이나 컸어 커트..


그 후 3년이 지난 어느 봄밤, 땡전 한푼 엄는 거렁뱅이 넷이 모여 2차선 도로의 가장자리 풀섶 위에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갈지를 몰랐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녹색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보라색 바지를 입구서 춤을 추었다. 새벽이라 차가 하나도 없었는데, 저 멀리서 작은 승용차 한 대가 서더니, 초록 머리를 향해서 헤드라이트를 비추어 주었다..


그 친구는 지금 착실한 의대생이 되어 있다. 자폐증 때문에 방에만 누워 있어 등에 욕창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거 참, 잘됐다. 전화루다 다른 칭구에게, 이제 나 증말 좋아졌어, 빛이 보여, 라고 했다고 한다.


후계자 먀신은 니진스키 앞에서
예전에 니진스키가 했던 것과 똑같이 춤을 추었다. 갑자기 니진스키의
정신이 되돌아온 듯 했다. 그는 먀신을 마주 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니진스키는 얼마 안 가서 곧 주저 앉고 말았다.
눈은 빛을 잃고 정신병자의 그것으로 되돌아 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니진스키가 추었던 장면은 사진 기사가 촬영했고
모두가 울었다. 필자 역시도 그 사진들을 보며 울었다..

-빌리 하스의 <벨 에포크, 세기말과 세기초>


커트..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8년 전의 어느 봄날,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던 한낮에 신문(아마도 좃선인 듯)을 펼치다가 보았던 그의 엄지 손톱만한 사진을 기억한다. 시애틀의 어느 집에서 어떤 가수가 자살했다는 기사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너무나 작고 해상도 역시 낮아서, 흰색과 검은 색의 듬성듬성한 점 몇 개로만 겨우, 조악스러운 형태를 이루고 있던, 그런데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던 그의 찡그린 얼굴.


그 작은 흰색과 검은 색 점들 안에, 그토록 선명하게 새겨져 있던 고통이, 밝음과 어둠이 눈부시게 공존하던 그의 영혼의 독한 음영이, 가슴 속 깊히 깊히 박혀, 걸음을 딛는 순간 순간마다 독하게 아려댄다.. 커트가 죽었을 떄 그를 부르며 울었던 수많은 커트 빠돌 빠순들아, 나는 지금도 울고 있다 흑흑.. 고흐가 끄적였던 낙서처럼, 죽은 자는 살리라 죽은 자는 살리라, 커트는 살리라, 영원히 살리라..



유일하게 평화로워 보이는 사진. 부디 이 사진 속에서처럼, 그 지독한 위장병도 조울증도 엄는 세상에서, 프로작도 머쉬룸도 실컷 하며 꼴리는 대로 살아도 절떄 안 아푼 닐바나에 도달했길 빌어..



 
딴따라딴지 공식지정 커트 코베인 빠순
함주리 (dandy@ddanzi.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