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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검열] 홍콩산 족구 노총각 검열보고!!

2002.5.11.토요일
딴지 영진공
 
 

                                    

 

잔인한 4월, 어느 화창하던 날. 영등포구 번지 없는 안가에 자리잡은 영진공 수뇌부. 그 직속 공안 9과 아지트에 한 통의 첩보가 떵그렁 효과음과 함께 도착했다. 그 내용인즉슨,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은 사발배 세계 족구 대회를 대비해 한국족구의 내공을 진일보시킬 극비 프로젝트가 국가 중요 관계 기관장 합동 회의 형식으로 모처에서 진행되었다는 첩보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보니, 본 공사 공안 9과는 그 극비 프로젝트가 졸라 궁금 했더랬다. 본 공사 이젠 별걸 다... 졸라 궁금해 한다. 그래서 영진공 수뇌부 직속 공안 9과 과학수사대 CSI 팀이 밀도 있게 추적해낸 결과, 베일에 싸인 홍콩청년(사실 앳된 얼굴과는 달리 벌써 나이가 40줄에 접어들었단다) 하나가 당 극비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임을 밝혀냈다.

 

그 이름 모를 홍콩총각은 천년 소림의 비기를 족구에 접목하는 데 성공했고 금번 사발배 세계 족구 대회를 기념할 겸, 한중친선도 할 겸 해서 비밀리 국내에 잠입, 일단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신비의 족구 기술을 전수하고는 바람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족구 기술이 얼마나 절묘하고 출중했던지 전국 예비역 2년차 족구 대표팀과 일 대 다구리로 족구경기를 벌이고도 가볍게 승리했단다. 공만 보면 발이 근지럽다는 대한민국 예비역들과의 맞짱에서도 손쉽게 이겨버린 신비의 홍콩 족구 총각.

 

이미 눈치 깟겠지만... 그는 바로, 지난 십 수년간 온 세상 화교동네를 황당무계, 쌈마이, 엽기지존, 절치부심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그 이름도 찬란한 희극지왕. 주.성.치.(일명 씽짜이, 씽예, 저우싱치이)였던 것이다.

 

 

그럼! 주성치, 과연 그는 누구인가?

 

1962년 생인 그는 우리나이로 방년 40세이다. 홍콩경찰무비 전문 배우 이수현의 <벽력선봉>에서 조연으로 영화에 데뷔했지만 우리나라에는 당시 홍콩에서 흥행기록을 세운 <도성>으로 그 빛나는 존함을 알리기 시작했다. <도성>은 당시의 유행하던 카지노무비에 코믹을 가미해 선풍을 일으킨 작품인데, 카지노 장에 입장할 때 주성치가 연출한 슬로우 모션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자 세계 영화계에 한 획을 긋는 대(大) 코미디언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적어도 본 우원은 그렇게 평가한다.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아님 말구...

 

주성치는 영화에 데뷔하기 전 몇 편의 티비 드라마(오맹달은 그의 TVB 연기생 동기며, 그 동기 중에는 양조위도 있었다고 한다)와 <340 제트기>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를 맡는 등 긍긍전전하던 연기인생을 보냈다. 이렇듯 주성치의 재치와 순발력은, 타고난 재주에다가 아마도 어린이 프로에서의 종종 통제불능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경험들에 일정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도성> 때부터 주성치 무비의 몇 가지 특징인 엽기적 상황연출, 황당무계한 이야기전개, 어처구니없는 대사, 언제나 얼굴을 디미는 패밀리들의 반복출연, 그리고 스토리 전반을 면면히 흐르는 서민적 체취 등은 시작되었던 셈이고 이게 그만의 독특한 코미디 스타일로 흐르게 되었다.

 

 

 

 

허접하다, 황당하다, 터무니없다, 말도 안 된다...가 칭찬이 되는 영화. 흔히 모레이 터우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장르를 만들어 낸 주성치.

 

그는 정형화된 이야기의 전개나 평범한 상황묘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상황은 왜곡되고 이야기의 전개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산만하기 그지없다. 또 폭력성의 수위 역시 대단히 높아, 거의 <톰과 제리> 수준의 무차별 폭력이 난무한다. 쌍코피 터지거나 멍드는 건 기본이고, 팔다리 부러지는 것도 예사다. 엽기성 또한 오바이트 정도는 귀여운 축에 속한다. 또 모든 영화를 통해서 반복되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연기는 큰 차이가 없이 일정하다.

 

그래도 좀 일목 요연하게 주성치 영화만의 코미디 특징을 따져 보자면...

 

첫째, 무엇보다 주성치 그만이 가지고 있는 묘한 캐릭터에 승부가 있다. 보통 명(名) 코미디언의 영화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슬립스틱 재주나 독특한 재담스타일로 승부를 걸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상황코미디의 경우는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정작 작가의 상상력이 더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성치의 코미디는 얼핏 봐서 그의 재주가 돋보이거나 특이한 능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성치도 짐 캐리처럼 얼굴 근육의 환골탈태를 매우 많이 구사하긴 한다만  자유자재로 움직인다기보다는 도리어 가학적인, 자학적인 연출을 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즉, 고무인간같은 얼굴근육을 가졌다기보다 좀더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다양한 표정을 보라! 

 

우짰든, 그것만으로 코미디배우 주성치를 설명하긴 곤란하다만 그렇다고 그의 코미디가 상황에만 의존하는, 스토리가 강한 코미디라는 것도 아니다.

 

홍콩에는 그의 영화를 흉내낸 작품들도 많다. 심지어 <천왕지왕 2000(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무비 되겠다)>같이 그가 직접 찬조출연하면서 도와준 작품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전혀 주성치스럽지 않다.

 

이렇듯이 그의 코미디는 상황에서 오는 기묘함에만, 혹은 개인기에 의존한 코미디에만 기대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무비 속에는 그 이상의 설명하기 힘든 어떤 묘함을 가지고 있다.

 

둘째, 주성치 군단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패밀리의 팀워크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요 반복되는 재미가 쏠쏠 쌉싸름하다.

 

코미디의 테크니꾸 중에 반복 기법이란 게 있다. 흔히 같은 말이나 같은 행동을 여러 번 하면서 관객의 기대심리를 충족시켜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방법인데 업계에서는 이 반복이 세 번 이상되면 관객이 완전히 알아차리고 그나마 일곱 번까지는 재밌고, 여덟 번부터 열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주성치 패밀리덜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볼만하다. 참말로 이상시럽게도 말이다.

 

만약 오맹달과 그 일당들이 주성치의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썰렁할까. 주성치 영화 초창기의 늘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오는 장민, 그녀의 라이벌 여인 오군여, 주성치의 실제 여자친구로 소문도 났던 막문위, 삼장법사 나가영, 잊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 코딱지 디비는 미인 이건인꺼정 호화군단의 절묘한 팀워크는 역사상 최고, 최장의 하모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맹달과 주성치가 서로 마주보고 대사를 치는 장면을 보노라면 어떻게 저리 죽이 잘 맞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셋째, 늘 주성치의 팬들은 요절복통의 난장판 장면보다 <서유기(월광보합, 선린기연의 연작으로 된 작품)>의 고독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장면이나, <무장원 소걸아>에서 개밥을 먹는 장면, 그리고 이번 <소림축구>에서 쓰레기 넝마를 들고 다니는 그 모습... 그런 약간은 우울하고 진지한 장면을 명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런 진지한 모습을 아주 짧게 던지고 말지만, 보는 이들은 그래서 더 가슴 따뜻하게 그의 영화를 즐기게 된다. 보충썰 풀자면 주성치는 골 때리는 괴짜라거나 정신없는 사이코 기질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마인드로 영화를 구성한다는 거고, 바로 이점에서 웃음의 묘미가 배가된다.

 

본 우원, 주성치의 영화들이 순전히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만 나왔다곤 보지 않는다. 홍콩코미디의 황당무계함과 특유한 몸놀림의 절묘함은 이전에도 없던 게 아니다. 특히 허관창의 <미스터 부>시리즈나 대머리 마카의 <최가박당>시리즈에서 보여준 홍콩코미디의 형식을 보노라면 분명히 주성치 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화는 아니란 걸 말해준다.

 

여기서 하나 더 보태기. 주성치의 진정한 맛은 그런 형식적인 테크닉보단 본 공사가 주목하고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진지한 서민의식이다. 그것이 마지막 네 번째 특징이자 핵심되겠다. 물론 그는 이제 엄청난 돈을 번, 홍콩의 재벌 급 대(大)스타다. 그러나 우리의 <도성>은 홍콩dream을 안고 중국본토에서 넘어와 살았던 평범한 촌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으며, 또한 홍콩의 시민들도 바로 그의 그런 모습에 즐거움과 공감대를 가지고 함께 웃고 즐기는 것이다.

 

참, 한가지만 더 야그 해보자. 그의 영화가 최근작으로 오면서 더더욱 강하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회의 강압적 도덕율같은 허위 의식들을 짭짤하게 씹어대고 있다는 거다.

 

<희극지왕>에서 성공한 후 장백지를 배신하려 한다든가, 또 <식신> 에서 자신을 구해준 여자가 졸라 못 생겨서 고민하는 등 사람들 밑바닥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살살 긁는 재미, 도덕이나 윤리 같은 거 때문에 짓눌려 있던 인간적인 혹은 이기적인 욕망을 코메디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준다. 그래도 영화는 그러면 안 돼...그럴 것 같은데도 그는 기냥 해버린다.

 

김히선이나 류시웬이 현실에서 뭔 짓을 해도 화면 속 그들에게 우리가 맥을 못추는 건, 영화 속 가상현실의 룰을 우리도 지켜주기 때문이다(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만). 그러나 주성치는 그런 엄중한 불문율까지 쌩까며 개무시한다. 그런 모습은 보기에 따라서 졸라 섬뜩하다. 인간의 진짜 모습을 풀어주는 거, 그래서 그는 진짜 코미디언이 되어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번 개봉영화 <소림축구>에서도 예의 그 모습은 여전하다. 하긴 그의 마인드가 어디 가려나. 주성치가 직접 제작, 감독, 주연을 겸했고 그의 찰떡궁합콤비 오맹달, 요즘 홍콩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여배우 조미, 막문위, 장백지(그래 맞다. <파이란>의 장백지다. 그녀들의 무지막지한 변장술에 놀라지들 마시라)까지 얼굴을 비춘다.

 

당 영화가 기존 그의 영화와 다른 점 하나만 좀 집고 넘어가자면 영화 속에 수도 없이 난사되는 컴터특수효과들이다.

 

그간의 황당하고 터무니없던 개그가 당 영화에선 CG효과로 많이 대체되었다. 팬들의 입장에선 이것을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다. 근래 CG나 각종 특수효과로 점철된 영화를 보면서 느끼듯, 그런 특수효과가 내용과는 동떨어져 겉도는 효과라면, 비록 특수효과 자체의 실감이 헐리우드 수준의 실감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의 감상은 <용괘리>, <천사몬> 등의 어설픔과 다름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럼 <소림축구>는? 특수효과 자체의 모양새는 너무 높아진 관객의 눈썰미에 만족스럽지 못한다손 치더라도(주성치의 팬이라면 그럴리야 없겠지만서두) 그 자체가 재밌다.

 

예를 들어 소림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술동작을 펼치다가 곧 현대의 마천루와 도시인들로 바뀌는 장면이나, 주인공 씽씽이 엄청난 거리의 벽을 두고 공차기 연습을 하는 장면은 <진주만>식의 특수효과와는 전혀 다른 목적과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특수효과라는 것이 절대 별다른 볼거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영화자체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의 보조수단으로 철저히 복무해야 한다는 거, <소림축구>는 그 당연한 기본은 갖추고 있다 본다. 그리고 기존작품들과는 다르게 CG가 많다고 해서 예전의 씽예 영화의 플롯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으니 너무들 걱정마시라.






 
 

 

<소림축구>의 현란한 씨쥐 장면

 

 

 

                                    

 

잘난 영화와 못난 영화,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이 간단한 자문에 대한 본 우원 뻔한디 뻔한 멍청한 대답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 씨바. 다만 그저 영화는 보는 이의 것이다라는 공염불을 금과옥조 삼아 어느 누가 어디서 뭔 지랄을 하건 자기 눈을 믿는 게 최고라는 말은 할 수 있다.  

 

요즘 잘 나가는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 고딩 때 시내 모 비디오방에서 그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를 함께 보던 친구 놈이 저거, 저거... 저놈들 미친놈들 아이가하며 개거품을 물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뿐이던가. 감명 깊은 영화를 말해보래서 페럴리 부라더즈의 <메리에게 뭔가 거시기한 게 있다>라고 농삼아 가볍게 낑꿔 넣었더니 그때부터 친구덜 보는 눈에 색안경이 보태지더라.

 

그렇다. 주성치의 대다수 작품과 대부분의 장면들 역시, 여간해서 머리에 남겨두기 힘든 줄거리, 한도가 없는 오버와 난장판의 퍼레이드이다. 또한 범작과 졸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모 인사의 말대로 주성치의 영화는 함부로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뭐, 솔직히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엄따.

 

그러나 정말 별 생각 없이 실컷 웃어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고, 아주 잠깐이나마 쓸쓸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뒤돌아 씩 웃으며 내일은 좀 더 좋은 날일 거라고 희망도 다독거려주는 이웃집 노총각... 그래서 우리덜은 주성치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알게 모르게 그의 비디오가 40편 이상 나와 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절대 강요는 안 하겠다. 그러나 직접 보고 확인하는 수고가 보태지지 않는다면 이따우 디비기 기사가 뭔 소용이겄냐.  

 

개인적으로 그에게 바라는 아주 작은 소망 하나를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씽예여, 앞으로도 더더욱 심하게 날뛰어주시게나.

 

 

 

 

딴지 영진공 전방우 검열우원
버디
(yibudd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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