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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조용필 공연 참관기

2002.5.6.월요일

딴따라딴지 공연전담반








2002년 5월 4일 오후


전철에서부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평소보다 아홉 배쯤 시끌벅적한 분위기, 눈 앞에 자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앉지 못하는 상황의 이어짐. 이 야릇한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를 심하게 굴리던 본 기자의 앞자리에 어디선가 날아온 주인 없는 핸드백이 놓여 있었고 약 2.8초 후 핸드백의 주인이 여유있게 걸어서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며 영민한 본 위원은 마침내 알아 버렸던 것이다.


앉아가는 건 아줌마. 서서 가는 건 처녀라고 했던가. 그렇다. 그 날의 지하철에는 평소의 다섯 배 이상의 아줌마들이 있었다. 혼자 무공을 펼칠 때도 장정 몇쯤은 여유있게 제낀다는 지하철의 절대 강자 아줌마들이 그 날은 예닐곱씩 떼를 지어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빈 자리에 손 짚고 큰 소리로 친구 부르기>의 초식을 멋모르는 처녀에게 보란 듯이 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 운동장역은 여느 토요일처럼 인파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여느 토요일이라면 10대들로 바글거렸을 그곳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잔뜩 멋을 낸 아줌마들의 요란한 웃음 소리는 수백의 십대들을 내치고 그 곳을 그들의 분위기로 채워가고 있었다.


그 곳에서 영원한 슈퍼스타. 조용필의 콘서트가 있었다.


시작부터 쥐오디나 에쵸티의 콘서트와 절대 같을 수 없었던 그 날의 사건들을 시간대 별로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대 별 주요 사건 ;


19시 20분  뒤에 서있는 아주머니가 흥얼거리는 허공 혹은 허공으로 추정되는 야릇한 노래를 들으며 입장


19시 45분  리어 스피커에서 나오는 효과음에 "비행기 떴나부다" 며 뒷자리 아줌마들 웅성거림


19시 51분  앞자리 아줌마 야광봉 아저씨와 흥정 시작.


19시 54분  앞자리 아줌마 한 개에 이천원짜리 야광봉을 세 개에 삼천원에 마침내 구입. 친구들에게 하나씩 돌리심.


20시 30분  곳곳에서 중년 빠순님들의 "오빠" 비명소리 들려옴.


20시 38분 옆자리 아줌마 흥분해서 일어나심. 쑥스러운지 곧 앉으심.


21시 21분  모르는 노래 나옴. 뒷자리 아줌마들 끝까지 따라 부르심.


21시 33분  앞자리부터 사람들이 주섬 주섬 일어섬. 모두 야광봉을 흔들며 일어서서 나.름.의. 광란의 분위기 연출.


21시 37분  엔딩 곡. 대부분의 관객들 좌석 이탈, 전진 이동.


 







<2002 비상 조용필 콘서트>는 특별한 공연이다. 2년전부터 준비했다는 무대는 단독 가수의 공연으로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튼실한 사운드 배치와 - 리어 스피커가 그리 짱짱한 공연은 정말 처음이었다. - 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만들었다는 화제의 신곡과 대형 트럭 하나 분의 엄청난 꽃가루, 불꽃과 조명등 특수효과도 공연의 감동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조용필은 좋은 가수이며 뮤지션이다.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늙지 않았으며 전성기의 열정에 더해진 성숙함으로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변하지 않는 카리스마로 한 시대를 사로잡은 진정한 의미의 수퍼스타이다. 그는 아직도 그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전율하게 한다.


그가 늙지 않는 재능을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 앞에 펼쳐놓는 동안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늙지 않는다. 그가 예전의 그 목소리로 <단발머리>를 부르는 동안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는 40대 아줌마도 20대의 청춘이 될 것이다.그와 함께 늙어온, 그를 사랑하며 늙어온 팬들은 그가 노래부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조용필의 공연장에는 알록 달록 파랗고 하얀 풍선들이 없다. 하지만 오랜만의 외출을 위해 곱게 화장을 하고 새옷을 차려입은 웃음소리 요란한 아줌마들과 그녀들의 남편과 딸들이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야광봉을 흔들어대는 걸로 젊은 날을 찾아가는 아줌마들의 모습은 데뷔 26년 째를 맞는 가수의 콘서트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인 것이다.


조용필은 불러낼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의 근사함을 보여주었다. 그를 아시아의 불꽃 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그에게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뮤지션 이니 월드컵 홍보 대사 니 하는 시시한 이름을 주지 않겠다. 그에게 우리 어머니들과 이모들, 나와 내 동생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오빠 라는 이름만을 주겠다.



 
딴따라딴지 공연전담반 객원기자로 깜짝변신한
남로당 교육위원 페니 레인 (ImNotSorry@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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