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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신 쇼생크 탈출


2002.5.13.월요일

딴지일보 내맘대로 과학부 짱 구라도리

 









" 희망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공포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 <쇼생크 탈출> 中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 앤디는 자신의 부인과 정부가 살해당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살인범으로 지목되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치 못하여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20년 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마저 교도소 소장의 계략으로 사라지게 되자 사건의 진실은 뒤로한 채 탈옥을 하게 된다. 삶에 대한 희망으로 얻은 자유를 만끽하는 앤디.


이처럼 살인사건에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 사건은 미궁에 빠지기 마련이고 범인으로 지목된 이는 어쩔 수 없이 범인으로 몰리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이 영화처럼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에서 주인공 앤디는 결국 사건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탈옥으로 잃었던 자유를 다시 얻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선 <과학>이라는 도구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잃었던 희망과 자유를 다시 얻으려는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그 사건은 바로...


"치과 의사 모녀 살인사건"


검찰이 파기환송심의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재상고함으로써 대법원에서 계류 중인 이 시점에서 구라도리가 이 심각한 주제를 갖고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은 검찰과 변호인단 모두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화재 모의 실험을 하여 기존의 말에 의한 논리 싸움이 아닌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진실을 밝혀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학>이라는 도구가 이 사건에 어떻게 접목되어 진실을 밝혀내려고 했는지 검찰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 과학적 오류는 없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995년 6월12일 오전 708호의 진실은?

1995년 6월12일 월요일 아침 오전 8시40분 ~ 8시50분. 서울 서대문구 불광동 X아파트 X동 708호에서 연기가 보였다. 한 아파트 주민으로 연락을 받은 아파트 경비원은 708호의 인터폰을 눌러도 응답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다용도실 창문을 뜯고 들어갔다.


방안의 자욱한 연기 때문에 경비원은 아파트 문을 열고 밖으로 일단 나온 후 심호흡을 하고서는 다시 아파트에 들어가 안방문을 열고 소화기를 뿌렸고, 출동한 인근 소방관들은 오전 9시 30분쯤 화재를 진압했다. 화재 발생 장소인 안방 장롱 안은 장롱 일부와 옷들이 탄 상태였다.









이 어린 생명 마저...이화영 양 (당시1살)


그리고 화재 진압을 하던 소방관 중 한 명이 화장실 욕조 안에 이 집 부인 최수희씨(당시 31, 치과의사)와 딸 이화영양(당시 2살)이 따뜻한 물에 숨진 채 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인 최씨의 목에는 끈으로 졸린 흔적이 있었고, 상하의 모두 벗겨 있었으며 팬티는 무릎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다. 딸 이양 시체도 목이 끈에 졸린 흔적이 있었다.


안방의 최씨 손가방에 있던 현금과 수표 50여만원은 그대로 있었고 방을 뒤진 흔적도 없었다.


또 현관문의 보조 자물쇠와 아파트의 창문은 잠겨 있었고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끈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보조 열쇠 5개 중 하나는 없어져 있었다.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어떠한 직접적인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집 가장이며 남편인 이도행(36, 외과의사)씨는 이날 정식으로 개원하는 자신의 외과의원으로 출근한 후였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진실 속에 숨은 7년 간의 시간...

이 살인 사건의 초반 용의선 상에 오른 사람은 2명이었다. 한 사람은 피해자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도행씨였고, 다른 사람은 숨진 부인 최수희씨와 불륜 관계에 있었던 전씨였다.


왜 이 2명이 수사당국으로부터 범인으로 의심을 받았냐면 사건 장소인 아파트 내로 외부로부터 침입한 흔적이 없어 평소 부인 최수희씨를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범인일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씨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사건 당일 전날부터 당일 6월 11일~12일 애인인 김씨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에 결국 남편 이도행씨는 사건 발생 80여 일만인 9월 2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구속이 되고 만다.


오직 신과 범인만이 아는 이 사건의 진실은 7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진행 중인데 그간 경과를 짧게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996년 2월23일
1심은 피고인 이도행씨에게 <사형> 선고


1996년 6월26일
2심(고등법원)은 피고인 이도행씨에게 <무죄> 선고


1999년 11월 13일
3심(대법원)은 피고인 이도행씨에게 <유죄취지>로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2001년 2월17일
파기환송심(고등법원)은 피고인 이도행씨에게 <무죄> 선고


현재
검찰이 대법원에 <재상고>


사형과 무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은 부인 최씨의 사망시각과 남편 이도행씨 출근 시각의 선후 관계이다.

남편의 출근시간이 오전 7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만약 부인 최씨와 딸의 사망 시각이 오전 7시 이전이라면 남편이 범인이고 사망시각이 7시 이후라면 남편은 범인이 아니게 된다. 어찌보면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고리는 대단히 간단한 듯 하다.

그러나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두 가지 고리인 <사망 추정 시각> 과 <화재 발생 시각>(뒷부분에 설명)을 놓고 팽팽히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첫 번째 논쟁인 <사망 추정 시각>부분에 대해 검찰 측은 국내 법의학자들의 사체 감정결과, 사망 추정 시간이 이도행씨 출근 전인 <새벽 4시 전후>라는 점을 들어 이도행씨가 범인이라 주장하였다.








 


스위로 로잔대 법의학 연구소장
토마스 크롬페처 교수


그러나 변호인단은 초기 사체 발견 시 시체 경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욕조 안의 물의 온도, 발견 당시 사체의 온도를 재지 않는 경찰 수사의 허술한 점(현장 감식 시 법의학자가 없는 우리나라 수사의 잘못된 관행이다. 우리나라엔 법의학자가 10명이 있다.)과 검찰 측으로부터 사체 감정을 의뢰받은 법의학자 3명의 사체 사망시각 <새벽 4시 전후>라는 판정은 그 가운데 1명 만이, 그것도 발견 23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사체를 처음 접했고 그 나머지 2명은 사진과 비디오만을 보고 감정한 결과이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변호인단은 1999년 10월 16일 스위로 로잔대 법의학 연구소장인 세계적인 법의학자 토마스 크롬페처 교수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국내 법의학자들이 제시한 의견은 인정할 수가 없고 사망시각이 이도행씨 출근 시간인 오전 7시 이후일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증언까지 하여 이 사건의 사체 추정 시각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논쟁인 <화재 발생 시간>부분에선 검찰은 이도행씨 출근 뒤 1시간40분 뒤에 발견된 708호 아파트 화재는 <지연화재>라고 주장했다. 보험회사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적용한 결과, 화재는 아침 6시40분~7시10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씨가 범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아파트 내부를 재현한 모의 화재 실험을 벌이며 검찰 측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본 기사에서는 두 번째 논쟁인 <화재 발생 시각>을 추정하는 양 쪽의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살펴보면서 7년 전의 진실을 찾아 다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과연 화재 발생시간은 언제인가?
 








사건 당일 아침 경비원 조씨의 708호내의 동선


당일 화재를 발견하고 708호로 처음 들어간 경비원 조씨 및 아파트 주민들의 증언으로 사고 당일을 정리를 해보면...
 






아파트 경비원 조씨가 연기를 발견하고 7xx호 주민 박씨에게 인터폰으로 바퀴벌레 잡는 연막탄 피웠는지 물어 보고 안 피웠다는 답변을 들었다.


708호로 올라가 화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경비실로 돌아와 망치를 가지와서 708호에 올라가 다용도실 방범망을 뜯었다.


이 과정에서 손을 다쳐 옆 주민 박씨 등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다시 방범망을 뜯고 창문을 열고 들어가 연기 속을 더듬어 현관문을 열고 밖에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거실 등을 살피다가 안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소화기를 가지고 들어가 안방에 뿌렸다.


...이렇게 된다.


 


 검찰측 주장 - 지연화재이며 화재 발생 시간은 6:40-7:10 사이다!

검찰은 이도행씨가 범행을 저지른 후 알리바이를 만들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서서히 타들어가는 방법으로 출근 무렵인 아침 7시경 아파트 안방 장롱의 중간 옷장에 있던 옷에 불을 붙인 후 옷장 문을 약간만 열어 놓아 공기가 조금씩 공급되도록 해서 이도행씨가 출근하고 나서도 8시가 한참 넘어서야 발견되도록 지연화재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은 미국 연방 표준기술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 and Technology)의 화재연구센타에서 주거용 건물에 대한 화재예방과 화재분석 목적으로 1989년에 개발한 화재 시뮬레이션 분석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 <해저드(HAZARD) 1>에 의하여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발화시간은 경비원 조씨가 안방문을 개방한 시간인 "9시10분을 기준으로 7,200초 - 9,000초 전인 06:40 - 07:10경 사이로 나타났다"고 주장하였다.


검찰의 의뢰로 시행된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08:00 경 냄새로 화재를 인지


 08:20 경 연기를 눈으로 확인


 09:10 경 안방 문 개방


 경비원 조씨의 진술에 근거한 개방 직전의 안방 문 표면온도 32∼34℃


...위와 같은 전제 하에 안방문을 열었을 때 경비원 조씨가 진술한 <32℃-34℃>가 나오려면 안방안 장롱에 발화된 시각은 안방문을 열기 얼마 전이었는가를 여러 조건을 조정하여(예를 들어 다용도실 창문과 현관문이 닫힌 조건, 다용도실 창문과 현관문 닫힌 상태로 두고 개구율을 더 기밀하게 조정하는 등) 발화시간을 추정하였다.


그 결과 경비원 조씨가 안방문을 연 시각인 9:10분으로부터 7,200초 내지 9,000초 (즉 2시간 내지 2시간 30분전)에 발화되었을 때 안방문 열릴 당시의 온도가 <32-34℃>인 것으로 나타났다.









Hazard  I에 의한 화재 시뮬레이션 결과
화재 발생 7,200초 내지 9,000초 후 안방문 온도가 32-34
℃다.


또 화재 발생 후 1시간이 지나고 화재가 발견된 점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 사건에 있어서 화재는 공기 부족에 의한 불완전 연소로 실내 공기 중 산소가 없어질 때까지 연소가 서서히 진행되다가, 이후 틈 새로 유입되는 산소에 의하여 지연화재가 일어나게 되어 착화 후 2시간 이상 연소된 형상으로도 볼 수 있고 현장 상황과 같이 밀폐된 공간인 경우 연기 등이 외부로 유출되더라도 착화 후 1시간 반 정도 경과된 후에 발견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아 검찰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쉽게 말해 이도행씨가 07:00 이전에 불을 놓고 나갔어도 밀폐된 아파트 방안이었기 때문에 08:20경 연기가 발견될 수 있는 이른 바 <지연화재>라는 것이다.

검찰은 화재현장에 최초 진입한 자인 경비원 조씨가 인지한 사실인 "9:10에 안방문을 연 점" " 안방문의 온도는 32∼34℃ 라는 점"에 기초한 근사치에 도달하게 조건이 나올 때까지 각 출입문 및 창문의 틈새면적, 내장재, 시뮬레이션 시간을 무수히 변화시켜 반복 시뮬레이션을 한 것 중에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배제한 결과 중에서 화재 발생 시각을 추정하였다고 하였다.


검찰이 화재에 따른 물리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론적으로 발화시각을 추정한 면에 대해선 대단히 비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만일 경비원 최씨가 인지한 사실인







 안방문을 처음 연 시각인 9:10


 이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경비원 조씨가 느꼈다는 안방 문 표면 온도인 32∼34℃


이 신뢰도가 떨어지는 수치라면? 물론 이 2가지 수치가 맞다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정한 검찰의 화재 발생 시각은 설득력이 있겠지만 만일 이 수치들이 사실과 다르다면 이 시뮬레이션 결과는 상당히 신뢰성이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검찰이 제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로 화재 발생시간을 추정하는 가장 큰 가정은 경비원 조씨가 인지한 2가지 사실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우선 안방문을 처음 연 시각에 대해 검찰이 화재 발생 시각을 경비원 조씨의 말에만 의존한 데 비해 변호인단 측은 이웃 주민들과 경비원 조씨의 행동을 일치시켜 화재 발견 시간 및 경비원 조씨가 안방문을 연 시각을 추정하였는데 이 결과 검찰이 인정하는 화재 발생 시각과는 20분 이상 차이가 난다. 변호인단이 화재 발생 시각을 추정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경비원 조씨가 연기를 발견한 시각 : 8: 50 - 8:55 사이


아파트 경비원 조씨는 처음 연기를 발견한 시각이 8:20 - 8:30사이라고 이야기 하였고 연기를 발견한 5분 후, 혹은 곧바로 복도 끝집인 7xx호에 인터폰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씨가 연기를 발견하고 7xx호 주민 박씨에게 인터폰으로 연락한 시간은 주민 박씨가 9시 5분에서 10분사이에 오는 유치원 버스에 딸을 태우려고 집을 나서려는 시각이었으며 박씨는 그 시각은 8:50 - 8:55 사이라고 증언을 하였다.


 경비원 조씨가 첫 번째 7xx호에 간 시각 : 9:05 - 9:10 사이


경비원 조씨는 7xx호와 통화한 후 12xx호로부터 "빗물받이 홈통으로 연기가 나온다"는 신고를 받고 10층에 올라가 확인하고 내려오던 중 사고현장인 708호 옆집인 7xx호 주민 허씨가 "아저씨 여기"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7xx호로 내려와 확인을 하였다.


옆집인 7xx호 주민 허씨는 사건 당일 8:30 남편 출근 시에도 연기나 냄새를 못 느꼈고 8:50 경 아들을 유치원 버스 태우러 나갈 때도 연기가 냄새를 못 느꼈다고 한다.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주고 자신의 집에 올라와서야 비로서 옆 7xx호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마침 10층에서 경비원 조씨의 이야기 소리를 듣고 "아저씨 여기"라 불렀다.


유치원 버스의 아파트 도착시각은 아침 9시10분이었기 때문에 경비원 조씨가 첫 번째 7xx호에 가서 주민 허씨와 연기를 연막탄 연기를 잘못 알고 내려온 시각은 결국 9:05 - 9:10 사이가 된다.


 다용도실 창문을 통해 경비원 조씨가 진입한 시각 : 9:24:27 이후


경비원 조씨는 옆 주민 이씨와 708호 화재를 확인 후 경비실에 내려가 망치를 가지고 올라와 방범창을 뜯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옆집 주민 박씨가 치료를 해 주었고 그때 또다른 옆집 주민 이씨의 남편이 소방서에 화재를 신고하라고 하여 박씨가 화재신고를 하였고 소방서 자동 녹화 비디오 테이프에는 6.12. 9:24:27에 화재신고가 된 것이 나타나 있다.

이씨의 남편 박씨가 소방서에 신고하기 전까지 경비원 조씨는 708호 창문을 넘어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경비원 조씨가 708호 문을 넘은 시각은 9시24분 27초 이후다.

 경비원 조씨가 안방문을 개방한 시각 : 9:27 - 9:28 사이


경비원 조씨는 9시25분 무렵 창문을 넘어 들어간 후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자 보조 손전등으로 살피면서 현관문을 보조키로 열고 밖으로 나와 호흡 조절를 하고 후라쉬를 들고 기어서 주방과 거실을 살펴보았으며 이상이 없어 안방문을 손으로 만져보자 뜨거웠다고 얘기하였으므로 결국 경비원 조씨가 안방문을 연 시각은 9:27 - 9:28이 된다. 

결국 첫 번째 경비원 조씨가 인지한 안방문을 처음 연 시각은 9:10이 아니라 9:30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검찰 측은 변호인단 측의 이러한 합리적인 논리로 얻어진 안방문 개방 시각을 무시하였다.


아마 검찰측이 변호인단의 주장을 배척한 것은 만일 문을 연 시각이 9시 30분일 경우, 시뮬레이션 결과를 거꾸로 추정한다면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전인 7:00 - 7:30이기 때문에 이 시간은 이도행씨가 출근한 다음시간으로 볼 수 있어 검찰쪽에 상당히 불리한 결과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 시뮬레이션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안방 출입문 온도인 <32∼34℃> 는 수사기관에서 사건 발생 약 1주일 후인 1995. 6. 20. 베니어판을 가열한 뒤 사건 당시 안방문 온도를 감지하였던 경비원 조씨에게 그 가열된 온도를 느끼게 하여 이를 표면온도계로 측정하여 오차를 감안하여 확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경비원 조씨의 온도 감각에 전적으로 의존한 비객관적인 온도 데이터란 점이다. 이런 사실을 반증하듯 경비원 조씨는 사건 당시의 기록에는 "뜨거웠습니다" 라고 했다가 그 뒤엔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미지근했습니다" 라는 식으로 달리 진술을 하고 있다.


사람의 감각은 과연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차고 따뜻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차고 따뜻한 정도를 손의 감각으로 알 수는 있지만 정확한 온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손의 느낌은 경우에 따라 차갑게 느낄 때도 있고 따뜻하게 느낄 때도 있습니다."


-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실험관찰 중...

이 사건을 풀어나가며 수사기관은 "머리로 하는 수사", "과학적인 수사"를 지향했고, 그래서 이 수사는 "교과서적 과학 수사의 모범사례"로 인정돼, 법무연수원에서 강력 검사 교육 자료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이번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화재 발생 시간을 추정하는 진일보된 과학수사를 지향하였지만 그 노력을 인정받기엔 부족한 점들이 있었다.


그 부족한 부분들은 바로 이번 사건의 가장 기본적인 과학적 대전제인 "안방문을 개방한 시각인 9:10""안방문의 온도인 32 - 34"에 대해서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못하고 화재 발생 시간을 추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로그램으로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을 해 화재 발생 시간을 추정해 본들 그 가정 중 하나라도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 결과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검찰 측이 시뮬레이션의 결과로 나온 화재 발생 추정 시간으로 이도행씨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보는 것은 과학적으로 상당한 모순이라 하겠다.


(검찰측이 제시한 지연화재 여부에 대해선 변호인단 의견 부분에서 논하기로 한다)


 


 변호사측 주장 - 일시적 화재며 화재 발생 시간은 최초 연기발생 시간보다 길어야 10분 전이다!


변호인단은 2000년 2월 16일, 24일에 경기 용인시 경기도 지방소방학교에서 사고 현장의 사진을 근거로 당시 사고 현장과 흡사한 모형을 만들어 실제로 불을 붙여보았다. 다시말해 사건 당일 화재에 대해 재현 실험을 한 것이다.


변호인단이 실시한 화재 재현 실험은...







 708호는 7층 높이이고 재현 실험은 운동장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그 공기흐름은 다르다 할 수 있지만 공학적으로 구조물 내부의 연소현상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708호의 창문이 이중창인데 비하여 재현 실험 구조물은 단창이며 그 차이는 열전도 및 통기성에 영향은 있으나 극히 미미한 정도다.


 장롱 안의 옷 수납형태, 옷의 양 등이 다르지만 착화 이후에는 큰 영향이 없다.


 거실 등 타 공간의 존재 차이는 연기 유출시간에 영향을 주기는 하나, 발화 초기의 연기는 상온보다 온도가 높기 때문에 제일 위의 공기는 틈만 있으면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속성이 있으므로 그 차이는 길어야 불과 수 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모의 구조물 내에는 장롱만 배치하기로 한다. 가구배치가 화재에 영향은 있을 것이지만, 큰 불로 확산된 화재가 아니라 장롱 한칸만 전소한 실내에 그친 화재이므로 큰 영향은 없다.


...위와 같은 전제 하에 재현실험을 하였다.


정리하면 재현실험의 조건은 지상에서 거실 및 기타 공간은 제외하고 안방만을 재현하여 실험 대상 공간으로 하였고 창문은 단창이며 안방내부에는 장롱만을 배치하여 실험을 한 것이다.


변호인단이 한 화재 재현실엄의 결과를 살펴보기로 하자.


 화재 양상 변화






























점화


점화 후 1분




점화 후 2분


점화 후 2분 30초




점화 후 3분 50초(열영상 카메라)


점화 후 4분 30초



 


점화 후 9분 5초(거의 소멸)


 


안방문을 통해 발생하는 연기의 양상























점화 후 2 - 3분


점화 4분


점화 5 - 6분




 


점화 8분(연기감소)


점화 9분(변화없음)


 


 화재 상황과 재현실험과 비교

















실제


재현실험




장롱 전경




장롱 천정


변호인단은 위의 실험 결과로 비추어 보아 실험결과와 실재 연소 상황은 일치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재현실험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변호인단의 1, 2차 화재 재현 실험 결과를 정리하면...







 안방 문을 닫은 상태에서 발화 5∼6분 후 연기가 집중적으로 발생하여 바깥으로 나오다가 8분 후부터는 감소되면서 사라졌다.


 발화 초기에는 방 안의 공기가 충분하여 완전연소가 가능하면서 하얀 연기가 생기다가, 공기가 부족해지면서 불완전연소가 되어 연기의 색깔이 검은 색으로 변하고, 이처럼 불이 정점에 달한 후 안방 안의 산소가 소진되면서 불꽃이 급격히 줄고 온도도 계속 하강하였다.


 1차 실험 시 점화 2분 57초 후 안방 문을 열고 9분 3초만에 진입하였더니 외부공기의 유입으로 재연소가 일어났다.


 2차 실험 시 42분만에 안방 문을 개방하고 48분만에 진입하였더니 재연소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다.


이러한 결과로 변호인단이 내린 결론은 1, 2차 실험결과와 장롱과 같은 세로형태의 수납 형태를 고려할 때 이 사건 실제 화재도 발화 5, 6분만에 자연 소진되었고 연기는 발화 10분 이내에 발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연소 현상이 활발한 초기에는 다량의 연기가 발생되며 발화 후 10∼20분 이내에 연기는 바깥으로 나가 목격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화재 발생 시간은 연기 발생 목격 시각인 8:50분의 10-20분 전으로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에 이도행씨는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또 검찰이 주장하는 지연화재라는 것은 이 재현 실험 결과를 평가하고 주관했던 화재 전문가인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윤명오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지연화재에 의한 화재의 패턴은 무거운 무게의 섬유류 속에 미약한 열이 오래 지속되면서 화재가 일어날 때 가능한 것이다. 장롱 안에는 세로로 걸려 있던 옷들이 있었고 바로 그 아래에는 옷들이 쌓여 있었는데 아래에 있던 옷들은 타지 않았다. 세로로 걸려 있는 옷에서 훈소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지연화재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하였다.


결국 이 사건에서 발생한 화재는 처음부터 서서히 타들어 갈 수 있도록 조건설정을 해서 되는 지연 화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불을 붙이면 수분 내에 급격히 연소되는, 산소부족으로 인해서 자체적으로 소화되어 가는 자소성 화재였다라는 얘기다.


변호인단이 제시한 5개의 가정중 4번째인 거실 등 타 공간의 존재를 무시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좀 남기는 하다. 왜냐하면 변호인단 측은 자소성 화재라는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있었기 떄문에 수 분 정도밖에 차이되지 않는 연소 유출 시간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좀더 정밀한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 부분을 제외하다면 가정 자체는 무리가 없어 보이고 화재 재현 결과와 실재 현장과는(사진으로 비교해 보건데) 약간의 차이점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 맞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검찰은 지연화재, 변호인단은 일반적인 자소성화재라는 관점으로 이 화재 문제에 대해 접근하였지만 검찰보다는 변호인단 측의 의견이 더 과학적이고 결과 자체도 물리적으로도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I want to believe...

기사를 매듭짓기에 앞써 이 사건과 여러모로 비슷한 K씨 사건을 살펴보자.







1992년 11월29일 아침 서울 관악구 모여관 203호에서 18세의 카페 종업원 이모양이 목이 졸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를 신고한 사람은 그날 새벽 3시반쯤 이양과 이 여관에서 함께 투숙했던 K씨였다.


K씨는 오전 7시쯤 혼자 여관을 나가 인근의 직장에 출근했다가 오전 10시쯤 이양을 깨우기 위해 여관방에 돌아와보니 이양이 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씨는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됐다. 검찰이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K씨는 숨진 이양과 함께 투숙한 사람으로 밤새 같이 있었다. 오전 7시에 나간 것은 인정되지만, 직장에 나갔다가 여관방에 이양이 있는지 전화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구태여 이양을 깨우기 위해 10시에 돌아왔다는 게 어색하다.


또 이양이 결혼해 달라고 졸라 갈등이 있었고, 여관주인은 K씨가 여관을 나간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여관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여관 문이 아닌 창문 등으로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은 없다.


K씨는 투숙 당시 여관 주인에게 아침 8시에 인터폰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인이 실수로 7시에 인터폰을 했지만 K씨는 즉시 응답했다. 그가 이미 깨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전황이다.>


여기에 K씨는 경찰수사 과정에서 한 때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법의학적 소견이다. 이양 시신의 시강이 전신에 나타난 점이나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 직장 온도, 시반이 뚜렷한 점 등으로 미루어 사망 시각은 오전 5시 이전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K씨는 자백을 번복하고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계속 주장하였지만 1992년 말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결국 유죄가 인정돼 1993년 1심,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1993년 말 엉뚱한 일이 생겼기고 말았다. 노상강도로 서울 관악경찰서에 검거된 당시 19세의 S군이 여죄수사 과정에서 우연찮게 이 살인 사건의 범인임이 드러난 것이다. 진범은 따로 있었던 것이었다!


S군은 전날 습득한 열쇠를 갖고 물건을 훔지기 위해 이 여관 203호에 사건 당일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들어갔다. 물론 여관 카운터 앞을 기어 들어갔으므로 당연히 여관 주인은 못 보았다.


그리고 이양에게 들키자 엉겁결에 목졸라 살해한 것이다. K씨가 범인이라던 그 많은 간접 증거나 7시에서 10시 사이에 여관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다는 여관 주인 진술은 어떻게 된 것인가? 개다가 사망시간이 오전 5시 이전으로 추정한 법의학적 소견은???


위의 사건의 경우야 진범이 사건의 진실을 털어놓아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현장엔 범인을 추정할 만한 어떤 직접적인 단서도 없었다.


오직 신과 범인만이 알고 있을 7년 전 708호의 가려진 진실을 알기 위해 검찰과 변호인단은 <과학적 측면>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서로 상이한 결과를 도출해 내고 말았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우리가 사용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과정과 결과보다도 물리적 현상을 지배하는 가정과 전제들이라 하겠다.


과학자들이 자연을 과학적으로 모델하는 과정은


첫 번째는 자연을 단순화하고
두 번째는 그 단순화한 자연에 대해 적절한 가정과 전제를 정하고
세 번째는 위의 가정과 전제를 근거로 과학적 모델을 만들고
네 번째는 만든 수리적 모델과 실제 자연현상과 비교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과학적 모델과 자연현상이 어느정도 일치할 떄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며 과학적 모델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 모델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가정과 전제가 문제가 있다면 결과는 신뢰할 수가 없는 것이 <과학>이라는 도구의 태생적 시스템 한계라 하겠다.


검찰은 이런 <과학>의 본질을 간과한 나머지 과학적인 신뢰성이 부족한 2개의 가정으로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 내고마는 우를 범해 버리고 말았다.


이에 반해 변호인단은 문제가 될 만한 가정과 전제는 철저히 배제하고(검찰이 차용한 경비원에 의해 진술된 신뢰성이 떨어지는 2가지 가정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화재 사건을 재연하려는데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화재 당시의 여건(장롱의 옷 수납 형태 등)까지 고려하여 재현하려고 애썼다.









사건이 발생 7일전 괌여행시 단란했던 가족사진
이젠 다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다...


7년여의 긴 시간이 흐르고도 이 사건은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이도행씨가 범인인지 아닌지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구라도리 본인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밝히기 위해 <과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검찰과 변호인단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이 과정에서 제시된 과학적 문제점들을 서로 보완하여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처럼 제2, 제3의 미궁에 빠지는 경우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사건의 진실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구라도리도 궁금하기만 할 따름이다. 이 사건에서 <과학>이 우리의 판단 오류를 줄이고 진실을 밝혀 주기를 기원하며.




 


오늘은 7년전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구라도리 (kuradori@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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