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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니뽄 신년행사 구경기

2003.1.5.일요일
딴지 니뽄문화 구경단

 


새해.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누구나 새해라면 나름대로 벅찬 감상에 빠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멀지는 않다만, 타국 일본 땅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은 사뭇 남다르기 마련이고.


글구보니 한국에서의 신년 맞이 행사하면 광화문과 종각에서의 땡땡땡 함께듣기와 카운트다운이 먼저 생각나겠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에서의 신년 맞이 행사는 어떨까? 니들의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본 기자, 뒹굴뒹굴 방굴러데시를 과감히 박차고, 분연히 일어나 일본의 신년맞이행사를 함 돌아보기로 했으니…


 


初もうで(하쯔모우데)

말 그대로 신년맞이행사 되겠다. 일본말이니까 당빠 일본에서 하는 행사란 건 눈치 깠을테고. “하쯔모우데”는 신년이 되면 신사(神社)나 절에서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행사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이 참여 하고 있단다.


본 기자가 찾아간 곳은 나리따산 신승사(成田山 新勝寺,신쇼우지)란 곳으로 나리따 공항과 그리 멀리 않은 JR나리따 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절이다. 나리따산 신쇼우지는 일본에서 메이지 진구(明治神宮, 신사의 이름),카와사키 다이지(川崎大師, 절의 이름)등과 함께 하쯔모우데로 유명한 곳이다.


이 행사는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12월 31일밤 부터 1월 1일 아침까지는 전차가 쉬지 않고 특별 운행을 한다. 본 기자 역시 작년 한해 참으로 조까튼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2003년 한해는 세계 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빌기 위해…라기 보다는 혹시나 정말 돈과 여자, 명예 복이 굴러 떨어질 까 하는 작은 소망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여기는 나리따


나리따역 앞은 주위 시골 마을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 밝지 않은 거리의 조명아래 삼삼 오오, 칠칠 구구 패거리를 지어 나리따산 방향의 거리로 끊임없이 몰려 가고 있었다. 조그마한 골목을 지나 길들이 하나 씩 합쳐질 때 마다 각각 다른 길에서 나온 사람들이 합류, 조금씩 조금씩 그 수가 불어 났다. 나리따 산으로 통하는 거리로 들어섰을 땐, 새벽 3시의 시골 거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인파와 길 옆 상점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축제"라는 단어를 모락모락 떠올리게 했다.



 졸라 많지? 머 광화문만 하겠냐마는…


새벽 3시반. 나리타 산으로 들어 가는 길은 엄청난 인파로 일 분에 한 걸음씩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거기다가 부슬부슬 비까지 간간히 뿌리고...어제 저녁에 먹었던 술이 깨려는지, 머리가 조금씩 지끈거리고 짜증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래, 이럴 때는 아마자께가 짱이지...


본 기자는 바로 길 옆으로 비껴나와 일본식 포장마차 비스무레 한 곳으로 기어들어갔다. 아마자께(甘酒)는 일본주(日本酒)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 단맛이 나는 무엇인가를 잔뜩 집어넣고, 뜨겁게 데워서 마시는 술을 말한다. 요 넘의 특징이라면 알싸한 알코올을 밑에 깔고, 뜨끈뜨끈한 기운이 후욱 올라오는 것인데, 추운 겨울 밤에 홀짝거리며 마시는 기분은 정말 기가막히는 수준되겠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밭에서 김을 매다가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나, 고딩 때 체력장 오래달리기 끝나고 옥상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피우는 담배 한 모금처럼...


 


행사장에 도착하다


새벽 5시 30분, 드디어 나리따 산에 입장했다. 정말 엄청난 인파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소원을 빌기 위한 의식에 돌입한다.



들어서는 계단,뒤돌아보는 이름모를 아저씨의 눈빛.
새해의 희망이 느껴지시는가.


간단히 일반적인 절차를 살펴보자. 금당(金堂,불상을 모셔놓은 건물)을 먼저 찾아보면, 그 앞에 향이 피어오르는 큰 단지가 있다. 그 향의 연기를 머리와 배에 막 뿌린다. 그 연기는 액운을 떨쳐내는 영험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데, 머리와 얼굴에 뿌리면 머리가 맑아지고 똑똑해지며, 배라든지 기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부분에 뿌리면 말끔히 치유가 된다고 한다. 뭐 물론, 그냥 토속신앙에 가깝지만...나름대로 순진무구한 본 기자 역시 정성껏 뿌렸다. 어디에 뿌렸냐고? 그렇다. 올 한 해도 기운 잘 쓰라고, 중요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뿌렸다. 음하하.



이 사진을 다운로드받아 함 문질러 보시라.
어쩌면 효험이 전달 될 지도...


두번째로는 돈을 던지고 자기의 소원을 빈다. 동전 던지고 소원빌기라면, 그 유명한 이태리의 트레비 분수 아니냐구? 머 컨셉은 비슷한 데 좀 다르다.


여기서는 사이센 바꼬라 불리는 상자에 돈을 던지고 한해 소원을 빈다. 물론 돈은 얼마를 내도 상관없다. 성의 표시이니까. 어떤 사람은 100만엔(천만원)정도 던지는 사람도 있고, 어린아이들은 50엔 100엔도 던진다고 한다. 그리고 박수 두 번을 치고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빈다. 본 기자 역시 돈을 던지고 올 한 해, 우리나라가 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세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다. 물론 올 해는 제발 여자 좀 걸려다오 라고도 빌었지롱...



 머,요렇게 뽀다구 나는 데는 아니구…


 
동전 보이시나? 본 기자는 80엔 정도 던진 것 같다.
물론 잔돈으로 여러 개 던져서 그다지 쪽팔리진 않았다.


그 다음은 부적이다. 먼저 부적(お守り,오마모리)을 산다. 물론 그 부적은 이 곳이 절이라고 해서 불교적 의미만을 갖는 부적은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크게 하쯔모우데를 하는 곳인 메이지 진구(明治神宮, 神社로써 일본을 아우르는 신을 모신다는 곳)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부적이다.


불교가 우리나라를 통해 전래 되어 이곳에 정착되면서 토속적 종교와 결합하며 변형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우리 나라의 종교가 우리 나라만의 일정한 종교적 사회적 특징을 가지게 된 것처럼, 이곳의 절 역시 하쯔모우데를 할 때는 부처님에게 소원을 빈다기 보다는, 일본의 신(神?, 카미사마)에게 소원을 빌고 그에 관련된 부적을 쓰는 것이다.


부적은 원하는 용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 운전을 하는 사람, 결혼을 못하고 있는 사람 등 그 사정에 따라서, 그리고 가지고 있는 돈에 따라서 원하는 부적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부적의 종류는 졸라 많다.


 


자, 이렇게 소원을 비는 의식이 대강 끝나면? 그렇다, 한잔 해야겠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절 안에서 술과 음식을 팔기 때문이다. 마치 축제와 같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 모두들 한잔한 것 같이 얼굴이 벌겋고 술냄새가 풀풀난다. 머리를 새빨갛게 물들이고 귀걸이를 멋들어지게 한 젊은 남자와 노란 머리에 진한 화장, 딱 달라붙는 쫄바지를 입은 커플 역시 옆 테이블에서 한잔하고 있다. 개성 만점의 패션들은 우중충할 것 같은 절에 사뭇 화려함을 자아낸다. 산사의 엄숙함과 화려한 개성들의 아이러니스런 동거랄까? 같이 간 일본인 친구가 말을 거든다.


"과거와는 분위기가 많이 틀려졌어. 신성하다거나 진지함이 사라졌지. 뭐, 부족할것이 없으니까 간절함도 없는 건 당연하고. 그 대신 모두 이 때를 축제라고 생각해. 시대에 맞추어 변형되었다고나 할까? 나도 작년까지는 동창회를 하고 나면 모두 이곳으로 몰려 오곤 했었지..."


따뜻한 일본 술 아쯔깡(熱?, 일본 청주를 병에 담은 후, 뜨거운 물속에 넣어 데운 술)과 녹차(일본 음식점에 가면 물 대신 기본적으로 녹차가 나온다)가 먼저 나온다. 아쯔깡 잔을 들어 코 끝에 대고 훅 들어마시니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기...


혹시 니들 추운 겨울 밤에 바람씽씽 부는 거리를 걷다가, 노바다야끼나 일식집에 들어가 따뜻한 정종을 마셔본 적이 있으신가? 사막 모래바닥의 복사열로 인해 사물이 변형되어 보이는 현상이 정종의 표면위에, 알코올이 증발되면서 똑같이 일어나고, 그 증발하는 알코올을 코로 들이마시면 순간 머리가 뿅가는 그 느낌. 알만한 사람은 알지? "싸이꼬!"(最高,기분짱일 때 하는 말)



어때, 땡기지? 녹차 맛도 죽인다.


 
절 앞 사하촌(寺下村)의 상점에서는 올 한해를 지켜준다는 일본 전통 인형들을 판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튀는 것은 역시 다루마(達磨). 달마 대사를 본떠서 만든 이 인형은 달마 대사가 9년 간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할 때의 그 모습을 오뚜기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인형은 길조를 비는 물건으로 여겨져 집에 잘 모셔 둔다고 한다.


근데, 이 인형 함 잘 보시라. 요상하게도 눈알이 없다. 이 인형을 사다가 "아...올 해 제발 총각딱지 떼게 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며 먼저 한쪽 눈만 그린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눈은 열심히 노력해서 그 소원이 이루어 지면 그릴 수 있단다. 이것은 달마대사의 영통한 능력, 그리고 한쪽 눈만 그리고 올 해를 마칠 순 없다는 인간의 달성 의지를 결합시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컨셉이라는데, 나름대로 일리있지 않는가.


 



다루마. 올해는 저 눈깔을 다 그려야 할텐데…


 





 


아침 7시. 이제 날도 어느 정도 밝아 오고 본기자의 몸도 지치고 취해 쓰러질 듯하다. 그래도 뭔가 큰 일이라두 해낸 듯한 뿌듯함과 얼큰하게 취한 술기운을 뒤로 하고 돌아 가는 길은 올 때 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 오고 있다.  기모노를 입은 예쁜 할머니의 모습도 보이고, 그 옆에는 쌩양아치 패거리들도 보인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새해를 맞는 설레임에 마냥 즐거운 듯 하다.


비록 타국에서의 새해맞이 였지만, 사람사는 곳이라면 다 뜻은 통하고 길은 만나는 법. 새로운 마음을 다지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뜻 깊은 일임에 분명하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는 것이다.



신쇼우지의 아침


어,근데…와…씨바! 내 지갑! 와! 이 개씨바새들!
내 지갑 누가 가져 갔어? 씨바 거기 내 신분증하고 돈하고 다 들어 있는데!


그렇게 낯선 일본에서의 2003년은 밝아오고 있었다.


새해 복 많이들 받으시라~



딴지 일본특파원
휴지 (nura82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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