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반스 넥타이를 매자

2001.3.28.수요일
딴지 넥타이 고쳐매기 우원회

캉첸중가.

이거 우리나라 말이 아닌 거 척 보면 아실 거다. 사람에 따라서는 캉첸중가라고 하기도 하고, 칸쳉중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캉쳉중가라 하기도 하는, 혓바닥 꼬이는 단어 되겠다. "장 공장장은 간장공장 공장장"수준에는 못 미쳐도, 캉쳉중가 칸쳉중가 캉첸중가, 혓바닥 액서사이즈도 함 해 보시라.

영어로는 Kangchenjunga 라고 쓴다. 이거이 뭔고 하니 산 이름이다. 에베레스트, K2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8,586 미터의 무시무시한 산이다.

캉첸중가, 무시무시하지?

에베레스트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들 믿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선 부산 대륙산악회가 88년 등정했으나, 정상 사진이 없어 논란이 있었고, 99년 박영석씨가 오른 게 국내 초등으로 인정받는다.

99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에 KBS 기자들이 동행했다가 눈사태로 참변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KBS에서는 정상등정 일정까지 잡아놓고 그날은 하루종일 위성 실황중계를 한다는 야심만만한 계획까지 세웠으나, 눈사태로 보도제작국 현명근(31) 기자와 원정대 한도규(36)씨가 사망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었다. 그리고 작년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재차 도전해서 마침내 성공한 바 있다.

그럼 이제 문제. 이 산의 초등은?

이 문제 맞추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찰스 에반스라는 유명한 등산가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 1955년 초등되었다.. 가 정답 되겠다. 초등되기 전까지 50여년간 10개 원정대가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사망한 사람만도 11명에 이르는 난공불락의 산이었다.

찰스 에반스.

이 아자씨 얘기를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캉첸중가라는 산 이름을 들먹였었다.

이 아자씨가 유명한 이유는 캉첸중가 초등도 있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로프 묶는 매듭법을 한 가지 만들어서 보급시킨 게 그것이다. 등산가들에게 매듭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생각해보라. 수백미터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묶어 놓은 줄의 매듭이 스르르 풀어진다면... 매듭을 잘 만드는 거, 이거 생과 사의 문제다.

찰스 에반스라는 아자씨가 고안한 매듭은 한쪽에서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더 죄어드는 매듭이었다. 에반스가 고안했다 해서 매듭 이름도 에반스 매듭이라고 불린다.

요렇게 매는 매듭 되겠다

아래쪽 긴 줄을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위쪽 동그란 고리가 죄어든다. 그러니깐 무게에 못이겨 매듭이 풀린다든가 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 게다가 풀기도 쉽다. 동그란 고리 부분에 아무 것도 낑궈져 있지 않을 경우엔 긴 줄을 당기면 휙 풀려 버린다. 튼튼한데다 풀기도 쉬우니 매우 유용한 매듭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고로 저 매듭의 순 우리말 이름은 "걸올무" 되겠다.

자, 그럼 이 에반스 매듭은 어디에 쓰일까?

첫째, 절벽에서 줄에 의지해서 하강한다거나, 뭐 그런 상황에 쓰인다. 나무 밑둥에 저 매듭으로 로프를 묶으면, 줄에 체중이 실렸을 때, 고리가 점점 조여들게 되므로 점점 더 튼튼하게 묶이게 된다. 안전빵이다. 암벽 등반 같은 야외활동 뿐 아니라 소방, 인명구조 등의 활동에도 쓰인다.

둘째, 교수형에 쓰인다. 생각을 해 보라. 저 동그란 고리에 사람 목을 끼우고 매달리면 무게 때문에 고리가 죄어들게 되어 있다. 미심쩍다고 실험 같은 건 해 보지 마시라. 딴지일보도 자살 사이트라고 좃선에 날라.

암튼 교수형으로 사형을 집행할 경우에 저 매듭을 쓴다. 그래서 에반스 매듭이라는 이름 대신에 일명 교수형 매듭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다. 보통(?) 사람이 암벽등반을 하거나 불난 빌딩에서 인명구조를 하거나 사형수 교수형 집행할 일이 있을까?

당근 없다. 그럼 씨바야 써먹을 일도 없는데 왜 지금까지 골아프게 읽게 했냐, 라고 흥분하기 전에 잠깐만 참으시라. 최근에 저 매듭의 새로운 사용법을 개발, 적극 홍보하는 한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포스터까지 자체 제작, 칼라 인쇄해서 요금별납 우편물을 발송하고 있다. 수신처는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회사들. 그 많은 인쇄비와 우송료까지 자비 부담하면서 건전 문화 생활 창달을 위해 애쓰는 그분덜의 노고를 치하하여 본지는 과감히 지면의 일부를 할애, 그 홍보작업에 널리 동참하기로 하였다.

자 기대하시라. 에반스 매듭의 실생활 응용편.
 

글타. 넥타이다. 양복을 입는 남자덜의 가장 큰 고민, 바로 넥타이가 아니던가. 단조로운 양복의 뽀인트이자, 사타구니에 이은 두 번째 남성의 급소, 회사 여직원들의 뭇 시선이 집중되는 곳, 바로 그 넥타이....

엘레강스하고 쿨한 느낌의 저 새로운 넥타이로 신 양복 문화 창달에 애쓰시는 그분덜의 단체 이름은 바로 BSA. 상업용 소프트웨어 연합이라는 졸라 큰 전 세계적인 단체로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도비, 오토데스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등줄기가 저릿저릿한 위대한 님덜이 주축을 이루신다. 이분들이 보내신 봉투를 열면 저 포스터 한장과 함께 무시무시한 덫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양복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포스터, 그렇게 달랑 두장의 그림이 들어 있다.

SPC가 한국 내 저작권자 연합체라면 BSA는 그것의 세계판 정도 되겠다. 한국지부는 작년 하반기에 활동을 개시하였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수신자부담 전화번호, 서버 노드도 SPC와 동일한, SPC의 형제뻘 단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아 위대할손. 님들 아니고서는 감히 어느 단체가 자기들 고객, 혹은 잠재적 고객을 상대로 저따구 포스터를 보낼 수 있을까. 독점 시장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상식을 뒤엎어 버리는 저 용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저 의지...

가뜩이나 검경의 무리한 단속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요즘, 저런 협박 포스터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알아서 상상해 보시라. 참고로 말하자면 불법 소프트웨어 처벌엔 "쌍벌규정"이 있다. 해당 직원과 회사가 이중으로 처벌받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뭐 어떡하랴. 오피스 없이, 포토샵 없이, 오토캐드 없이 무슨 업무를 볼 수 있겠는가. 칼자루는, 아니 밧줄끝은 님들이 잡고 계시니 우리는 그저 님들의 왕림을 넋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

직장인덜이여. 에반스 넥타이를 매고 항상 준비하고 계시라.

그리고 님덜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 아니 단속 나오시는 날, 한쪽 줄 끝을 공손히 내드리자. 오시는 걸음걸음 고이 즈려 당기고 오시게...

딴지 넥타이 고쳐매기 운동 추진위원장
최내현(asever@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