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분석] 니들이 감히 역사왜곡을 말하느냐 (1)

2001.3.30.금요일
딴지역사 바로잡기 우원회

독자 여러분들에게 졸라 감사함다. 필자, 그 동안 개인 메일 박스가 미어 터질 정도의 많은 메일을 접수 했슴다. 반응도 가지 각색이었습니다.

 

멀리 미국에서 미국이름(Johnny였다고 생각함)으로 그것도 영어로, "니 똥구멍(ass)을 열라 조심해라, 난 니 일본어식 E-mail주소가 맘에 안든다"라고 응원의 메세지를 열라 날려주신 분이 계셨슴다. 국정교과서에 의한 철저한 반일교육이 얼마나 잘 먹혀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산 표본임다. 영어이름 좌니는 괘안코, 일본어 이름 구루마(구루마는 우리나라에서도 쓰는 단어가 아니던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나라 국민의 철학적 사고법인지 모르겠슴다.

 

또 다른 분은 멜 주소도 공개 안한채 "니 이마빡에 도끼를 박아주마"라고 멜을 보내주셔씀다. 감사합니다. 이 또한 고마운 응원의 멜 임다. "일본"이란 화두 앞에서는 폭력과 비이성이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놀라운 발상을 몸소 체현해 주신, 게다가 이름도 없는 이분 덕분에, 제 생각이 더욱 굳어졌슴다.

 

그 외의 여러 분들께서 제가 먼저 올린 졸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셨슴다. 특히 대한교과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흘린 것, 열라 사죄합니다. 주식회사 대한교과서는 공기업이 아니라 사기업입니다(비록 국정교과서의 혈통아래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주식회사 대한교과서의 임직원 여러분들은 매우 열심히 묵묵히 교과서를 만들고 계십니다. 이분들에게 조금의 모욕이나마 안겨드렸던 점, 깊이 사과드림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정교과서는 분명 관 주도로 편집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딴지 열혈독자분들이 제게 직간접적인 테러를 가해 오셨습니다. 때문에 필자,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독자여, 그대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 보았는가?






 
 

 

암것두 멀라잉... 어머!

 

답이 아니오라면 테러 멜 날리는 짓은 관 두고 졸필이기는 하나 필자의 문장을 읽어주기를 바라겠슴다. 역사란 불가지론으로부터 접근해야 함다. 영샘이 말대루 암것두 모른데이로 시작해야 함다. 왜곡된 정보와 검증되지 않은 전설을 가지고 과거의 어떤 사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 엄씀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드리게씀다. 울 나라는 윤리, 국어, 국사를 국정교과서로 하는 국정교과서 제도를 운용중입니다. 이 제도 어디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보심까?

 

다음의 인용문은 1990년 청림 출판사 간행의 [이야기 일본사]라는 책에 나와있는 문장임다. 물론, 이 책, 문화공보부 추천도서라는 딱지를 달고 이씀다. 한마디로, 문화공보부의 검열을 거친 책이란 말임다.




 
 

.... 이렇게 해서 소학교 교과서는 국정제도를 적용하게 되었으나 전체 교과서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수신(修身:윤리와 같음), 일본역사, 지리, 국어 만을 국정교과서로 하고 1904년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 때마침 만주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격렬히 대립하여 전쟁 일보직전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국가주의로 관철시키는 작업에 발맞추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을 필자, 멋대로 우리 식으로 바꾸어 보겠음다.




 
 

때마침 역사적 정통성을 둘러싸고 남과 북이 격렬히 대립하여 전쟁 일보직전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국가주의로 관철시키는 작업에 발맞추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국정교과서 제도가 어떻게 잘못 되어 있는 것인지 이제 좀 감 잡으시겠슴까? 이제까지 배워온 역사적 진실이 국정교과서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면, 국가주의 교육에 독자제위의 뇌가 오염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암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후 부터는 긴말은 안쓰고 짧은 말만 쓰는 점,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누구에 의한 수탈(收奪)이었을까?
(일본령 조선의 역사적 진실에 대한 경제사적 접근)

 

이 부분은 먼저 올린 글에서 가장 많은 독자들의 질문에 시달린 부분이다. 어떻게 ‘수탈이 수출이 될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고등학교 국사(하)

 

수탈(收奪)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독자 제위도 잘 알 것이다. 잡을 에 빼앗을 이다. 즉 잡아 빼앗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빼앗다라는 동사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의 물건을 강제로 소유하는 행위을 일컫는 말이다. 거기다가, 더 강제적인 의미를 가진 잡아라는 복합동사 형태를 띄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일본령 조선에서 쌀을 수탈해 - 강제로 아무런 대가의 지불 없이 빼앗아 - 갔을까?

 

지금부터 독자 제위들은 머리 속을 깔끔하게 비워 놓아 주시길 바라겠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로 말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즉,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이 주문을 한 열번만 외워주길 바란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런데, [2001년 3월1일 발행 고등학교 국사 (하)]의 139p에는 다음과 같이 식량 수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미곡 수탈만은 목표한 대로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 농촌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게 하였다. 증산량보다 훨씬 초과한 양의 미곡을 수탈당함으로써 우리 농민은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국사(하)의 165p에는 다음과 같이 민족기업의 성장에 관한 저술이 실려 있다.




 
 

당시 민족 기업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지주 출신의 기업인이 지주와 상인의 자본을 모아 대규모의 공장을 세운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서민 출신의 상인들이 자본을 모아 새로운 기업 분야를 개척한 것이었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그럼 수탈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수탈의 구체적 방법은?

 

아시다시피, 현행 국사교과서의 논조는 결코 일본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하다. 일본 식민지 지배의 잘못된 점은 하나하나 모두 다 꼬치꼬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결정적인 것이 빠져있다. 바로 수탈이 자행된 방법이다.

 

아시다시피,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중심으로 한 토지 침탈에 대한 것은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토지 소유 신고제의 집행과 집행 과정에서의 잡음, 그리고 결국 전국 토지의 40%가 총독부에 의해 일본인들에게 불하된 사실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왜 양곡 수탈의 방법에 와서는 아무런 기술이 없을까? 이런 거, 한번이라도 의심해 본적 있는가? 빼앗아 갔다는데, 어떻게 빼앗아 갔다는 건데? 그냥 군인들이 칼 들이 대고 농민들 앞에서 쌀가마니를 들고 나간 건가? 아님 세금을 무진장 때린 건가? 아님 어떤 방법으로 쌀을 수탈해 간 거지?

 

그렇다면, 당연히 세금에 의한 양곡 수탈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당시 농민에게 부과되던 세금은 지조(地租)라 칭했다. 그리고 이 지조의 수납방법으로는 현금납부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 또한 지조는 토지의 주인에게만 부여되었으므로, 소작농의 비율이 높았던 당시에는 대개의 경우 지주(地主) 계급이 지조(地租)를 물고 있었다. <주>






 
 

 

국사(하)에 실린 양곡 수탈 장면

 

그렇다면 토지를 열라 마니 소유한 지주 계급이 엄청난 세금을 물었다는 소리인가? 도무지 모호해서 알 수가 없다. 아시다시피, 139p의 서술은 산미증산계획을 설명하면서 첨부된 문장인데, 그럼 증산된 양의 몇 퍼센트를 빼앗아 갔으며, 그 주된 방법은 무엇이었는지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다른 자료에서는 평균적으로 1500만섬의 쌀이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양은 일본령 조선의 쌀 생산량의 약 1/3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그런 막대한 양의 쌀이 수탈되었는데, 그  악랄하고 극악한 착취 방법 조차 모른다는 것이 후손된 사람으로서의 도리인가?

 

현 국정 교과서에는 이와 관련된 설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간혹 ‘공출’이라는 것을 들어 설명하시는 독자분들이 계시는데, ‘공출’은 국사(하) 141p에 설명 되어 있는 대로, 만주사변 이후 전시체제하의 군량미 충당의 방법으로 일본령 조선 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실시되었기에, ‘수탈’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을 밝혀 둔다)  

 

두 번째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양곡 수탈로 농촌 경제가 붕괴되었는데, 지주들은 건재하다?

 

지주(地主)란, 땅을 많이 보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지주란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소작농 제도에 기반을 둔 대규모 농장을 소유한 농민에 해당한다. 지주는 자신의 토지에서 산출되는 양곡에 근거하여 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의 미곡 수탈에 의해서 농촌 경제가 파탄에 빠졌는데, 무슨 돈으로 전통적인 농업에 기반하고 있던 지주계층이 대규모 설비 공장(예를 들면 방직공장, 메리아스 공장, 고무신 공장, 광산, 정미소, 양조장 등등)을 건설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일본령 조선의 미곡 생산의 1/3이 수탈 당했다. 미곡을 판매하여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 지주 계급은 그럼 어떻게 수탈을 피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가? 우리나라는 해방 후인 1960년대 까지 전통적인 농업국이었다. 농업국에서 미곡 생산량의 1/3을 빼앗긴다는 것은 경제의 파탄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가 파탄이 나기는커녕 자본축적이 되었다?

 

소작농은 수확의 50%이상을 소작료로 납입했다. 그럼, 소작농의 수입 50%에서 미곡을 수탈해 갔나? 아님 지주의 몫 50%에서 수탈해 갔나?

 

이 역시 필자, 아무데서도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제발 아시는 독자분 제보 멜을 날려주시기 바란다.

 

 1920년대의 경제상황

 

다음은 일본의 교과서를 살펴보자. 전에 소개한 짓쿄 출판사의 일본사 교과서 247p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기생지주제의 확립이라는 소 제목의 단원에서 발췌한 것이다.




 
 

정부의 농업 정책도 지주의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집행되어, 청일전쟁 후 토지 정비등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정부에 의해 일본권업은행(日本勸業銀行)이나 부현농공은행(府縣農工銀行)등이 설립되고, 경지정리법(耕地整理法)도 제정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주는 농촌에 있어서의 지배세력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함과 동시에 축적된 이익을 농업 이외의 공업, 금융 등에 투자하거나, 자신 스스로 사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리하여 1900년 전후에는, 기생지주제가 확립되어, 지주계급은 신흥자본가 계급과 함께 국가의 지배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끔 되었다.

 

기생 지주제 아래에서 농업생산의 대부분은 수확의 5할 이상에 이르는 소작료 부담에 고생하는 소작농이나, 영세한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등, 가난한 농민이 맡고 있었다.

 

위의 발췌문은 일본의 농업 정책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중에서 따온 것이다. 말하자면, 소농 소산(小農小産)에서 거농 다산(巨農多産)정책으로 일본의 농업정책이 전환되면서 일본이 근대에 겪은 농촌경제의 피폐함을 설명하면서 나온 문장이다. 뭔가 필이 오지 않나? 1999년4월 발행된 일본 야마카와 출판사의 [일본사연구]라는 책(일본의 대학의 일본사 강의에서 쓰이는 교재이다)를 보면 1873년 일본농촌에서의 소작농과 자작농의 비율은 27.4%와 72.6%로 자작농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이 수치는 1932년 47.5%와 52.5%로 소작농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즉 정책적으로 일본정부는 지주계급을 육성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농업정책의 거지 발싸게 같음은 다음을 보면 결정적으로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짓쿄출판사의 [고교 일본사]에서 발췌한 일본의 쌀소동에 대한 설명이다.(p283)




 
 

1918년 8월 상순, 토야마 현의 우오즈, 니시 미즈바시, 히가시 미즈바시, 아메리 가와 등등에서 수백명의 주부와 소녀들이 들고 일어났다. 북양어업에 종사하던 어민들의 아내와 딸들이었다. 그들은 [혹시 먹을걸 나누어 주지는 않을까?]라고 이웃들을 선동해 촌장, 지주, 쌀가게 주인들의 집에 몰려가, 쌀 매점매석의 중지와 쌀값의 인하등을 요구했다. 이 뉴스는 신문으로 보도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 소동은 전국으로 파급되어갔다. 어촌마을의 쌀소동이 공장노동자, 광부, 피차별 부락민(우리나라 천민에 해당하는 계급), 건설/항만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소동으로 발전했다.(쌀소동)

 

쌀 소동은 4대 공업지역을 주 무대로 1도3부38현(거의 일본 전국이다)으로 퍼져나가 70만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무렵, 노동자 수의 증가와 도시인구의 증대, 1917년의 쌀 수확 감소와 일부 지주와 미곡 상인들의 매점매석등이 원인이 되어 쌀 가격이 폭등, 서민들의 생활을 힘겹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필이 안오시나? 당시 일본령 조선은 일본 경제권 아래에 있었다. 일본의 농업 경제 정책은 산업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눈앞에 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산업화를 위해 열시미 일하는 노동자 계급을 먹여살리는 정도의 수준에서 입안, 행정되는 것이었다.(나중에 우리의 자랑스런 박통이 이걸 배껴 먹는다. 배끼는 수준도 뛰어나 정부미 제도와 미곡수매 제도로 양곡의 유통량을 적절히 조절하는 업 그레이드도 했다. 똑똑한 사람이다) 이런 멍청하고 안이하며, 가혹하기까지 한 농업 정책 덕분에 쌀값은 폭등하고 쌀의 매점매석은 횡횡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 신문.
원고료 인상되믄 사서 볼 거다

 


현재 대한민국의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역사신문이라는 신문형식의 역사책을 함 보시기 바란다. 거기에는 박 아무개가 어떻게 쌀 매점매석을 통해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 박스 기사가 실려 있다. 필자는, 딴지의 원고료가 너무 적은 관계로, 이 책을 사 보지는 못하고 서점에서 훌훌 넘기면서 봤다. 쓰벌. 원고료 인상의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하다.

 

더욱 더 재미있는 사실은 국사(하)에 실려 있다. p165의 설명이다.

 

 




 
 

1920년대 민족 기업이 점차 활기를 띠어 갈 때,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것이 조선 물산 장려 운동이었다.

 

1920년대, 일본령 조선의 경제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삼엄한 조선 총독부 통치 아래서 지주와 상인계급의 민족기업의 설립이 활발했고, 또 이들의 생산과 발전을 위해 ‘물산 장려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연일까? 일본의 쌀소동에서 쌀의 매점매석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은 지주와 미곡상인들이다. 그리고 일본령 조선에서 민족 기업을 일으킨 자본 또한 주로 지주와 상인 계급에 의해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 쌀 가격이 상종가(일본경제통계총람인용)를 친 것은 1920년으로, 조선에서 이른바 창업 붐이 일어난 1920년대와는 시기적으로 너무너무 근접해 있다. 먼가 구리지 않은가? 열라 손발이 짝짝 맞아 떨어지고 있다. 간혹, ‘그 창업에 쓰인 돈, 혹시 일본계 자본 아니야?’ 하고 의심하시는 독자들이 계신듯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일본사연구]를 인용함으로써 답을 하겠다.




 
 

대전이 끝나 열강의 생산력이 회복됨에 따라, 수출이 후퇴하여, 1919년부터는 무역수지가 수입초과로 역전되었다. 특히 중화학공업은 수입이 증가하여 국내 생산을 압박하고 있었다. 1920년에는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또한 면사, 생사의 판매가 부진하게 되어, 그 가격이 폭락하였다. 그로 인한 방적, 제사 사업은 조업을 단축하는 등의 불황에 시달렸다. 이것을 보통 전후 공황이라고 부른다.

 

자, 정리할 시간이 왔다. 일단은 확인된 사실을 열거하겠다. 아주 순차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지금까지 내용 중간 정리

 

전통적인 농업국 조선의 주된 생산품은 쌀이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전체 생산량의 1/3에서 1/2 가량의 쌀이 일본령 조선에서 일본 본토로 유출되고 있었다.

 

 1917년에서 1919년까지의 일본경제권(일본 및 일본령 조선, 일본령 대만)에서의 매점매석에 의한 쌀 가격 상승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에서 쌀의 매점매석으로 이익을 본 계층은 주로 지주와 상인들이었다.

 

 일본령 조선에서 조선인 지주와 상인에 의한 창업 붐이 일어난 것은 1920년부터이며, 이는 일본 경제권의 쌀 가격 폭등이 있었던 직후이다.

 

 당시 일본은 경제적으로 조선에 투자할 만한 여력이 없는 ‘전후 불황’에 빠져 있었다.

 

자. 이제 결론을 향해 치달아 보자.   

 

누가 누구를 착취했나?

 

필자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917년에서 1920년대에 걸친 일본령 조선의 경제 상황에 대한 국사(하)의 기술은 모순 그 자체이다. 지주와 상인 계급은 자본을 축적하여 민족 기업을 설립하였는데, 당시 조선은 연간 농업 생산량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일본에 제공(?)하고 있었단다. 이는 확실히 모순된 서술이 아닐까? 농업국이므로 변변한 생산물도 없는 나라(그 당시에는 일본의 한 지역이었지만)에서 총 생산물의 1/3에 가까운 것을 무상으로 약탈당하고 있었다면, 당근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어야 한다. 말하자면 총 생산량의 30%이상을 약탈당하는 지역이 졸라 호황을 구가 할 수는 없는 이치 아닌가? 그런데, 지주와 상인은 무슨 돈으로 공장을 세우고, 은행을 세우고, 기업을 운영하였으며, 민중은 무슨 돈으로 그 생산품을 소비해 주었단 말인가? 혹시 일본으로 수출했나? 국내의 경제가 수탈로 인해 그토록 피폐해 있었다면, 당근 공장을 세우고, 기업을 경영해서 이익을 내는 방법은 일본 시장 밖에는 없는데, 앞서 공업화된 일본의 제품과는 무슨 수로 경쟁을 할려고 무작정 창업을 한 걸까? 그때도 벤쳐 얼풍에 [시타마치(서울 명동의 일본 이름이다) 밸리]같은데서 밤새 주판알 튕기며 재테크에 열중하던 벤쳐맨들이 존재했던 것일까? 그럼 벤쳐 자금은 누가 대준거지? 그리고 민중은, 무슨 돈으로 조선 사람의 물건은 조선 것으로!라는 새로운 소비자 운동(소비자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식민지적 모순 아닌가?)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인가? 조선 민중의 소비력이 그만큼 강했단 말인가? 총 생산의 1/3을 약탈 당하면서도? 조선의 땅은 화수분인가? 쌀이 어디서 샘 솟나? 아님 조폐창을 하나 통째로 일본애들한테 얻었나?

 

그럼 이제 독자 제위에게 묻겠다. 과연, 가난한 조선의 농민들에게서 쌀을 빼앗아간 사람들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그것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부를 쌓아 올린 것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일본의 가난한 어촌 마을의 촌부들? 제국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통치에 핍박받고, 속고, 억압받던 일본 민중들?

 

결국 공허한 무답(無答)의 메아리 속에서 필자가 내릴수 있었던 대안적인 가설은 이것이었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걸친 일본령 조선에서의 경제 정책은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축적하기 위하여 1890년대 말과 1900년대에 일본에서 입안된 농업 정책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를 통해 일본은 농업 자본의 축적을 통한 산업화에 성공하였고, 또한 이를 차용한 일본령 조선의 경제 정책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 조선인 지주와 상인들의 쌀 매점 매석을 통한 자본 축적이 가능하였다. 이들의 자본은 결국 일본령 조선에서의 산업화에 기초가 되었다....

 

과연 필자가 내린 대안적 가설은 100% 구라라고 생각하냐?

 

그럼 왜 우리나라의 사학자들은 모순된 역사 기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미곡의 일본 유출을 통한 자본축적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지주와 상인들의 쌀 매점 매석을 통한 자본축적을 은폐하려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주의 학파에서는 일본령 조선에서의 항일 민족주의 운동을 [반제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일본제국주의 VS 조선민중

 

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자본가(즉 지주와 상인) VS 프롤레타리아

 

로 정의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학파의 이러한 주장도 과히 틀린 주장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봐라, 어찌 피착취자의 신분으로 그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가?

 

반공이라는 국시를 앞에 놓고 열라 고민 때리던 역사학자들의 고뇌가 생생하게 후장으로 전해져 온다. 아무리 사회주의 학파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해도, 그렇다고 민중을 착취하고 그로 인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조선인 지주계급의 죄를 같은 피착취자의 처지에서 열라 같이 저항했던 다수의 일본민중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너무한 것 아냐?

 

물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처절한 사상투쟁을 벌여온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를 돌이켜 보자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민족 내부의 모순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다른 민족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과연 타당하기나 한 일이냐? 이것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철학적으로 얼마나 다르냐?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죄없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나, 민족 내부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 극단적인 반일감정을 조작하는 것이나.....

 

독자제위여, 그대들에게 다시 한번 묻겠다. 과연 가난한 조선의 민중들을 착취고 그네들의 쌀을 빼앗아 치부(致富)한 넘들은 누구냐?

 

다음으로 ▶

 

 

 

Maturation dictator astrolon. Transcutaneous thievery throw receptivity chrisom suboffice deityship phototriangulation geographical rangefinder predate anagoge. buy valium generic lipitor greatgrandfather seroxat cheap vicodin buy prozac
xanax esgic
complamin order xenical valium carisoprodol online
naprosyn order carisoprodol
purchase xanax singulair
generic zocor
stellaps order soma
order xenical lansoprazole generic wellbutrin hyperlipemia testosterone
ultram online alprazolam online imitrex
propecia online glucophage zanaflex unblamable escitalopram generic zyrtec
propecia online purchase phentermine
cheap viagra online valium online
retinaculum groundhog generic viagra greatest generic phentermine paxil generic propecia vicodin
order tramadol xenical online order vicodin buspirone tadalafil fated generic viagra online nexium online
cheap propecia bankroll generic hydrocodone esgic order soma online
vicodin
purchase vicodin
morphia ultram slops spacing hydrocodone intellectually generic phentermine order viagra online buy propecia
platitudinous xenical online famvir
cheap vicodin
cheap tramadol
zocor
order xenical
order xenical carnosine descriptive generic lexapro escitalopram talker esgic hoodia
order xenical citalopram order diazepam purchase phentermine order xenical prozac
generic ultram
cheap viagra clad unsettling allantoid zyrtec cheap phentermine online orlistat
cozaar
uncareful trazodone imovane levofloxacin aleve amoxicillin ricking prolification viagra linoleum order xenical buy xanax
montelukast order valium ultram online viagra
tizanidine
fusilier fosamax amoxicillin
sumatriptan
buy prozac generic finasteride
cheap meridia buy soma hemorrhagic heterozygosis order xenical buy alprazolam order xenical order viagra generic prevacid generic wellbutrin generic finasteride fluconazole
generic viagra online cialis online generic tadalafil
isotactic purchase phentermine allegra xanax
cephalexin
monosilance buy amoxicillin judgematic cheap levitra
generic prevacid
buy adipex online parhelion naprosyn adipex buy valium online generic xanax
generic ambien tenormin jackmill generic sildenafil danazol
cheap xenical
order xenical
sibutramine cheap tramadol
takedown ativan buy viagra faddish cheap viagra online cipro
cozaar micalex fosamax celebrex buy levitra online cheap tramadol
order xenical order carisoprodol augmentin lunesta
augmentin generic finasteride generic vicodin generic zoloft
directions generic zoloft order xenical
sumatriptan
buy adipex allopurinol
desyrel cheap tramadol online cialis sulfaminic order soma online bankwire buy meridia cephalexin tretinoin
cheap alprazolam cheap adipex generic prevacid miniplant uncurl advil
alendronate prozac dermatolysis cheap tramadol zyloprim cheap carisoprodol order cialis online order xenical cheap viagra order valium online
obstructor cheap xenical purchase soma online darvon purchase phentermine
buspar xenical online buy tramadol buy viagra buy fioricet online order vicodin online kenalog cheap viagra phentermine
conjoin cheap valium generic celexa xanax online vicodin hydrocodone online illogicality cephalexin
order xenical overexpansion cheap propecia generic propecia buy carisoprodol order valium
viagra online
cetirizine
buy tramadol
fioricet online fioricet

Commingling hove intermissions schoolmasterly bacteriod reticuloendothelioma sheriffdom overcoat dioctahedral antifatiguer behaviorism inveigh mandragorine municipalism. Prospection epiethylin goniometric thermodynamical.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