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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찍어 쑤욱 3] 립싱크! 완전 결판!

2001. 4. 2.
딴따라딴지 전임 논설위원 파토








울나라 대중음악계의 끝없는 논쟁거리인 립싱크...


비판도 많았고, 대항 논리도 그 어떤 문제보다 다양한 것이 바로 이 문제다. 특히얼마전부터는 이 분야의 대부라고 할 이숭만 선생에 의해 립싱크 장르론 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승화되고 있는 실정임은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립싱크에 대해서는 백인백색, 입장에 따라 하도 많은 찬반의 주장이 횡횡하는지라 무엇이 옳은지 도무지 가늠할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의 시대를 반영하듯 한때는 티비에 립싱크 중이라는 웃지 못할 자막이 뜨기도 했고, 예의 장르론에서부터 불가피론, 절대 금지론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이상, 편의와 원칙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각계의 시각이다.


가히 립싱크 왕국의 면모를 만천하에 자랑하는 사태라 하겠다.


이에 본지는 그간 립싱커 용어 제정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본 문제의 정리와 재인식을 도모해 왔으나 사태의 심각성으로 미루어 보다 본격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런 취지로 본 <쿡 찍어 쑤욱> 코너를 통해 립싱크와 관련된 모든 허접하고 불합리한 논의를 잠재워 줄 총결산 버전을 마련한다.


립싱크에 대한 모든 정리되지 않은 생각, 불명확한 의견, 근거없는 주장... 오늘 부로 몽땅 다 정리해 주고, 결론 내 준다.


가자!


 


 립싱크란 무엇인가?


방송이나 음반 업계의 용어로 MR,AR 이란 것이 있다.


음반을 만들 때는 대부분 멀티 트랙 레코딩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모든 악기를 각각 다른 트랙에 녹음해서 필요에 따라 그 악기만 지우거나 고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악기를 몽땅 한꺼번에 녹음하는 것에 비해 그 효율이나 편리함은 비교할 수 없다는 거, 상상할 수 있을거다.


노래 역시 물론 이런 방식으로 녹음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악기 연주는 전부 그대로 놔둔 채 노래만 살짝 지우거나 고칠 수도 있다는 뜻인데, 여기에서부터 반주 테잎, 즉 MR의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음반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이 테잎을 활용해서 방송에 응용한다는 것인데, 반주는 가수쪽에서 준비한 테잎으로 깔고 노래는 무대에서 거기에 맞춰 직접 하는 식이 된다.








릴테잎 데크. 불과 몇년전까지 대부분의 녹음실에서는 이런 테잎에다가 녹음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솔로 가수가 많고 연주의 개념이 그저 노래의 반주에 국한되었던 울나라에서는 가수들이 티비에 매번 출연할 때마다 방송국 소속 악단에게 반주를 일임 - 음악 스타일이 한정되어 있던 6-70년대에는 실제로 이렇게 했다 - 하는 것이 곤란하고 심지어 무의미하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간편하면서도 음반에 수록된 원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릴 수 있는 MR 테잎 사용을 선호하게 되었다. 80년대에는 대부분의 가수들이 이런 식으로 방송국 무대에 올랐다.


반면 AR 이란 것은, 녹음된 테잎에서 노래를 지워 버리지 않은 테잎을 말한다. 즉, 반주 노래 다 들어있는 상태로 음반이나 다를바 없는 완성된 테잎인 것이다. 여기에 맞춰 입만 벙긋거리는 것이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립싱크다.


80년대 소방차 등 본격 댄스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AR 방식은 크게 각광을 받게 된다. 그들 이전에는 가수들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그저 노래를 하면서 거기에 맞춰하는 율동 수준이 고작이었던데 비해, 이들은 곡예에 가까운 복잡한 춤 실력을 중시했기에 그런 동작중에 노래를 제대로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애당초 가창력도 부족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대안은 AR, 즉 립싱크 뿐이었다.


그 당시까지는 방송국에서조차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고 있었던 가수는 노래를 잘 해야 한다 라는 원칙은 댄스 음악의 시장성과 립싱크의 불가피성이라는 현실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서서히 확산되면서 댄스음악이 시장을 장악하게 된 90년대에 들어서는 그 차원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지고 만다. 방송 무대는 립싱크 가수들로 도배되고 립싱크를 하는 가수가 하지 않는 가수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립싱크나 반주를 위해 방송국에 들고 다니던 릴 테잎. CD가 없던 시절에는 튈 가능성 있는 LP나 음질이 나쁜 카세트 테잎은 방송용으로 쓸 수 없었다.


기술적으로도 점차 발달하여 디지털 녹음이 일반화된 현재에는 매니저들이 과거처럼 고음질의 방송용 AR 릴 테잎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일반 판매용과 동일한 CD 한장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노래 녹음및 보정 기술의 발전을 십분 활용하여 립싱크만을 위한 다른 버전의 노래 - 음반과 다르므로 립싱크한 티가 덜난다 - 를 녹음해 써먹는다거나 리믹스 반주를 사용해 변화를 주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개념상으로는 립싱크 자체가 과거의 필요악 에서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바뀌는 등 음악시장을 끌어가는 대세로서 립싱크의 실체가 강력히 옹호되었고, 그에 따라 몸을 그다지 움직이지 않는 발라드 가수들 조차 시청자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등의 명목으로 립싱크를 일상화하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밴드의 립싱크


울나라에서는 연주 밴드가 일반적으로 음악계의 아웃사이더인 입장이므로, 립싱크 역시 솔로 가수나 연주하지 않는 댄스그룹에 국한되서만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서태지, 신해철 등의 무대를 통해 밴드의 립싱크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고 아이돌화된 밴드들이 심심찮게 티비 무대에 얼굴을 디미는 만큼 이 기회애 한번 개념 정리가 있어야겠다.


밴드의 경우는 노래뿐 아니라 연주도 직접 한다는 점에서 일반 가수와는 좀 다른 관점이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즉, 일반 가수 경우라면 MR 반주 테잎을 배경으로 노래할 경우에는 적어도 립싱크 시비의 여지는 없지만, 밴드의 입장에서는 그 성격상 리드싱어가 무대에서 실제로 노래를 하더라도 연주자들은 MR 테잎에 맞춰 연주하는 척 하고 있다면 립싱크와 마찬가지의 윤리적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연주가 가능한 밴드들이 굳이 이런 형태의 방송 무대를 갖게 된 이유는 원칙적으로는 사운드나 울나라의 방송 무대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티비 방송에서의 제대로 된 라이브 연주가 거의 불가능 하다는 데에 있다.


티비 무대 자체가 립싱크나 반주 테잎의 존재를 상정하고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방송국 입장에서는 기왕에 뜬 확실한 스타급 밴드를 위한 것이거나 극소수의 심야 라이브 프로그램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제대로 된 사운드를 위한 시스템을 설치하고 운용하는 등의 까다로운 노력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밴드가 나와 실제 연주를 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Las Vegas 의 한 홀에서 공연을 앞두고 사운드 체크를 하고 있는 Seal. 이 작업은 때론 반나절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특히 고음량과 강한 디스토션 기타등 까다로운 사운드들을 통제해야 하는 본격파 록 밴드로서는 연주를 제대로 보여주려면 상당한 시간의 사운드 체크와 리허설이 현장에서 필요하고, 생방송으로는 한계가 많다. 그래서 외국 밴드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생중계는 기피한다. 특혜 시비 등으로 말도 많았던 방송사에 대한 서태지의 각종 요구들은 이런 근거에서 기인한 것이다. (울나라의 방송 관행상으로는 건방진 짓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외국에서는 이 정도의 까다로운 체크는 진지한 밴드 뮤지션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일 뿐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티비 무대에서의 밴드 연주는 대게의 경우 MR에 의한 연주하는 척 하기, 즉 핑거싱크 거나 아예 완전한 립싱크로 처리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런 한계적인 상황은 연주를 중시하는 밴드의 입장에서는 티비 무대에 출연하는 가능성 자체를 봉쇄당하고 있는 현실이라 하겠다. 


울나라의 유일한 메이저 무대가 티비라는 점을 생각해 볼때, 이상과 같은 이유로 밴드 음악은 아예 메이저가 될 가능성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굳이 방송 피디들과 돈있는 주류 제작자들의 담합이나 부패의 고리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립싱크에 적극 동참하는 댄스 팀이나 가수들이 끝없이 공급되는 판국에 별 대중적 인기도 없는 밴드 뮤지션들의 복잡한 요구를 방송국이 본격 수용할 리 만무한 것이다.


이처럼 밴드의 립싱크/핑거싱크 문제는 일반 가수들보다 더욱 복잡미묘한 문제 속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울나라의 립싱크 현실


...그렇다. 


댄스 가수들이 무대에서 격렬한 춤과 동시에 노래를 제대로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발라드 가수들의 경우도 아무래도 직접 부르는 것보다는 녹음된 노래를 트는 것이 더 좋은 노래를 들려줄 가능성이 큰 것도 분명하다. 밴드 역시 핑거싱크를 한들 드러나지도 않고, 노래는 직접 부를 수도 있으므로 별 문제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제는 대중들도 립싱크 여부를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이런 모양새를 볼 때 결국 좋은게 좋다 는 식으로 립싱크는 이미 울나라 음악계의 대세로 정착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숭만 선생의 경우에서보듯 그런 현실을 옹호하는 주장들도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따라서 와중에 문제의 핵심을 명확하게 짚어낸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노래를 잘해야 가수지... 정도의 습관적인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핵심을 짚어내기 위해서는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논리적으로 바라봐야만 할 것이다.


불변하는 진리는, 립싱크는 음악의 원칙을 저 버리는 일로서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필요악으로서의 립싱크는 때로 현실속에서 불가피할 수 있다. 그것이 아래와 같은 경우들이다.


공연장의 환경이나 설비상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엔터테인먼트 요소의 강조를 위해 노래의 일부를 소화할 수 없는 경우


정식으로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닌 약식 무대의 경우


가수의 건강 문제등 기타 긴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








숭만 옹의 립싱크 옹호론도 현실론의 입장으로 지지받을 수 있을 것인가..?


대중음악은 예술로서의 이상적인 면 뿐 아니라 방송이나 공연, 기타 등등의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지는현실로서의 산업적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 이런 이유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립싱크가 울나라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이 아닐진대, 이런 것들은 립싱크가 조금이라도 이루어지고 있는 어느 나라에서든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처럼 비록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립싱크의 존재는 나름의 명분이 있고 현대의 복잡다변화된 음악계에서는 그 실체가 인정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립싱크 절대 금지 식의 주장은 음악 산업의 현실 자체를 무시하는 것으로서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따라서 현재 울나라의 립싱크 가수들 역시 같은 이유로 그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다. 내용은 위에 제시된 것들과 거의 똑같다. 음악적 다변화, 사운드 등 무대의 현실, 바쁜 스케줄 등등... 그렇다면 울나라의 립싱크 역시 이런 맥락에서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천만의 말쌈 만만의 콩떡...!


왜 그런 것인지, 외국의 예와 비교해보자.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슬라이딩 백 스텝)가 대중화되는데 크게 공헌한 86년 5월16일, 흑인 음악의 전설적인 레이블 모타운 레코드의 25주년 기념 무대를 기억해 보자. 이를 생중계한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에서 5천만명이 지켜보았고, 마이클 잭슨의 주가를 더욱 높이는데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히트곡 Billie Jean을 전면적으로 립싱크 했다. 그렇다. 미국이라는 땅, 공적인 무대에서 행해진 최고 톱 가수의 완벽한 립싱크가 바로 이 무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를 통해 울나라에서의 립싱크 사태를 변호하려 한다면, 그에 앞서 전후 상황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 잭슨 파이브 때부터 팀의 메인보컬로 수천번의 무대를 소화해 낸 뛰어난 싱어이고, 직접 수준높은 곡을 만들어내는 작곡자이자 아티스트였다. 이런 점들은 이미 86년 당시에도 공인되어 있었다. 즉, 마이클이 립싱크를 위주로 하는 가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마이클은 결코 립싱크에 의존해야만 하는 가수가 아니다. 그의 춤 만큼이나 노래와 작곡 실력은 세계 최정상의 수준이다. 


또한 문제의 무대는 레코드사의 창립 기념제의 일환이어었고, 당시의 화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식 공연이 아니라 일종의 축하 쇼케이스로 벌어진 이벤트이자 서비스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날 그의 립싱크에 대해 도덕적인, 음악적인 비판을 가한다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날 세계를 뒤집어 놓은 독창적인 문워크 스텝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마이클은 공연을 통해 다양한 노래와 댄스 및 퍼포먼스를 선보여 왔는데, 필요에 따라 립싱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라이브의 정신을 잊지는 않았다. 라이브에서의 격렬한 동작에서 구현하기 힘든 일부 부분과 고음등의 영역에서 립싱크를 활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마돈나 등 다른 가수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런 경우의 립싱크라면 앞서 이야기된 청중에게 좋은 쇼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정신의 구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만큼 미국의 청충과 평론가들은 상식선에서의 립싱크 사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제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밀리 바닐리의 경우와 같이 부정한 방법이나 립싱크를 통해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가수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즉, 가수나 제작자, 방송, 청중 등 모두가 음악의 기본적인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처럼 기본이 충실하게 공유된 상태에서 립싱크의 융통성 또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