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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텔 미 썸딩>에 대해 뭔가 얘기 해주마

1999.11.15.월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하드고어 스릴러"

한석규, 심은하 주연에 <접속>의 장윤현 감독이 연출을 맡아 개봉도 전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텔 미 썸딩>은 자신을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는 없던 장르인 하드고어(hard-gore) 스릴러라 불러다오!"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하드고어라 하면 "하드코어(hard core)"를 슬쩍 변형해서 만들어낸 아직은 영화용어로 공인되지 않은 말로, 번역하면 영화내내 절라 피 철벅철벅 흐르는 사지절단 피칠갑 영화 쯤이 될 것이다. (주1)

하지만 주최측의 그 집요한 주장과는 달리 <텔 미 썸딩>은 사실 "하드고어"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영화다. 물론 이 영화에는 한국영화에는 그 유례가 없던 초실감 사지절단, 아니 절단사지가 나온다. 찌라시에서도 이 점은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영화로는 볼 수 없었던 본격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작전이다.

물론 그 인트로만을 보자면 이 영화는 충분히 피칠갑 영화라고 분류될만하다. 사람 껍질을 벗겨 죽이는 형벌을 그린(실은 옛날 유럽 대학에서 해부학 강의하는 걸 그린 그림같지만) "캄푸세스 왕의 재판"이라는 그림과 함께 교차편집되면서 나오는 시체절단, 절단된 팔, 다리, 그리고 그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양동이로 받아내는 장면은 피칠갑이다. 게다가 그 시체 모형이 도저히 모형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실감이 나서, 진짜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으.."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데드 얼라이브>처럼 영화내내 절단사지가 하루 웬종일 주리줄창 떽데굴 굴러다닌다던가, <황혼에서 새벽꺼정>처럼 바닥에 고인피 밟는 소리 절버덕 철퍼덕..이 나는 것도 아니고,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처럼 아예 인간 정육점을 차린 것도 아니다.

그저 연쇄 살인범이 있고, 걔가 시체들을 토막내서 엘리베이터, 시민공원, 남의 차 안에 버리구(왜 쓰레기를 공공장소에 버리구 그러냐, 씨바. 이거 명랑사회구현의 공적이다), 그게 발견되고, 검시실로 가서 검시되고.. 그럴 때만 사체 토막이 소품으로서 등장할 뿐이다. 이런 걸 도저히 피칠갑 영화라고 할 순 없다.




 그럼 어떤 영화냐

그럼 이 영화, 뭐라고 불러주는게 좋을까나?
우선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얘기해보자면..







조형사(한석규 분)는 비리사건에 연루돼서, 연쇄 토막살인 사건이라는 어려운 사건을 떠맡게 된 젊은 형사반장이다. 물론 미혼이다.

그리구 얘보다 계급이 낮은 늙은 형사인 오형사(장항선 분)가 파트너로 일하게 된다. 근데 얘덜이 토막사체들의 신원을 조회해보니 채수연(심은하 분)이라는 여자가, 세 명의 희생자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다.


그래서 수사가 진전되는데, 그러면서 채수연은 강력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고 동시에 조형사는 채수연과 폴링 인 러부 위드한다...


뭐, 대충 이렇다.

이 줄거리에서 뭐 떠오르는 단어 없으신가?

거렇췌이.

이거, 바로 흔히
미스테리(mystery)필름 느와(film noir, 어두운 영화)라고 불리우는 영화들을 전형적으로 짬뽕해 놓은 스토리다.(주2)


특히 이 영화는 시종일관 그야말로 <세븐>스러운 푸른 톤은 어두운 화면을 유지하고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이거 전형적인 필름 느와의 화면구성이다. <세븐> 안 보신 분은 <쉬리>의 첫 장면, 북한 특전대 특공훈련 장면을 떠올려 보심 되겠다.


왜냐구? <텔 미 썸딩> 촬영감독(김성복)이 <쉬리> 촬영감독이구, 이 분은 <세븐>의 촬영감독인 다리우스 콘쥐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니까. 특히 조형사가 비오는 밤 골목에서 살인자의 차에 치일 뻔하는 장면은 거의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가 범인을 추적하다 머리에 총 맞을 뻔한 바로 그 장면을 그대로 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 장면, <텔 미 썸딩>과 <세븐>의 유사성

어쨌거나, 이 영화의 토막 사체 소품은 국내에 전무했던 실감 시체 소품이지만두, 본기자 소품가지고 영화 장르 타이틀 붙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로서는 볼 수 없었던 본격 하드고어 스릴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자주 시도됐던(최근의 예로는 강수욘, 최민스 주연의 <블랙 잭>) "필름 느와"라고 얘기하는게 훨씬 영화의 정체를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는 "미스테리 스릴러" 정도로 하던가 말이다. 이 영화가 "하드고어 스릴러"라면, 주인공들 얼굴에 연신 피 질질 흐르고, 머리통까지 퍽탄으로 날라가는 <쉬리>는 "하드고어 액션 블럭버스터"라구 불렀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정확하게 알리고 정당하게 홍보하자. 아무리 띄우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관객과의 최소한의 페어플레이 규칙은 지켜져야한다.


 


 애렵다 애려버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해 보도록 하자.


아마도 <텔 미 썸딩>은 올해 개봉된 영화 중 관객들이 할 얘기 많은 영화 부문 1위일 것이다. 실제로 본기자가 극장문을 나서면서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보니, 극장 문 앞은 실로 영화 대토론장을 방불케하고 있었다. 11월 11일자 한국일보의 장윤현 감독 인터뷰를 보니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얘기가 나오길 기대"했다는데, 그 소기의 목적 하나는 달성했다고 본다.


헌데, 문제는 그 토론의 내용이다. 본기자의 작지만 예리한 눈을 통한 관찰결과 모든 대화는 미처 이해하지 못한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주3)


영화를 이. 해. 하. 기. 위. 한 토론.


이것이 <텔 미 썸딩>이 유발하고 있는 토론(또는 논쟁?)의 실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관객의 집중력과 이해력을 요구하는 영화란 얘기다. 어떤 평론가는 한국판 <링>을 보고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초능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그 얘기는 <텔 미 썸딩>을 위해 아껴두어야 옳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냐구? 이 영화, "문화주권"을 "사수"하기 위한 한국적인 영화가 되기 위해 여백의 미를 극치를 추구했기 때문에? 물론 아니다. 분석을 위해 두 번에 걸친 관람 끝에 본 기자, 애석하게도 이의 원인은 쓸따리없는 멋부림을 위한 불친절한 장면들(또는 헛점)무리한 반전의 효과를 노린 결과 나온 일종의 영화적 사기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



 
불친절

우선 불친절. 컷의 길이는 적어도 관객이 내용을 이해할 정도로는 길어야 한다. 관객과의 두뇌게임을 하는 이런 수사극 같은 경우에는 특히 그래야 한다. 헌데 <텔 미 썸딩>은 그 기본도 지키지 않고 있다. (주4)

예를 들면 조형사가 채수연한테 남긴 메모를 보여주는 장면을 보자. 메모의 내용을 반쯤 밖에 못 읽었는데 당황스럽게도 다음 컷으로 넘어가 버린다(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자질에 속독력도 추가해야겠다).

얘기 꺼낸 김에 하나 더. 토막 시체들의 신원조회결과를 브리핑하는 장면을 보자. 이 부분에서는 세 명이나 되는 희생자들(권중현, 서우진, 박현승)이 어떤 넘들인지, 그리고 채수연과는 어떤 관계였는지가 처음 설명되는데, 이 중요한 설명이 절라 쉬 마려운 초등학생 국어책 읽듯 달달달 나열된다.




이 브리핑 내용 잽싸게 적어두지 않으면(또 하나의 필요한 자질로 속기력 추가), 이 뒤에 이 넘들 이름이 거론되는 장면들 - 특히 조형사가 채수연한테 "박현승과 서우진 둘 다 사랑했습니까"하구 물어보는 장면 같은거 - 에서 용솟음치는 짜증을 억제하기 힘드실 것이다. 씨바, 그게 누군데? 쪽팔려서 어디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웅..


<텔 미 썸딩>의 관객들이여, 머리 쥐어 뜯으며 자신의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탓하지 마시라. 이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보입력에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은 영화 쪽에 있으니 말이다.


근데 장윤현 감독, "2시간40분 짜리를 2시간 분량으로 줄이다 보니 정보제공 측면에서 뜻하지 않게 빈 곳도 있을 수는 있다"구? 내용 다~ 알고 보는 감독의 눈에야 그 모든 불친절한 부분들이 너그러이 용서 되겠지만, 사방에서 핸드폰 소리나구 팝콘 봉다리 꾸기적거리는 소리나는 극장 안에서 고도의 집중마저 강요당하는 관객들에게 이는 견디기 힘든 짜증인 것이다.

감독 본인이 큰 맘 먹고 시간과 돈을 들여서 극장갔는데, 내용 이해 안되고 등장인물이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바보된 기분만 느끼다 왔다면, 그때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관객들 IQ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면, 일단 문제나 제대로 읽어줘야 했어야 할 것 아닌가. 이건 단순한 불친절을 넘어선, 또 하나의 페어 플레이 규칙 위반이다.


 


 영화적 사기

그 다음은 영화적 사기. 이 영화에는 치밀한 미스테리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많은 헛점과 비 논리적인 장면들이 산재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결정적인 것 하나만 얘기해 보겠다.



잠깐!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은 하겠으나, 영화의 내용을 전혀 알고 싶지 않은 독자께서는 이 부분 건너뛰어 곧장 아래 6번으로 가 주시라. 읽고나서 다 알아 버렸다구 화내지 마시구.


영화 중간에 ***이(가) 혼자 있을 때 뭔가에 절라 놀라는 장면이 있다. 아주 긴장된 음악이 흐른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뭔가가 ***을(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결국 사지절단의 범인은 바로 그 ***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그 관객들을 절라 긴장시키는 장면은 왜 필요한 것이었는가? 무슨 의미로 집어넣은 장면이었는가? 그냥 쉬어가는 페이쥐로 함 넣 봤다구? 그럼 그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한 음악과 카메라 움직임은 도대체 뭔가. 그런 장면을 넣었다면 어떤 의미라는게 있었을꺼 아닌가.


하지만 그런 의미는 없다. 본기자,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 장면이 나왔어야 할 극적 필연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 장면은 ***에게 혐의를 두고 있던 관객들에게 얘는 범인이 아녜요라고 거짓말을 한, 일종의 영화적 사기였다는 것.


또한 엘리베이터의 CCTV에 촬영된 범인의 모습이랍시고 보여주는 장면에서, 범인이 나오는 대목만 쏙 빼고 보여준다던지, 조형사가 채수연을 집을 떠날 때 그 뒷모습을 차안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모습이라던지 하는 것은 물론 이런 저런 변명이 가능하겠지만, 영화적으로는 전혀 쓸모없는 사기에 가까운 군더더기들이다.




이런 식의 영화적 사기가 <텔 미 썸딩>의 세번째 페어 플레이 규칙 위반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리고 별루 놀랍지도 않던 그 반전을 위해 왜 이런 무리수를 두어야 했을까.


 


 그러나 장점도 있다

이 영화, 벌써 옐로우 카드 세장이니 퇴장깜이다. 하지만 그건 축구 얘기고, 영화판에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 이런 치명적인 문제점 못지 않게 장점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화다.

그 중 가장 높이 사고 싶은것은, 아무래도 배우들이 제대로 된 웃음 한 번 웃지 않을 정도로 음울한 분위기를 아름답게 살려낸 촬영과 화면구성이다. <세븐>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파격에 가까운 참신함은 없지만 <텔 미 썸딩>의 화면은 섬찟하고 또한 아름답다.


물론 <접속>에서도 익히 쓰였던, 장윤현 샷이라고 불러도 좋은 독특한 화면구도, 즉 차 운전석에 앉은 사람을 왼쪽에 몰고, 그 뒤의 모습을 오른쪽에 담는 화면구도(거 왜 있잖아, 전도연 얼굴 나온 <접속> 포스터의..)가 이 영화에서도 자주 쓰인다. 하지만 그런 거 보다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비의 이미지가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의 세계에서는 장마철도 아닌 때에 비가 참 자주도 오는데(앞에서 말 한 필름 느와), 그 비의 이미지를 영화는 참 멋쥐게 담아낸다. 예를 들어 비내리는 주차장에서 조형사가, 떠나가는 채수연의 차를 바라보는 장면의 조명이나 촬영, 화면구성은 훌륭하다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앞에서도 얘기했던, 조형사가 뒷골목에서 범인의 차에 치일뻔한 어택을 당하는 장면의 촬영과 편집은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를 대변한다. 특히 아주 높은 곳에서 잡은(이 카메라 앵글, 쫌 아는척 하는 필로는 버즈 아이 뷰 birds eye view라구 한다) 차와 조형사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장면에서 유리구슬처럼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라. 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높여서 만들어 낸 이런 멋진 그림은 음울한 비장미마저 느끼게 한다.









이 장면의 조명과 촬영을 보라. 아무리 <세븐>과 비스무리 하더라도 훌륭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음향 또한 깔끔하다.


대사 몬 알아먹도록 웅웅웅웅 거리는 음향, 이 때문에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배우들의 입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하는 고충, 이 영화에는 없다. 이 영화의 음향은 심은하가 아주 가늘게 흐리는 말꼬리나 숨소리도 섬세하게 잡아내고, 피아노 연주의 차가운 투명함도 그대로 전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6채널로 녹음했다는 음향답게, 장면에 따라 극장의 앞뒤좌우 전방위에서 소리가 난다(이걸 느껴 보시려면 극장선택에 신중을 기하시라). 음향의 기술적 완성도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또 세간에 뭐 "단조롭다"라던가 "단선적"이라던가 등등의 말을 듣고 있는 한석규와 심은하의 연기는 결코 나쁘지 않다. 감독의 무리한 설정을 무마시켜주는 건 오히려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다. 근데, 한석규의 연기를 두고 심지어 한국일보에서는 "습관적"이라고 얘기했다. 이건 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끼고 자빠라진 발언이다. 스타일과 매너리즘도 구별 못하나 ? 아무리 다양한 역이 있어도, 그걸 한 연기자가 연기하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묻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자 당연한 일 아닌가 말이다.




정작 이 영화에 있어 단조롭고 평면적인 건 대사의 세부묘사다. 국어책 읽는 듯한 뻑뻑한 대사 절라 많지만, 그 중 기억나는 것만 몇 개 교정 해보도록 한다.



"그럼 희생자가 또 있단 말이여?" "그럼 죽은 놈이 또 있단 말이여?"

"이 총.. 어떻게 사용하죠?" "이거.. 어떻게 쏘는거죠?"

"당신도 이제 두려워지기 시작했군요." "조형사님도 이제 무서워지기 시작하신거죠."


등등등..


머, 자연스럽게 소화된다면 구어체를 쓰건 문어체를 쓰건 딴지체를 쓰건 상관없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어색스럽게 보이게 하거나, 잔뜩 심각한 대사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푸하하" 웃어 마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정도가 되면 얘기가 틀려진다.

특히 채수연을 절라 따라다니는 김기연(유준상 분)이란 넘이 수사본부에 끌려와서 오형사에게 취조 당하는 대목에, 취조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노려봄으로써 모니터 들여다보던 조형사를 간접적으로 째려보는 장면이 있다. 그 마지막 부분에서 이 넘이 스윽.. 도끼눈을 돌려 카메라를 째려보면서 "변호사를 불러주십쇼.."라는 대사를 하면,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섬찟함을 느껴야만 하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푸하하"를 터뜨리고야 만다. 근데 우짤꼬. 이런 장면, 여럿 된다.

어설프고 소화되지 않은 후까시는 삐끗하면 즉시 코메디가 된다는 사실은 이제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는 진부한 얘기가 아닌가. 한국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황금률, "감상적이고 무게있는 대사 = 국어책 읽는 대사"라는 등식은 도대체 어떤 경위로 성립된걸까나?


 


 하지만 단점이 훨씬 더 많다


이런 약점 말고도 이 영화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무리한 설정에다가 아무도 그 답을 얘기해줄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주5)이 산적해 있다. 이것은 물론 관객이 극장문을 나서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변명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빈틈 투성이의 허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의 (주5)에서 얘기한 문제들의 답은 단 하나다. 범인은 미친넘 또는 미친뇬이다. 범행동기? 그딴거 묻지마라. 미치면 뭔 짓인들 못하겠냐. 이건 본 기자가 맘대로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다음 장윤현 감독의 말을 들어보시라.



" 정신병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질병이다. 그러한 단절적 증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논리적인 앞뒤 같은건 따지지 말라는 얘기다. 그렇담,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문을 나서면서 더 많은 얘기를 하게 만들고 싶었다라는 건 뭔가. 단서 같은 걸 논리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는데, 뭘 근거로 다시 생각하고 얘기하라는 건가. 한참 머리에 김 나게 만들어 놓구, 범인은 사실 미친넘(또는 뇬)이었다라는 결론이나 얻으라고? 미치면 뭔 짓인들 못하겠냐구?

좋다. 백보 양보해서 범인이 미친 놈/뇬일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세븐>처럼 영화 내내 범인의 광기를 느끼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범인은 내내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정상인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는 앞에서 얘기한 영화적 사기에 의해서 확정되어 버린다.


좋다. 그럼 한 번 더 오백보 양보해서 이 영화가 똥줄 짜릿한 반전을 위해 범인을 정상인으로 묘사했다고 치자. 그럼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그 반전이 될텐데, <유주얼 서스펙트>부터 <식스 센스>까지 별의별 획기적인 반전이 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작금, 이 영화의 반전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범인은요 사실은요.. 얘였어요. 놀랐죠? 이런 거 하지 말고, <원초적 본능>처럼 ***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애매한 가능성만을 주면서 모호한 결론을 내는게 차라리 나을뻔 했다.


그런 결말이야 말로 "영화가 끝나고 더 많은 얘기"를 하기 원했다는 장윤현 감독의 의도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 아닌가? 관객들이 "뭐야.. 머 이딴 영화가 다 있어.."하는 얘기를 하면서 극장을 떠나는게 두려웠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영화를 명료하게 만들던가. 도대체 이도 저도 아니고 뭔가?


 


 해서, 결론을 내려보자


그리 뛰어나지 않는 관찰력과 인지능력과 이해력 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본기자, 이 영화 처음 보고 나서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꺼다.."하는 생각에 한 번 더 보고야 말았다.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이 영화 한 번 더 보시는 분이 꽤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두 번 보는 일은 정말이지 말리고 싶다. 두번째에는, 그 화려한 그림과 화려한 주연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얼마나 지루하고 어디서 많이 본듯한 영화인가만이 확인될 뿐이다. 또한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영화적 허점을 가지고 있는가도 확인된다.


그럼 한 번 정도는 볼 가치가 있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니깐. 영화야 어쨌던 난 심은하 얼굴만 실컷 구경하면 대만족이라는 심은하 팬도 있을 것이고, 아님 그 잘 만들었다는 시체모형 보고 싶어서 극장에 가는 특수분장사 지망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관객이 누가 되었건 본기자의 생각은 이렇다.


한국역사상 최대 개봉관수를 확보하고 버스마다 지하철마다 광고를 붙여놓고, 방송을 통해 간접 광고도 무진장 해댄 철저한 상업영화가 한 번 보는것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사실, 그것이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 본기자가 <텔 미 썸딩>울 보고 얻은 마지막 결론이다.


 덧붙여서

  이 영화 제목의 영문 표기는 물론 이다. 문제는 이걸 한글표기 하는 건데, 공식 한글 표기는 위에서 보셨다시피 "텔 미 썸씽"도 아닌, "텔 미 썸띵"도 아닌 <텔 미 썸딩>이다. 그렇담, 그 위에 붙은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타이틀은 "하드고어 드릴러"라고 표기해야 말이 되는거 아닌가? 헷갈린다. 통일을 해다오.

  영화 마지막에 사지절단해서 합성한 시체가 나오는데, 사지 절단에 합성이라면 딴지가 한 수 위다. 하지만, 이 영화의 관객을 철저히 무시하는 불친절함에 있어선 딴지가 결코 미칠 수 없는 높디높은 경지이다.


  총 7구의 토막 사체는 특수분장 전문가 신재호(<조용한 가족>의 특수분장, <건축무한..>의 미니어쳐 제작)의 책임하에 한국의 "메이지"와 일본의 "비행선 미술공방"이 나눠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제작비용 8천 5백 여만원에, 10여명이 꼬박 3달 동안 매달려서 만든 거란다.


으.. 그 다리에 있던 털과 살의 그 너덜너덜한 질감.. 이건 냉면집 진열장에 있는 냉면 모형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sixstring@ddanz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