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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 건조대에 하늘거리는 망사팬티

1999.11.15.월요일
딴지 인도네시아 특파원 가람

 


ROTC도 앞으로 여자후보생을 받을 예정이란 얘기는 내가 후보생시절부터 있었다. 하지만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국 어느 학군단에도 여자후보생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전 해군사관학교에선가 받은 여자생도들은 이제 교육을 모두 무사히 마치고 임관했는지도 궁금하다(편집자주; 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여생도를 받은 곳은 공군사관학교이며, 이들은 97학번으로 2001년에 소위 임관 예정입니다).



요즘 군가산점제인지 하는 문제로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난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에게 모종의 혜택을 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여자들에게 험구를 치드는 사람들도 많은 것을 봐서는 이에 대해 반발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은 눈치다.


그럼 여자들도 군대에 보내자구? 오~예! 내가 아직 군에 있던 시절이라면 당장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여자들도 대거 군에 몰려들어 각 일선 소대까지 배치된다면 시커먼 소대원들 최소한 양말이라도 한번더 빨아신고 복장도 말숙해질 것이고 우리 배달의 딸들에게 국방의무를 지우는 정부에서도 시설이나 장비에 더 신경을 쓸 것이므로 전반적인 군의 처우도 개선되고 환경도 일신될 것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나아가 병사들 땀냄새 대신 가끔 향수냄새도 풍겨오는 내무반과 좀더 패션화되어 신병들에게까지 지급될 정복 등등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내무반 옥상 위 건조대에 바람에 하늘거리는 브라며 망사팬티같은 것도 이따금 덤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시절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오후 다섯시만 넘으면 여자라곤 찾아볼 수없는 GOP의 부대숙소에 앉아 나도 몰래 입가에 침까지 흘리며 그런 망상을 하면서 군군의 날 기념식때마다 흰색정복에 기관단총을 들고 가도를 행진하는 그 멋진 여군들이 다들 어디 가 있는지 궁금해 하다가 우리 1사단 섹터 바로 옆 101여단이 사실은 부대명에서 풍겨오는 이미지와 같이 여군들만으로 구성된 부대라고 혼자 맘내키는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이란 국방을 위해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합법적인 폭력을 여하히 효과적으로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우리 소대에 배속된 여군들을 남자들과 똑같이 총탄이 빗발치는 적고지로 달음질쳐 오르도록 독려하는 환상은 현실화되기엔 요원한 것이라 하겠다.

여군들 모두가 어느 국군의 날 기념식장에서 고공낙하를 하는 그 공수부대 여성 중사같은 사람들이라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그 당시 여군들은 전방지역 우리 일선부대 장병들에게는 환상 속의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사령부에만 밀집된 이 여군들의 생활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사실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그래서 난 사실 아직도 궁금하다.

이제 소령을 달고 육군본부 인사처에서 장군진급심사를 한다는 학군단 동기에게 그 동네에선 정말 망사팬티가 건조대에서 하늘거리는지 언제 기회가 있으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사족이지만, 이 친구 말을 들으면 장군진급은 자기가 혼자 다 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대령들도 빗자루들고 나와 연병장 청소한다는 육군본부에서 지도 사실은 인사처장 따까리 쯤 하고 있겠지. 나도 자카르타 ROTC 동기회에서는 아직 말단인데.)


하지만 난 현역시절 그래도 자주 여군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가장 많은 여군들을 보았던 것은 87년 국군의 날 전날과 다음날이었는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초정한 각국 참모총장, 국방장관 등은 두 조로 나누어 그렇게 제3땅굴과 판문점을 시찰했고 당시 땅굴안내장교로 군단장 통역을 했던 나로서는 가장 많은 별들이 동시에 뜨는 것을 본 날이기도 했다. 착석한 수십명의 외국귀빈들의 부인들 뒤에는 대부분 사복을 갈아입은 여군 중.하사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 땅굴에 왔던 여군 중사 중 한 명이 몇 개월 후 여군하사관 훈련소의 교관이 되어 훈련병들을 이끌고 다시 땅굴을 찾았고 안내하던 내게 아는 척을 해왔다.



“중위님, 그때 영어 굉장히 잘 하시더군요.”
“뭐, 보통이죠.”


보통은 개코나… 사실은 죽을 뻔 했거든. 맨 앞 줄에 별넷 3군 사령관과 우리 김상준 사단장을 위시해서 브리핑실 여기도 별, 저기도 별. 육군 중위 가람, 심장마비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우리 쓰리스타 군단장님은 자기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영어 잘하시면서 굳이 한국어로 유머까지 곁들이며 요모조모 구체적인 사항까지 설명하셨는데 그거 통역하느라고 난 비지땀을 흘렸다.

원래 땅굴 안내장교가 되면 거짓말 조금 보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두께가 되는 한국어판과 영어판 브리핑 시나리오를 외야 되는데 워낙 하루에도 몇번씩 실전에 써먹느라 지금도 줄줄 욀 정도로 입력이 제대로 되어 있어서 군단장님 한국어 브리핑에 대충 맞는 대목을 허겁지겁 갖다 끼우기 급급했다.

유머 통역? 그건 택도 없었고 군단장님이 마지막으로 질문사항이 있느냐고 귀빈들에게 물을 때에는 질문을 못알아 들을까봐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때 경호요원으로 오셨던 건가요?”


난 그녀가 예의 공수부대 출신쯤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수한 의전요원이었고 지금은 그녀가 인솔해 온 10여명의 여군 하사관 훈련병들을 인솔을 하는지 소꼽장난을 하는지 하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땅굴에 내려갔다 온 훈련병들은 그 단발머리들이 땀에 푹 젖어 철모 자국으로 부시시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듯 앳된 얼굴들이 숨이 턱에 차 양볼마저 발그래 상기된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우로 나란히, 좌로 나란히…줄을 마추고 다시 발맞춰 차에 오르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정겨워 보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슨 일로 그토록 떠밀려 여군이 되기로 마음먹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연민이 싹트기도 했다.


선탑해 온 여군 소령은 아마도 여군 훈련소의 꽤 높은 위치인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 전에도 가끔 훈련병들을 인솔해 왔기 때문에 낮은 익었지만 나이보다 늙어 보이고 항상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말 수가 적은 여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여군 훈련병들을 땅굴에서 본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


사단 정보처에도 두 명의 여군이 있었다.


성격이 말괄량이같은 중사들이었는데 이들이 우리 부대에 올 때면 우리 소대원들이 갑자기 신사들이 되어 친절해지곤 했다. 이들이 사단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나 그들이 우리 부대에 오는 것은 GP에 들어갈 때 옷을 갈아입기 위한 것이었다.



“GP에 왜 한복을 입고 들어가요?”


두 여군 중사들이 옷을 갈아 입는 동안 한번은 정보처장에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물론 대충 이유는 알고 있었다. 저 두 여중사들은 저렇게 한복을 갈아 입고 GP에 들어가 초소 앞 북한 쪽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언덕이나 잔디밭(북한 쪽에서도 훤히 들여다 보임은 말할 나위 없음)에서 GP 병사들과 함께 가져간 음식으로 피크닉을 하는 것이다.

GP 병사들을 위한 위문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를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있는 북한측 GP 병사들에 대한 심리전이라는 측면이 훨씬 큼도 사실이다. 화려한 한복으로 갈아입는 것은 역시 그들이 여성임을 한눈에 봐서도 알수 있도록 세계만방에 고하기 위함이다.


그 두명의 여군과 직접 많은 얘기를 해볼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의 기분은 정말 어땠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군대에서조차 그들이 군인이라는 사실보다 여성이라는 사실이 더욱 강조되고 더욱이 그렇게 활용까지 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성희롱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에 처음 소개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그 호응이 미미했던,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그 옛날에 그 어떤 사회보다도 폐쇄되어 있던 군대에서 여군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하고 남성 상관들로부터, 또는 동료나 병사들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도 궁금한 점이다.

그리고 만일 그 당시에 각 부대에 배치된 여군들의 처우에 여성이란 사실로 인한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라고 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회사를 비롯한 일반 사회에서도 아직 별반 달라진 것들이 없으니까 말이다.


한국일보에서 미스코리아들을 데리고 땅굴에 온 날, 미녀들의 버스에 함께 타는 영광을 얻은 다섯명의 미국인들이 있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의 사관생도들이었는데 그 중 한명은 한국인 2세였고 또 한 명은 금발에 파란 눈을 한 귀여운 소녀같은 여자였다.


군대에서 그녀의 생활이 비교적 순탄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내 선입견 때문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장교라고 해서 성차별이 없을리 없다. 게다가 10년도 전의 일이다. 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컷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 파란 눈의 소녀같은 사관생도는 당시 땅굴에서 올라와 양볼을 발그레 상기하고 있던 우리 여군 하사관 훈련병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임을 거의 분명하다.

활기차고 건강한 미소를 지으며 동료생도들과 함께 미스코리아들을 집적거리던 그 소녀는 지금은 ‘A few Good Men”의 데미 무어같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당시 우리 훈련병 소녀들은 왠지 그들을 데리고 왔던 그 소령의 표정을 닮아 있을 것만 같다.


군대가 좀더 합리적이고 안전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청춘의 최절정을 군에서 보내야 하는 우리 후배들에게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월 급여의 최소한 50%라도 줄 수 있는 부자나라가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통해서라도 충분한 병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이나 남북대치상황이 호전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정치, 사회의 지도자 자녀들이 대부분 군대갈 무렵에는 면제대상에 해당되는 거의 공식적 병신, 금치산, 한정치산자였다가 면제가 확정되면 갑자기 멀쩡한 박사가 되고 사장이 되는 이상한 풍속의 나라가 더 이상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군대안가는 남성 연예인들을 씹고 그렇찮아도 아직 불리한 사회적 환경에 있는 여성들을 싸잡아 더욱 더 몰아 세우는 치졸함과 비겁함이 이제 우리 마음을 영원히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와 이 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21세기가 되면 없어질까? 그래서 여성들이 끝없이 남성들이 예전에 독점하던 영역을 잠식하는 현재의 추세에 이제 군대가, 소대장이나 사단장 보직이 왜 남성들만의 것이냐며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는 날은 언제 올까? 그리고 일선 소대 내무반 건조대에 망사팬티가 하늘거리는 날은 앞으로 또 며칠밤을 더 자야 오는 걸까?


그날이 오면…,
나 군대 다시 간다.





- 딴지일보 인도네시아 특파원 가람
(
donsbay@cbn.net.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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