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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너거뜰 쌈붙이기 좀 고마 해!

1999.11.15.월요일
딴지 교육부 기자 최가박당

흥정은 붙이고 쌈은 말리라고 누가 그랬던가. 썰렁한 소리 하덜 마라. 흥정이건 쌈이건 마구 붙여야 한다. 왜냐구? 쌈구경이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서 물어?

쌈붙이기에도 나름의 전통과 미학이 있다. 다종의 쌈붙이기 전법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삼각형 구도의 한 꼭지점에 자리잡고 자행하는 뒤통수  때리고 모른 척하기 전법이다. 이 전법에 필요한 무기는 맨손 하나와 훈련된 포카 페이스(우리말로 하면 철면피)뿐. 맨몸 하나로 평화를 파괴하는 실로 가공할 전법이 되겠다.


잠시 이 전법의 전략과 전술에 관해 설명하겠다. 이 전법의 전략은 물론 평화 파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평화로움에 대한 자각이 이 전법의 철학이 되겠다. 그렇다면 어떠한 전술로 평화 파괴라는 전략을 성취해 낼 것인가.


먼저 가급적 다혈질적 성향을 가진 두 넘을 선정. 그 두 넘들과 삼각형을 이루는 절묘한 위치에 포진한다. 그리하여 사정거리 내에 있는 두 넘들이 각각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가급적 서로 등지고 있을 때), 작전을 개시한다. 이 작전의 성공 여부는 고도의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조또 순발력이 없는 녀석이 무모하게 이 작전을 개시할 경우 작전 개시와 함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수가 있다.


위의 조건이 만족되고, 순발력과 포카 페이스에 대한 자신이 있다면 작전 개시, 먼저 한 넘의 뒤통수를 강타하고 재빨리 딴전을 피운다. 그러면 당근 뒤통수를 맞은 넘은 졸라 열받은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되어 있다. 이 1차 공격만으로도 평화 파괴라는 전략이 성취되는 경우( 맞은 넘이 조금의 의심도 없이 등지고 있는 넘의 뒤통수를 강타함으로써 난장판이 촉발되는 경우 )도 있지만, 이 경우는 섹스에서의 조루와도 같은 커다란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물불 가리지 않는 지나치게 다혈질인 친구는 공격 대상에서 제외시켜두는 것이 좋으며, 애초에 뒤통수를 강타하는 상황에서도 그 타격의 강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처음 맞은 넘이 졸라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등지고 있는 넘을 째려보며 강한 의심을 보이는 정도에서 1차전이 끝나야 이 평화 파괴 시뮬레이션 게임은 흥미진진해지는 거다.


처음 맞은 넘이 확증을 못 잡아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면, 2차 작전으로 돌입한다. 물론 2차 작전의 희생물은 앞서 맞은 넘과 등지고 있던 녀석이다. 공격 대상만 바뀔 뿐, 1차 작전과 동일한 요령으로 작전을 수행하면 된다. 2차 작전 역시 1차 작전과 동일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작전이 거듭될수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우므로 포카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보통은 3차 작전( 다시 처음 맞았던 넘을 공략 )에서 평화 파괴의 대업을 달성하게 되지만 때로는 4차, 5차, 6차까지 가는 수가 있다. 차수가 거듭될 수록 얻어지는 흥분과 만족은 배가되기 때문에, 그 흥분과 만족의 최대치를 맞보려는 욕심은 끝을 볼 수 없다. 심한 경우 마약 중독자나 도박 중독자와 다를 바 없는 뒤통수 때리기 중독자가 되어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면 손발이 떨리고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만일 위의 부작용에 시달리는 넘들이 주위에 있다면, 처방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 넘의 뒤통수를 틈만 나면 사정없이 때려주는 거다. 100일 정도 지속적으로 처방해보면 증세가 호전될 수도 있으니까 희망을 잃지 말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악성 뒤통수 때리기 중독 증세>에 시달리는 넘이 있어서 본 기자는 위의 처방을 써보려고 한다. 그 넘이 누구냐. 우리 나라의 자랑스러운 언론이다.


이 넘은 특히 선생과 학생의 뒤통수만 보면 떨리는 손발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다가가서 평화 파괴 시뮬레이션 게임에 돌입한다. 대한민국의 조까튼 교육현실 속에서 가뜩이나 사이가 안 좋아진 선생과 학생을 마침내 철천지 원수로 만들어 놓는 그 날까지, 아니 학교가 파괴되고 선생과 학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 없어지는 그날까지 이 넘이 탐닉하는 평화 파괴 게임은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다.


이 언론이라는 넘이 최근 1년여 사이에 벌인 쌈붙이기 행각을 살펴보자.



 1차 작전. 학생의 뒤통수를 친다.


*타격강도: 학생들을 순악질 깡패들로 몰아간다.


전술 1. 학생들 사이에 조성된 집단 패거리 문화를 고발한다.
전술 2. 컴퍼스로 고문당하는 왕따 학생의 눈물나는 수난의 역사를 서술한다.


 2차 작전. 선생의 뒤통수를 친다.


*타격강도: 선생을 도둑넘, 내지는 악덕 장사꾼으로 몰아간다.


전술 1. 촌지 내역서까지 작성한 엽기적 여교사를 까발린다.
전술 2. 학원계와 결탁한 학교계의 실상을 강타한다.


 3차 작전. 학생의 뒤통수를 친다.


*타격강도: 학생을 경찰 똘마니, 내지는 악덕 폭력배로 몰아간다.


전술 1. 수업 중이라도 깡패선생을 경찰에 알려야 한다는 투철한 신고정신으로 무장한 열혈 고교생을 소개한다.
전술 2. 신고고 뭐고 할 것 없이 즉결처분, 선생에게 직접 폭력을 가하는 지존무상 고교생을 소개한다.


 4차 작전. 선생의 뒤통수를 친다.


*타격강도: 선생들을 정신병자 내지는 변태성욕자로 몰아간다.


전술 1. 히스테리 그 자체인 선생의 폭력 사례를 연구 보고한다.
전술 2. 유치원생에게까지 뻗어가는 선생들의 변태적 성희롱 사례를 폭로한다.


 5차 작전. 학생의 뒤통수를 친다.


*타격강도: 학생들을 완죤히 대책 없는 패륜아 집단으로 몰아간다.


전술 1. 최첨단 몰카 장비를 이용하여 교실 내 실제상황을 녹화한다. 그 속에는 수업시간에 핸드폰 걸기, 수업시간에 왕따 친구 때리기 등 그간 소개된 패륜적 행동들의 집약적 장면들이 담긴다.
전술 2. 작전수행에 유리한 화면을 편집하여 기냥 만인에게 공개한다.


이쯤 되면 언론의 6차 작전이 예상되지 않는가. 선생들 뒤통수 조심하시라. 7차 작전 상황까지 돌입할 즈음이면 갈 때까지 간 언론은 우리 나라도 미국에서처럼 총기난사라도 일어나길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컨스피러시 음모이론적 관점으로 볼 때, 이러한 일이 언론의 사주로 실제로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들이 학교의 모습에 대해 보이는 병적으로 왜곡된 관심을 보면 그런 음모를 연상할 수 있다는 거다.


학교와 교육 문제가 언론의 관심에서 독립되어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더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 뉴스가치가 매우 높은, 학교에서 벌어진 충격적 사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이 경우 그들 언론이 자랑하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채워주어야 하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본 기자가 딴지를 걸고자 하는 문제는 학교와 교육문제를 언론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 대한 것이며, 충격적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러한 사건이 터졌던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한 사건이 계속 터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냉정하고 깊이 있게 분석하는 대신에, 오직 그 사건을 보고받는 이들이 간접적으로 느낄 뒤통수 때리기의(혹은 뒤통수 맞기의 매저키즘적) 쾌감. 쉽게 말해 뉴스가치를 높이는 것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선생에 대한 것이건 학생에 대한 것이건 뉴스가치가 있는 사건 하나만 떴다 하면, 그 사건에 연루된 쪽을 한꺼번에 싸잡아 순악질 패륜아 집단으로 묘사하는 데 그들은 전혀 주저함이 없다.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니 그들은 학생과 선생 두 집단 사이의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도 없어 보인다. 한 마디로 두 쪽 다 패륜아 집단이라는 거다. 급기야 최근에는 시키지도 않은 충격적 사건을 스스로 발굴하기에까지 이른 거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 그들은 사실상 지금 학교를 재건하는 것보다는 더 철저히 무너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방송과 언론이 진정으로 학교와 교육의 정상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이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긴급히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한다면, 우선 그들 자신에 대한 반성부터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중앙 집중식 방송과 언론 구조를 가진 우리 나라에서 그들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들 자신이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 특히 방송이 우리 나라의 중고등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굳이 얘기한다는 게 새삼스럽다.


사실상 지금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선생보다는 연예인들을 통해 역할 모델을 부여받고 그들 연예인들을 통해 삶의 방식과 꿈의 실현을 배운다. 저질 토크쇼가 그들의 국어 교과서이며, 에초티, 잭키가 그들의 음악 선생님이며, 술먹고 심심찮게 사고치는 연예인들이 그들의 윤리 선생인 거다. 그들에게 있어서 꿈과 소망이란 CF 하나로 1-2억을 건지는 것이며 누구와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외적인 매력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이다.


한편 선생은 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우리 사회의 방송과 언론은 선생으로 하여금 거지근성을 갖도록 한다. 이 시대의 성공은 오직 경제적 성공, 우리가 존경하는 늙고 가난한 선생님은 20대의 야구 스타 이승엽이 등장하는 TV 성공시대에 등장할 수 없다. 번쩍이는 벤처기업의 신화 속에서 선생은 직업의 사각지대에 떠밀려 들어가 오직 안정만을 찾는 나태한 인간들인 거다. 대체로 병적인 폭력에 집착하는 인간들은 내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선생들이 모두 잘 나가는 벤처기업 사장과도 같은 직업적 우월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선생의 체벌과 폭력은 거의 다 사라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요컨대, 상업방송에서 학교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해서 그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것보다는 그네 방송 프로그램을 개혁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무너져 가는 학교를 재건하는 데에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거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침을 튀기는 방송과 언론 권력들은 이 손바닥 보듯 뻔한 진실을 외면한 채, 마치 자신들은 지금 학교에서 자행되는 유형 무형의 폭력에 전혀 개입되지 않은 양 능청스레 포카 페이스를 보이며 유치한 뒤통수 때려 쌈붙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면, 그것이 어찌 언론만의 책임이랴. 하지만 본 기자는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언론은 이제 선생과 학생을 쌈붙이는 유치한 짓 좀 고마 해라. 애초에 별 관심도 없는 궁색한 학교 사태 진단서( 왜곡된 대학 입시 제도, 서울대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대학과 성적순 위주의 사회체제 따위 )를 무표정하게 읊어대면서, 속으로는 센세이셔널리즘과 시청률 중독증에 빠져드는 언론. 선생과 학생들 뒤통수만 치지 말고 니네도 이 나라의 학교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성 좀 하란 말이다. 씨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의 경우는 현실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닌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이다. 최소한 교육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시선이 현실을 보는 절망보다는 앞서줘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교육은 100년 앞을 보는 계획이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폐쇄회로 몰카로 상징되는 바 교육 현실을 관음증적으로 조명하는 못말리는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이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마지막 남은 화해의 불씨마저 짓밟는 결과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 전반에 대책 없는 교육 불신론을 낳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재생산하는 교육이라는 프로젝트의 성립 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현실을 바로 보자는 언론의 구호에 현혹당하다가 자칫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영영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는 거다.


선생과 학생 모두를 비뚤어지게 하고 있는 열악한 교육-사회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설상가상 언론이 획책하는 사실상의 학교 무너뜨리기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본 기자가 일주일에 두 번 시간 강사로 나가는 서울 어느 예술고등학교 아침 출근길. 스쿨버스 창문을 드르륵 열고 활짝 갠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씩씩하게 외쳐오는 젊은 그들이 아직도 여전히 그곳 학교에 있다.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쁜 우리들의 미래가 아직 그곳에 있다.



 


- 딴지 교육부 최가박당 ( hoggenug@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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