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유소 습격사건>이 진정
코믹하고 통쾌하더냐

1999.11.08.월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그들은 주유소를 턴다.

왜?

그냥

그래, 주유소 터는 이유야 머 궁금할께 있겠냐. 그냥 돈 궁하구 심심해서 여기저기 털다보니 주유소라는데. 이유없다. 그딴건 생각도 마라. 이 영화의 컨셉이 "코믹 통쾌극"이라는데, "코믹"하고 "통쾌"한 "캐릭터 무비"면 그만 아닌가. 그냥 웃기고 통쾌하면 된다.

근데,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건 아니다. 해서, 본기자 이제부터 <주유소 습격사건>이 자기 타이틀에 걸맞는 내공을 가지고 있나를, 가급적 "코믹"과 "통쾌"의 미학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캐릭터

우선 <주유소..>는 "코믹"하고 "통쾌"한 "캐릭터 무비"가 되기 위해 등장인물들을 <닥터 슬럼프>나 <드래곤 볼>류의 만화스러운 캐릭터로 만드는 작전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포스터, 찌라시, 그리고 예고편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작전이다. 우선 의상. 뻬인트(유지태 분)는 녹색옷에 하얀머리, 무대포(유오성 분)는 파란색 옷에 벙거지, 노마크(이성재 분)는 노란색 자켓에 까만빠박, 딴따라(강성진 분)는 빨간색 자켓에 헤비메탈 룩.

보시는 바대로, 이들 모두 캐릭터 상품 전선에 뛰어들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영화를 보면, 작전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의 모든 표정과 동작과 대사는 <닥터 슬럼프>, <드래곤 볼>스럽게 과장돼 있다. 유오성이야 원래 그랬다치고, 놈팽이 역이던, 고독한 섬세남 역이던 어쨌든 잔잔- 한 표정을 고수하던 이성재의 얼굴마저 1년 쫄린 뻔데기로 변하곤 한다.

원래 그랬던 유오성	원래는 안 그러던 이성재

즉, <주유소..>는 대사와 장면구성에서 의도적인 오바(나쁜 의미에서의 오바가 아닌)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트도 원색을 강조하고 있다. 배우들의 모든 표정 연기와 장면구성과 대사와 편집은 관객들이 웃어야 할 부분에 빨간색 밑줄을 쫙쫙 긋는다(여김다! 웃어주십쇼!).

<주유소..>는 올해의 친절한 영화대상 단연 1위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오바가 전혀 필요없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오바가 남발되기 시작하면, 그건 오바를 위한 의도적 오바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오바(즉, 나쁜 의미의 오바)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쪼크

이 영화, <오스틴 파워>같은 확실하게 만화적으로 승화된 오바를 할 자신이 없었으면, <넘버 3>처럼 절제된 카리스마를 느끼게하는 오바를 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주유소..>에는 과장된 연기 - 이건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 연출의 문제다 - 만 있을 뿐, 예술의 경지로 승화된 오바나, "통쾌"한 카리스마는 찾기 힘들다.

쫌 난데 없지만두.

씹때끼 씨리즈를 기억하시는가. 이 시리즈는 허무계열 쪼크 씨리즈의 효시로서, 지금은 국싸 교과서 하권 217 페이지에 헌정되어 있는 걸작 씨리즌데, <주유소..>의 쪼크들이 거의 이 시리즈와 경향성과 수준이 일치하니 이 중 하나를 예로 든다. 좀 구리긴 하지만두.

지면관계상 짧게 하겠으니 알아서들 각색하시라.

본기자, 이 먼지 풀풀 날리는 구닥 쪼크를 굳이 끌어낸 이유가 있다. 이 예제를 통해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의 핵심 반전인 "그냥 가, 이 씹쌔꺄"가 "그냥 가아아아!! 이 씹쌔꺄아아아~~~~!!!"로 절라 오바하며 외치는 걸로 연출됐다면, 이 쪼크 그 얼마나 썰렁한 것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주유소..>의 거의 모든 쪼크들은 이 썰렁함을 그대로 실증해 보이고 있다.

 반복

헌데, 그 썰렁한 쪼크들은 반복과 반전이라는 코미디의 기본 전략을 충실히 고수하고 있다. 특히 무대포의 "대가리 박어"나 노마크의 "전화기 고쳐놔" 개그는 그 대표주자로 포진돼 있다.

"대가리 박어!" 왜? "그냥. 내 맘이야"

그 중 사무실 전화기는 몽조리 뿌개고, 주유소 사장(박영규 분)에게 고쳐놓기를 강요하는 "전화기 고쳐놔" 개그는 "그냥"이라는 이 영화의 컨셉에 가장 잘 부합하는 개그라 사료된다.

노마크는 전화기를 끊임없이 패대기친다.
왜?
그냥.

장렬히 산화해가는 전화기들.. 사람이었다면 국립묘지 안장에, 무공훈장 추서가 되었을 법도 한 이들.. 아, 하지만 전화기로 태어난 이들 앞에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채 분연히 산화해야만하는 허망한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선, 만에 하나, 이 에피소드가 사회와 노마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상징하는 설정이었다면, 본기자 그 진부함 앞에 망설임없이 두 무릎 꿇겠노라.

그게 아니구, 이 또한 "그냥"한 행동이었다면, 본 기자 할 말 있다. 이 영화, 인트로에서 묻지마 선언을 했다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똥때리고 안닦는 개그는 용서될 수 없다. 저질렀으면 마무리를 져야지. 반전은 고사하고 결론도 안 나오는게 말이나 되나. 그러니 당연히 그 밑터진 장면들은 모두 지루하고 영문모를 군더더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맥더날두 아저씨은 도대체 왜 나와야 했었나? 주유소 습격단이 무조건 만땅채웠다고 개기다가 트렁크에 갇혔던 남녀는 어떻게 되었는가? 노마크의 야구공으로 요격당한 자동차 폭주족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영화는 아무런 답도 내려주지 않는다.

 에피소드

하지만 이들 밑터진 쪼크와는 사뭇달리, 주유소라는 지리적 특성을 살린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에피소드는 그 결론이 너무도 뻔하고도 명확하다. 거의 <주유소..>의 에피소드는 상황 시작과 함께 그 결말을 알 수 있다.

미팅에서 화제가 떨어졌을때, 재밌는 얘기해준답시고 시작한지 5초도 안돼서 그 결말이 훤히보이는 쪼크를 했다가 그날의 퍽탄 또는 퍽탄 처리반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사례를 목격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주유소..>의 쪼크의 수준을 능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 억지 웃음 강요하는 민망스런 에피소드들은 설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뻔한 결말로 가지는 않을꺼야.."하는 상식의 허를 찌름으로써, 오히려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대포와 뺀질녀가 하는 스트립 끝말잇기 같은거..

아니다..!

이것은 쪼크의 시작과 동시에 그 결론을 정확하게 예측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정답을 맞추는 똥꼬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효과를 노린 포석이었다! 분하다.. 이걸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다니..

본기자, 뒷자리에서 계속 그 정답 맞추기를 하면서 그 소리도 호탕하게 껄껄 웃던 관객을 두 눈으로 빤히 보고서도 말이다. 아..

 뽀개기

자칭 "통쾌극"이라는데, 평소에 유리창 함 원없이 깨보는게 소원일 수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그냥 간과하고 지나갈 리 없다. 해서, 이 영화 이것저것 조빠라지게 뽀갠다.

물론 이 영화가 뽀개는 건, 위에서 언급했던 전화기 뿐만은 아니다. 카레라 등의 절라 비싼 외제차를 제외한 주유소 건물내의 모든 것이 아작의 대상으로서, 여기에선 사람 또한 에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 뽀개기에도 이유는 없다. 습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같은 것이 겨우 그 이유라면 이유랄까.

헌데, 이 영화 이걸 잊고 있다. "통쾌"한 뽀개기는, 관객들이 진정 뽀기를 원하는 물건(또는 넘)을 뽀개는 것을 통해 비로소 실현된다는 사실 말이다.

소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하는 영화들이 주리줄창 터뜨리고 뽀개도 대부분의 경우 통쾌함은 커녕 피곤함이나 안기고 마는 이유는 뭔가. 그 가장 큰 이유는 뽀갬의 대상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뽀갬과 아작을 당해 마땅한 넘이 아닌 그냥 순진하게 지나가던 자동차, 죄없는 슈퍼마켓 건물 등이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 뽀사지고 자빠라지고 하니,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유소..> 또한 이 경우다. 이건 뜬금없이 "第 2 의 建國 다시 始作합시다", "新 韓國 建設", "普通 사람들의 偉大한 時代"가 써 있는 액자를 밟고 뽀시고 한다구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다구 썰렁한 쪼크를 남발하는 지루한 영화가 갑자기 촌철살인의 세태비판이 있는 통쾌극이 되나.

해서, 본기자, 따르코프수키를 능가하는 휴머니즘계의 간판스타 딴지 영화팀을 대표하여, 전화기로부터 얼마 숱도 없는 박영규 아자씨의 아슬아슬한 마빡까지에 두루 걸쳐있는, <주유소..>의 억울한 뽀갬의 희생양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는 바이다.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아자씨 고생 많이 했다..

한가지만 더 짚자면, 이 영화에서 주리줄창 쓰고있는 욕과 은어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넘버 3>와는 사뭇 달리, 배우들이 내던지는 욕이나 은어들은 자신의 것으로 소화되지 못한채 감정의 몰입없이 어색스럽게 남발된다.

무릇 욕이란 것은 적재 적소에서 한 방 찔러주는 타이밍과 쓸따리 없이 남발하지 않는 절제가 있어야만 그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은어라는 것은 그 말투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표준말보다 자연스럽게 나와야 일탈의 통쾌함을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이걸 헤내는 배우는 <주유소..>에는 단언컨데 단 한명도 없다.

 결말

하여튼, 영화속 들장인물들의 수 만큼이나 잡다구레한 이런 이유들로, 본 기자의 몸은 영화가 시작된 뒤 한시간 반 정도 지루함에 의해 유발되는 요가 증후군(한숨, 하품, 다리털기 등의 복합증상도 수반)으로 비비 꼬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네 양아치들이 딴따라의 기쁨조 역할을 수행코저 아카펠라를 부르는 장면부터 짜증과 지루함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거의 음악의 힘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한 영화는 순식간에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한다.

결국, 하품하던 입을 다물기도 전에, 영화는 주유소 습격단을 가운데에 두고 30여명의 철가방과 용역 조폭들이 대치하는 골때리는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이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솜씨는 그동안의 썰렁함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67퍼센트 정도 만회한다.

그러다가 상황은 공권력까지 투입되는 극단으로 치닫는데, 그 절대절명의 한계상황에서 경찰의 봉쇄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하는 주유소 습격단, 그 뒤에 남겨진 자들에 대한 뒷처리는 그야말로 "코믹"하고도 "통쾌"하다. 이 대치상황에서 갑자기 노마크가 후까시잡고 "너희들 먼저 가! 난 남는다!"등의 <영웅본색>적인 비장함을 연출할 때면, 순간 장내 분위기 숙연해지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 마지막 20분 만으로 따지면 그 재미면에서 거의 <넘버 3>에 필적하는 공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그러나, 아.. 이 20분 남짓의 즐거움을 위해서 한시간 반 남짓의 지루함을 견뎌야 했단 말인가. 그걸 보기 위해서 그 많은 쓸따리 없는 에피소드와 쓸다리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영양가 없고 김빠지는 쪼크들을 들어야 했단 말인가.

기사 작성을 위해 이 영화를 내 돈 내고 한 번 더 봐야했던 본기자는 그 괴로움을 너무나 뻐저리게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번 볼 때도 상당히 괴로왔는데, 이걸 한 번 더 봐야 한다니..). 명랑 영상 문화 창달의 길은 이리도 멀고 험하다. 하긴 <영개뤼>를 무려 세 번이나 디비본 이드냐같은 기자의 초월적 인내력 앞에서는, 이런 하소연은 나약한 똥꼬가 변비앞에서 내뱉는 일말의 엄살섞인 신음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맥더날두 아저씨는 왜 마티즈 몰구 나왔다가 한 번 변변히 웃겨보지도 못하고 그냥 퇴장하는가? 굳이 "전 국민이 다 쓰는 BC카드"로 계산을 고집하는 손님은 관객들에게 과연 어떤 즐거움을 주었는가? 모범생 주유원 샌님(이정호 분)과 여자 주유원 깔치(이요원 분)이 없었다면 영화가 재미없어 졌을까? 주연 주유소 습격단의 일원인 뻬인트라는 캐릭터는 과연 필요한 캐릭터였는가?

샌님, 깔치, 뻬인트 별루 하는 것두 없는 얘덜 왜 나왔냐? 그냥

이 영화를 지루하게 만든 것은 바로 "32명의 주/조연" 중 뭐 하나라도 버릴 수 없다는 혹부리 영감적인 욕심이다.덕분에 영화는 차린건 엄청 많은데, 정작 젓가락이 갈 곳은 별로 없는 잔치상이 되고 말았다. 애쓴 흔적은 역력히 보이지만, 제대로 막나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시나리오와 는 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 수많은 쓸따리 없는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과감하게 들어내고, 그거 만들 시간에 에피소드들의 개연성을 좀 탄탄히 만들었다면 <주유소..>는 훨씬 재밌고 영양가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생략과 절제의 묘미를 잊고 있었다.

아, 영화보고 한 번 통쾌하게 웃어주기가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진짜 좋아서 얼굴이 벌개질 정도의 재밌는 영화 한 편 만나기가 이리도 어려운 일 이었던가.

주유소 습격단이 대탈주에 성공하면서 올리는 열띤 환호 "야~! 해냈다!"로도, 손무현의 통쾌한 음악(이 영화에서 진정 통쾌한 건 손무현의 음악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으로도 그 진한 아쉬움과 초겨울의 뼈마디 쑤시는 썰렁함은 도무지 씻어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sixstring@netsg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