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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혁 추천0 비추천0






1999.1.18.월

엽기사회부 수습기자 김강혁



때론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실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인생의 교훈을 배운다..




작년 겨울... 용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중에는 그녀를 기억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정모양은 서울에 있는 여대 3학년. 스키를 그해 처음 탔죠.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스키여행 이었습니다.


그 비극의 날..


우리의 정모양은 설레임 가득히 리프트를 탔습니다. 하지만, 리프트 타는 것조차 서투른 정모양은 그만 고급자 코스인 레드코스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냥 리프트를 다시 타고 내려 왔더라도 그날의 비극은 없었을텐데...


우리의 정모양은 레드코스의 경사 앞에서 그냥 얼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는 게걸음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스키를 벗고서 걸어 내려 왔으면 되련만 사람이 당황하면 정신이 없어지지요...


중간 쯤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녀는 여러 번 넘어지고 미끄러졌습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0분..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모든 비극의 징조가 시작됐습니다.


그녀는 쉬야가 너무 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 스키실력으로 앞으로 또 얼마나 내려가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거기까진 어쩌면 정확한 판단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40분을 양다리에 힘을 주며 내려오다가 무슨 불상사를 맞을 지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약간 위쪽에 있던 안전팬스 뒤쪽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코스에서는 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스키복이 원피스라 그녀는 다시 난감해졌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했기에 그녀는 주위를 한 번 살피고 그 곳에서 스키복을 무릎까지 내리고 쉬야를 하기위해 포즈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스키가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급한 나머지 스키를 벗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순간 당황해서 상황판단이 흐려졌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 몽롱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안전팬스를 벗어나 코스로 다시 들어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앉은 자세였기 때문에 속도는 더욱 더 빨라졌고, 스키복과 팬티가... 네 그렇습니다... 팬티가... 무릎 까지 내려와 스키를 모아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빠르고 멋진 활강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거의 톰바를 능가하는 속도였습니다... 양손으로 땅을 짚으며 브레이크를 잡아 보려 했지만 오히려 중심만 더 잡히고 있었습니다.


특히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앉은 자세가 되면 넘어지는 것조차 힘이 들기 마련 입니다. 그녀는 정신이 더욱 더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순간 모든 게 꿈속 같기만 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이 바로 자기 자신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직할강 속도는 프로급이었고 그녀가 오직 할 수 있었던 것은 소리를 지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거의 다 내려와서 그녀는 낮은 모글에 걸려서 마침내 넘어졌습니다. 스키는 벗겨졌지만 그녀는 운동의 제 일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의해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우리의 정모양이 깨어난 곳은 의무실이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밖은 깜깜했습니다. 의식이 점점 뚜렷해 지면서 오후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가 없다고,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간호사에게 자기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물어보았지만 그 간호사는 그저 스키사고였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간호사의 미소짓는 얼굴에서 어쩌면 아무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옆사람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녀의 옆 침대에는 어떤 중년남자가 팔과 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 천정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핸썸한 중년신사에게 어쩌다가 그렇게 되셨냐고 물어보았다.


그 남자는 공허하고 허탈한 미소를 지은 체 천장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어떤 mi chin nyen이 아랫도리를 다 깐채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스키타고 내려오는 것을 구경하다가 리프트에서 떨어졌다고...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가.. 워낙 빠른 속도로 활강을 해서 얼굴을 못 봤을테지.. 만약 자신의 속도가 조금만 덜 했어도 아마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을 거야..


그 후로 그녀는 절대 스키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무데나 오줌싸지 맙시다...


너무 무섭습니다...



 


- 엽기사회부 수습기자 김강혁 ( jx23@h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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