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28.월 인디 칼럼리스트 기조휘
왜 날 몰라주냐며 볼멘 음악. 방송에서 틀기에 껄쩍지근한 음악. 한 예술 하는데 안 팔릴 것 같은 음악.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음악. 남 신경 안 쓰고 딸딸이치는 음악. 이런 음악들이 씨바 조또 열라 일어나서 독자적인 판을 만들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잡동사니 현상을 인디 뮤직이라고 부른다. 에조티 음반 1장 만드는 돈으로 인디는 20장의 음반을 만든다. 저예산 고효율! 온통 에조티 음악만 판칠 때 인디는 20가지 음악을 선보인다. 다품종 소량생산! 에조티 음반으로 투기하는 기존 유통과 달리 인디는 자체적으로 투명하게 배급하고 유통한다. 독립적인 배급망! 요컨대 Do It Yourself! 이게 인디 뮤직이다. 인디 뮤직은 땅밑에서 땅굴만 파다가 98년 벽초부터 땅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98년에만 50여종의 앨범이 쏟아졌다. 제작도 배급도 나홀로 시대가 왔지만 매스 미디어에 대적할 홍보 수단이 없다. 마침 딴지일보를 만나 앞으로 격주마다 두 개씩 인디 뮤직을 소개한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인디 뮤직 음반을 사시라 ! 그게 인디를 살리는 길이다. 사는 방법
- 허벅지〈허벅지 댄스〉1998.2. 발표 아직도 온 나라에 파시즘의 욕망이 빵빵하다. 그 터질 것 같은 풍선을 빠지직 문대며 바르르 떠는 허벅지가 있다. 하지만 "니가 바로 파쇼야!" 요렇게 싸가지 없는 허벅지는 아니다. 도리어 자신의 허벅지에 흐르는 파쇼적 본능을 숨김없이 공격하고 애무한다. 그 자학성 쾌락이 얼마나 짜릿한지 눈물 콧물 좃물 핏물이 쪽쪽 나왔다 들어가며 오르가슴과 내리가슴을 쉼없이 넘나든다. 허벅지의 이 솔직 무도한 내 탓이요 운동을 보노라면, 아마도 이 나라 국민의 평균 교양은 확 오바이트 쏠리고 말 것이다. 그룹 허벅지는 문화 게릴라 안이영노(부모 성 같이쓰기)의 프로젝트 록 밴드다. 96년 겨울께 결성되어 지금은 3기가 활동하는데,〈허벅지 댄스〉앨범은 2기 멤버들이 녹음했다. 1기 멤버들은 공연하다가 갑자기 서로 뽀뽀하고 빨아주고 포개지는 일명 애정만세 퍼포먼스에 능했다는 소문이 있다. 허벅지란 이름은 드럼 막대기로 허벅지를 치다가 "허벅지가 끝내줘요" 하면서 지었단다. 자기 몸을 감추지 말고 떳떳하게 노출해서 위선과 기만을 버리자는 뜻이라는데, 이만하면 왕 건전 가요다. 허벅지는 신성과 세속, 이성과 본능, 권력과 저항처럼 사과 쪼개듯 이분법에 익숙한 고정 관념에 안다리를 걸어 뒤로 자빠지는 음악을 한다. 바이올린이 주선율로 싹싹 자지러지면 무거운 록 사운드나 가벼운 댄스 멜로디가 뒤섞여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식이다. 물론 록커의 남근주의 이미지나 키취풍의 쇼맨쉽과는 거리가 멀다. 고 사이를 슬슬 빠져 나가는데, 요점이 바로 허벅지 음악을 즐기는 뽀인트다. 가끔은 비극적 풍자와 희극적 자살을 오락가락해 허벅지에 경련이나 안 일지 염러스러울 정도다. 허벅지를 둘러싸고 생긴 해프닝 두 개. 하나는 98년 3월 8일 이희호 영부인도 배석한 여성의 날 행사장 사건. 그 폼나는 무대에 오른 허벅지는 평소처럼 최선을 다해 요상 느끼하게 노래를 불렀다. 동시에 장내에는 살얼음같은 침묵이 깔렸다. "꺼저라! 죽어라! 디비져라!"하는 야유와 폭언을 유도한 거였는데 썰∼렁∼했다. 모름지기 여성운동이란 진지해야 한다고 믿는 쪽에서 보자니 허벅지 음악은 맛탱이가 확 가서 혐오스러웠던 모양이다. 행여나 청와대에서 뒷말이나 없었는지 허벅지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또 하나는 부산 엠비씨 에프엠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의「뜯어먹어, 날」사건. 피디가 실수로 허벅지의 이 노래를 틀었다. 앨범에 실린 전곡이 방송 심의에 걸린 데다가, 좃선일보에 "방송가 잔혹 가요 파문"이란 고발성 기사까지 실려 파문이 커졌다. 물론 담당 피디는 중징계를 먹었다. 이 소식을 접한 허벅지는「뜯어먹어, 닭」으로 제목과 가사를 싹 고칠까 말까 대책 회의를 가졌단다. 하튼 허벅지는 먹어서는 안 될 불량 식품의 대명사처럼 팍 찍혀 버렸다. 근데 불량 식품을 정말 아무도 안 먹나? <허벅지 댄스> 참가자 및 수록곡
- ANN〈skinny ANNs skinny funky〉1998.7. 발표 조용필이「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가요계를 쑥대밭으로 조진 이래 부싼은 가끔씩 쎄울 특별시를 왕따시킨다. Invasion of Busan! 최소한 이 말은 국내 비주류 음악, 특히 록 음악의 흐름을 살펴보면 딱이다. 80년대 중후반께 전국의 열혈 고딩이들을 미쳐 날뛰게 만든 헤비 메틀의 열기도 부싼(그리고 인천)이 더 원조였다. 짧게는 그때부터 지금껏 부싼은 쎄울의 록 음악보다 앞서가는 면이 있다. 물론 그 모든 열매를 공룡같은 쎄울이 난짝 따먹어서 문제지만… 하튼 부싼은 하 수상한 도시다. 반면 쎄울이란 곳은 워낙 유행에 민감해서 깔짝대며 튀려고만 하지 정작 독창적인 대목에서는 젬병이다. 이 점에서 부싼의 록 그룹 앤이 쎄울 홍대앞 거리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신호탄 같은 일이었다. 스카(ska), 레게(raggae), 랩(rap), 훵크(funk), 펑크(punk), 하드코어(hardcore) 등 온갓 재료를 혼합해 섞어찌개 같은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근데도 맛이 깔끔하고 먹음직했다. 게다가 앨범 제목처럼 삐적 마른 애들이 쿵짝쿵짝 흥겹게 리듬을 타며 공연을 하자 쎄울 애들이 하나둘씩 들썩이며 빠져들었다. 아싸, 부싼의 힘! 들춰보니 부싼의 흔적은 이 것만이 아니다. 앤의 녹음 프로듀서를 맡은 김성수도 부싼 출신의 기타리스트다. 앤의 뮤직 비디오(케이블 테레비에 꽤 나왔다)를 찍은 캠코더 작가 남지웅도 부싼 선배다. 앤과 함께 갈매기 공화국이라고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단체에서 활동해온 그룹 레이니 썬(Rainy Sun)도 비슷한 시기에 입성해 귀곡 메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서 에브리 싱글 데이, 레몬 크러쉬, 헤디 마마, 피아 등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그룹들이 속속 상경할 태세다. 해서 쎄울의 비주류 음악판에는 난데없이 부싼의 바닷가 짠내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쎄울이 그런지(grunge)다, 펑크다, 하드코어다 하면서 바람따라 몰려다니며 거품을 즐기는 동안에 저 멀리 부싼은 알토란 같은 색색의 록 그룹들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다. 공연장도 팬들도 언론의 관심도 열라 열악한 변방에서 쎄울 특별시보다 감각이나 수준이나 다양성에서 앞서가는 음악들이 나온다는 건 졸라 의미 심장하다. 그러나 90년대의 이들이 20여년 전의 조용필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사정이 너무 슬프다. 옛날 조용필은 부싼을 점령하고 북상해서 최종적으로 쎄울을 함락함으로써 전국을 평정했다. 반면 90년대의 부싼 록 그룹들은 고향에서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알아줄 재간이 없다. 그 사이 부싼은 오직 쎄울이란 눈귀를 통해야만 세상을 알 수 있는 귀머거리 장님이 되었다. 그러니까 옛날 부싼은 그래도 고향의 영웅을 알아봤지만 지금은 아니다. 90년대의 부산 록 그룹들은 쎄울행 밤차를 타고 도둑처럼 고향을 떠나야 성공할 수 있다. 앤 역시 쎄울에서 날개를 펴야 부싼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다, 씨바. <skinny ANNs skinny funky> 참가자 및 수록곡
- 인디 칼럼리스트 기조휘 ( jungy70@netsg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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